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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2000년12월27일 제340호 

[대담] “과거를 부인하면 미래는 없다”

한-일 사회학자의 만남, <전쟁과 인간>의 노다 마사야키와 <전쟁과 사회>의 김동춘


(사진/김동춘씨)


김동춘 : 선생님은 <전쟁과 인간>을 통해 일본 국가주의가 남긴 가해자들의 정신상태를 분석하였습니다. 저와는 궁극적으로 결론이 일치하지만, 문제에 접근하는 출발점은 다르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먼저 어떻게 이런 방식의 작업을 하게 됐는지 듣고 싶군요.

노다 : 첫째는 일본 안에서 침략전쟁에 대한 부인세력이 아주 강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쟁책임자들은 물론이고 젊은 세대까지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느 나라에도 전쟁은 있다. 그건 역사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말하지요. 또 한 가지는 일본의 지식인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분쟁들에 대해 제대로 발언을 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뭔가를 생각해보니, 우선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동춘 : 저와 비슷한 관심에서 출발한 것 같군요. 한국전쟁은 냉전체제 아래의 한국에서 이북의 침략전쟁으로만 교육돼왔고, 또 한국전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한국사회 지식인들은 무관심해왔습니다. 그 문제가 오늘의 한국사회의 인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젊은 세대들 역시 관심이 없지요. 결국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 학살이나 80년 광주사태와 같은 비극들은 전쟁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봅니다.

노다 : 1980년에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주 강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그것은 ‘반일’이라는 감정의 이면에 군국주의 또는 군국주의자들의 태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전 과거청산은 곧 식민지 청산

김동춘 : 저도 제 책에서 조금 언급을 했는데요, 한국군의 주요 장교들은 일본군 출신들이고 그 사람들이 나중에 한국에서 좌익청소를 하는 데 앞장서게 됩니다. 선생님도 책에서 언급하셨던 3광작전(남김없이 죽이고, 태우고, 빼앗는다)을 한국군들이 제주 4·3토벌작전과 한국전 발발 직후 민간인 학살과정에서 그대로 적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군대의 명령주의와 과도한 경쟁, 상관에 대한 무조건 복종, 인간 경시의 태도들이 한국전 당시에도 그대로 재현됩니다. 결국 한국에서 한국전의 과거를 청산하는 문제는 일본 식민지적인 잔재를 청산하는 문제와 연결된 셈이지요.

선생님은 책에서 “군국주의 체제 아래서 탄압과 집단주의에 대한 강요가 사람들로 하여금 도덕적 감각을 마비시키고 그 마비된 도덕적 감각이 학살을 일으키는 정당화의 힘”이라고 강조하셨는데요. 군국주의가 사라진 지금 시점에서 만약 국가와 국가간의 충돌이 발생했을 경우, 꼭 과거와 같은 식의 사회심리가 다시 부활한다고 보는지요.

노다 : 충분히 그렇습니다. 최근 체첸전쟁에 참여한 러시아 병사들을 인터뷰할 때도 느꼈고, 그 밖에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전쟁 등 여러 가지를 볼 때 1931년 만주사변 때와 똑같은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모략으로부터 시작되는 거죠. 전쟁전문가들의 기술은 발달돼 있고 반면에 평화유지의 기술은 발달하지 못한 상태인 것이 우리 문명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김동춘 : 한국전쟁에서 학살과 관련된 가해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의 정신적 파탄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죠. 특히 한국의 군인들 중에서 자신의 전쟁범죄를 인정하는 이는 아직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당시 학살에 가담했던 말단의 병사들과 수십만명의 피해자들이 살고 있는데요. 한국은 양민학살이 반공체제에 의해 정당화돼왔고, 그 부분들을 양심선언하거나 과거를 고백하는 것이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보다 더욱 비극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정신치료적 접근방식이 한국사회와 일본사회의 건강성 회복에 어느 정도 유효하다고 보고 있는데, 저는 일본의 경우 아직도 우익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정치적인 민주화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관점입니다만….

