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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라이프 & 트렌드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1월24일 제6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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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는 나의 힘

100명의 성대모사를 하는 사람부터 음성을 찾아주는 의사까지 목소리에 울고 웃는 사람들

▣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여러분 전 국밥을 먹고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경제를 살리고자 하는 일념으로 뛰고 있는데 계속해서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17대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이 한창이던 2007년 12월19일. 한국방송 스튜디오에서 개그맨 김학도씨가 이명박 당선자의 얼굴판을 들고 성대모사를 통해 ‘현재 심경’을 전했다. 전직 대통령과 대선 후보들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내는 그는 개표방송 동안 ‘대선 마라톤’의 해설위원을 맡아 적재적소에 ‘기술’을 활용했다. 함께 해설위원을 맡았던 최승돈 아나운서는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계속 바뀐다”며 놀라워했다. 이날 한국방송의 개표방송 시청률은 15.3%로 문화방송(10.1%)과 SBS(8.9%)를 따돌렸다.


△ “우~.” 서울 마포의 한 스피치 학원에서 아나운서를 꿈꾸는 학생들이 발성 연습을 하고 있다.

극장에도 ‘목소리’로 섭외된 이들이 있다. 2007년 방송계를 휩쓴 <무한도전> 멤버 중 3명이 2008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에 ‘목소리 캐스팅’됐다. 유재석은 <꿀벌 대소동>(1월3일 개봉)에서 주인공 꿀벌 ‘배리’를, 정형돈과 하하는 <엘라의 모험: 해피엔딩의 위기>(1월24일 개봉)에서 각각 돼지 멍크와 너구리 맘보를 맡았다. 관객은 목소리만으로도 그 배우를 인지했고 배우의 평소 이미지가 만화 속 캐릭터에 섞여들면서 재미를 더했다. <꿀벌 대소동>은 개봉 2주일 만인 1월16일까지 85만 8천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유재석의 목소리가 들어간 더빙 버전은 개봉 첫 주말 거의 매진됐다. 전국 260개 스크린의 10% 정도만 자막 버전을 상영했다.

김주하 목소리 듣자마자 “얜 앵커감”

목소리 덕분에 웃는 자 뒤에는 목소리 때문에 괴로운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 마포의 한 스피치 학원. 한 스님이 발성 연습을 하는 중이다. 그는 이 수업을 위해 매주 토요일 전라도에서 상경한다. 한 달 전 이 학원의 이선미 원장을 찾아왔다는 그는 “성격이 내성적이라 불자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공포스럽다”고 괴로움을 호소했다. 일단 음성 테스트를 해보니 그는 말을 할 때 입을 거의 열지 않아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다.

이선미 원장은 그에게 개인 강습이 아닌 토요일 예비반을 권했다. 일반 학생들과 같이 어울리며 소리를 들어야 나아질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토요일 4시간 동안 진행하는 이 수업에는 애널리스트, 공무원,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모두 자신의 업무에서 ‘목소리 고민’을 해온 이들이다. 이 원장은 “아나운서나 기자 등 방송인을 대상으로 수업을 해왔는데 최근엔 전문직 종사자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몇 달 전엔 한 대선 후보가 문의를 해오기도 했다.

그가 수업에서 강조하는 것은 ‘자기 소리 찾기’다. “어깨를 툭툭 털고 배꼽에 손을 대고 편안히 누웠다 생각하세요. 산림욕 왔다 생각하면서 코로 힘껏 숨을 들이마셔 아랫배까지 끌어오고 똥배가 딱 나오면 순간 스톱, 아~ 하고 내쉬면서 열을 세보세요.” 아나운서 대비반의 수업 시간에 발성 연습을 지도하며 그가 하는 말이다.

이 수업을 듣기 위해 제주도에서 올라왔다는 김유진(23)씨는 “내 목소리를 녹음해 들어보니 톤이 높고 속도가 빨랐다”며 “복식호흡을 연습할수록 소리가 나아짐을 느낀다”고 했다. 대학을 다니며 제주도의 한 방송국에서 리포터로도 활동해온 그는 목소리와 발음에 관해 지적을 받아왔다. 역시 제주도에서 올라왔다는 김아라(23)씨는 “방학 동안에라도 수업을 듣기 위해 올라와서 친구집에서 지내고 있다”며 “꿈을 이루기 위해 수업이 없을 때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발성 연습을 한다”고 했다.


