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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칼럼 > 김작가의 음담악담 목록 > 내용   2008년01월03일 제6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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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협회의 20년 노래 독점

저작권자의 의사 고려하지 않고 사용료만 내면 오케이라니, 이런 이상한 일이 어딨나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토이의 <뜨거운 안녕>에서 보컬을 맡으며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지형은 지난여름 황당한 일을 당했다. <강아지 이야기>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백구>를 리메이크해서 수록할 생각이었던 그는 원작자인 김민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용허가를 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민기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저작권협회)에 다시 전화를 돌렸다. 김민기에게 원곡 사용을 거절당했는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자 저작권협회의 담당자는 말했다. “뭐하러 저작권자에게 직접 연락하셨어요. 저희한테 먼저 알아보시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권협회 쪽의 사용승인만 받으면 얼마든지 사용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물론 사용료만 내면 된다. 사용하지 말라는 저작권자와 돈만 내면 마음대로 써도 좋다는 저작권협회. 이지형은 갈등하다가 저작권자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는 <백구>를 리메이크하는 대신 <백구>로부터 영향받아 만든 노래임을 제목에서 밝혀 <백구 2>라는 곡을 써서 <강아지 이야기>에 실었다.


△ 네티즌의 불법 다운로드를 개탄하기 전에, 저작권협회는 스스로 저작권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2004년 5월 저작권협회를 포함한 음악 관계자들의 MP3폰 반대 시위.

외국 저작권은 민영회사에서 관리

저작권협회의 메인 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명시돼 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음악 저작자(작사자, 작곡자, 편곡자 및 역사자)의 권리를 옹호하며, 음악문화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그런데 문제는 음악하는 사람치고 그 누구도 저작권협회가 음악 저작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지형과 김민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저작권협회는 원작자의 뜻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사용료만 내면 오케이다. 지난가을 김동률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거위의 꿈>을 부른 인순이를 제외하고 자신에게 허락을 받아 리메이크를 했던 가수나 제작자가 없었다고 실토한 바 있다. 작곡가 이영훈은 개나 소나 자신의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현실에 참담함을 느꼈는지 직접 가수들을 선정, 자신의 명곡들을 모아놓은 <옛사랑> 컴필레이션을 내놨다. MC 더 맥스가 2005년 조용필의 노래들을 리메이크한 앨범을 내놨을 때 조용필이 진노했던 것도 그래서다. 그나마 조용필 정도 되니까 공개적으로 분노도 하고 MC 더 맥스가 사과라도 하는 거지 웬만해선 어림도 없다. 왜냐, 저작권협회는 법적으로 저작권을 신탁관리할 수 있는 독점적인 권리를 보장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의 ‘저작’을 영어로 하면 ‘publishing’이다. 출판과 같은 의미다. 토머스 에디슨이 레코딩 기술을 발명하기 전, 음악이 유통되는 방식은 악보를 통해서였다. 작곡가와 독점 계약을 맺은 출판사가 악보를 출간, 판매하는 데서 퍼블리싱 개념이 등장했던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레코드가 음악을 소비하는 주요 매체가 된 뒤에도 음원 이전에 악보상으로 존재하는 창작의 결과물은 음악 출판사에서 관리해왔다. 따라서 외국의 저작권은 민영회사에서 관리한다. 비틀스의 저작권은 소니ATV 뮤직 퍼블리싱이, 아바의 그것은 유니버설 뮤직 퍼블리싱이 갖고 있다. 때로는 저작권이 매매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마이클 잭슨은 1980년대 초반 폴 매카트니의 권유로 비틀스의 판권과 저작권을 구입했다. 그리고 재정이 악화되기 시작한 2001년에는 그 권리의 절반을, 2005년에는 나머지 권리를 모두 소니에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는 만약 저작권자와 회사의 계약이 끝나면 당연히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다른 회사와 새로운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저작권자가 갑의 위치를 점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독점적으로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한국의 저작권협회와 저작권자 사이에는 갑도 을도 아닌 이상한 관계가 맺어져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작권자의 의도에 상관없이 협회 마음대로 사용을 허락하고 말고 할 수가 있겠나. 신탁이라는 제도가 원래 그런 것이다, 라고 얘기한다면 제도를 보완해야 할 일이다. 음치 가수 이재수가 서태지의 <컴백홈>을 패러디한 <컴배콤>을 발표했을 때, 서태지는 저작권협회를 탈퇴했다. 그 뒤 직접 저작권을 관리해오고 있다.

시장의 논리에 맡겨봄이 어떨까

그렇잖아도 불법 디지털 음원 때문에 저작권자의 권리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오빠 노래가 좋아서 세 번이나 다운받아서 들었어요”라는 말에 쓴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보듬어줘야 할 같은 바닥에서조차 ‘리메이크는 하나의 장르’라는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가 생길 정도로 아무나 남의 노래를 일정한 돈만 내면 부를 수 있다. 네티즌들이 불법 다운로드로 저작권을 침해한다며 하소연하기 전에, 저작권협회 스스로 저작권자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무한 시장경쟁보다 더 위험한 건 제도에 의한 독점이다. 그것이 합리적 절차에 의한 독점화가 아닌, 어느 날 뚝 떨어진 독점적 권리일 때는 더 그렇다. 저작권협회는 1988년부터 저작권 신탁 업무에 의한 배타적 권리를 누려왔다. 그로부터 20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모든 걸 시장주의에 맡긴단다. 만약 그 논리를 음악 저작권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현 상황에서는 실보다는 득이 많을 것 같다. 지금의 저작권협회는 너무 안일하다. 복수의 회사에 의한 저작권 관리신탁의 민간 이양을 생각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