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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라이프 & 트렌드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9월11일 제6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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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미스 혹은 패배한 개의 상처 핥기

반짝거리는 청춘의 거품이 꺼진 뒤 살아남은 사람들, 30대 이상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

▣ 이다혜 <판타스틱> 기자

일본에는 ‘패배한 개’(負け犬·‘마케이누’라고 읽음)라는 표현이 있다. 30대 후반의 칼럼니스트 사카이 준코가 ‘마케이누의 절규’라는 부제가 붙은 <결혼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최초로 사용, 미디어를 타고 확대재생산된 말이다. 그 뜻은, 30대 이상의 여성으로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없는 여자. 일에 성공해 멋있게 살아도 결혼해 가정을 꾸리지 않으면 여성으로서 ‘패배’했다는 뜻이다. 그런 독신 여성이 증가하는 이유를, 일본에서는 버블 경제의 산물이라고 분석했다. 1980년대 말, 20대 여성들은 경기 호황을 타고 직장의 꽃이라 불리던 OL이 되었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직장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고, 독신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거품이 꺼지고도 많은 여성들은 독신으로 남아 사회생활을 계속하는 편을 택했다.


△ (일러스트레이션/ 권남희)

막연하게 기다리지 않는다

‘패배한 개’는 부정적인 함의의 표현이지만, 이 표현이 들불처럼 번져 사용된 이유는 이런 여성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 사람들은 거의 기혼인데 본인은 미혼. 성공하고 싶다는 야망에 불탄 적도 없는데 어쩌다 보니 직장에서는 중견 사원이 되어 있고, 어쩌다 일 때문에 화라도 낼라치면 ‘히스테리 부린다’는 쑤군거림을 듣고 있다. 결혼을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스스로도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패배’한 건지는 더더욱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30대 중반의 독신 여성이 되어버린 사람들.

일본의 얘기만은 아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 ‘골드미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자기표현에 적극적이고 문화생활과 여가를 즐기는 독신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게 번쩍거리는 수사 없이도,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독신 여성들은 현재 한국의 문화산업에서 가장 주요한 타깃으로 자리잡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아끼지 않고 돈을 쓰기 때문이다. 출판 시장도 그중 하나다. 영미소설에는 칙릿(chick-lit)이라고 불리는 여성소설 장르가 있다. 10대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들도 있지만, 20~30대 이상의 독신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들도 많다. <스물다섯까지 해야 할 스무 가지>는 제목과 달리 서른네 살인 여자 주인공이 끔찍한 교통사고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교통사고를 당한 주인공 준은, 동승했던 20대 여성이 죽었지만 자기는 살아남았다는 점을 쉬이 극복하지 못한다. 그녀가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은, 차에 타고 있다 죽은 20대 여성이 만들었던 ‘스물다섯 살 생일까지 해야 할 일’에 적힌 스무 가지 할 일을 대신 완수하는 것이다. 직장 일은 안 풀리고, 교통사고의 정신적 충격은 극복이 안 되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진 상태에서, 준은 동시에 그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런 책들은 10년 전쯤 유행했던 에쿠니 가오리를 필두로 한 연애소설들과는 약간 다르다. 권태로운 일상이라는 말은 현대의 독신녀들에게 사치다. 밥벌이를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의 어려움 역시 이야기의 한 축이 될 수밖에 없다. 혼자, 밥벌이를 하면서, 무엇이든 극복해나가야 한다. 고통의 원인은 남자친구의 결혼일 수도, 회사 일의 어려움일 수도 있다. 또한 가족 누군가의 죽음일 수도 있다. 단순히 왕자님이 나타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들은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다. 그녀들은 상처를 핥으며 언젠가 나아질 것을 막연하게 ‘기다리지’ 않는다. 엔터테인먼트 소설이 많은 일본에 이런 독신녀에 대한, 독신녀를 위한 소설들이 많은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왕자를 기다리기보다 왕자를 키우는 게 낫다는 인식은 <너는 펫>처럼, 연하의 남자를 (애완동물처럼) 부양하는 커리어우먼의 이야기를 만화로, 드라마로 유행하게 만들었다.

크리스마스케이크 같은 나이

<그 여자, 31살>(나카지마 다이코)의 주인공은 서른한 살인 미도리. 미도리는 어느 날 위가 셀프 로데오 기계처럼 벌떡대고, 미열이 나는 이상한 증상에 시달린다. 옛날에 미도리를 좋아한다며 따라다니던 남자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부터 심해졌다. 미도리는 ‘서른한 살이나 먹은 나의 테마는 과연 잘생긴 남자인가, 일인가’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병원에 가도 딱히 병명이 나오지 않는다. 혼자만 아는 병을 싸매고 끙끙거리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시도한 것은 한방이다. 한의원에 찾아간 미도리는 잘생긴 한의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가 생기를 찾는 이유는 잘생긴 한의사가 아니라 한의학이다. 한의학 책을 탐독하고 자신의 몸을 돌보면서 스스로를 치료해가는 것이다.


