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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01월15일 제4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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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 ‘북쪽 도우미’

현지 주민들 서비스 일자리 얻어 시장경제 학습… 투자 유치 · 직항로 개설로 ‘흑자 원년’ 설계

금강산이 나날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 북한 내부에 휘몰아치고 있는 변화의 바람도 따지고 보면 그 진원지는 금강산이다. 금강산 관광을 통해, 북한은 ‘자본’을 이해하고 ‘시장’을 이해하기 시작한 셈이다. 따라서 금강산의 변화를 조망하면 앞으로의 남북관계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를 미리 점칠 수 있다. 물론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아직도 북한의 변화 몸부림이 너무 굼뜨다고 답답해할지 모른다. 북한 당국은 여전히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 금강산 관광길이 5년 전과 견주면 천지가 개벽할 정도라고 놀라워한다.


△ 금강산 관광이 고비를 넘기고 흑자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금강산 육로관광단이 장전항에 도착해 입국장에 들어가고 있다.(연합)

자본 이해하고 시장 체험하는 금강산

금강산 관광길에서는 남북한의 동강난 허리를 잇는 동해북부선 철도·도로 공사 현장도 가장 생생히 지켜볼 수 있다. 버려진 잡목들과 회색빛 군부대 및 관련 장비로 뒤덮여 있던 비무장지대에는 넓다란 길들이 하얀 속살을 드러낸 채 남북의 차량이나 기차가 오갈 수 있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현대아산이 제공한 굴삭기가 굉음을 내며 쉴 새 없이 땅과 암석을 파내고 있고, 북한 인민군들도 떼를 지어 삽과 곡괭이로 도로를 닦고 철길을 잇는 데 한창이다. 북한 당국은 철길과 도로를 여느라 여러 군부대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남북 이산가족 면회소가 자리잡을 6천여평의 넓은 터 근처에 있던 군부대도 어디론가 옮겨갔고, 흰색 바탕의 붉은색 각종 구호가 적힌 간판도 사라졌다. 금강산 관광이 북한의 군사 부문 변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들이다.

외부 투자도 소규모나마 꾸준히 이뤄지고 있었다. 재일동포가 최근에 투자한 펜션리조트는 특히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눈썰매장이 개장돼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었으며, 스키장, 골프장 그리고 케이블카 설치 등 각종 관광 편의·위락 시설이 곧 설치될 전망이다. 장전항 근처에는 남쪽 사람이 운영하는 횟집이 처음으로 들어섰다. 북한 개선무역회사가 양식이 아닌 자연산 횟감을 제공하는 이 집에는 밤늦게까지 남쪽 관광객을 맞느라 종업원들이 쉴 틈이 없어 보였다.

관광길도 예전에 비하면 한층 여유로워졌다. 북한의 선·후발대 차량이 없어져 소그룹별로 자신들이 신축적으로 일정을 짜서 이곳저곳을 마음대로 돌아볼 수 있게 됐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북쪽 주민들과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한다. 현대아산은 이런 요구를 반영해 조만간 고성군 현지 주민들을 ‘노력봉사요원’으로 삼아 남쪽 관광객들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할 계획이다.


△ 금강산 관광단은 소그룹별로 신축적인 일정을 짜서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관광단이 눈 내린 금강산 만물상 코스를 오르고 있다.(연합)

북한은 유휴 노동력을 활용해 외화를 벌 수 있고 자연스레 시장경제 원리를 터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기고 있고, 현대아산도 인건비를 절약하면서 성실하고 근면한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하고 있다. 이처럼 요즘 북한 당국의 최대 관심은 ‘일자리’다. “북한 주민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일자리를 얻어 스스로 일한 노력의 대가를 체험하기를 원한다”는 게 현대아산 관계자의 귀띔이다. 얼마 전 금강산을 방문한 북쪽의 고위관계자는 “이제부터는 남쪽에서 거저 얻어먹을 수는 없다”며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주면 열심히 일한 만큼 벌어먹게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온정각 휴게소에서 선물 포장용으로 나온 종이 쇼핑백의 대부분은 현대아산의 주문을 받아 북한 주민들이 현지에서 직접 만든 것들이다. 현대아산쪽은 이 외에도 다양한 일거리를 찾아 이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금강산 현지에서는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끊임없이 솟구치고 있는 남북 통합의 실험장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의미 있는 변화들도 금강산 관광의 적자 구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지속성을 보장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현대아산은 여전히 적자더미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북한 당국과 여러 사업을 추진할 계획을 잡아놓고도 재정난으로 재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속초항과 북한 장전항을 오가며 남쪽 관광객을 실어날으던 설봉호가 1월11일부터 관광객 감소로 운항을 중단했다. 적자폭을 최대한 줄이려는 현대아산쪽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1998년 많은 돈을 투자해 어렵게 만든 장전항 부두가 빈둥빈둥 놀게 됐다는 점이다.


