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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칼럼 > 종이비행기 47 칼럼 목록 > 내용   2006년09월29일 제6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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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이종호를 소개합니다

소설가나 배우를 좋아하는 당신처럼 내가 관심 가지는 건축가 … 그 흔한 외국 유학 않고 순토종의 눈으로 넓은 세상 품는 자

▣ 정기용 건축가

보통 사람들은 소설가나 영화배우, 탤런트 또는 연극배우,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이름을 몇 명씩은 알고 있다. 이름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왔는지, 그리고 왜 자기가 그 사람을 알게 되었고 좋아하는지 말로 설명도 할 수 있다.

대체로 이 시대의 대중문화의 홍수를 비켜가기가 쉽지 않기도 한 것이 원인이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직접 만나지 않고도 친근감을 느끼거나 가깝게 생각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대중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대상이 되는 것 또한 자연스런 일이다.


△ 이종호는 누구보다 우리 도시에 내재하는 현실성을 읽으려는 건축가다. 그가 작업한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왼쪽)과 2002년 광주 비엔날레의 비닐하우스 전시장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소설가나 시인들만큼은 일반 대중예술은 아니면서도 조금은 대중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몇몇 소설가들의 이름을 들어도 낯설지 않고, 딱히 어떤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채로 그들의 최근 정황을 알게 된다. 그러나 건축가들의 이름을 알고 있거나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아무 데도 없다. 그 흔한 TV매체는 고사하고라도 언론매체가 진정으로 건축가를 소개하거나 알리려는 노력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만큼 건축가들은 일상적인 삶 속에서 잊혀져 있고 그렇게 각광을 받는 직업이 아닌 것이다.

10여 년 전의 만남, 서울건축학교

그래서 나는 오늘 지난 10여 년간 지근거리에서 만나고 간혹 일도 같이 하면서 깊이 알게 된 건축가 이종호를 이야기하고 싶다. 그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건축가란 전문 직업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 중 건축가들만큼 끊임없는 일을 통해 한 시대를 넓고 깊게 그리고 다양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 이 땅에 사는 사람들도 건축가 한두 명쯤은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삶의 지평을 넓힐 때가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건축을 너무 전문적인 영역으로 생각하고 엄두를 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건축가란 궁극적으로 우리 삶을 반영하고 또 조직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건축가 이종호는 일찍이 대학시절 김수근 선생님의 문하에 있던 장세양에게 발견돼 공간에 들어가서 건축에 입문하게 된다. 두 분 다 작고해 물어볼 길은 없지만, 그는 공간의 여러 식구들 틈에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품이 큰 사람으로 성장했지 싶다. 그 흔한 외국 유학도 하지 않고 순토종 건축가로서 이종호만큼 폭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균형을 잃지 않는 건축가가 어디 있나 싶다. 지금 막 50대로 진입하기 직전인 그는 60대 이상의 지혜로움과 청년 시절의 건축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내가 그를 처음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은 10여 년 전 건축가 10여 명이 ‘서울건축학교’(SA)를 만들었을 때다. 건축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기보다, 건축을 그 본래의 영역, 즉 공학이나 예술의 장르가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의 반열로 위치 조정을 하며 건축가로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총체적이며 근원적인 사고’의 방향을 함께 모색하던 시절이다. 그리고 이후 지금까지 아홉 차례의 ‘SA 여름 워크숍’(매년 여름 7~8일간 전국의 대학생 100여 명과 건축가 20여 명이 크고 작은 도시를 읽고, 논의하고, 제안하는 여름학교)에서 함께 일하면서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그가 누구보다 우리나라 도시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속에 깊이 내재하는 현실성을 읽으려 노력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참여 학생들을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지도한다는 사실이다. 덧붙여 그는 지속적인 독서를 통해 건축인들이 만나야 할 새로운 작가나 학자들을 계속 발견해낸다. 건축 교육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한양대학에 이어져 그가 지도한 학생들은 모두 학기 말에 그들이 공부한 작업을 총정리해 한 권의 책에 담아 나눠가지기도 했다. 내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끄집어내는 것은 지난해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되어서만이 아니라, 결국은 그가 건축가로 성장하면서 질문했을 수많은 사안들에 대해 생각한 것들을 후학들이 진정으로 큰 건축가가 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끌어주는 질료로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건축은 유학해서 외국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올바르게 생각하는 법’만 안다면 얼마든지 스스로 익힐 수 있다. 우리 삶 속에서 길어내는 방법론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가 만들어내야 하는 것임을 그는 누구보다 통렬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전시장과 박수근 미술관

내가 어느 해 광주 비엔날레 제4전시를 맡아 광주의 폐선부지 활용에 관한 기획을 할 때 그가 남광주역에 설치한 ‘비닐하우스 전시장’ 풍경은 최근 이 땅에서 이루어진 이벤트에서 가장 멋진 것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흔해 빠진 비닐하우스 구조물로 보석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양구에 세운 박수근 미술관은 건축이 어떻게 ‘건물’을 넘어서 훼손된 땅을 치유하며 작은 도시가 어떻게 ‘문화’의 이름으로 새롭게 생성될 수 있는지 하나의 사례를 만들어주었다. 또 몇 해 전 지은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은 근대 유적들이 포진한 서울의 정동 땅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외에도 강원도 율전교회와 소박하지만 일상적인 우리 삶의 모습 속에 여유로움을 선사한 홍천휴게소 등 여러 작업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최근에 행정복합도시 ‘첫마을’ 작업을 공동으로 하면서, 그리고 광주문화도시와 순천문화도시를 구상하면서 그야말로 건축과 도시를 넘나들며 이 시대 한국의 공간문화를 깊고 넓게 그리고 현실성 위에 사유할 수 있는 드문 건축가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매일같이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는 후배(?) 건축가를 이야기하기가 참으로 쑥스럽다. 그리고 이 짧은 글에 모든 것을 담기도 어렵다. 앞으로 동아시아의 건축·도시 문화의 교류를 꿈꾸는 그가 미국과 유럽 문화권으로 물든 이 땅에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TV 연속극 보기를 잠깐이라도 중단하고 그가 설계한 건축들을 돌아보기를 권한다. 공간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닌 발로 읽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