△ 권태로운 일상이란 현대의 독신녀들에게 사치다. 소설 속 30대 이상의 여성들은 커리어우먼 포장의 반대편에서 고통이나 실패를 ‘극복하며’살아간다.

서른 즈음의 여자들이 나이에 대한 강박을 갖기 시작하는 이유는 거의 우스울 정도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같아서 이브날인 24일(24살)에는 잘 팔리다가 당일인 25일이면 더디게 팔리다가 크리스마스를 넘기면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는 식의 농담이 지나치게 반복되면서 문득 ‘만 나이로도 어찌해볼 수 없는’ 30대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시작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나이에 대한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 특히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받는 압박감은 오늘날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D. H. 로렌스의 단편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는 오래전 아버지가 양자 삼아 키운 남자와 결혼을 강요당하는 서른네 살의 마틸다 이야기다. 마틸다는 어둠 속에서 아버지인 줄 착각하고 13살 어린 ‘사촌’의 이마를 만졌다는 이유로 “결혼을 안 하면 유산도 없다”는 아버지의 협박에 궁지에 몰린다. 지금이 그때와 달라졌다면, 그 이유는 여자들이 직장을 갖고 일을 하면서 경제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야마모토 후미오의 <내 나이 서른하나>는 서른한 살인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서른한 편의 단편을 담은 소설집이다. 여기 수록된 ‘자동차’에는 BMW 콤팩트에서 사는 여자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남부럽지 않은 회사에 다니며 자동차 할부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고, 신용카드는 물론 휴대전화와 스포츠클럽 플래티넘 회원 카드도 가지고 있다. 차를 팔고 월급을 아끼면 집을 얻을 수 있고, 게다가 가족도 번듯하게 살아 있지만, 그녀는 자동차에서 노숙과 다름없는 생활을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아버지가 “다시는 집에 들어오지 마라!”고 호통친 뒤 남자친구와의 짧은 동거 끝에 내린 결론이다. <워킹 걸 워즈>의 주인공 스미다 쇼코는 그보다는 나은 상황이다. 나이는 서른세 살.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규모 종합음악기획사 과장이다. 입사식은 유쾌했고 두근두근 설레기도 했지만, 9년하고도 10개월이 지나자 혼자 점심 먹는 일에 익숙해졌고, 미래 따위는 상상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무엇도 되어 있지 않고 해놓은 것도 없고, 그저 서른세 살의 자신이 있을 뿐이다.

파트너도 찾고 있어, 별로 불편하진 않아

연애나 결혼에 아주 뜻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30대의 미팅의존증은 ‘모라토리엄’이라고 표현이 걸맞는다. <걸>에서 오쿠다 히데오는 결혼할 생각도 없으면서 미팅을 수시로 하는 30대의 심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기는 분명히 파트너를 찾고 있다는 구실과 지금의 상태로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는 마음이 우리를 미팅 자리로 내몰고 있다.” 지금 이대로도 귀찮지만,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더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의무적으로 미팅을 하며 스스로를 달랜다는 뜻인데, 이쯤 되면 독신녀의 삶이라고 해서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하기에 모든 것을 꾹 참고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일반 가장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멋지게 보이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휴가는, 사실 속내를 살펴보면 혼자 모든 것을 버텨내느라 지친 상태에서 발견한 생존용 탈출구와 다름없다.

30대 이상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런 여성소설의 공통점은 일종의 ‘극복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계발과 처세술이 등을 떠미는 성공지향적인 커리어우먼의 포장과는 정반대되는 지점이다. ‘패배한 개’라는 명칭이 들어맞을 법한, 고통이나 실패를 딛고 계속 살아가는 이야기가 많다. 가와카미 히로미가 <선생님의 가방>에서 그린 서른일곱 살 오마치 쓰키코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고교 시절의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 그와 술친구가 된다. 선생님을 다시 만나고 2년, 정식 교제를 시작하고 3년이 지나 선생님은 세상을 떠난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대단한 연애담이 아니다. 각각 살아왔던 두 사람이 마음에 맞는 술친구를 발견하고 함께 늙어가는 시간의 일부분을 공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인기 많은 남자가 좋다. 남이 싫어하는 여자는 되고 싶지 않다. 늘 들어주는 역할이다. 의외로 가족 관계는 양호하다. 때로 순정만화를 읽는다. 실수하고 싶지 않다.” 요시다 슈이치의 <7월24일 거리>에 등장하는, 여자가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는, 묘하게도 대부분의 독신녀들의 공통점이다. 실패를 두려워해서 열심히 일하고, 남이 싫어하지 않았으면 해서 무난한 성격을 갈고닦고, 남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다 보니 자기 얘기를 할 타이밍을 놓치는. ‘골드미스’ 운운하는 꼬리표를 훈장처럼 생각하고 으쓱대는 게 아니라 그냥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새 나이를 먹은 것뿐이다. 반짝거리는 청춘의 거품이 꺼진 뒤에도 혼자 힘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패배한 것도 아니고, 승리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상처는 스스로 핥아 낫게 하는 수밖에 없다. 성별에 관계없는, 결혼 여부를 떠난, 그 깨달음이, 30대 독신녀들을 위한, 그들에 대한 소설들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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