노다 : 억압된 상태에서 계속 행동을 했을 때는 반드시 왜곡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랬을 때는 반드시 “내가 어떤 죄를 지었는가”를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이 없으면 안 됩니다. 일본의 경우 전후 미국에 물리적으로 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시대를 맞아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왔는데, 여전히 사회의 왜곡은 지속돼오고 있습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학살 유가족들에 대해 사회적 보상을 하는 측면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역시 “우리 사회는 어떤 일을 했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어떤 것이었는가를 인식하는 것”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동춘 : 나가사키 평화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말하는 평화의 개념이 대단히 추상적으로 들렸습니다. 일본의 지배세력이 주장하는 평화라는 건 미국에 대한 피해의식에 기초한 것이고 동아시아에 대한 과거 책임이 전제되지 않은 것이긴 합니다만, 우리가 전쟁 일반을 비판하고 증오하면서 평화의 개념을 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 하는 느낌을 종종 갖게 됩니다. 좌익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의 원인을 따지자면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와 깊이 관련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이념과 정신, 이것이 학살을 일으키는 중요한 배경이라고 보는데… 예를 들자면 중국 내전 당시 국민당 군대는 많은 학살을 저질렀지만 마오 쩌둥의 군대는 그러지 않았고 한국전 당시 참전했던 중국군 역시 한국의 민간인들에 대해 좋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죠. 북한의 인민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인의 이중심리


(사진/노다 마사야키씨)


노다 : 이념적으로 잘 무장된 중국군대의 이야기는 이상주의에 불탔던 중국해방군의 아주 짧은 기간에만 해당된다고 봅니다. 팔로군은 그런 면에서 아주 뛰어났죠. 그러나 그뒤 중국도 베트남 침략 등 여러 문제를 일으켰죠. 같은 공산주의 군대라 하더라도 소련군은 학살과 폭력의 문제에서 상당히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학살의 문제를 이념의 대립으로 파악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자본주의 체제 이전에도 또는 자본주의 체제라고 말할 수 없는 지역에서도 전쟁은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경제적 측면과 관련해서 전쟁이 일어난다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중적 원인파악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지요. 이번엔 제가 질문을 한 가지 하지요. 제가 발트 3국을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먼저 나치즘에 의해 사회가 유린됐고, 그 다음엔 스탈린주의에 의한 학살이 많이 자행됐어요. 그러다보니 과거에 대한 기억은 약화되고 새로운 기억은 아주 선명한 겁니다. 스탈린주의에 대한 범죄추궁이 워낙 강력하다보니 나치즘에 대한 죄의 책임에 대해선 약화되는 부분이 있다고 해요. 한국은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오히려 한국전, 베트남전, 광주학살은 굉장히 생생한 거죠. 그래서 그 부분을 드러내기보다는 조금 더 과거인 일본의 부분을 책임추궁해 들어가는 면이, 오히려 생생하지 않으니까 나은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국민이 저지른 학살보다는 말하기가 좀 나은 측면이 있는 거죠.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동춘 : 저는 사람들이 이중적 심리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당시 일본의 억압체제 아래서 일본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체념적인 상황에 대한 자기정당화와 더불어 그 한편으로는 일본에 대한 증오감이 겹쳐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아시는 대로 일본의 군국주의에 동원됐던 사람들이 나중에 다시 집권세력이 됐고 반공주의로 무장한 우익정권의 기둥이 되면서 일본의 끄나풀 역할했던 부분들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의 일들을 은폐하는 역할도 부분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에서의 반일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에 일제시대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대다수 한국인들과 그 이후 반공체제를 건설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들의 자기정당화가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친일파 문제는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를 겪었던 발트 3국과는 달리 이후 한국전 학살 문제나 베트남 문제, 또는 민주화 운동 과정의 의문사 문제와 광주학살 문제와 일련의 연속성을 계속 갖고 있는 기억들인데 이 모든 것들은 현재 한국에서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있습니다.

노다 : 우선 국가의 원칙이란 게 확고히 서 있다고 해도 전쟁상황에 놓이는 인간은 정신적으로 일단 상처를 입게 된다고 봅니다. 전쟁에서도 ‘모럴’은 있게 마련인데 이 ‘모럴’이 파괴되는 상황이 있죠. 그것은 무장하지 않은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지역의 전 주민을 학살해 버린다든가 하는 것인데 주로 침략전쟁에서 나타나는 모습들이죠.여기에 참가하게 되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해체를 경험하게 됩니다.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사람들 중에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등에서 이처럼 ‘해체된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똑같이 베트남전에 참가했음에도 이런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 이것은 상당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거죠. 어찌보면 전쟁 전에 이미 그런 ‘모럴’이 해체돼 있었던 사회가 아니냐는 겁니다.

