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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국제 > 아시아 네트워크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05월11일 제6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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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 자비는 없다

15년간 420명 가차없이 사형, 그중 70%가 마약 같은 비폭력 범죄자들…“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 따라 처형 전 어머니 면회도 허락하지 않아

▣ 유니스 라오(Eunice Lao)/ 전 <스트레이츠타임스>기자

2002년 12월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의 응웬 뚜옹 반(22)은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오스트레일리아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 체포됐다. 캄보디아에서 헤로인 396g을 갖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법은 15g 이상 헤로인을 소지한 사람에게 사형 선고를 못박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응웬의 죽음

지난해 12월2일 동이 틀 무렵, 타이의 베트남 난민 캠프에서 태어난 청년은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전세계적인 구명 캠페인과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의 탄원도 그를 살릴 수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눈물로 자비를 호소했다. 결국 초범인 응웬은 죄를 반성하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 그가 살던 멜버른의 대형 교회에서는 그의 25살 짧은 생을 기리며 25번 종이 울렸다.


△ 사형수 응웬 뚜옹 반이 처형되기 전의 구명 포스터. 대부분의 싱가포르인들은 사형제가 가정의 안녕을 지켜준다고 믿는다.(사진/REUTERS/ NEWSIS/ LUIS ENRIQUE ASCUI)

그러나 싱가포르의 상황은 달랐다. 싱가포르 네티즌 수백 명이 인터넷 청원을 하고, 그날 아침 수십 명이 형장 밖에서 촛불시위를 벌인 것이 고작이었다. 이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싱가포르 내부에서는 어떤 토론도, 제대로 된 언론 보도도 없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그들의 엄격한 법 집행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응웬이 갖고 온 마약으로 수많은 자국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쪽에서는 응웬이 소지한 마약이 6천 명분이라고 추산했지만, 싱가포르 경찰은 2만6천 명분이었다고 발표했다.

싱가포르인 다수는 정부의 결정을 지지한다. 사형제가 그들 가정의 안녕을 지켜준다는 것이다. 국제사면위원회 싱가포르 지부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1인당 평균소득이 2만4220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부국인 동시에 세계 최악의 사형국이기도 하다. 싱가포르의 인구 비례 사형률은 세계 1위로, 2위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세 배에 이른다. 지난 15년간 싱가포르에서 사형당한 이들은 총 420명이다. 싱가포르 법은 살인과 무기 소지 같은 심각한 범죄에 사형 선고를 못박고 있지만, 시민단체인 ‘더 싱크 센터’는 사형당한 이들의 70%가량이 마약과 같은 비폭력 범죄자들이라고 지적한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 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가 자신의 칼럼에서 “한 줌의 무고한 사람들이 처벌받든, 죄를 저지른 한 줌의 사람들이 지나치게 가혹한 형벌을 받든” 싱가포르에는 별 상관이 없다고 지적한 것이 이곳의 정서를 반영한다. 이런 여론에는 응웬이 초범일 뿐 아니라 그가 마약을 밀수한 것이 헤로인 중독자였던 쌍둥이 형의 사채를 갚기 위해서였다는 정황이 고려될 여지가 없다.

응웬이 처형되기 며칠 전 그의 어머니는 베트남식 소복을 입고 전세계 언론에 나와 아들에 대한 자비를 호소했다. 전세계는 어머니의 슬픔을 함께했지만 싱가포르 정부만은 예외였다.

인구 비례 사형율 세계 1위

싱가포르 정부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에 충실해 심지어 처형 전 그의 어머니에게 면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법에 따르면 사형 집행이 확정된 이는 외부인과 신체적 접촉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가 중재에 나선 뒤 예외적으로 어머니가 창살 너머 아들의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허용했다.

그 누구도 응웬이 결백하거나 그가 처벌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자비를 주장하는 이들은 그의 범죄가 형제애에서 비롯됐고 그가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있다고 지적했을 뿐이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주인공들은 법만을 본다면 샤일록이 말한 ‘눈에는 눈’의 원칙이 옳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변호사 포시아는 “자비의 미덕은 자연스럽다”며 “그것은 하늘에서 땅에 비가 내리는 것 같아, 그것을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 둘 다에게 두 번 축복을 내린다”고 지적한다.

결국 논쟁 지점은 포시아가 신이 자비를 베풀기에 신이 창조한 인간도 자비를 베풀 수 있다고 지적하는 부분이다. 법도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기에 법을 창조한 인간의 마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경제성장은 종종 기적으로 비유된다. 그러나 우뚝 솟은 마천루와 고급 카페를 드나드는 고학력 시민들의 겉모습과 달리 우리는 아직도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를 건설하지 못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가 기강을 언급하며 사형제를 고집하지만, 이 제도가 사회의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마약 관련 범죄로 교수형에 처해지는 이들 대부분이 단순 마약 중독자와 마약거래 조직의 말단일 뿐, 마약 거래 배후의 거물들이 처벌되는 일은 거의 없다.

싱가포르 정부는 응웬의 사형을 집행하면서 세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응웬과 슬픔에 빠진 그의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사채를 갚으려다 동생이 목숨을 잃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쌍둥이 형이다.

포시아는 샤일록에게 최후 변론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 “유대인이여, 당신의 주장은 정당하지만 그 정당함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