△ 남쪽 속초항과 북쪽 장전항을 오가며 남쪽 관광객을 실어나르던 설봉호. 이 배는 관광객이 줄어들어 지난 1월11일부터 운항을 중단했다.(연합)

다양한 일자리 창출… 장전항 부두 골머리

현대아산쪽은 노무현 정부가 이 부두시설을 인수해 동북아경제중심 프로젝트에 부합하는 물류 및 관광항으로 개발했으면 하는 바람을 숨기지 않고 있다. 관광객이 급증해 다시 대형 유람선이 띄워지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육로 관광길만 이용된다면 부두는 별다른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아산은 정부가 이 장전항 부두시설을 인수할 경우 그 매각대금으로 현지 관광 편의시설에 재투자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정부는 이런 제안에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어쨌든 이런 빅딜이 이뤄진다면 현대아산은 적자 수렁에서 벗어나고, 금강산 관광의 숨통이 트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앞으로 1~2년이 금강산 관광의 최대 고빗길로 인식되고 있다. 이윤수 금강산사업소 총소장은 “올해에는 내금강과 원산까지 관광코스를 확대하고 서울~원산간 직항로가 개설되면 2년 안에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전환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물론 이런 합의가 실천에 옮겨지기 위해서는 정부의 남다른 관심과 지원이 불가피해 보인다.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그에 맞춰 북쪽도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아산쪽은 지난해 초 야당이 반대해 지원이 중단된 학생 등에 대한 금강산 관광경비의 보조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9월1일 육로 관광길이 열리면서 매달 1만명을 넘는 관광객이 금강산을 찾았다. 9월 9979명에 이어 10월에는 1만8천여명, 11월에는 1만4천여명에 달했다. 육로관광은 해로관광에 비해 비용이 저렴한데다, 이동시간이 대폭 단축되어 남쪽 관광객들의 호평을 받게 된 탓이다.

특히 분단 50년 만에 남북한 무장군인들 사이의 첨예한 대결장이었던 비무장지대가 관광길로 민간인에게 개방되어 색다른 여행의 묘미를 안겨준 것도 관광객 증가에 기여했다. 육로관광은 갈수록 통일이나 민족 문제에 등을 돌리고 있는 학생들에게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분단의 현실과 남북 교류·협력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산 교육장 구실을 하고 있다. 정부의 관광경비 보조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3개월 전부터는 공동사업자인 한국관광공사도 현지 사무소(소장 홍명진)를 세워, 현대아산을 도와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금강산을 남북 화해와 교류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비정부기구(NGO)들의 뜨거운 열기도 식지 않고 있다. 민족사랑국민연대 등 사회단체들은 현대아산의 주선으로 연탄 5만장과 연탄난로 200대 등을 현지 고성군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한 마라톤 전문 여행사는 남북 화해와 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기치로 내건 마라톤대회를 오는 2월7일 연다. 전통문화단체인 전국연협회는 1월12일부터 3월 말까지 ‘금강산 통일기원 연날리기 행사’를 펼친다. 이 행사에는 200여개의 연을 이어서 만든 550m 길이의 ‘줄연’이 금강산 하늘에 높이 띄워지며, 관광객들도 300여개의 통일기원 연을 날린다. 올해 남북 지방 및 단체간 교류 및 학술행사도 줄을 잇고 대기하고 있다. 남북간 의사소통과 화합의 장으로 금강산이 갖는 의미가 더욱 깊어지고 있는 셈이다.

의미있는 진전에도 노무현 정부에 실망

하지만 금강산 관광길도 핵 먹구름을 피해갈 수는 없는 듯했다. 적지 않은 북쪽 관계자들이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핵을 빌미로 노무현 정부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 등 민족사업 지원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이전 정권과 달리 현대아산을 너무 박대하고 있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금강산 관광은 어떻게 되느냐”는 우려 섞인 질문을 제기했다. “우리는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남쪽 정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한 북쪽 인사의 말 속에는 시름이 가득 담겨 있었다.

금강산=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