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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라이프 & 트렌드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2월28일 제6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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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클로 불쌍한 채소 구하기

있으면 모르지만 없으면 간절한 팔방미인 절임 음식…다듬은 채소에 끓는 물 부으면 끝, 라면 끓이기보다 쉬워라

▣ 글 홍신애 요리연구가·www.hongshinae.com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중국집에 가서 단무지 안 나오면 이상하다. 몇 점 안 찍어먹을 건데도 없으면 화난다. 좀 고급스러운 중국집에 가면 초절임 채소가 나온다. 요리를 기다리며 같이 나온 땅콩과 심심풀이로 입맛을 돋우기에 좋다. 물론 요리를 먹으면서 기름기가 넉넉해 이글거리는 속을 이 채소를 몇 점 먹어서 진정시킨다. 피자를 주문하면 당연히 오이 피클이 따라온다. 콜라로는 왠지 못 미더운 기름기가 오이 피클 몇 점에 싹 가신다. 집에서 밥 먹을 때 밥상에 김치 없으면 밥 먹은 것 같지 않다. 라면 등 간단한 일품요리를 먹을 때는 더 간절하다. 중국집에 가도, 이탈리아 피자집에 가도, 집에서 밥을 먹어도 언제나 숨은 듯 놓여 있는 그것을 우리는 이 한 단어로 부를 수 있다. ‘피클’.


초에 절여 먹고 설탕에 절여 먹고

피클은 ‘초절임이나 당절임 등의 절임 방식을 이용한 저장 음식’이라고 사전에 정의가 되어 있다.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에 상관없이 절여 만들면 그것은 모두 피클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는 우리나라 고유 음식인 김치들을 모두 ‘절인 배추’(Pickled Cabbage)라고 부른다. 식초를 이용해 만드는 초절임법과 설탕, 설탕물을 이용해 만드는 당절임법, 그리고 소금을 이용해 절이는 염장법 등이 주요 ‘피클 만드는 법’이다. 단무지나 오이 피클, 김치는 염장법이다.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피클의 종류만 해도 50가지가 넘는다. 김치류나 장아찌류까지 포함한다면 그 종류는 어마어마하다. 우리가 김치를 피클이라고 부르지는 않으니 ‘피클’이라는 이름으로 ‘피클’을 소비하고 있는 미국의 예를 한번 보자. 미국 전역에 걸쳐 오이나 파프리카, 서양 페퍼 등 피클로 만들어져서 하루에 소비되는 양이 약 500만 파운드(약 230만kg).

왕이나 귀족이 아닌 바에야 신선할 걸 기회가 있을 때 구해서 오랫동안 곁에 두어야 하는 법. 피클은 가장 간단한 조리법이자 가장 오래된 조리법이다. 피클은 45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2000년 티그리스강 유역으로 이주를 해온 인도 원주민들이 오이로 처음 피클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이미 3천여 년 전 고대 이집트 등지에서 오이 피클을 많이 이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성경에도 가나안으로 옮겨갈 때 절임 채소와 절인 생선을 가지고 갔다고 기록돼 있다. 만물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피클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니 저장 식품인 오이 피클이 질병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확인할 수는 없으나 클레오파트라는 ‘식초’를 애용했다. 피부 미용을 위해 채소를 식초에 절여 먹고 심지어는 식초에 진주를 넣어 녹여 먹었다고 한다. 이만하면 TV 프로그램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식초 먹는 사람’으로 등장할 만하다. 절임 식품은 전쟁시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전쟁이 저장 식품의 발달을 촉진했다고도 한다. 1차 세계대전에는 비상식량으로 쓰였는데 이때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통조림에 들어간 영광을 차지한 것도 피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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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식 장김치


