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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기자가 뛰어든 세상 등록 2001.03.27(화) 제352호


[기자가뛰어든세상] [이민아] 공포를 딛고 죽음 너머로…

죽은 사람을 위한 마지막 의식인 염습 체험… 소주 마시고 주검 닦는 일은 없었다

이 일의 시작은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48호 독자편집위원회에서 ‘기자가 뛰어든 세상’의 아이템으로 “영안실에서 시체 닦는 일을 해보라”는 제안이 나온 것이다. 제안 자체는 농담 비슷하게 던져졌을지 모르나 독자 말이라면 끔찍이 생각하는 <한겨레21>로서는 농담으로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하겠다” 결심을 하고 인터넷에 접속해서 ‘시신 닦는 아르바이트’를 검색해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형편없었다. 간혹 정체불명의 게시판에서 ‘시신 닦는 아르바이트를 구합니다’라는 공고를 보고 이메일을 띄워보았다. 한 구에 10만원 정도 돈을 준다고 했다. 부서 선후배들은 나의 ‘용기’에 일단 감탄과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그 일을 하면 기자가 뛰어든 세상을 쓰면서 신승근 기자가 카지노에서 잃은 돈을 되찾아올 수도 있겠다. 부비를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꼭 해야 한다”고 농담반진담반으로 나의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러나 그 공고는 장난에 불과했는지 답장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게시판 공고 아래 달린 답글이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그런 아르바이트 있으면 저 좀 소개시켜 주세요.” “시체 못 닦으면 제가 시체됩니다.” “제 몸처럼 깨끗이 닦아드리겠습니다.”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몸부림은 주검이 주는 공포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아무나 못하는 일자리 … 구토는 하지 않을까

여기저기 병원에 ‘시신 닦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느냐’고 문의했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큰 병원들은 염을 하는 염사들을 직원으로 고용하고 있고 이들이 염을 하기 전 주검을 닦기 때문에 별도로 주검을 닦는 사람만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개인 장의사에게 부탁하는 것이 가장 쉽기는 하겠지만 제때 주검이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우여곡절끝에 종합병원 한곳에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 동안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기로 했다.

전날 밤, 일찍 잠자리에 들면서 다짐을 했다. 한 사람의 마지막을 단장하는 것이니 만큼 경건해지자, 내일 내가 만나게 될 주검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든지 정성으로 다루고, 생전에 그가 어떤 종교를 가졌든지 좋은 곳으로 가기를 빌어주자. 아침에 일어나서는 밥을 먹지 않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 주검을 보고 구토를 해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까봐서였다.

염사는 두 사람이었다. 서울말 쓰는 키가 큰 박아무개씨와 사투리를 쓰는 키작은 한아무개씨였다. 염사하는 분들은 고급은 아닐지라도 양복에 구두를 갖추고 흰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시즙(屍汁)이 묻을까봐 낡은 옷을 골라 입고 온 것이 죄송했다. “왔소? 가운 하나 줄팅게 가만 구경하소.” 구경만 하려고 온 것이 아닌데, 생각했지만 막상 염에 들어가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먼저 순서를 외워야 했다. 염은 손발이 착착 맞아야 한다. 서투르면 가족들이 보기에도 미덥지 않다. 그래서 첫날은 주로 시신을 나르고 묶을 때 돕는 일을 했다.

먼저 스테인레스로 된 커다란 테이블 위에 수의를 펼쳐놓는다. 이때 고인이 남자이면 저고리가 세장, 여자는 두장이다. 남자는 도포 한장을 더 입는다. 저고리는 세장을 한꺼번에 끼워놓는다. 한겹 입히고 또 한겹 입히고 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주검이 여러번 흔들리기 때문이다. 유족들이 오자 시체보존실에서 주검을 꺼내왔다. “이분이 김아무개씨 맞습니까?” “맞습니다.” 대개 유족들은 두번 크게 운다. 한번은 보관해둔 고인의 주검을 처음 확인할 때이고 또 한번은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여줄 때이다.

고인의 주검은 수의 위에 올려놓은 채로 닦는다. 시체보존실 온도는 섭씨 5도로 맞춰져 있어 시즙도 거의 없고 외관도 깨끗했다. 구토할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기우였다. 욕창이 있는 주검은 냄새가 좀 났지만 다른 주검들은 그냥 밀랍인형처럼 보일 뿐 별다른 악취는 없다. 주검 닦는 곳은 왠지 음산한 분위기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잘못된 것이었다. 또다른 선입견은 주검을 닦을 때 소주를 마신다라는 것이었는데 이것도 내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소주를 마실 시간적 여유도 없었거니와 반지빠르게 일하려면 취중으론 무리였다.

