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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국제 > 아시아 네트워크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10월05일 제5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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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쓸개도 다 빼준다고?

정부의 평화협정에 반발해 분열상이 위험 수위에 다다른 인도네시아 군부
정치권도 헌법 위반·주권 침해 등을 이유로 반발 기운 높아

▣ 자카르타=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asianetwork@news.hani.co.kr

지난 8월15일, 인도네시아 정부와 자유아체운동(GAM)은 ‘헬싱키 평화협정’에 서명했고, 그 협정의 양해각서(MOU)에 따라 ‘평화 다지기’가 시작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미 지난 8월31일 자유아체운동 관련자 1424명 전원을 석방했고, 아체 주둔군 일부를 철수했다. 자유아체운동쪽에서도 협의대로 9월15일 일부 무기를 반납하면서 맞장구쳤고, 많은 게릴라들이 마을로 하산했다.

잇속 챙기던 육군이 주로 반발

아체 현지에서는 유럽연합(EU)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이 파견한 250여명의 아체감시단(AMM) 요원들이 ‘평화 감시’를 시작해 한껏 분위기가 올라 있다.

그러나 30년간의 아체 분쟁을 접는 길목에서 자카르타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평화협정에 꼬투리 잡는 세력들이 늘어나면서 정부나 군 내부에서조차 거센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다.

인터뷰한 군과 정치인사들은 하나같이 ‘평화’를 내세우면서도 ‘평화협정’에 대한 강한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군부 내 분열상은 위험 수위에 달해 있었다.

인도네시아군 전 육군총장이자 군내 강경파를 대표해왔던 랴미자르드 랴추두 장군은 “독립국가란 ‘정부’ ‘군대’ ‘국가’ ‘국기’ 같은 걸 지닌 조직이 아니야. 이번 평화협정에 따른 양해각서를 보면, 아체에 그 모든 걸 인정했다. 아체는 이미 국제사회에 독립을 선포한 거나 다름없다”고 핏대를 높였다.

랴미자르드 장군과 달리 평화협정을 지지해온 인물로 현 공군총장 겸 차기 인도네시아군 최고사령관 후보로 떠오른 조코 수얀토 장군은 “나는 군인이고, 대통령은 군 최고 통수권자다. 따라서 국가 최고 결정권자인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결정한 일은 명령에 해당한다. 이건 군인이 따라야 할 기본적인 국가 시스템이다”며 군의 조건 없는 통일을 주장했다.


△ 8월15일 헬싱키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정부와 자유아체운동의 평화협정 조인식. 아체 분쟁을 빌미로 각종 이권을 챙겨왔던 인도네시아 육군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사진/ EPA)

또 익명을 요구한 특전사(코파수스) 작전참모부의 한 장군은 “평화협정이라고? 이건 국제사회에 대통령이 놀아난 격이다. 인도네시아는 갈가리 쪼개지고 말 것이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군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볼 때, 그동안 군권을 장악해왔고 또 분쟁을 빌미로 각종 이권을 챙겨왔던 육군이 강한 거부감을 지녔다면, 소외당해온 공군과 해군쪽은 지지하는 경향이 많았다.

알비 사니타 교수(인도네시아대학 사회학과)는 “아체를 잃는다는 건 군인들이 막대한 돈줄을 잃는다는 뜻”으로 군부의 반대 기운을 진단했다. 실제로 아체 계엄 군사작전을 시작한 2003년에 군은 1조7천억루피(2억달러)가 넘는 막대한 전비를 쏟아부었고, 국민대표회의(DPR)는 특별예산 8조루피를 아체전쟁에 우선 배당해 군부가 얼마든지 돈을 끌어다쓸 수 있게 했다. 참고로 그 무렵 아체 전체의 1년 예산이 1조6천억루피였다.

정치판에서도 평화협정을 물고 늘어지긴 마찬가지다. 야당인 민주투쟁당(PDI-P)의 트리메댜 판자이탄 의원은 “이 평화협정은 기본적으로 전쟁선포와 평화협정시 국민협의회(MPR)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한 1945년 헌법 제11조를 위반했다”며 협정을 뿌리째 부정했다.

이런 삿대질들 속에는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부터 의회와 상의하지 않고 ‘일방통행’했다는 데 대한 강한 불만이 담겨 있다.

이처럼 평화협상을 놓고 말썽들이 불거지는 가운데 민주투쟁당 소속 치안·법사위원회 의원인 아리아 비마는 정부의 양해각서 실행에 대한 거부안을 제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가 현재까지 서명을 받은 의원은 모두 4개 정당에서 17명이라고 하는데, 그 면면은 밝혀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지금 자카르타는 ‘평화’란 주제가 이권과 각 정치적 입장에 따라 ‘노리갯감’으로 전락한 분위기다. <템포> 편집장 밤방 하리무트리는 “가지를 붙들고 늘어지면 결국 뿌리가 흔들리고 만다”며 평화협정 반대 기운을 질타했다.

결국 모두에게 안락한 삶터를 제공할 평화라는 숲은 지금 한 그루 한 그루씩 난도질당하는 중이다. 아체의 평화는 아직도 고단한 길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