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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정치 > 통일로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10월27일 제5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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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제품’ 곧 쏟아질까요?

세계적 공업단지로의 꿈에 부푼 공사현장 르포… 남북의 확고한 개발의지 다시한번 확인

▣ 개성=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우와….”

나지막한 탄성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한국토지공사가 10월21일 문을 연 개발사무소 5층 전망대에서 처음으로 개성공단 터를 내려다본 남북한 관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다. 유난히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개성공단의 드넓은 터는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에 금광을 캐기 위해 풀어 헤쳐놓은 신천지를 연상케 한다. 전망대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남북한 근로자들이 굉음 소리를 내는 100여대의 불도저로 부지런히 터를 닦고 있었고, 시범단지 터에는 곧 입주할 공장들의 건물이 하나둘씩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개성공단 1단계 100만평 터 닦기가 한창인 현지의 모습. 시범단지에는 이미 남쪽 업체가 입주할 공장 건물이 하나둘 세워지고 있다. 뒤로 개성 시가지가 보인다. (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시범단지와 더불어 나머지 100만평의 터를 함께 닦고 있는 이곳에서 지난 6개월간 남북한 근로자 수천여명이 함께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남북한의 통합을 상징하는 ‘한반도기’가 펄럭이는 개성공단은 남북한 화해와 협력의 장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 벌거벗은 야산과 논과 밭, 그리고 군부대 막사가 자리잡고 있었던 곳이다. 이제 차질 없이 공사를 진행한다면 10년 안에 첨단 산업단지로 바뀔 희망도 엿보인다. 공단 건설 분야에 풍부한 노하우와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남쪽 개발업자들이 맘만 먹고 달려들고 북한에서 적극 협조한다면, 그 이전이라도 개성공단은 놀라운 변신을 할 것으로 보인다.

“10년안에 쑤저우 같은 산업단지로”

고려 5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개성과 첨단산업단지의 공존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에도 충분해 보인다. 중국의 선전특구와 가까운 홍콩에서 4년간 근무한 적이 있는 현대아산의 장항빈 상무는 “중국의 대표적인 경제특구인 상하이의 푸둥이나 쑤저우 공단도 불과 10년 만에 오늘날의 기적을 만들었다. 개성공단도 남북이 힘을 합쳐 전력투구한다면 같은 기간 안에 푸둥이나 쑤저우 못지않은 산업단지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개발사무소 개소식과 공사 진척 상황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 평양에서는 20여명의 관계자들이 내려와 있었다. 한 관계자는 “시작이 반이라는데 지금 와보니 반 이상 이뤄진 것 같다. 솔직히 평양에서는 말뚝만 몇개 박아놓고 거의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들었는데, 그렇지 않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쪽의 개성공단 개발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개성공단을 차질 없이 추진하라.” 북쪽 관계자가 전한 김정일 위원장의 최근 지시 내용이다. 이번에 평양에서 이례적으로 많은 관계자들이 내려와 현장을 직접 꼼꼼히 둘러보고 점검한 것도 김 위원장의 지시와 무관치 않아 보였다. 이들은 토공의 개발사무소와 시범공장들의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이들 건물은 작지만 꽤 실용적인 용도를 지녔고 첨단공법으로 지어졌다. 개발사무소는 사무동과 숙소동으로 나눠져 있다. 이곳에 장기간 머물며 근무할 남쪽 관계자들을 위한 것들이다. 식당에는 개성 시내에 살고 있는 북쪽 여성들이 고용되어 앞서 와 있는 남쪽 근로자들을 위해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사진을 같이 찍을 수 있느냐”며 조심스레 말을 건네는 남쪽 아저씨들의 제안에 이들은 금세 얼굴이 빨개지기는 했지만 어색함이란 찾아보기 어려웠다.

남쪽 기업인들에게 희소식이 있으니…


△ 한국토지공사 개성공업지구 개발사무소 준공식이 열린 10월21일, 서울과 평양에서 온 20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해 개성공단의 성공을 기원했다. (사진 / 잉응출 기자)