그곳은 음산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 염을 도운 시신은 아직 젊은 분이었다. 사고였는지 머리에 큰 상처가 있었다. 유족들도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염을 하는 동안 유족은 고인의 머리를 잘 잡아야 한다. 흔들리면 좋지 않다. 심한 경우 입에 고여 있던 이물질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이십대가 못 돼보이는 소년이 붉어진 눈으로 애써 부모의 머리를 고정하고 있는 모습은 차마 보고 있기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같이 슬퍼할 때가 아니다. 아직 주검을 닦지는 못할지라도 침착하게 주검을 고정하고 있어야 한다.

먼저 몸을 한쪽으로 기울여 등면을 닦는다. 그 다음 양팔을 닦으면서 관절이 구부러지는가를 확인한다. 팔관절이 잘 구부러져야 저고리를 입힐 수 있다. 잘 구부러지지 않으면 요령껏 굽혀야 한다. 숙련된 염사는 어디를 어떻게 해야 팔관절이 잘 꺾어지는지를 안다. 무리해서 힘을 써서는 안된다.

몸 배면과 다리를 닦고 시신을 백지로 한겹 싼다. 백지로 싼 위에 수의를 입힌다. 옷을 다 입히자 시신이 편안해보인다. 이제 솜으로 코와 귀, 입을 막고 얼굴을 덮는다. 얼굴을 덮기 전에 유족들에게 “마지막으로 고인을 보십시오”라고 말한다. 이때 우는 정도를 보면 누가 자식이고 누가 먼 친척인지 알 수 있다. 딸로 보이는 소녀가 “진짜 돌아가셨나봐, 진짜 돌아가셨나봐”라며 울부짖는다. 되도록 유족들의 눈을 보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 슬픔에 동조하면 아무 일도 못한다.

이제 힘이 필요하다. 멧베로 시신을 묶는 과정이다. 첫날 내가 도왔던 몇 가지 일 중의 하나였다. 멧베는 통으로 된 베 한 조각인데, 이것을 모두 21가닥이 나오게 가위로 자른다. 21개의 끈을 등에 깔고 몸 앞부분에서 묶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매듭을 짓는 것은 아니고 꼬아서 끼우는 식이다. 머리를 묶는 세 가닥, 발 부분의 여섯 가닥은 짧고 몸통의 12가닥은 길다. “이쪽을 잡아” “당겨” 짧은 대화가 오간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염할 때는 진땀나는 법이여.” 지켜보고 있던 유족 중에 웬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자그맣게 중얼거린다. 염이 끝나면 입관이다. 관바닥에는 한지를 열한장 깐다. 시신을 넣고 관에 남는 공간에는 보공(두루마기 휴지)을 끼워 넣어 시신이 관 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 시신 한구 염하는 데 드는 시간은 대략 삼십분.

다음 염을 준비하기 위해 수의를 펼치는데 정해진 시간보다 유족들이 먼저 왔다. 유족으로 보이는 웬 아저씨가 호기심 찬 목소리로 물어보셨다. “뉘여 이 처자는?” 뭐라고 답해야하나. 입을 떼기 전에 한아무개씨가 능청맞게 받았다. “내 후계자여.” “가르치는 거여?” “그려.” “나 저기 성당 연령회에 있는 사람이여. 자주 볼기여. 잘 부탁혀.”

종교에 따라 다른 염습 방식

연령회에서 나왔다는 말은 성당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교우들을 염해주는 모임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그 성당에 상사가 있을 때마다 근처 병원을 방문하니 자주 볼 거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성당, 교회나 절에서 염을 해주는 경우에는 보조만 하면 된다. 대개 간단히 예배를 드린 뒤 교우들이 직접 몸을 씻긴다. 천주교의 경우 몸을 씻기고 수의를 입히는 동안 계속 노래를 부른다. 첫날 천주교나 개신교는 부활신앙이 있기 때문에 수의만 입히고 멧베를 묶지 않는다.

장례절차보다 종교의 영향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일도 드물 것이다. 개신교 신자인데 불교식으로 염했다든가, 불교 신자인데 천주교식으로 염한다면 큰 난리가 날 일이다. 그것은 한 인간이 생전에 가진 이데올로기가 부정될 뿐 아니라 그 사후의 갈 길이 장례로 좌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염습하는 사무실에는 종교와 매장방법을 꼼꼼히 적어둔다. 염하는 시간도 종교에 영향을 받는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유교나 불교를 믿는 집안은 오시(오전 11시)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염습시간을 조정해주어야 한다.