무 1/8개·배추 알속배기 1개·미나리 1줌·통마늘 8알·양파 1/2개·잣 2큰술·대추 5알·밤 3개·소금 4큰술·간장 2컵·물 5컵·꿀 4큰술

1. 무는 얄팍하고 네모지게 썰고 배추도 무 크기만 하게 썰어 씻어 준비한다.
2. 무와 배추에 소금을 뿌려 1~2시간 절인다.
3. 절인 배추와 무에서 나오는 물을 따라 버리고 물에 한 번 헹궈 준비한다.
4. 양파는 크게 썰고, 통마늘은 껍질만 벗겨 그대로 사용하고, 대추와 밤은 채를 썰어 준비한다. 미나리는 손가락 길이로 썰어주고 잣은 고깔을 떼어준다.
5. 물에 간장과 꿀을 섞어 국물을 만든다.
6. 절인 무와 배추, 잘라놓은 양파, 통마늘, 미나리, 대추, 밤을 모두 통에 넣고 5번 국물을 부은 뒤 잣을 뿌려 밀봉한다.
7. 12시간 실온에서 익혔다가 냉장고에 두고 먹는다. 2~3일 뒤가 가장 맛있으며, 한 달 이상 오래 두고 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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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초절임, 동양에서는 염장이 발달했다. 그 차이는 날씨에 있다. 지중해같이 습기가 많고 바람이 부는 곳에서는 돼지고기에 소금을 뿌려서 바닷바람에 말리는 육류 ‘과메기’도 있지만 주로 서양은 초절임을 이용했다. 날씨가 건조하다 보니 채소에 식초와 물을 함께 채워서 채소가 물을 머금고 있도록 했다. 동양은 반대로 습도가 높다 보니 삼투압으로 채소에서 수분을 빼내어 짜게 만든다. 그래서 같은 오이라도 우리나라는 ‘짠지’고 서양은 ‘초절임 피클’이다. 물을 빼는 방법이 훨씬 더 응용력이 높다. 서양에서 자주 쓰는 오이나 고추, 물기가 많은 배추나 무우 등 채소, 매실이나 자두 등 과일, 그리고 고기나 생선 등 채소가 아닌 것들도 염장법에 이용할 수 있다.

서양은 초절임, 동양은 염장인 이유?

우리나라 김치처럼 염장법은 각국의 전통적인 음식을 구성한다. 중국집에 가면 나오는 ‘짜사이’는 겨잣과의 뿌리 식물이다. 짜사이는 중국의 김치라고 불릴 정도로 많이 먹는다. 소금에만 오랫동안 절여 삭혀 먹는다. 바로 먹지 않고 ‘볶는 요리의 대국’답게 고추기름이나 참기름, 깨 등을 첨가해서 무쳐 먹는다. 오랫동안 염장한 음식이라 요리 전에 찬물에 2시간가량 담가 짠맛을 없애줘야 한다.

일본의 피클들은 모양이나 맛에서 단연 눈에 띈다. 일본 정식 요리인 ‘혼젠 요리’에는 본요리, 식사 요리(곡류)와 함께 꼭 절임 종류인 ‘보시’ 요리가 나온다. 대체적으로 담백한 맛이 특징인 일본 요리 사이에 보시 요리는 비교적 강하고 센 느낌으로 악센트를 준다. 이 보시는 지방색을 많이 띠고 있다. 매실, 꽃, 채소 등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담그고 양념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김치를 담는 그릇을 한동안 ‘보시기’ 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이 일본의 절임 요리를 부르는 ‘보시’에서 비롯됐다고 하여 3년 전 순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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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루식 생선 절임 세비체


생물 대구살 300g·레몬 2개·라임 2개·소금 약간·셀러리, 치커리, 당근 등 갖은 채소

1. 대구살은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토막을 낸다. 소금으로 간을 한다.
2. 레몬과 라임은 즙을 짜서 대구살 위에 골고루 뿌려준다.
3. 3시간 후에 다시 레몬과 라임 즙을 골고루 뿌려 버무리고 살이 산에 응고되게끔 5~6시간 냉장 보관한다.
4. 대구살이 하얗게 응고되면 셀러리, 치커리, 당근 등 갖은 채소 위에 올려 같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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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페루나 남미의 여러 나라의 경우 셀러리, 양파 등 향이 나는 채소를 이용한 초절임 방식이 많다. 레몬이나 라임의 산을 이용해 생선살을 굳혀 만드는 ‘세비체’란 음식도 넓게 보면 피클이다. 세비체는 원래 날생선의 살 위에 레몬이나 라임 즙을 살짝 뿌려서 바로 먹는 ‘회’와 비슷한 요리였다. 스페인이 남미를 지배하면서 생선살을 산으로 굳혀 거의 익히다시피 먹는 스페인식 요리로 변형됐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세비체는 이제 남미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절였다고 해서 오래가는 것은 아니다. 적절하게 보관도 잘해야 한다. 먼저 초절임법 피클의 경우 산에 의해 부식이 되는 철 종류는 피해야 한다. 유리나 플라스틱, 스테인리스스틸 종류가 적당하다. 세균의 번식을 최대한 막기 위해 끓인 물, 혹은 끓인 식초로 한 번 소독을 해준 뒤 담아두면 오랫동안 신선하게 먹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채소 겉면만 경직시켜 더 바삭한 상태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또 와인이나 설탕, 소금 등을 넣어도 보존성이 좋아진다. 풍부한 맛을 더하는 향신료인 딜, 후추, 마늘 등을 사용해도 더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피클은 반드시 시원하고 그늘진 곳에서 보관해야 하는데, 더 오래 두고 먹으려면 냉장 보관해야 한다.

