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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김재희의 여인열전 등록 2005.01.19(수) 제544호


[김재희칼럼] 중국을 흔든 화혼, 판위량

[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기획위원 franzis@hanmail.net

한국에 나혜석이 있고 멕시코에 프리다 칼로가 있다면, 중국에는 판위량(潘玉良·1895∼1977)이 있다. 그녀의 사연은 장이모 감독이 제작하고 궁리가 주연한 영화 <화혼>을 통해서도 알려졌다.

프랑스와 일본과의 전쟁에서 연거푸 무릎을 꿇은 전족(纏足)의 나라에서 좋은 서양문물만 골라서 배우자는 기치를 든 개혁파의 꿈도 백일몽으로 끝나버린 암울한 시절, 조실부모하고 가난에 찌들어 살던 판위량은 열네살 나이에 누각으로 팔려가 기생이 된다. 여기서부터 드라마틱한 인생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판위량은 혁명당의 회원이며 관리로 부임한 판찬화와 사랑에 빠져 그의 첩이 되고 문학과 예술에 눈을 뜬다. 더욱이 그 인연으로 공산당 총서기 추천을 받아 상하이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뒤 파리와 로마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모교의 교수가 된다. 귀국 뒤 ‘중국 최고의 서양화가’로도 뽑히지만 창기였던 과거로 인한 수모가 계속되면서 자신은 물론 남편이자 후견인이었던 판찬화마저 위기에 빠지자, 다시 파리로 건너가 화혼을 불사른다. 그리고 끝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

1920년 미술대학에 들어간 이후 판위량이 끊임없이 추구한 작품의 소재는 ‘여체’다. 판위량에게 벌거벗은 여성의 몸은 소유와 굴복을 초월하는 자유의 표상으로, 춘화에나 등장하던 누드를 예술로 고집했던 그녀의 집착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이자 폐쇄적인 중국 사회와 여성에 대한 폭력에 항거하는 반역으로 평가된다. 그녀의 작품 <나녀>(裸女)는 처음 출품됐을 때부터 상하이 학교와 화단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여성의 몸을 탐하는 그녀의 시선엔 남성 화가들이 대상화해온 여체의 미학이 다분하다. 그것과 일치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어중간한 경계에 서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태는 그녀의 시선뿐 아니라 손끝의 움직임에서도 느낄 수 있다. 판위량의 수많은 작품에는 세잔과 고흐와 고갱, 마네와 모네와 마티스까지 인상주의 화가들의 필치가 두루 묻어 있다. 거기에 동양화의 터치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수능란한 그녀의 솜씨 앞에서 나는 문득 식민지 백성의 ‘재간’을 보는 듯한 착잡함을 떨칠 수 없다.

파리를 좌우로 가르는 센강 왼편에, 전세계에서 몰려온 여성 예술가들이 1920년대부터 게토를 형성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 소멸되기까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채로운 문화적 실험을 벌였던 역사 밖 에피소드가 책으로 묶여 <파리는 여자였다>란 제목으로 나와 주목을 받았다. 그 시기 센강 주변을 배회했을 것임이 틀림없는 판위량과 나혜석의 흔적을 고대했지만,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들은 아직 식민주의와 인종주의가 무언지조차 성찰하지 않던 시대의 유색인 여자로 살았던 까닭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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