종교와 함께 장례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역시 돈인 것 같았다. 관혼상제 중에서 유일하게 시기를 미리 가늠할 수 없는 일이 장례인 것이다. 황망중에 맞는 일이니 만큼 모든 것에 돈이 든다. 관, 수의, 멧베, 홍대, 상복, 자동차, 장지 마련, 오시는 손님을 대접할 음식도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무리를 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대개 관은 가장 싼 것이 12만원이고 향나무관, 돌관처럼 비싼 것은 몇백만원, 몇천만원을 하는 것도 있다. 체구가 크거나 복수가 찬 시신은 보통관보다 넓은 것을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관이 벌어진다고 한다. 이 넓은 관은 보통관보다 약간 비싸다. 수의 역시 천차만별이지만 싼 것은 15만원 정도 한다. 내가 일한 병원에서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고 나 역시 그런 일을 이 병원에서 목격한 바 없지만, 일반적으로 ‘노잣돈’이라고 해서 유족들이 염사들에게 따로 촌지를 주는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매장할 때도 관을 나르는 사람들에게 또 얼마간을 준다. “‘어어 하다가 천만원 넘게 깨진다’고 그러지요.” 염사 박씨가 한 말이었다.

이곳에서 십일년을 보냈다는 박씨는 이제까지 약 7천구를 염했다고 한다. 성수대교 사건, 삼풍사건 등을 겪으며 별의별 시신을 보아왔다고 한다. 특히 다루기 어려운 주검은 갯벌에 빠진 주검으로, 염분기 섞인 진흙이 피부에 달라붙으면 씻기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 일을 하다보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게 됩니다” 역시 박씨의 말이었다. 이 일을 하며 받는 돈은 한달에 200만원. 서울 한 병원의 경우는 250만원까지도 준다. 막 시작한 사람은 140만원 정도라고 했다.

셋째날, 염사분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알콜솜을 잡아보리라 생각하고 부탁을 드렸다. 시신을 닦는 것을 습이라 하고 옷입히고 묶는 것을 염이라 한다. 나는 이제까지 염만 해보고 습은 못해본 셈이었다. “저기, 오늘은 고인이 여자분이시니까 닦는 것도 해보면 안 될까요.” “그려. 정주영이가 엊저녁 졸(卒)했다는데 거기 가서도 해주면 좋겠네.” “글쎄 그럴까봐요. 취재도 할겸.” 허락이 떨어졌다. 드디어 주검을 닦을 수 있게 되었다.

선하게 생긴 자그마한 할머니셨다. ‘할머니, 좋은 데 가셔요. 제가 잘 닦아드릴게요.’ 그냥 옷을 입히는 것과 닦아드리는 것은 또 달랐다. 시신을 잡은 왼손이 처음에는 선득한 느낌이더니 나중에는 손이 시릴 정도였다. 등, 손톱에서 발바닥까지 닦아드리고 옷을 입혀드렸다. 마지막으로 이가 없는 입안에 솜을 넣어드리고 머리를 빗겨드렸다. 오래 앓으셨는지 살집이 없었다. 마치 살아 있는 동안 온몸의 에너지를 완전히 써버린 것 같았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가늘고 메말랐다. 갈비뼈는 뼈대를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얼굴을 보면 인생을 안다고 하는데, 살아온 자취는 몸에도 새겨지는 것 같다. ‘나는 악한 짓 안 했어. 나는 그냥 열심히 살았어’라고 몸 전체로 말하는 듯하다. 체구가 작아서 조금만 힘을 주어도 좌우로 흔들린다. ‘좋은 데 가셔요. 좋은 데 가셔요.’ 애써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이 말을 계속 주문처럼 되뇌었다. 그분은 좋은 데 가셨을 것이다. 이렇게 온몸의 기운을 완전히 뽑아쓴 사람이 잘못된 데 갈 리가 없다. 일을 끝낸 뒤 안치소 밖으로 나왔다. 봄빛이 완연했다.

나를 닦아줄 누군가에 대한 품앗이

주검을 씻기고 마지막 옷을 입히는 일, 그것은 어떤 꺼림칙한 일이나 특이한 일이 아니고 지금 우리 옆에서 늘상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자기 손으로 자기 시신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결국은 모두가 타인의 손에 자기 몸을 내맡겨야 한다. 나 역시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체험을 내가 내 육체를 돌볼 수 없는 훗날에 나를 닦아줄 누군가에 대한 품앗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살아 있는 내 육신이 고인들의 마지막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그분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이민아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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