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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특집 > 초점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2월02일 제6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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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가 강탈한 ‘사유재산’ 상지대?

김문기 전 이사장이 정이사 체제 무효 소송 승소하며 운명의 기로…분규 겪은 뒤 시민 대학으로 거듭나는 사학의 모델은 끝나고 마는가

▣ 원주=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강원도 원주시 우산동 660번지 상지대학교. 원주 시내에서 2차선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상지대 정문이 보인다. 정문 앞에는 뚱뚱한 몽당연필처럼 생긴 건물이 있다.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건 수십 장의 플래카드다. ‘구 재단 복귀만이 상지대 살길이다’. ‘김문기 설립자 절대 복귀한다’. 건물에는 ‘상지학원·상지대학교 진실규명 및 설립자 학교 찾아주기 운동본부’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주변 상인은 “사무실은 거의 잠겨 있다”고 말했다.


△ 분규 사학을 시민대학으로 이끈 ‘상지대 모델’이 위기를 겪고 있다. 구 재단은 법정 소송을 통해 ‘경영권’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74년 상지대 인수한 원주 유지

길을 따라 15m를 오르면 상지대 교문이 있다. 교문 위에 걸린 플래카드가 아래 건물의 플래카드에 화답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교문을 통과하면 ‘빛’의 세상이다. 총학생회와 교직원노조, 교수협의회 명의의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려 있다. ‘진실왜곡 일삼는 김문기는 절대 반대’ ‘정이사 체제를 전폭 지지합니다.’

‘상지대 모델’은 화해할 수 없는 긍정과 부정의 중의적 용어다. 한쪽에서는 민주시민대학 성공 모델로, 반대쪽에서는 좌파의 사학 탈취 모델로 불린다. 정지환 <여의도통신> 대표기자는 “정대화, 서동만, 김정란, 홍성태, 배진한 등 진보적인 지식인 스타들이 대거 영입되면서 상지대는 부패 사학의 대명사에서 시민대학의 성공 모델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반면 한나라당 이강두 의원은 “건학 이념 실현을 목적으로 출연된 사학법인의 사유재산을 강제 탈취한 행위와 사유재산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이념을 뒤바꾼 중대한 헌법 위반”으로 탄생한 게 상지대 모델이라고 말한다.

상지대 사태는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사 채용 비리 의혹, 한의학과 폐지를 둘러싼 논란 등 학내 분규를 앓던 상지대는 1993년 4월 검찰이 당시 상지학원 이사장인 김문기(현 74살)씨를 구속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당시 김씨는 학교 공금 횡령과 부정 입학 등의 혐의를 받았고 대법원은 1994년 3월 김씨에게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공금 횡령 부분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부정 입학 부분은 유죄가 인정됐다.


△ 상지대 사태 일지


김씨가 물러난 상지대에선 교육부가 파견한 임시이사 체제가 지속됐다. 행정법원은 2002년 10월 상지대가 임시이사 체제를 벗어나도 좋다는 판결을 내렸다. 2003년 12월 상지대 임시이사회는 변형윤을 이사장으로 하는 9명을 정이사로 선임한다. 상지대는 11년 임시이사 체제를 탈피해 명실상부한 대학 정상화를 이루어냈다면서 자축했다.

학생과 교수 모두 구 재단 복귀 반대

김문기씨는 1974년 민관식 문교부 장관의 지원과 설립자인 원흥묵씨에 대한 외압 의혹을 받으며 상지대를 인수했다. 그는 유신정권과 5공화국 때 집권 여당과 가까이 지내며 12·13·14대에 국회의원을 역임한 원주 지역의 유력 인사다.

상지대에 정이사 체제가 들어서자, 2004년 1월 김씨는 ‘임시이사회의 정이사 선임 결의 무효확인 청구’ 소송을 낸다. 그해 춘천지법은 이를 기각했지만, 2006년 서울고등법원은 다른 판결을 내렸다. “임시이사 체제를 종료할 때에는 적어도 임시이사 직전의 이사들과 협의하는 등으로 그들에게 실질적인 이사회 구성 권한을 부여해 학교 법인의 경영권을 환원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학교 법인이 정상화됐다면 ‘종전 이사’에게 경영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의미다. 이 판결에 따르면, 전 이사장인 김씨는 ‘현직 이사’가 아니지만 학교 경영권을 가지고 있고, 현직 이사인 임시이사들은 정이사를 선임할 권한이 없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판결 비평’을 내어 이 논리를 “교육을 위해 기증된 공적 재산을 사유재산으로 환원시킨 판결”이라고 혹평했다.

학교는 과연 사유재산인가. 박병섭 상지대 부총장은 “개인이 재산을 출연한 이상 재산권을 갖는 건 학교법인”이라며 “학교 재산은 사유재산이 아니다”고 말했다. 전 이사장인 김씨가 재산을 출연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학교법인에 귀속된 이상 김씨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 2003년 상지대 정이사 체제가 출범했다. 하지만 김문기 전 이사장은 정이사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2심 승소했다.(사진/ 상지대 제공)

하지만 김문기 전 이사장 쪽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설립자 상지대 찾아주기 운동본부’의 홈페이지(sangjiun.net)를 통해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이 발표한 성명서는 정이사들을 “불법 점령군”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불법 점령군은 “1993년 인수·인계 등 합법적 절차도 없이 상지학원·상지대학교 일체를 강점”한 자들이다. 이어서 거대한 음모론도 제기한다. 상지대는 지금 “김일성대학의 협력대학을 표방”하고 있으며, “소위 운동권 출신 교수들의 편향된 사회주의적 이념과 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아지트, 해방구를 건설”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지대 이사진은 “지금도 동조 세력들을 규합해 사립대학의 학내 분규를 조장하면서 제2, 제3의 상지대 모델을 전국화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주장한다. 기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듣기 위해 인터뷰 요청을 세 차례 했지만, 전 이사장인 김씨는 응하지 않았다.