상상한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 맛

피클은 간단한 술안주로도 좋다. 소주 안주로는 묵은 김치가 최고라는 말이 있다. 묵은 김치는 질이 좋은 피클이다. 소주의 강한 맛과 김치의 신맛이 잘 어울린다. 맛이 진하고 부드러운 흑맥주도 김치 종류 혹은 장아찌와 잘 어울린다. 시원할수록 좋은 생맥주는 단맛이 비교적 덜하고 심심한 듯 짭짤한 독일식 양배추 절임인 사워크라우트와 잘 어울린다. 독일식 소시지를 사워크라우트로 쌈같이 싸서 먹으면 더욱 좋다. 거기다 염장한 양배추는 위를 보호하고 소화를 돕는다. 위스키나 보드카 등 도수가 센 술을 먹을 때는 단맛이 약간 도는 채소 피클이 좋겠다. 입 안을 정리하고 술의 세고 강한 맛을 반감시키기 때문에 잘 어울린다. 또 의외로 과일 향이 강한 와인과 백김치의 궁합도 좋다. 백김치 본연의 담백함이 와인의 과일 향과 톡 쏘는 맛을 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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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식 사워크라우트


양배추 1/2통·깻잎 12장·소금 2큰술 + 소금 2큰술·식초 1/3컵·물 1/3컵·화이트 와인 1/3컵·설탕 4큰술·월계수 잎 2장

1. 양배추와 깻잎은 한 장씩 씻어 준비한다.
2. 냄비에 식초+설탕+물+화이트 와인+소금2큰술+월계수 잎을 넣고 부르르 끓인 뒤, 설탕과 소금이 녹으면 불을 끈다.
3. 양배추 3장에 깻잎을 1장씩 깔고 소금 2큰술을 나누어 약간씩 뿌려 1시간가량 실온에서 절인다.
4. 2번의 촛물을 한김 식힌 뒤 절인 양배추를 담갔다 빼서 통에 담아 저장한다. 국물이 남으면 모두 양배추 위에 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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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클이 피자에도 어울리고 자장면에도 어울리는 ‘팔방미인’이 되는 것은 ‘편안’하기 때문이 아닐까. 초절임이나 염장을 거치면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은 사라지게 마련.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우리에겐 익숙지 않은 치즈나 기름기 많은 음식들, 향이 독특한 음식을 접할 때 김치 혹은 피클을 먹으면 ‘이질감’을 둔화시키게 된다. 실제로도 휘발성 산 성분은 기분을 좋게 하고 입 안의 잡맛을 없애준다.

피클 만들기는 라면보다 쉽다. 기본적인 조리법은 다듬은 채소에 끓인 물을 붓는 게 다다. 그리고 응용력이 좋다. 어떤 채소든지 절이거나 담글 수 있다. 초도 되고 간장도 되고 소금도 되고 설탕도 된다. 냉장고에 썩어가기만 기다리고 있는 불쌍한 채소들을 피클로 구해보자. 그렇게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한, 자신만의 피클을 한번 만들어보자. 무엇이든 상상한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 맛이 되는 것, 그게 피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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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식 연근 피클


연근 1뿌리(약 300g)·식초 1컵 + 3큰술·청주 1/2컵·설탕 1/2컵·소금 1큰술·매실청 1큰술·물 1/2컵 + 1ℓ

1. 연근은 껍질을 벗기고 깨끗이 씻은 뒤 도톰하게 썰어준다.
2. 물 1ℓ에 식초 3큰술을 넣고 끓인 뒤 연근을 넣고 5분간 삶아준다. 삶은 연근은 건져둔다.
3. 식초+소금+설탕+청주+물 1/2컵을 냄비에 넣고 끓으면 불을 끄고 매실청을 1큰술 넣는다.
4. 삶아놓은 연근을 병에 담고 세 번 끓인 촛물을 부어준 뒤 1~2분간 놔두었다가 한김 나가면 밀봉한다. 2일 뒤부터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