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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정치 > 통일로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3년12월25일 제4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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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통일부 장관- “북핵 해결 국면에 다가섰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이 밝히는 북핵과 남북교류… 일상적 교류 통해 북한의 의미있는 변화 이끌어

“자식이 귀한 집에서는 첫 손자 귀한 줄 안다. 하지만 자식을 줄줄이 낳은 집에서는 자식 귀한 줄 모른다. 요즘의 남북관계가 이와 비슷해 보인다. 남북교류협력이 일상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지니까 이제 ‘기사’도 잘 안 나온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에게 2003년은 기대와 우려가 극적으로 엇갈린 한해였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전쟁의 먹구름이 한반도에 짙게 드리워졌으나, 남북교류와 협력은 도도한 물줄기를 이뤘기 때문이다. 남북한 왕래인원 1만명 시대가 열렸고, 물자교역도 7억달러에 이르렀다. 남북의 동강난 허리를 잇는 철도·도로 공사가 순풍을 타고 있고, 개성에는 산업공단이 곧 들어서며, 금강산은 대규모 관광특구로 옷을 갈아입을 태세다. 이산가족들의 숙원사업인 6천평에 이르는 금강산면회소를 볼 날도 멀지 않았다.

정 장관은 “이제 남북관계의 진전은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면서 “이는 북한의 의미 있는 변화를 촉진하면서 결과적으로 정치·군사를 근본적인 변화로 이끄는 구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새해에도 북핵 문제가 남북관계 진전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 시장경제 마인드 흡수

-2003년에 일어난 북한의 가장 주목할 변화는 무엇인가.

=지난해 7월 경제관리개선 조처의 연장선상에서 생겨난 종합시장이다. 2003년 3월부터 건설된 종합시장은 북한 전역에 300여개 정도 된다. 각 시군에 다 있는 셈이다. 평양에는 15∼20개 있다. 대표적인 종합시장은 통일거리에 있는데, 일부 남쪽 기업인들도 목격했고, 또 외교단지 가까이 자리잡고 있어 외국 외교관들도 얘기하더라. 공급 부족에 따른 인플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비교정치사회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회주의국가에서 이런 조처를 하면 어느 정도 인플레는 피할 수 없다더라.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인 만큼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좀더 개선된 제도가 나올 수 있다. 종합시장은 실리사회주의의 결정체이다. 북한 주민들은 돈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에누리’ ‘깍아주다’ ‘떨이’ 등의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면서 흥정하고 있다. 시장경제 마인드가 자리잡아 가는 게 아닌가 싶다.

- 북한의 변화 과정에서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 외국에 경제연수단 및 법률연구단을 보내고 있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법률연구단 파견은 북한 당국이 제도개혁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외국인 투자를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어떤 제도를 새로 만들고, 규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 일반 주민들의 생활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경제협력이 군사 분야의 협력을 견인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북한은 9월17일 8차 군사실무회담에서 “쌍방 군대가 금강산 육로관광, 개성공단 건설, 철도·도로 연결 작업의 적극적 추진을 위해 인원과 차량들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원할히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은 대내방송인 <중앙방송>을 통해서도 남북경협에 대한 군사적 보장을 재강조했다. 이는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변화다. 국방장관 회담을 열어서 문서만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다. 실질적 혜택, 즉 경제적 이익이 보장되어야 한다. 북한은 약속을 안 지킬 때 손해가 뭐냐 등 이해득실을 따져본 뒤 어떤 일을 보장하거나 무산시키기도 한다.

나름대로 자신감 가져… 변화 촉진 요인 많아

-무엇이 북한의 변화를 촉진시키고 있다고 보나.

=개방의 불가피한 요인으로 우선 북한 경제난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난이 아무리 심화되어도 걱정이 앞서면 마음대로 개방을 못한다. 지난 수년간 남북 당국간 대화나 민간 차원의 접촉이 매우 활발했다. 방북자가 1998년 3천명선이었으나 올해 11월 현재 1만3천명으로 급증했다. 북쪽 사람들도 1천명가량 남쪽에 내려왔다. 이런 교류과정을 통해 북한은 개방해도 체제에 위협이 안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게 대북 정책의 성과다. 개방하다 보면 제도를 고치는 등 개혁할 수밖에 없다. 개방과 개혁은 연결돼 있다. 중국도 그렇고, 옛 소련도 그랬다. 남북 접촉이나 외국과 교류협력하기 위해서는 기존 제도를 고치고, 때로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또 이런 과정은 북한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북핵 문제가 제기된 이후 미국과의 접촉과정에서 북-미 관계 개선의 불가피성도 인식한 것 같다.