1월25일 상지대에서 만난 학교 쪽 관계자, 학생과 교수 모두는 구 재단의 복귀를 반대하고 있었다. 김선광(무역학과4) 부총학생회장은 교정 언덕에 세워진 건물 세 채를 가리켰다. 마치 소비에트 시대의 표정 없는 건축물처럼 사각형의 건물 세 채가 붙어 있었다. “저렇게 내·외관이 똑같은 건물이 학교 안에 다섯 채나 있어요. 구 재단이 건축비를 아끼려고 똑같은 도면으로 똑같은 건물을 지은 거죠.”


△ 지난해 12월26일 구 재단 세력이 변형윤 현 이사장 자택 근처에서 집회를 열었다. 김문기 전 이사장의 차남이 이사장으로 있는 상지여중·고 교직원들의 모습도 보였다.(사진/ 상지대 제공)

김 부총학생회장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심지어 교문 앞에서 상지여중·고 교사들이 김문기 복귀를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기도 해요. 상지여고를 졸업한 신입생들이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은사를 발견하고는 얼굴을 붉혀요.”

상지여중·고를 운영하는 상지문학원은 김문기 전 이사장의 차남 김길남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상지대 관계자는 “지난해 12월에서 1월까지 상지대 변형윤 이사장과 김성훈 총장 자택 앞에서 벌어진 네 차례 집회에도 상지여중·고 교사들이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김익기 상지여고 교장은 물론 최선용 상지여중 교장도 나왔다. 교사들이 든 플래카드와 피켓 문구는 원색적이었다. “○동 ○호에 거주하는 김성훈 총장은 즉각 사퇴하라” “한신APT ○동 ○호에 거주하는 불법 이사장 변형윤은 물러나라.” 최선용 상지여중 교장은 1월26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있고, 학교장으로서도 안 가볼 입장도 아니어서 참여했다”며 “교사들 말고도 일반인들도 참석한 자리”라고 말했다.

사학의 정체성 규정짓는 대법원 판결

상지대 총학생회는 만약 대법원에서 패소하고 구 재단의 복귀가 시도될 경우 강력히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수협의회 대표인 곽진 국문학과 교수도 “대법원 판결이 2심대로 확정되면 지역사회에 부당성을 알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1984년부터 상지대 강단에 선 곽 교수는 “현재의 정이사 체제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라며 “구 재단이 일으키는 소모적 논쟁에 발목 잡혀선 안 된다”고 말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은 4월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부가 맡고 있다. 판례의 변경 가능성이 있는 등 중요한 사건은 전원합의부에서 판결한다. 대법원은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2월15일 공개 변론을 연다. 이 판결은 한국 사학의 정체성과 나아갈 바를 법적으로 규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박병섭 상지대 부총장]

“전 이사장과 협의했다면 난리났을 것”

그가 물러난 뒤 교육 시설 확충하고 의사결정 구조도 민주화돼


△ (사진/ 한겨레 이정용)

1월25일 상지대 본관에서 박병섭(52) 상지대 부총장을 만났다. 헌법학을 전공한 그는 “왜 서울고등법원이 정이사 체제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는지 의문”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2심 판결은 임시이사진의 정이사 선임에 대해 김문기 등 전 이사진과 협의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했다.

= 상지대 구성원들은 김 전 이사장에 대한 불신이 절대적이다. 학교가 김 전 이사장과 협의하는 순간 분규가 재현된다. 김덕중 교육부 장관 시절, 김 전 장관이 당시 이상희 상지대 이사장과 김문기 전 이사장을 한자리에 불러 (정이사 선임을) 잘 협의하라고 권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학교에 난리가 났다. 사학비리 세력에게 학교를 돌려줘선 안 된다고 구성원들이 반발한 것이다. 학교의 상황이 이렇다.

김 전 이사장이 물러난 뒤, 상지대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 높은 교수 확보율을 유지하고 형편없던 교육 시설도 확충했다. 이사장 족벌체제의 의사결정 구조도 민주화했다. 학내 주요 사안은 교수협, 총학생회, 노조가 모인 구성원대표자협의회에서 결정된다. 개정 사학법이 제시한 대학평의회의 취지를 이미 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신대, 성공회대와 민주대학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대학 민주화를 화두로 삼아 사회 발전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공동 연구기관인 민주사회정책연구원도 설립했다. 지금 상지대의 신입생 입학 경쟁률은 7 대 1이 넘는다. 존립이 위태로운 지방대 여건에서 의미 있는 수치다.

김 전 이사장이 복귀해선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 수십 개 분규 대학이 임시이사 체제에서 정이사 체제로 넘어갔다. 구 재단이 복귀한 학교도 있고 그렇지 않은 학교도 있다. 상지대 구성원들은 김 전 이사장에 대한 불신이 크다. 웬일인지 학교 주변은 물론 운동장 한가운데에도 김 전 이사장의 사유지가 박혀 있다. 교육용지인데도 말이다. 학교는 김 전 이사장에게 땅을 팔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줄곧 거부했다. 그래서 학교는 공탁금을 걸고 어렵사리 강제매수를 하고 있다. 이런 실랑이를 봐왔으니, 교수와 학생들이 그를 좋아할 리 없다. 과연 그가 교육자적 양심이 있는 사람인가. 김 전 이사장이 진정 상지대를 사랑한다면 이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