토공 개발사무소는 이처럼 다용도로 쓰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남북경협협의사무소가 조만간 입주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북한 투자에 관심이 있는 남쪽 기업들이 누구나 쉽게 이곳에 와서 북쪽 기업인들을 만나 경협 문제를 터놓고 협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에 투자하고 싶은 맘이 있어도 누구를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남쪽 기업인들에게는 그야말로 큰 선물인 셈이다. 지금껏 남쪽 기업인들은 중국의 베이징이나 단둥 등지에서 북쪽 인사들을 만나 어렵게 경협 사업을 협의해왔다. 적잖은 불필요한 비용이 들어가는데다, 바쁜 일정을 쪼개어 멀리까지 가서 만난다는 게 영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남북한이 경협협의사무소를 잘 운영한다면 개성공단뿐 아니라 북한의 나머지 지역에 대한 투자 물꼬도 틔울 수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근심이 짙게 깔려 있다. 핵 문제와 미국 대선의 향배다. 북쪽 관계자들은 대외 정세가 앞으로 개성공단 건설에 미칠 악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남쪽 정부가 얼마나 굳은 의지를 갖고 밀어붙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궁금해한다. 이번 행사에 많은 관계자들이 평양에서 개성공단으로 달려온 목적 가운데 하나도 남쪽의 확고한 개발 의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주동창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장은 “개성공단을 우리 민족의 단합된 힘을 과시하고 세계적인 공업단지, 우리 민족의 특색을 지닌 공업단지로 만들자”며 “하루빨리 더 다그쳐 민족통일을 바라는 온 민족에게 기대와 희망을 안겨주자”고 말했다.

지금 남북한의 최대 관심사는 올 연말까지 첫 개성공단 제품을 볼 수 있느냐에 쏠려 있다. 얼핏 보기에는 남북한 당국의 마음은 한결같다. 주 총국장은 “올해 안에 공업지구에서 민족공동의 첫 시범 생산물이 나오기를 바라는 온 민족의 한결같은 염원대로 사업을 적극적으로 다그쳐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는 남쪽의 태도도 북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사업과 관련해서는 ‘1일 보고’를 받으면서 개발을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개발업자인 한국토지공사의 김진호 사장도 “연말까지 시범단지 기업들이 시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원활한 지원을 하겠다”면서 “나머지 100만평 공단 개발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20일에는 개성공단 관리위원회 개소식과 시범단지 입주기업 공장 착공식이 열렸다. 이 행사에는 이례적으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산업자원위원회, 남북관계발전 특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52명도 참석했다. 21일 토지공사 개발사무소 개소식에도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의원 10여명이 동참했다. 여야 의원을 가리지 않고 이렇게 많은 의원들이 개성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기는 처음이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개성공단이 성공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초당적 지원을 약속했다. 이들이 현지에 남겨놓은 방명록에는 “남북 화해의 출발점이 되기를…”(장 아무개 의원), “남북 교류협력의 전진기지가 되기를 바랍니다”(정 아무개 의원) 등 개성공단의 순조로운 발전을 기원하는 말들로 가득했다. “앞으로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우리들은 일단 기분은 좋습니다. 다들 마음을 변치 말고 힘을 합쳐 미국의 방해에 굴복하지 말고 사업을 잘 진행했으면 합니다.” 방명록을 함께 들여다본 북쪽 관계자는 약간 고무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 여의도에서 1시간!

개성공단은 “우리도 이제 한번 잘살아보자”는 요즘 북한 사회의 화두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공단과 그 주변에는 남북경협과 관련된 공사가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군인들은 맨삽을 들고 경의선 철도 마무리 공사에 한창이고, 일반 주민들은 1단계 100만평 외의 나머지 지역에 들어서 있던 수백여채의 집을 허물어뜨리고 묘지를 이장하느라 분주하다. 개성공단 건설로 말미암아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게 개성 주민들에게는 여간 반갑지 않다. 공단에 많은 남쪽 기업들이 입주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배경이다. 마침 공단을 빠져나와 개성 시내로 들어가다가 마주친 선하역 공터에는 남쪽에서 방금 실어나른 쌀 수백 가마들이 쌓여 있었다. 정부는 지난 7월20일부터 처음으로 육로를 이용해 쌀 10만t을 북한에 지원해오고 있었다. 수많은 북한 하역 인부들이 북한 전역에 보내기 위해 쌀을 다시 트럭에 옮겨 싣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개성시 안으로는 임진강의 지류인 사천강이 흐르고 있는데, 이곳의 모래는 남쪽 건축업자들에게 큰 인기다. 이날도 수십대의 트럭이 모래를 싣고 먼지를 뿜어대며 남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불과 올해 초까지만 해도 허허벌판에 잡초가 무성했던 개성공단과 그 주변 지역이 남북 비즈니스의 메카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개성을 처음 찾은 남쪽 인사들의 첫 소감은 다들 비슷하다. “개성이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다.” 여의도에서 가양대교를 건너 시원하게 뚫린 자유로를 따라 도라산남북출입관리소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4분이다. 여기서 개성공단까지 거침없이 달리면 10여분이 채 안 걸린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 출입 수속과 대기 시간 등으로 30여분 더 걸릴 뿐이다. 핵 먹구름 아래서도 북한은 성큼 가까이 다가와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