-앞으로의 개혁·개방을 제약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역시 북핵 문제다. 핵문제가 해결이 안 된 상황에서 개혁·개방은 한계가 있다. 또 내부적으로 개혁·개방을 너무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논의도 있는 것 같다. 관료적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체제 수호를 우선시하는 보수파들이 있지 않겠느냐. 그들이 누구냐. 대개 전문가들은 북한 군부로 보는데, 꼭 그렇지 않다. 이들이 보수집단인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군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군부는 특유의 돌파력과 추진력을 갖고 있다. 이들도 처음에는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남북교류협력이 심화되면서 특히 개성공단, 금강산 특구와 가까운 군사분계선의 주변을 관리하고 통행을 보장하는 문제와 관련해 북한 군부가 전향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군부의 두 얼굴을 봐야 한다. 따라서 군부가 개혁·개방을 꼭 보수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체제 내부적으로 아직 인식의 패러다임이 안 바뀐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관료집단이 원래 보수적인 것 아니냐. 하지만 전체적으로 지금 변화를 촉진하는 요인들이 더 많다. 중요한 점은 김정일 위원장이 러시아, 중국처럼 개혁·개방을 신중하게 추진하고 있으나 밑에서 제대로 못 받쳐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북관계 개선에 유리한 환경 조성돼

-핵은 북한 변화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나.

=핵 문제 등으로 대외관계가 좋지 않으면 북한이 경제난을 극복하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북한은 유럽연합(EU) 13개 국가와 2000년 말과 2001년 초에 수교했으나, 북한이 핵개발을 시인한 2002년 가을 이후 EU의 대북 접근 속도는 둔화됐다. 이는 전적으로 핵문제 때문이다. EU가 그럴진대 미국이나 일본이야 오죽하겠냐. 한국도 마찬가지다. 남북한은 외딴섬에 사는 것이 아니다. 경제자체가 미국·일본·EU와 무역과 투자, 기술협력 등을 통해서 지탱되고 있다. 북한은 국제 사회의 우려를 외면해선 안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핵문제는 어떻게 풀릴 것으로 보나.

=핵 상황은 개선될 것이다. 3자회담에서 6자회담으로 어렵게 넘어왔고, 2차 6자회담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3차에서 6차회담으로 넘어오는 데도 어려웠다. 회담 차수를 붙이는 정도까지 발전했다. 2차부터는 공동보도 문안을 조율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지금 공식회담은 열리고 있지 않지만 장외 회담은 계속되고 있는 거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 해결 국면으로 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국제적 요구를 수용하느냐의 여부가 핵심이다. 북한 요구도 조율해야 하고, 북-미간의 견해차를 좁히기 위한 ‘셔틀외교’가 진행되면서 좁혀지는 것 아니냐. 해결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12월15일 부시 대통령도 외교적 노력이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남북관계를 유지하기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 지난 6월30일 북한 개성시에서 개성공단 1단계 착공식이 열렸다(왼쪽). 10월6일 분단 반세기만에 민간차원에서는 처음으로 개성∼평양간 육로를 이용할 남측 방문단이 북쪽으로 들어가고 있다(오른쪽).(사진/ 사진공동취재단)

