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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국제 > 아시아 네트워크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02월08일 제5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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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탁신’의 2조원짜리 불륜

733억바트의 주식을 싱가폴 회사에 끝내주게 팔아치운 타이 재벌총리 이야기
공갈-협박-사기 3부작을 멋지게 장식했지만 진실이 밝혀지면서 최후가 다가온다

▣ 타이=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asianetwork@news.hani.co.kr

타이 속담에 이런 게 있다. “마이 헨 로옹솝 마이 랑 남따아.” 우리말로 옮기면 “관을 보기 전에는 울지 않을 것이다”란 뜻인데, 요즘 타이 사회 분위기가 딱 그 짝이다. 볼 것 다 봤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는 투다. 복장 터진 시민들은 대개 한숨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툭하면 착한 국민이 되자더니…


△ 탁신 총리가 설립한 타이 최대의 재벌그룹 신주식회사 본사. (사진/ 아시아 네트워크)

여기 한 사나이가 있다. 입만 떼면 ‘도덕’을 외치고 말끝마다 ‘민족’과 ‘국가’를 달았던, 그리하여 가히 ‘미스터 도덕가’(Mr. Moralist)로 ‘미스터 민족주의자’(Mr. Nationalist)로 ‘미스터 애국자’(Mr. Patriot)로 불러 마땅할 사나이. 바로 타이 최고 갑부이자 총리로 제왕적 권력을 휘둘러온 미스터 탁신 친나왓을 말하고자 한다. 참, 더 늦기 전에 사족을 하나 달아야겠다. 꼬박꼬박 미스터(Mr)를 붙인 건 순전히 오금이 저려서다. 총리에게 막말을 했다간 뒤탈이 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총리에게 버릇없이 군 이들이 수백억원짜리 고발을 당하고 외신기자들도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으니, 가난한 외신기자로서 어이 두렵지 않으리오!

아무튼 그이가 지난 1월23일 타이 역사상 최대 거래라는 733억바트(약 2조원)짜리 주식을 싱가포르 회사에 팔아넘기면서부터 골치 아픈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난해 11월 말쯤을 잠시 돌아보자. “탁신이 엄청난 ‘거래’를 트고 있다는데, 싱가포르 기자를 소개해줄 수 있나?” 나는 타이 기자 친구들로부터 그렇게 처음 ‘냄새’를 맡았다. 그러나 탁신과 거래를 트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테마섹홀딩이라는 상대를 기자들이 파고들기가 영 만만찮았다. 싱가포르텔레콤과 싱가포르항공 같은 알짜배기를 줄줄이 거느리고 한국, 홍콩, 일본, 중국, 유럽, 미국 가릴 것 없이 돈줄을 파고드는 테마섹홀딩은 싱가포르 총리 리셴룽의 부인이 총수인 정부 투자 자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착한 국민이 되자”며 도덕장려운동을 펼쳐온 미스터 도덕가에게 불경스런 소문을 들이댔던 기자들은 보기 좋게 헛물을 켰다. “누가 그 따위 소리를 해. 나는 이미 신주식회사(Shin corp·탁신이 설립한 타이 최대 재벌)와 아무 관계가 없어. 그런 건 (대주주인) 내 아들과 딸에게 물어봐.”

그러다가 올 초, 그이가 가족과 싱가포르에서 휴가를 보냈다는 뉴스가 나돌면서 의혹이 되살아났다. ‘미스터 도덕가’는 “쇼핑을 하면서 가족과 휴가를 보냈을 뿐”이라고 딱 잡아뗐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월23일 마침내 2조원짜리 초대형 현금거래가 이뤄졌다는 뉴스가 터져나왔다. 곧장 ‘미스터 도덕가’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대꾸했다. “이 거래는 내 아이들이 결정한 일이다. 내가 ‘이권 충돌’에 휩쓸리지 말고 정치에만 전념하라는 아이들의 배려다.”

뒤통수를 맞은 시민들은 허무해졌다. “20대 아들과 딸이 아버지 정치 잘하라고 2조원짜리 거래를 결정했다고? 효자 났네!” 30년 동안 은행에 근무하며 날마다 금고를 드나들었지만 현금 ‘2조원’을 상상할 수 없다는 나라얀(54)은 시민을 바보 취급한 총리 얼굴이 떠올라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 1월23일 2조원대에 이르는 초대형 현금거래를 마친 탁신 총리는 화사한 얼굴로 나타났다. (사진/ 아시아 네트워크)

