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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칼럼 > 오지혜 칼럼 목록 > 칼럼내용   2004년03월04일 제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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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C] 말리고 싶어요, 김C…

방송가의 ‘뜨거운 감자’된 그의 아슬아슬한 돌출행동… 인기에 괴로워말고(!) 연예활동을 즐기시라

글 오지혜(영화배우) · 사진 정용일(스카이라이프)


그는 세련된 문명사회에 표류하는 부시맨 같았다. 제인의 손에 이끌려 도시로 끌려나온 타잔 같기도 했다. 녹화 도중 화장실엘 다녀왔다는 일화는 ‘다행히도’ 편집되었지만 생방송 중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로 행동했을 그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던 라디오(그것도 오전 시간대) DJ가 되고서는 자기 목소리가 듣기 싫으면 다른 방송 들으라고 서슴없이 얘기했다는 것, 어느 오락프로에서 문화방송 아나운서와 결승대결에 오르자 ‘정직원과 일용직의 대결’이라고 했다는 얘기까지는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요, 즐거운 일 없는 요즘 우리를 웃게 하는 몇 안 되는 고마운 ‘딴따라’ 중 하나였다.

로큰롤 정신으로 계획 없이 산다?

난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조금 전인 <윤도현의 두시에 데이트>에 게스트로 나오던 시절부터 그의 ‘특이함’을 즐기고 있었다. 그가 인터넷 라디오를 진행할 때는 나도 같은 방송사의 이웃 프로를 진행했고, 제도권 방송에 진출하기 시작했을 때도 아슬아슬하면서 진지한 그의 방송을 즐겨 들었다. 난 그가 라디오에서 음악을 얘기할 때면 한없이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그를 물 위로 끌어올려준 사람이 강산에라는 것뿐, 그에겐 어떤 계보도 학벌도 없었다. 선입견과 제도적인 편견에서 무한히 자유로운 그가 소개하는 음악들은 익히 알던 음악이라도 다르게 들렸다.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능한 따뜻한 힘이었다. 내가 ‘뜨거운 감자’의 음반을 산 것은 바로 그런 그의 거칠지만 맑은 영혼에 끌려서였다. 그러니까 내가 그의 음악을 접한 ‘경로’는 그가 싫지만 홍보를 위해 억지로 한다는 텔레비전 오락프로가 아니었다는 거다.


△ 김C는 거지같이 살던 때가 그리울 정도로 요즘의 인기가 부담스럽다. 그러나 이제 돌아가지 못할 상황이 됐다는 걸 그도 안다.

한데 요즘 들리는 그의 ‘돌출 행동’은 나를 조금 놀라게 했다. 여태까지의 그의 ‘기행’(?)은 일반 사람들은 놀랐는지 몰라도 같은 딴따라인 난 ‘그래, 통쾌하다. 잘한다 잘해’ 하며 낄낄거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방송에서 자기 좀 그만 불렀으면 좋겠다는 둥, 특정 개그맨 이름까지 얘기하면서 “내가 미쳤냐? 음악 하는 사람인 내가 왜 와 말뚝박기를 해야 하냐? 다 나의 음악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같은 말들은 그게 ‘진실’이요 ‘사실’일지라도 ‘막말’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난 그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그를 좀 다독이고 싶었다. 난 그가 속한 밴드 ‘뜨거운 감자’의 두 번째 앨범 중 <걱정 마 요헤이>와 <유턴>을 좋아하는 팬이고 그의 음악이 더 많은 팬을 만나길 바라기 때문에 그런 ‘위험한 악수’를 두는 그를 말리고 싶었다.