- 핵이 남북관계, 특히 경제협력의 발목을 잡을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의 당위성과 책임감을 갖고 일관되게 일해왔다. 하지만 핵 문제에 대해 북한이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북한을 상대로 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줄어들 것이고, 대외협력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북한 경제난과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어렵다. 한국도 무턱대고 경협을 추진할 수가 없다. 한국의 경제는 세계화의 중심에 있다. 우리가 미국의 기술에 의존하고 있고, 우리 기업들의 주요 수출국도 미국이다. 전략물자 규정에는 장비뿐 아니라 기술도 포함되어 있다. 관련국들과 협의해야 한다. 무턱대고 북한에 투자할 수는 없다. 지금 상태에서 우리가 뭘 줄 수 있느냐. 경협은 남쪽의 기술과 자본이 가는 것이다. 명태 등 농수산물만 사주면 큰 도움이 안 된다. 우리의 자본과 기술이 무턱대고 북에 갈 수가 없다. 일본과는 로열티를 지불하고 맺는 기술협력협정 등이 있다. 북한에 관련 기술을 가져가려면 사전에 양해를 받아야 한다. 원자력 협력분야가 대표적이다. 남북경협에도 국제환경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남북경협 지상주의는 이런 한계들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정부가 덤벙덤벙 남북경협을 추진했다가는 나중에 더 큰 탈이 날 수 있다.

남북경협 지상주의는 현실적 한계 있어

-그래도 통일부가 남북경협을 전향적으로 앞장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남북경협은 국내법과 국제법 그리고 관련 규정이라는 벽을 넘어야 한다. 통일부는 그나마 남북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최대한 정책적으로 푸시(Push)하고 있다. 기업들의 반출이나 협력사업 승인 신청이 들어오면 남북교류협력추진위원회 회의에서 승인 여부를 심사하고 결정한다. 따라서 통일부는 사안에 따라 산자부, 정통부, 건교부, 외교부 통상교섭본부 등과 협의해 경협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하나라도 더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당장 개성공단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가.

=중소기업들이 국내에서 고임금으로 어려움을 겪자 중국이나 동남아로 진출하고 있는 것을 잘 안다. 왜 우리가 이들의 어려움을 모르겠느냐. 청년실업 문제도 마찬가지다. 개성공단사업은 개발 단계부터 남쪽 사람들이 들어간다. 이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제약하는 기존 규정들은 없애야 하고, 또 양쪽 법체계가 달라 남쪽 사람이 구속되는 사태는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 공단 입주 이전에 법과 제도를 정비해놓고, 설계도 끝내야 하며, 북도 내부적으로 법적 정비를 해야 한다. 개성공단 관련 규정이 10개인데, 다 나와야 한다. 이제 부동산, 광고, 외화관리 등 3개 규정만 남았다. 설계는 올해 말에 끝난다. 다 됐다.

-1만평 시범공단은 언제쯤 완공되나. 실제 기업들은 언제쯤 입주할 예정인가.

=내년 초에 기반시설 착공에 들어간다. 기업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게 다 만들어놓고 입주해야 한다. 허허벌판에 그냥 텐트 치고, 발전기 몇대 갖고 간다고 공장을 돌릴 수 있는 게 아니다. 1만평 시범공단도 남북한 당국이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부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야 한다. 또 남북협력기금도 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 동의도 받아야 한다. 무턱대고 동의해달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 남북한이 합의해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아야 한다.

정부는 우선 한국토지공사와 현대아산이 공동 추진하기로 한 100만평 안 1만평에 시범단지를 만들기로 했다. 개발센터격인 개발사무소 개소식도 가졌고, 2004년 상반기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고 4∼5개의 중소기업들을 우선 입주시킬 계획이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100만평 밖의 1만평 시범공단은 적절치 않다. 급하다고 판자촌 짓듯이 들어가면 개성공단의 전체 이미지를 버릴 수 있다.

참여정부는 내실 있는 대북정책 추구

-개성공단 관리기관 이사장은 남쪽 인사가 맡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이사장은 공단 개발업자인 현대아산과 토지공사가 합의해서 결정할 것이다. 이사장은 공정성, 전문성, 신뢰성, 대북 교섭력 등을 두루 갖춘 인물이 적합할 것으로 생각한다. 개성공단은 남북경제공동체의 첫 실험장이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새해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계획인가.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성과를 폄하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이는 과거와 달리 조용하면서도 내실 있게 진행되어온 남북교류협력의 성과들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이는 객관적인 통계로도 명백히 증명된다. 남북관계는 이제 일상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앞으로 남북간에 요란한 이벤트성 대형 행사는 지양하겠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를 정도로 차분하게 접근하는 게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위해 현명한 태도다.

글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