정신 나간 언론과 쓸개 빠진 학자들

이제부터 이야기는 맛보기에 해당하는 제1장 ‘공갈편’을 넘어 제2장 ‘협박편’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20대 아들과 딸에게 모든 걸 떠넘긴 ‘미스터 애국자’는 2조원짜리 현금거래에 대한 ‘세금’을 묻는 기자들을 향해 “단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며 거침없이 쏘아댔다. 그러자 그동안 긴가민가하던 시민들의 입에서 기어이 “빡 쁘라사이 남자이 처앗 코오”란 말이 터져나왔다. 이건 타이에서 ‘말은 달콤하게 하지만 잔인한 심장을 가진 이’를 일컫는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미스터 애국자’가 들고 나온 그 법이란 30년 전 소규모 투자자들과 회사를 상대로 증권거래를 신장하고자 증권거래소(SET) 내부에서 일어난 거래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는 조항이었다. 참고로 국가대표 선수 격인 총리가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버티는 요즈음, 세무과는 올해 세수 목표치인 1600억바트(약 4조3천억원)를 거둬들이려고 1억바트(27억원)에 이르는 돈을 써가며 홍보하고 있다.

아무튼 세금 문제로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미스터 애국자’는 “(세금 대신) 자선사업에 수익의 일부를 기부할 것”이라며 교묘하게 전선을 흩뜨렸다. 그러자 정신 나간 언론과 쓸개 빠진 학자들이 확 달아올랐다. “부디 기부를 좀 해주시라.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보탬이 될 테니.” <방콕포스트>의 한 칼럼은 대놓고 감출 수 없는 질투심까지 들먹이며 애원했다. ‘미스터 애국자’를 정계로 끌어들인 잠롱 전 방콕 시장은 “3분의 1을 기부해라. 그 나머지만 해도 천 번은 죽었다 살아나도 다 쓸 수 없는 돈”이라며 명령조로 기부를 권유했다. 우본랏 시리유와삭 교수(출랄롱콘대학 언론학과)처럼 “탁신에게 말려들면 안 된다. 기부는 또 다른 탈세 방법”이라며 날카롭게 지적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러자 ‘미스터 애국자’는 비판자들을 향해 “내 돈을 갖고 싶은 이들의 질투심”이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 탁신 총리는 2조원짜리 초대형 현금거래 성사가 발표되기 일주일 전 최빈지역인 북동부주에서 5일간 생방송으로 중계된 빈곤 퇴치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사진/ 아시아 네트워크)

맞선 비판자들도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변호사회와 언론위원회가 중심에 선 비판세력들은 민족주의를 외쳐왔던 총리에게 대응 화력으로 만만찮은 민족주의를 들고 나왔다. 그들은 탁신이 설립한 타이 최대 재벌 신주식회사가 정부의 독점적인 면허를 받아 성장한 기업이고, 그 사업체들이 모조리 국가 안보와 직결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했다.

오, honest mistake!!

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이야기가 된다. 그동안 통신사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을 25%로 제한해왔던 탁신 정부는 1월 들어 부랴부랴 외국인 지분율을 49%로 높이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에 대한 ‘미스터 민족주의자’의 대답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신주식회사의 이번 거래와 외국인 지분율 49% 인상은 전혀 무관하다. (외국회사에 이 시점에 판 건) 이 세상을 통틀어 이런 대형 거래를 할 만한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다. 전혀 무관했다. 아무도 딴죽을 걸지 못했으니! 운때가 맞았는지, 하늘이 보살폈는지- 치밀한 기획이었다는 심증은 가지만 현재로선 물증이 없으니 이렇게 말해주자- 아무튼 신주식회사는 절묘하게 49.61% 지분을 테마섹홀딩에 팔아넘겼다. 테마섹홀딩은 성공적으로 신주식회사의 최대주주로 등장했다.


△ 1월26일 탁신 총리는 1300여 명의 외국인 투자자를 초청해 타이 정부의 메가 프로젝트에 투자를 요청했다. (사진/ 아시아 네트워크)

그런 가운데 1월29일부터 전선은 ‘거짓말’과 ‘세금 문제’를 넘어 원천적인 ‘사업 부정’ 쪽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제 시민들의 입에서는 “헨 꽁짜악 독부아”란 말이 나오고 있다. 이건 불교에서 온 말로 “둥근 칼을 보면서 연꽃으로 오해했다”는 뜻이다. ‘유령회사’의 등장 탓이다. ‘미스터 민족주의자’가 ‘세금 천국’이라 불리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한 회사 앰플리치 인베스트먼트란 놈이 결국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이쯤 되자, 증권거래소와 세무부도 조사- 수사라고 해야 옳겠지만- 하는 시늉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렇게 해서 이야기는 제3장 ‘사기편’으로 넘어간다. 제3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옛날 이야기가 좀 필요할 듯싶다.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신주식회사 총수인 탁신은 느닷없이 버진아일랜드에 앰플리치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어 6월 탁신은 그 유령회사에 자신이 지닌 신주식회사의 지분 절반에 해당하는 3억2920만 주(11.875%)를 팔았다. 물론 세금은 단 한 푼도 낸 적이 없다. 그리고 11월 들어 그이는 앰플리치의 지분을 모두(“100%”라고 했음) 제3자에게 되팔았다고 밝혔다. 그때도 세금은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그 무렵 탁신은 이미 타이락타이라는 정당을 창설해 선거전에 뛰어든 상태였다.

