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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국제 > 아시아 네트워크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04월12일 제6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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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민주주의, 국왕에 구걸하다

10만 군중 끌어들이고도 ‘피플 파워’ 칭호 얻지 못한 탁신 반대운동… 사퇴했지만 치열하게 살아남을 탁신…더 고단한 제2막이 기다리고 있다

▣ 방콕=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눈물’이 빠질 리 없었다. 그 ‘눈물정치’의 전통은 가히 도도했다. 박정희의 눈물에 농락당한 한국 현대정치사는 마르코스의 필리핀으로, 다시 수하르토의 인도네시아로 이어지며 아시아 정치판을 온통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옥 빠이 탁신’의 저질 코미디

독재자들이 정치적 고비마다 눈가에 고인 감정으로 자신의 폭정을 은폐하고 시민을 기만해왔듯이, 제왕적 절대 권력을 휘둘러온 탁신 친나왓 타이 총리도 ‘기어이’ 눈물을 뿌리며 대를 이었다.

4월4일, 타이 정치판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아침 나절, “탁신 총리가 곧 푸미폰 임금을 만나러 갈 것 같다”는 소문이 퍼지자마자 기자들은 탁신의 과도정부 총리직 사임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오후 들어 임금을 알현하고 정부청사로 돌아온 탁신은 눈가에 맺힌 눈물로 이미 ‘올 것이 왔음’을 선언했다.


△ 탁신 총리는 텔레비전으로 생중계한 대국민 성명을 통해 총리직 사퇴를 알렸다. 그가 기자회견 중 잠깐 멈추고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REUTERS/ ADRESS LATIF)

그날 밤, 탁신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한 대국민 성명을 통해 “30일 내에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때까지만 임시 총리직을 수행하고 차기 정부에서는 총리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일단 정치판의 ‘급한 불’을 껐다. 그이는 “임금 즉위 60주년 기념식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아 더 이상 정치적 혼란을 겪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하며 거듭 불타는 ‘충정’을 강조했다. 물론 “자라나는 아이들을 생각하자” “타이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자”는 ‘꼰대식’ 훈계도 빼먹지 않았다. 또 있다. 탁신은 헌법 215조를 들이대며 “임시총리 지위를 유지하고”, 또 “하원의원직과 집권 타이락타이당 당수직은 계속 유지한다”고 도전자들을 향해 쐐기를 박았다.

4월5일, 탁신은 경찰 출신 법무장관 칫차이 와나사띳야를 자신의 후임으로 임명하고 휴가를 떠났다. 그렇게 해서 지난 1월23일, 타이 최대 갑부이자 총리인 탁신이 자신의 신회사(Shin corp.) 주식 733억바트(약 2조원)를 싱가포르 국영 투자회사 테마섹(Temasek Holding)에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팔아버리면서 비롯된 타이판 정치극, 그 제1막이 끝났다. 제1막이 ‘눈물로 잠깐 떠나는 탁신’이라는 신파조로 막을 내린 뒤 이제 시민사회는 신나는 제2막을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제2막, 걸쭉한 놀이판을 상상하기 전에 관객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생겼다.

하나는 “1992년 방콕 민주항쟁에 뿌린 시민들의 거룩한 피로 만든 1997년 ‘신헌법’을 어떻게 수선할 것인가”라는 제도적 의문이며, 다른 하나는 “시민사회의 정치적 이념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이다. 돌이켜보면, ‘옥 빠이 탁신’(탁신은 물러가라)은 이 둘이 서로 헷갈리면서 비롯된 저질 코미디였으니까.

먼저 이번 임시선거를 돌아보자. 탁신은 자신이 만든 타이락타이당을 이끌고 2001년 총선에서 하원 의석 500석 가운데 249석을 차지한 뒤 타이 역사상 최초로 임기 4년을 모두 채우는 대기록을 세웠고, 다시 2005년 총선에서는 375석을 석권해 타이 역사상 최초로 단독정부 수립 기록을 세우며 거침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탁신은 자신이 오합지졸 ‘폭도’로 규정한 시민들이 733억바트의 불법거래를 규탄하며 한 달 넘게 외친 “옥 빠이 탁신”에 밀려 결국 3월 중순 임시선거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무적 불패’를 구가한 탁신 총리 정부가 두 번째 임기 1년을 겨우 넘긴 시점이었다. 그날 탁신은 “50% 이상 유권자가 나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선거에서 이겨도 차기 총리를 하지 않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이미 체면은 크게 구겨지고 말았다. 게다가 제1야당인 민주당을 비롯한 핵심 야당 셋이 모두 선거 불참을 선언해 탁신은 다시 한 번 치명타를 맞았다.

