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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특집 > 초점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07월20일 제6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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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 입시, 표절이 춤춘다

국민대 조형실기대학 수상작 베끼기 의혹,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학원-미대 교수-학부모의 욕심이 뭉뚱그려져 생긴 침묵의 삼각 카르텔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미술대 입시생들이 보는 <미대입시> 7월호에는 비슷한 작품 두 점이 각각 기사와 광고에 실렸다. 하나는 국민대 전국조형실기대회를 소개한 기사에 실린 대상작이었고, 다른 하나는 o미술학원이 광고에 게재한 2004년 미술학원 전국연합시험 수상작이었다.

무조건 ‘따라 그리기’시키는 미술학원

지난 5월 학생 1만여 명이 참가한 국민대 조형실기대회의 평면조형 C조의 출제 주제는 ‘바람’이었다. ㅇ(19)씨는 삼각뿔과 구, 정육면체가 바람을 맞아 변하는 모습을 그려 모든 부문을 통합해 시상하는 대상을 받았다. 국민대 평가위원들의 평은 다음과 같았다.


△ 표절 의혹에 휩싸인 국민대 조형실기대회 수상작(오른쪽). 2004년 한 대회의 작품(왼쪽)과 비슷하다.

“바람이라는 주제를 2차원 평면도형에서 3차원의 입체도형으로 진화하는 느낌을 매체로 형상화한 작품으로서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발상을 보여준다. …또한 껍질이 바람에 벗겨지는 표현은… 매우 독창적이다.”

그러나 2년 전 전국연합시험 수상작을 옆에 놓고 비교해보면, 이 작품은 명쾌하지도 독창적이지도 않다. 12개의 구가 4개씩의 삼각형, 사각형, 구로 바뀌었을 뿐이다. 출제 주제 또한 비슷했다. 2년 전 출제위원 교수들이 낸 문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번엔 ‘바람’이었으니, 거의 똑같은 문제로 거의 똑같은 그림이 상을 받은 것이다.

2001년 대입 전형에서 국민대가 처음 미술 실기시험 형식으로 채택한 ‘발상과 표현’은 전국 미술대학의 디자인 계열 실기시험으로 확산됐다. 기존에 이뤄졌던 데생에 견줘 학생의 창의성을 평가할 수 있어서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시험 당일 작품 주제를 받아들고 5~6시간 안에 주제에 맞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출제 주제를 예상하기 힘들고, 모두 다른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부정행위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을까. 상당수 미술학원에서는 미대 입시에 나올 만한 몇 가지 주제에 대해 모범 작품을 보여준 뒤 학원생들에게 ‘따라 그리기’를 시킨다. 학생들도 스스로 구상하기보다는 외운다. 바람, 소리와 파동, 무한 등 예상 출제 주제에 대응하는 그림을 외워두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학원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비슷한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리고 많은 주제의 그림을 외워온 학생이 유리하다. 구상에서 채색까지 마치는 데 실기시험 시간이 그리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한 미대 교수는 “실기대회 학생 작품들을 쭉 펼쳐보면, 학원별로 분류가 가능할 정도”라고 말했다.

각 대학이 주최하는 미술실기대회도 마찬가지다. 대입 실기시험과 운영 방식이 흡사할뿐더러 일정 성적 이상이면 ‘특기자 전형’ 지원 자격이 주어지므로 사실상 입시나 똑같다. 특기자 전형에선 실기대회 성적과 면접 점수로 합격자를 판별하기 때문에 대상이나 금·은·동상 등 높은 성적을 올린 학생이 합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상작을 배출한 ㄷ미술학원은 이미 국민대에 학원 소속 학생이 당선됐음을 광고하고 있었다. 이 학원의 황아무개 강사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문제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황 강사는 “(표절작으로 지목된) 2004년 당선작을 배출한 ㅇ학원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며 “그때 함께 연구한 내용을 가르쳤고, ㅇ씨가 국민대 실기대회에서 이를 그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표절을 판별하면 실기대회 대상작의 80~90%는 카피 작품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실기대회, ‘특기자 전형 지원’이 미끼