△ 목소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힘차다. 표정까지 꿀벌 배리와 닮은 유재석이 더빙 작업 중이다(영화인 제공). 김학도가 “어라!”를 김국진과 함께 외치고 있다. 안숙선 명창은 50년을 소리와 함께하고도 여전히 소리를 깨달아가는 중이라고 한다(사진/한겨레 김경호 기자)

이 원장이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목소리는 김주하 앵커의 목소리다. 한 대학에 특강을 나갔다가 당시 대학 4학년생이던 김주하씨와 만난 이 원장은 “처음 목소리를 듣자마자 ‘얜 9시 뉴스 앵커감이다’라고 느꼈다”고 한다. 중저음의 깔끔한 목소리와 단호한 어투에서 신뢰감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방송국 아나운서 시험의 경우 1차 테스트에서 목소리를 20초만 들어보고 1천 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 50~60명을 골라냅니다. 전문가들은 5초만 들어보면 다 안다고 말하죠.” 그 목소리를 잡기 위해 이 원장은 아나운서 지망생들에게 끊임없이 ‘소리 찾기’를 요구한다.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주는 의사도 있다. 최근 <보이스 오디세이>란 책을 낸 예송이비인후과 음성센터 김형태 원장이다. “이번엔 ‘솔’까지 올려보세요, 도레미파솔.” 의사인 그는 매일 피아노 앞에 앉는다. 수술이 끝난 환자들의 물리치료를 위해서다. “방금 전에 치료를 한 환자의 경우에는 성악을 전공한 학생인데 경부종양으로 수술을 했어요. 수술 뒤에 ‘미’까지밖에 안 올라가서 그걸 ‘높은 도’까지 올리는 데 3년이 걸렸죠.”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는 그 환자의 목표는 ‘높은 미’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완성하는 데 3년

김 원장은 2003년 국내 최초로 목소리 전문 클리닉을 열었다. 당시 ‘목소리 전문 병원’이란 개념은 생소했다. 하지만 수요는 갈수록 늘었다. 자신이 환자인 줄 모르고 단지 목소리를 바꾸고 싶어서 병원에 왔다가 ‘목소리 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성대의 떨림을 관찰하는 MDVP 검사, 호흡량 체크, 내시경 검사 등을 통해 목소리에 과학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허스키하거나 걸걸하고 잡음이 많은 거친 목소리는 99% 질환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유치원 교사인 임아무개(25)씨는 얼마 전 이 병원에서 성대 수술을 받았다. 6~7살 아이들과 뒤섞여 지내면서 매일 동화구연과 노래를 하다 보니 목에 무리가 왔다. 쉰 목소리로 몇 달을 지내다 병원을 찾으니 성대낭종, 성대구증, 성대결절의 진단이 나왔다. 수술 뒤에는 ‘완벽한 목소리 회복 프로그램’이란 파일을 받았다. 첫 페이지에는 악보가 그려져 있었고 뒤에는 자세, 복식호흡, 발음 연습 등의 방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응, 오, 아’ 소리를 내며 발성을 하고 ‘경찰청 쇠창살 외철창살’과 같은 발음을 연습하며 음성치료를 병행한 지 6개월, 소리가 편안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허스키하던 목소리가 맑아졌다.

트랜스젠더 가수로 활동 중인 신애도 수술로 여성의 목소리를 찾았다. 김 원장은 “성 정체성을 완성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로 음성 여성화 수술이 시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남성의 성대는 여성에 비해 더 길고 굵다. 이를 짧고 얇게 꿰매주는 수술을 하면 톤이 높아진다. 트랜스젠더 외에 재생불량성 빈혈처럼 치료약에 남성 호르몬이 들어가 있어 남자 목소리가 나게 되는 경우에도 이 수술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다.


△ 김형태 원장이 피아노 앞에 앉아 환자의 발성을 돕고 있다.

50년 소리 인생 “지금도 소리 깨닫는 중”

그렇다면 소리를 얻는다는 ‘득음’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어떨까. <보이스 오디세이>에는 ‘득음의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상 성대에는 있어서 안 되는 성대질환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나와 있다. 다만 그 모양이 두툼하고 단단하며 서로 아귀가 맞아 일반 결절과 다르다. 성대 점막의 허물이 벗겨지고 아물기를 반복하면서 ‘피를 토하는’ 과정을 겪고 나면 결절 한쪽은 튀어나오고 다른 쪽은 들어간다. 이런 모양이 되어야 성대가 강하게 닫히며 거칠고 탁한 소리가 나오면서도 바람이 새거나 약한 소리가 나지 않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 보유자인 안숙선(58) 명창도 9살 때부터 소리 훈련을 해왔다. 당시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소리를 가르치진 않았고 그저 선생님이 소리를 내면 따라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선생님의 소리를 들으며 조금씩 깨우쳐나갔다. 선생님은 가끔 “배에 힘줘라, 입을 더 크게 벌려라”와 같은 간단한 지도만 해주었다. 그 길고 긴 과정을 국악인들은 ‘소리를 닦인다’고 표현한다.

이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교수로 있는 그는 학생들에게도 “배에 힘을 줘 소리를 밀어내라”는 주문을 한다. 그는 ‘소리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라 여긴다. “상·중·하 톤을 골고루 타고나야 하고 천구성(타고난 명창의 틔어나오는 소리), 애원성이 있는 실한 목”이 소리하기에 적합하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목소리의 첫째 조건은 ‘체력’이다. “에너지가 받쳐줘야 소리가 나는 법이니 운동을 많이 하면서 몸을 풀어줘야 한다”고 했다.