왜 야당은 선거 불참하면서도 투표했나

그리고 4월2일, 적수 없이 치른 임시선거에서 탁신의 타이락타이당은 400개 선거구 가운데 360석과 비례대표 100석 가운데 99석을 싹쓸이했다. 탁신은 선거 결과가 드러난 4월3일 “반이 넘는 시민들이 나를 선택했다. 이제 내가 물러날 까닭이 없다”며 승리를 선포했다. 그 반이란 숫자는 타이락타이당이 얻은 57%를 뜻한다. 그러나 여기서 눈여겨볼 지점이 하나 있다. 이번 임시선거에서 타이락타이당이 의석을 싹쓸이한 것과 달리 43%에 이르는 유권자들이 ‘기권란’이나 ‘군소정당란’을 찍음으로써 탁신을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전국적으로 무려 10%에 이르는 ‘무효표’는 탁신을 정면으로 심판했다. 그 무효표는 투표용지에 ‘탁신 옥 빠이’와 같은 분노를 적은 표들이었다.


△ 진보 진영은 탁신을 쫓아내기 위해 국왕에게 매달리고, 탁신의 지지자인 보수 진영은 국왕의 개입을 반대하는 희귀한 세계사적 사건이 벌어졌다.

결국 하루 뒤 탁신은 그 숨은 의미 앞에 차기 총리직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이번 타이 임시선거에서도 그동안 세계적인 논란을 겪어왔던 ‘민주주의식 선거제도’라는 숫자놀음의 한계가 다시 한 번 노출되었다.

더구나 이번 선거는 타이식 선거법이 지닌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정당들이 선거 불참을 선언하고 선거를 거부할 수 있는 반면, 정당 구성원인 시민들은 투표를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한 희한한 법 논리가 적용되었다. “이전 선거에 투표하지 않은 자는 차기 선거에 입후보할 수 없다”는 선거법 조항이 시민들의 권리인 ‘투표 거부’를 금지해버린 탓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를 원천 부정하고 불참한 야당 정치인들이 차기 입후보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투표를 하는 웃기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옥 빠이 탁신’에서 드러난 시민사회의 정치적 환경을 한번 보자. 지난 1월 말부터 폭발한 반탁신 운동은 10만 군중을 끌어들였음에도 결국 ‘피플 파워’(People Power)라는 칭호를 얻지 못하고 제1막을 내렸다. 되돌아보면, 야당이 제 노릇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10만 군중은 정치적 대안세력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언론재벌 손티와 전 방콕시장 참롱이 주도한 반탁신 시위는 인물 중심 시민운동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데다, 지도부가 처음부터 국왕의 정치 개입을 요구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한 치명적 결함을 안고 출발했다.

손티와 참롱을 비롯한 ‘옥 빠이 탁신’ 지도부가 헌법 제7조를 들어 국왕에게 과도정부 총리를 임명해달라고 조르자, 보수니 진보니 가릴 것 없이 반탁신 정서를 지닌 학계와 전문가 집단들이 줄줄이 거들고 나섰다. 이에 맞선 탁신 총리 지지자들도 타이 헌법 제7조가 “총리 유고 상황에서만 국왕이 새로운 총리를 임명할 수 있다”고 대들고 나서 사회 전체를 양분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탁신을 거부해온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지닌 방콕 시민들은 결국 “탁신도 싫지만 손티나 참롱도 싫다”며 어디에도 참여하지 못한 채 ‘말없는 시민’으로 유령화되고 말았다.

국왕 반대, 보수자본가들의 혁명 가능성?

이렇듯 ‘옥 빠이 탁신’ 운동은 “국왕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타이 정치를 무시한 채, 느닷없이 국왕에게 탁신을 쫓아내달라고 보챔으로써 민주주의를 원천적으로 부정해버렸다. 게다가 상대적 진보주의자들마저 탁신을 쫓아내기 위해 국왕에게 매달림으로써 타이 사회의 정체성이 졸지에 무너져버렸다. 그리하여 오히려 탁신을 지원해온 보수 진영과 자본주의자들이 국왕의 정치 개입을 반대하는 희한한 세계사적 사건이 벌어졌다. 과연 자본의 위력은 대단했다! 흘러간 역사쯤으로만 여겼던, 바로 그 자본가를 위해서는 왕실도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현실 속에서 똑똑히 증언해주었으니 말이다. 이즈음 “보수자본 세력들의 혁명 가능성을 엿보았다”는 농담까지 흘러나오게 했으니 말이다.

이런 과정에서 진보진영은 그야말로 무기력했다. 타이에서 유일하게 자타가 공인하는 마르크시스트 학자인 지 웅빠콘(출라롱콘대학 정치학과 교수)이나 대표적인 진보 사학자 통차이 위니차쿤(위스콘신-메디슨대학 역사학과) 같은 이들마저 “국왕의 정치 개입보다는 차라리 탁신을 지원하겠다”는 비이성적인 ‘양자택일론’을 주장해 전선을 교란했다. 이처럼 진보진영에서는 시민사회를 향해 ‘국왕의 정치 개입 반대’와 ‘탁신 추방 운동’이 서로 같은 뜻을 지닌 매우 초보적인 민주주의 논리라는 사실마저 설득하지 못했던 셈이다.

어쨌든 타이 정치극 제2막은 서서히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 내용을 정확히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제1막을 통해 임금님의 권위는 신성(神性)을 더했고, 탁신은 생존을 위해 제1막에서보다 더 치열한 ‘애국주의자’로 거듭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해볼 뿐이다. 자, 그렇다면 시민 앞에는 더 고단한 제2막이 기다리고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