끝끝내 앰플리치와의 거래전모를 숨기다

또 있다. 그즈음 탁신은 국민반부패위원회(NCCC)로부터 공직자 재산신고 허위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였다. 그이가 재산의 일부를 운전기사와 가정부 이름으로 은닉한 혐의였다. 물론 탁신은 앰플리치의 재산을 신고서에 올린 적도 없다. 그리고 두어 달 뒤인 1월6일 그는 타이락타이당을 이끌고 총선에서 압승했다. 몇 달 뒤 ‘공직자 재산 허위 신고건’을 놓고 압승 기운에 놀란- 그 무렵 탁신이 재판관들을 매수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지만- 헌법재판소가 8 대 7로 탁신의 결백을 선고함으로써 그이는 ‘미스터 탁신 총리’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당시 탁신은 허위 신고에 대해 “honest mistake”(‘정직한 실수’쯤으로 번역해야겠다)라는 전혀 의미가 통하지 않는 괴상한 영어를 사용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 대학가의 정치 풍자 행진에 등장한 탁신 총리 부부 인형. (사진/ EPA)

자, 그런 배경을 지닌 ‘미스터 민족주의자’와 앰플리치의 관계가 2조원 거래에서 ‘불륜’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스터 민족주의자’는 그동안 앰플리치 지분을 누구에게 얼마를 받고 팔았는지 밝힌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한 건, 2005년 8월 신주식회사 웹사이트에는 여전히 앰플리치가 지닌 신주식회사 지분율 10.98%(3억2920만 주)가 버젓이 올라 있었다. 그리고 2조원 거래가 발표되기 3일 전인 올 1월20일(금요일) 앰플리치는 신주식회사 주식을 주당 1바트(약 27원)에 ‘미스터 민족주의자’의 아들 삔통태와 딸 삔통따에게 팔아넘겼다. 1월23일 월요일, 신주식회사의 대주주인 ‘미스터 민족주의자’의 아들과 딸을 포함한 처남은 싱가포르 정부 투자회사 테마섹홀딩에 한 주당 49.25바트(약 1300원)로 전체 49.61%의 지분을 성공적으로 팔아치웠다. 그 과정에서 ‘미스터 민족주의자’의 아들과 딸은 최소 150억바트(약 4천억원)의 이익을 남겼다.

그러나 ‘미스터 민족주의자’는 끝끝내 앰플리치의 정체와 거래 전모를 밝히지 않았다. 이에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 직전에 이르자, 결국 1월30일 증권거래소는 삔통때와 삔통따에게 1주일 안에 앰플리치와의 관계를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같은 날, 그들은 앰플리치의 신주식이 자신들의 것임을 밝혔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2월2일 현재 시점에서 시민의 상식에 비춰 의문을 제기해본다. 탁신은 2000년 자신의 지분을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아들과 딸에게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고스란히 양도했다. 그의 부인이 처남과 여동생에게 건넨 지분도 세금 없는 선물이었다. 당시 수익이 발생하지 않은 증권거래소 내부 이동이라는 논리로 넘어갔다. 그리고 지난 1월23일 그 지분들은 2조원의 현금을 챙기는 거래로 이어졌다. 자, 여기서 수익이 발생했다. 그래도 세금을 내지 않아야 옳은가? 게다가 앰플리치를 축으로 신주식을 주당 1바트에 사서 테마섹홀딩에 49.25바트에 되판 행위는 ‘내부자 거래’와 ‘내부 정보’를 불법화한 증권거래소법을 위반하지 않았는가? 탁신은 왜 버진아일랜드에 앰플리치를 세웠는가? 그는 외국에 앰플리치를 설립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빼돌렸으며, 그 내용을 금융당국에 보고했는가? 왜 그는 공직자 재산신고에서 앰플리치를 누락시켰는가?

대궐을 지으려다 무덤을 파는가

아직까지 풀린 의문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의문들을 놓고 보면, ‘미스터 애국자’의 동기나 행위는 헌법, 금융법, 증권거래법, 외환관리법, 세무법을 총체적으로 유린한 부정부패로 귀착될 가능성이 짙다. 하여, 대궐을 짓는다며 뜻밖에도 자기 무덤을 한삽 한삽 파온 한 사나이의 최후가 얼핏 스쳐간다. 머지않아 다가올 제4장 ‘법정편’과 제5장 ‘절규편’, 제6장 ‘전설편’이 기다려진다. 만약 제4장이 순조롭게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시민들의 분노로 단기간에 끝장날 ‘파멸편’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방콕의 분위기는 그 중간쯤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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