국민대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정도성 조형대학장은 7월13일 취재진과 만나 “이번 실기시험 평가위원 교수들은 표절에 대비해 입시 미술 잡지 두 권을 참고했다”며 “실기대회 참가자만 1만 명인데, 여기서 표절을 가려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대에는 잡지 외에 어떤 표절 방지 제도나 대책이 없었다. 더욱이 국민대는 미술 실기대회와 대입 미술 실기시험과 관련해 표절 관련 규정과 당선작 취소에 관한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정 학장은 “이번 대상작은 2004년 작품에 비해 표현력이나 묘사력은 월등히 뛰어나다”면서도 “(당선작 재심 여부에 대해) 평가위원 교수들과 협의하는 한편 표절 관련 규정 신설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지 국민대만의 특수 상황일까. 실제로 2006년 대학입시에서 서울 ㄱ대학의 합격생 작품이 이미지 사이트인 토픽포토에이전시의 작품을 구도에서부터 동작까지 모방했다는 의혹이 일었고, ㄴ대학 실기대회 금상작은 한 외국 작가의 3D 작품의 발상을 흉내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미술학원 원장들이 쉬쉬했죠. 이번에 우연찮게 밝혀진 거지, 알려지지 않은 게 수도 없이 많을 거예요.”

미술학원이 밀집한 서울 홍익대 앞의 한 미술학원 강사는 터질 게 터졌다는 듯 말을 이었다.

“미술학원과 미대 교수 사이의 침묵의 카르텔 때문에 사회에 알려지지 않아요. 대학이 주최하는 미술 실기대회와 학원이 주최하는 교수평가, 그리고 동문 관계로 끈끈히 연결돼 있거든요.”

<한겨레21>이 입시미술 잡지인 <아트인뱅크>의 2005년 실기대회 현황을 토대로 재분석했더니, 지난해 모두 66개의 대학 미술 실기대회가 열렸다. 미술계의 최대 인맥이 자리잡고 있는 홍익대뿐만 아니라 디자인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국민대 그리고 중앙대, 한양대, 경희대, 건국대 등 주요 사립대가 포함돼 있었다. 거의 모든 사립대학이 ‘특기자 전형 지원 자격’을 미끼로 수시전형에 앞서 대회를 열고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1만 명까지 학생들을 끌어모은다. 대학들은 한 사람당 3만원가량의 전형료를 챙긴다. 학원들은 실기대회에 경쟁적으로 참가하고, 수상작이 나오면 작품을 실어 대대적으로 광고를 집행한다. 대학에서 실기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미술학원 버스와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학원생 풍경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홍익대 앞 미술학원의 한 학원장의 말이다.

“어떤 학생은 한 해에 10곳을 다니는 경우도 있어요. 학생 입장에서는 모의고사 치르는 기분으로, 혹은 특기자 전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혹시나 하고 참가하지요. 어떤 학원들은 이를 장려하고 있고요.”

미술학원들은 자체 실기시험을 치른 뒤, 미대 교수를 불러와 점수를 받는 이른바 ‘교수 평가’를 하기도 한다. 사실상 대학입시 출제교수를 불러와 시험을 치르는 셈이다. 교수에게는 한 번 평가 때마다 150만~200만원의 수고비가 돌아간다. 미술학원과 미대 교수는 이렇게 이익공동체가 된다. 이 학원장은 “입시철엔 하루 두 탕씩 뛰는 교수가 있을 정도”라며 “학원가에서는 얼마나 자주 교수들을 ‘당겨오는지’가 능력으로 평가된다”고 덧붙였다.

대학 입시에 ‘표절’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너무 가혹한 것일까. 어쨌든 누구도 학생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미술학원은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따라 그리라고 가르치고 있었고, 미대 교수들도 교수평가에 동원되면서 사교육 체제의 수혜자가 돼 있었다. 미술학원과 미대 교수들의 공동이익 구조, 좋은 대학에 넣고야 말겠다는 학부모의 사교육 열의가 ‘표절’에 둔감한 미술교육 체제를 만든 것이다.

학원과 미대교수들이 기득권 버려야

“미술학원과 미대 교수들이 기득권을 버리고 이러한 시스템을 바꿔낼지는 회의적입니다.”

현직 미술교사인 전국미술교사 모임 신진환 대표는 미술 교육에도 한국 사회의 구조적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는 듯 말했다. ‘발상과 표현’처럼 아무리 좋은 입시제도가 나와도 이를 재빨리 속류화하는 사교육 시스템. ‘입시 지옥’ 한국에서 어린 미술학도들이 자유로운 정신과 창의적인 기백을 펼치기란 불가능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