도덕적 파탄이 물질적 보상으로

김동춘 : 한국전이 발생하기 전에 한국사람들은 40년 동안 일본 식민지 체제 아래서 선생님이 방금 말씀한 것과 비슷한 사회해체를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사람들은 법이나 권위, 윗사람에 대한 존경심, 도덕 같은 것들에 대해서 철저히 불신을 하게 됐고, 그 이후 일본 식민지 체제 아래서 출세한 사람들이 가진 도덕적 파탄 상황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추측이 정당하다면 저는 그 점과 관련하여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또 그 점 때문에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이런 식의 도덕적 파탄상황이 계속되었다고 봅니다. 그 상황이 한국에서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났는데 하나는 과도한 경제성장과 출세주의로 표현되는 물량주의입니다. 또 하나는 종교에 대한 과도한 집착입니다. 사이비 종교와 기독교의 과도한 팽창…. 그 점에서 본다면 저는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도덕적·정신적 파탄이 경제적, 물질적 보상으로 한국사회에서는 나타났다고 봅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일본과 유사하게 가족주의적 전통이 대단히 강한 나라입니다. 사회적인 혼란을 가족적인 안정감으로 보상받아온 거지요. 때문에 도덕적 파탄상황이 있음에도 가족으로의 도피, 가족에의 집착 같은 걸 통해 사회가 유지되고 나름의 정신병리적인 현상이 치유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노다 : 가족치유의 측면이 있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한편으로는 일본 군국주의에 철저히 적응하기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사람들이 정신상태를 이중화해 지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측면도 지적을 할 수 있겠고요. 그것을 통해 상처를 안 입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그런 상처 입지 않은 인간들이 유지하고 있는 이 사회는 앞으로도 문제가 많을 가능성이 있는 거지요.

김동춘 : 한국에서 학살의 가해자들이 정신적인 파탄상황을 맞지 않은 것은 일본이나 한국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개성의 결여, 즉 인간이 한 집단 속에 매몰됨으로써 자기 스스로에 대한 반성 능력 자체를 갖지 않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일본은 ‘충’의 개념이 좀더 발전된 나라라면 한국은 ‘효’의 개념이 더 발전됐다는 겁니다. 근대 이전부터 한국사회에서는 국가 혹은 전체에 대한 개념이 대단히 약했습니다. 가족주의적인 가치관이 내면화돼 있었기 때문에 전쟁 이후에도 개인을 돌이켜볼 기회가 별로 없었죠. 일종의 집단적 무의식과 무도덕성이 여전히 한국사회에 존재하고 있고 그것이 개인적인 정신병력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사회적 병리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한국사회가 지금까지 유지돼오고 나름대로 민주화가 진척되는 힘은 일제시대부터 항일운동을 했고 지금도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향하는 세력이 한국사회에 강력하게 구축돼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 철저히 비판해 나가야


(사진/한국과 일본에 남은 군국주의의 잔재와 도덕적 파탄의 역사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전쟁체험으로 인한 사회와 개인의 상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노다 : 저는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사회가 정신적 건강성을 획득하기 위해선 민족주의 경향에 대해 철저하게 비판을 해나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권력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민족감정에 호소하게 되고 ‘영광의 시대’ 따위를 전면에 내세우게 됩니다. 이런 것들은 ‘아시아의 비전’과는 상당히 상반되지요.

김동춘 :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민족주의가 다분히 긍정적 의미를 가져왔습니다. 통일이 아직까지 완수되지 않은 점, 일본과의 관계에서 과거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점, 미국과의 관계에서 ‘소파’와 같은 주권상실의 문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도 이제 한국에서는 역시 민족주의를 비판해야 할 시점으로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엄청난 차별, 한국기업이 동남아시아에 진출했을 때 과거 일본의 행태들을 그대로 반복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고 때문이지요.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은 이 동아시아에서 평화질서, 과거와 같은 비극적인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그걸 위해서 중국과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노다 : 우선 저는 중국-일본-한국이라는 발상에 대해 조금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인도차이나 그리고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환태평양 지역을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일단 일본침략 이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시아 전체가 역사적 체험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것은 현재 일본과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벌이고 있는 식민지 침략시대에 관한 토론을 아시아 전체로 확산시키는 일입니다. 구체적인 예로, 한 사건을 놓고 한국과 일본 양쪽의 학자가 토론을 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청취를 한다든가 해서 그 일치점과 대립점을 모두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전쟁 경험이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보이고 의견을 기록하게 합니다. 이 세 가지를 묶어 책으로 만드는 거죠. 물론 교과서는 권력을 쥔 국가가 만들겠지만, 그와는 별도의 텍스트로 후손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얼마 전 종군위안부들의 전범재판으로 시끄러웠지요. 저는 보상으로 초점이 모아지는 것은 안 좋다고 봅니다. 그들이 자기의사와 상관없이 사지에 몰아넣어져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것에 대한 공감이 없이 보상의 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일단 그런 공감을 형성하는 과정이 중요하고, 그 다음에 그들 여생의 행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가 전개돼야 한다고 봅니다.

김동춘 :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앞으로 이런 문제로 또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리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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