서른넷 평생 처음으로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그를 생방송을 끝내자마자 불러냈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독특한 그의 외모에 버금가는 언행 때문에 최근엔 CF까지 찍느라 많이 피곤해 보였다.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그나마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은 내가 가져간 ‘뜨거운 감자’ CD에 사인을 할 때와 이제 갓 두달 된 딸아이 얘길 할 때뿐이었고, 인터뷰 내내 짜증과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그 짜증과 신경질의 대상은 피곤해 죽겠는데 불러낸 나 같은 ‘언론’도 아니고 자기를 바보로 만드는 오락프로도 아닌, 자본의 천박한 생리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연예계의 중심으로 한없이 빨려들어가고 있는 자기 자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끈’을 놓진 않았지만 있는 힘을 다해 자기부정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으면서 ‘내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사는 건 로큰롤 정신이 강해서라고 했다. 거지같이 살던 때가 그리울 정도로 요즘의 이런 인기가 부담스럽지만 이제 돌아가지 못할 상황이 됐다고 했다. 요즘에 와선 절대적인 것도 없고 인생엔 정답도 없는 것 같다고 말할 땐 그의 영혼이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어쩌면 이런 인기와 유명세를 아직 감당해낼 준비가 되지 않은 듯했다.

기타노 다케시 얘길 해줬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술영화를 찍은 천재 감독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유치한 TV 프로에도 잘만 나오는 것을 보고 어떤 기자가 어떻게 그 양극의 문화를 소화해내느냐 물었더니 “방송은 뇌를 비우고 나가는 건데 힘들 게 뭐가 있는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다케시다운 대답이었다. 다케시처럼 하면 되지 않느냐 했더니 자기가 벌써 다케시만한 내공이 있을 리 있느냐면서 그 경력, 그 나이가 되면 모를까 아직 그렇게 ‘초월’하지 못하겠단다. 그래, 그거였다. 지금 그는 자신의 인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13년 전 내가 데뷔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난 내가 학교 다닐 때 부르주아 극단이라고 제일 무시하고 흉을 봤던 극단에서 데뷔를 했고 두 번째 공연은 같은 이유로 두 번째로 무시했던 극단에서 하게 됐다. 연기 생활 11년 만에 그나마 조금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해서만이 아니라 조선일보가 주는 상을 덥석 받았기 때문이고, 영화감독 지망생 남편과 딸아이를 거둬먹일 수 있었던 것은 평상시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일일드라마에 출연한 덕분이었다.

기타노 다케시처럼 뇌를 비우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손가락질하던 그 손가락 끝에 자신이 와 있음을 눈치채는 것이다. 난 어른이 됐다. 하나도 당당할 것 없고 부끄러운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눈 딱 감고 대충 뭉개고 사는 거다. 그는 아직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 것 같았다. ‘대충 뭉개는’ 걸 못 견뎌하기 때문이다.

‘공인’이라는 말을 싫어한단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이 어떻게 공직자와 같은 의미인 공인이 될 수 있냐는 것이다. 말이 안 된다며 일축했다. 음악인생의 목적을 물었다. 로봇 태권브이와 그 목적이 일치했다. 사랑과 세계평화란다. 그럼 세계평화를 위해서 음악이, 가깝게는 김C 자신이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뮤지션은 대중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치인이 한마디 하면 ‘웃기시네’ 하는 반면, 뮤지션이나 다른 예술가들이 하는 말은 파급력이 크죠. 그래서 뮤지션은 똑똑해야 해요.” 대중에게 파급력이 크므로 똑똑해야 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전달해야 한다고? 그게 ‘공인’의 의무 아닐까? 언뜻 앞뒤가 안 맞는 얘기 같지만 그만큼 딴따라로서 자긍심이 강하다고 이해하기로 했다.

음반 대부분의 가사를 쓰는 것은 물론이요 작곡까지 한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를 했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없어서 악보를 읽을 줄 모른다. 피곤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데 어떻게 작곡이 가능한가를. 작곡은 악보를 ‘읽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있는 감성을 꺼내는 것이란다. 채플린도 그랬다던데…. 특히 자신이 하는 록은 화성보다는 ‘정신’이 중요하므로 정신과 영혼만 갖고 있다면 누구나 록을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면서 말한다. 록은 자신처럼 교육 못 받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하는 음악이니 ‘저항’이 없을 수 없다는 거다. 그런 저항정신도 좋지만 난 그가 더 많은 팬들을 만나기 위해서 신경질은 그만 내고 방송 일을 즐겼으면 좋겠다. 다케시처럼 ‘뇌’를 빼놓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