목소리가 힘이다. 그리고 목소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힘찼다. 벌써 50년째 소리를 하고 있는 안숙선 명창은 아직도 연습을 하면서 매순간 소리를 깨달아간다고 했다. 개그맨 김학도씨는 새로운 정치인의 성대모사를 할 때면 그의 목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밤새 틀어놓고 잔다고 했다. 목소리 때문에 병원을 찾는 이들은 한 옥타브의 음을 완성하기 위해 3년이 넘도록 음성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들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는 꿈이고 힘이다. <목소리가 인생을 바꾼다>의 저자인 보이스 컨설턴트 김창옥씨는 좋은 목소리를 위해 몸과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이렇게 말했다. “가난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릴 땐 아무리 해도 좋은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좋은 목소리를 내고 싶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사랑하라.”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췄나요

담배·커피·지나친 다이어트 등 내 성대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

오랜만의 회식에서 신나게 술을 마시고 “술 깨고 가자”며 들어간 노래방. 정신도 차릴 겸 음료는 캔커피를 고르고 담배 연기 자욱한 방 안에서 담배를 펴가며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다. 누가 예약할세라 연이어 노래를 고르며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다음날 그의 목 상태는 어떨까. 김형태 전문의는 이런 상황을 “목에 나쁜 건 거의 다 한” 상태라고 진단한다. 성대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을 정리했다.

1. 술: 성대에 필요한 것은 ‘물’. 성대는 1초에 100~300번 진동하고 노래할 때는 2만 번까지 진동한다. 그 진동을 돕는 윤활유는 99%가 물이다. 간에서 술이 분해될 때는 몸속의 물을 다 빨아들인다. 알코올 역시 성대에 직접 작용해 붓게 하고 과음에 따른 역류도 성대에 좋지 않다.

2. 담배: 연기가 직접 성대를 자극하고 마르게 한다. 타르도 목을 자극한다. 원유가 유출된 태안에서 자원봉사를 한 뒤 목이 아프고 목소리가 변했다면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다.

3. 커피·녹차·콜라: 카페인은 성대를 마르게 한다.

4. 심한 다이어트: ‘오페라의 여왕’이라 불렸던 마리아 칼라스의 경우 32kg을 뺀 뒤 근섬유가 약해지면서 아름다운 음색을 잃었다.

5. 노화·건강: 우리 몸에는 발성과 관계된 근육만 400개가 있고, 이 중 목 안에 있는 것만 50여 개다. 나이 들고 쇠약해지는 것도, 건강이 나빠지는 것도 목소리와 관계가 있다. 꾸준한 운동과 관리로 근육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한다. 긴장, 불안, 공포 등 정신건강 상태도 목소리에 영향을 끼친다.

6. 날계란: 윤활유 작용을 할 거라 착각해서 많이들 먹지만 상관없다. 앞서 말했듯 윤활유의 99%는 물이다.

7. 물: 체온과 비슷한 정도의 미지근한 물이 좋다. 성대에 좋으라고 뜨거운 허브차를 마시는 것은 맞지 않다.



이명박 목소리 바꿀 수 있다?

듣기만 해도 아는 과거·현재·미래 대통령들의 개성 만점 목소리 분석

이승만: 떨리는 목소리는 단지 나이 때문이 아니었다. 목소리 떨림은 크게 비브라토(vibrato), 트레몰로(tremolo), 진전(tremer)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진전은 1초에 8~12회의 진동으로 음높이 변화가 나타나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일음에서 심하게 떨리는 소리가 나는 목소리 병이다. 이 경우 성대 근육에 보톡스를 주입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그가 아직까지 살아 있다면 이 시술을 통해 좋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박정희: 군인 생활을 통해 강한 톤과 간결하면서도 힘이 실린 짧은 어조의 군더더기 없는 목소리가 몸에 뱄다. 강하면서도 약간 높은 톤을 유지하면서 악센트가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김영삼: 노화와 관련된 특징이 나타난다. 목소리가 다소 가는 편이며 높은 톤으로 어음 명료도가 높았으나 위엄 있는 목소리는 아니다. 사투리와 지역적 억양이 강해 다른 지역 사람들이 오랫동안 들을 경우 피로감을 느끼게 해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김대중: 노화와 함께 성대 근육이 약화됐다. 어눌하고 불명확하면서 힘이 없고 소리가 새는 듯한 쉰 목소리가 나타나는 ‘노인성 후두’의 증상을 보인다. 위식도 역류 때문일 수도 있다.

노무현: 목소리가 깨끗하고 공명감이 많다. 차분하게 천천히 이야기하는 편이며 쉬운 말을 사용해 언어 사용이 서민적이다. 친구 사이라면 다가가기 쉽지만 대통령으로서는 권위나 리더십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이명박: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나고 청명하지 못한 느낌이 있다. 성대에 홈이 파인 성대구증이나 반흔성 성대 등 성대 이상의 가능성이 있다. 변성기 때나 후두 염증이 있을 때 목을 많이 썼거나 선천적인 이상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목소리 톤을 낮출 수가 없다. 거기에 말까지 빠른 속도로 하면 목소리의 단점이 강조된다. 치료가 쉽진 않으나 전문가들은 복식호흡을 통한 발성과 천천히 말할 것을 권한다.

도움말: 김형태 예송이비인후과 원장, 이선미 스피치랩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