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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정치 > 통일로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3월17일 제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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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쑤는 대북사업 이제 그만…

인프라로 승부해 평양에 남한 중소기업 전용단지 세운 임완근 남북경제협력진흥원장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 북한 기아의 참상을 접하면서 대북사업에 뛰어든 임완근 원장은 수십 차례 방북으로 얻은 신뢰관계 속에서 자신감을 바탕으로 평양공단 설립을 성사시켰다.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가 직접 총대를 메게 된 것이다.(이용호 기자)

남한 중소기업 전용 공업단지가 평양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개성공단에 견줘 규모는 작지만 속은 꽉 차 보인다.

공단의 공식 명칭은 ‘평양고려정보기술센터’, 북쪽에서는 ‘고려기술개발제작소’라 부른다. 평양의 낙랑구역에 자리잡은 이 공단은 1차로 2천평의 공장 4개동 건설 공사가 4월10일께 마무리된다. 조만간 국내 3개 업체가 함께 입주한다. 개성의 시범공단보다 속도가 빠른 셈이다. 나머지 6개동 공장 건물이 세워지면 올 연말까지 입주기업은 모두 30여개로 불어날 전망이다.

개별기업이 하다 안되면 다른 기업이…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임완근(53) 남북경제협력진흥원장은 3월15일 첫 입주기업인과 함께 평양에 들어가 북쪽과 최종 조율을 거친다. 그는 지난 1월 방북 때 북쪽 당국으로부터 남쪽 입주업체 선정권을 위임받았다. 임 원장은 “이달부터 매달 남쪽 기업인들을 데리고 방북할 예정이다. 가능한 한 많은 경제인이 방북해서 사업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중간에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지금 대북사업을 벌이는 중소기업들은 죽을 쑤고 있다. 적지 않은 기업들이 대북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자금의 부족 등으로 부도를 내고 있다. 임 원장은 이런 현실이 몹시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주변에서 북한과 사업을 하는 적지 않은 기업들이 부도를 내는 바람에 기업들이 잔뜩 위축된 상태다. 그래서 우선 (북한에) 같이 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맞대고 있으면 뭔가 돌파구가 나오지 않겠느냐. 최대한 많은 남쪽 기업인을 보내 평양에 체류하도록 하겠다. 함께 일할 방법을 찾도록 하겠다.”


△ 지난해 12월 '평양고려정보기술센터' 건설현장에서 공사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남쪽 기업 전용 공단을 세우기로 마음먹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그는 기업이 홀로 북한에 가서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나는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시한다. 대북사업에 뛰어든 지 4~5년이 지났다. 그동안 개인이 대북사업을 하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반시설이 갖춰져야 한다. 인프라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최소한 누군가 뛰어놀 마당은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 만들어주겠지’라고 생각하며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느냐. 그래서 내가 총대를 메게 된 것 같다.”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졌다는 점도 중소기업인의 군침을 돋운다. 이 공단에서는 펌프로 하루 50t의 물을 생산할 수 있다. 대부분 공업용수로 쓰일 이 물은 사람이 먹을 수 있을 만큼 양질로 알려졌다. 전력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우선 250kW급 발전 설비를 들여다가 입주기업들이 제품 생산에 불편함이 없도록 만들 계획이다. 임 원장은 “돈만 있으면 북한 현지에서 기름이나 가스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고, 남쪽에서 더 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어 비용이 오히려 적게 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올 연말까지 입주할 예정인 30여개 한국 기업이 사업을 진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단 내에서는 북쪽 당국의 도움으로 개별 기업이 사업을 할 때마다 각종 행정처리도 훨씬 신속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고려정보기술센터에는 공장 건물뿐 아니라 직원 숙소, 각종 오락편의·교육·연구 시설도 품고 있다. 남쪽 인력들이 편안하게 장기 체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북쪽 파트너의 확고한 신뢰 얻었다”

임 원장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벌써 수십 차례 방북을 한 경험이 있는 그는 이제 북쪽과의 비즈니스에서 뭔가 그만의 독특한 비결을 발견한 듯하다. 무엇보다 그는 북쪽 파트너의 확고한 신뢰를 얻었다는 데 흐뭇해했다. 1999년 처음 대북사업에 발을 담근 뒤 2000년 9월에 평양컴퓨터교육센터를 세워 북한의 컴퓨터 전문인력 양성과 소프트웨어 개발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 센터 조감도. 4개 동 공장 건물이 4월10일께 완공된다.

특히 그가 보낸 2500여권의 컴퓨터 전문서적은 많은 북한 젊은이들이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토양이 되고 있다. 임 원장은 한때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비즈니스에 투신해, 1980년 중반 세무회계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개발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그는 고려정보기술센터의 장점으로 북한의 고급 인력을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알려진 대로 인건비도 싸다. 노동자의 숙련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임금은 대체로 최저 65달러에서 최고 200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제성 있는 인력을 길러내기 위해 북한 인력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훈련도 실시할 예정이다. “북한 노동력은 남쪽 기업의 요구에 맞게 양성되어야 한다. 또 인력 양성에는 기술과 정보가 결합되어야 한다. 이렇게 키운 인재들은 개성공단 등에도 투입되어 매우 쓸모 있게 활용되리라 본다.”

그는 애초 고려정보기술센터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보통신(IT) 업체만을 받기로 했다가 수익성과 안정성이 있는 중소기업이라면 업종에 관계없이 입주시키기로 했다. “대북사업이라는 게 돈만 많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솔직히 돈 많은 사람들보다 대북사업 추진의 필요성에 대한 정서를 공유하면서 성실한 기업인들을 많이 데리고 가 평양에서 사업할 기회를 주고 싶다.”

당장 농수산물 가공업체를 비롯해 건축자재·의류생산 업체 등이 평양에 첫발을 내디딜 예정이다. 만일 이들이 순조롭게 진출한다면 ‘평화자동차’에 이어 평양 직접투자 기업 2호가 된다. 지금까지 평양에 임가공 방식의 진출은 더러 있었지만 투자기업은 많지 않았다. 고려정보기술센터는 순수 민간기업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핵 문제 등 외풍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1998년 말 척추뼈를 다쳐 병상에 누워 있다가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북한 기아의 참상을 접하면서 대북사업에 뛰어든 그는 ‘시인’이기도 하다. 얼마 전, 북녘 땅을 오가면서 쓴 주옥같은 시들을 모아 <오마니, 나의 오마니>라는 애절한 제목의 시집을 펴냈다. ‘오마니’는 반세기 분단으로 뿌리를 앓고 있는 우리 민족, 사랑하는 나의 조국을 지칭한단다. 대북사업에 뛰어든 이후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는 그는 대북사업을 신으로부터 받은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임 원장의 든든한 후원자인 박찬모 포항공대 총장은 “기도와 사랑으로 남북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임 원장을 볼 때마다 부끄러워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연필로 쓰는 사랑이야기’프로젝트

임 원장은 평양공단조성 사업 말고도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일일이 적기도 어려울 정도다. 가장 최근에는 대북지원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프로젝트 이름이 ‘연필로 쓰는 사랑이야기’다. 북녘 어린이 500만명에게 꿈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집어넣은 500만개의 연필을 전달하는 일이다. “북녘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미래 남북통일의 대업을 이룰 주역들이다. 연필 보내는 일은 남쪽에서 반대할 사람도 없을 것 같고, 서로의 마음을 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