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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로 ] 2003년11월12일 제484호 

“북쪽 고향에 갈 날 온다”

상설 면회소 건설 합의하고 돌아온 이병웅 수석대표가 말하는 남북적십자회담 막전막후

“조만간 이산가족들이 북한의 고향땅을 직접 밟을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어디선가 서로 만나고 하룻밤이라도 자고 갈 장소가 필요하다. 이산가족 면회소는 중간 기착지로서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측면에서 남북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징검다리 구실을 하리라 본다.”

11월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금강산에서 열린 5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남북이 이산가족들의 숙원사업인 면회소 건설 규모에 합의했다. 그동안 서로 면회소 크기를 놓고 몇달간 팽팽한 신경전을 벌여왔으나 마침내 대타협을 이룬 것이다. 회담을 마치고 막 돌아온 이병웅 남북적십자회담 수석대표는 “북한의 솔직하고 양보하는 자세가 돋보였던 회담이었다”고 평가하면서 면회소가 남북관계 장래를 미리 준비하는 다목적 사무소의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11월6일 금강산 해금강호텔에서 열린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이병웅 남쪽 대표(왼쪽)와 최성익 북쪽 단장이 손을 잡은 채 걷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6천평 규모의 면회소는 남북간의 의미 있는 사업으로 이어질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비무장지대 철책선이 갑자기 확 뚫리는 일은 없다. 서로 교류협력하다 보면 통일이 될 텐데…, 면회소는 남북간의 다양한 교류를 촉진하는 기능을 하리라 기대하고 있다.” 이 수석대표는 1971년 9월 판문점에서 열렸던 첫 남북적십자회담 실무접촉 때 수행원으로 참가한 이후 30년 넘게 남북 이산가족 관련 회담에 깊숙이 관여해온 이 분야의 산증인이다.

북한 양보로 남쪽이 단독 운영

-북한이 양보한 대목은 무엇인가.

=북한은 애초 2만2천평 규모의 대형 면회소 건설을 요구했으나 예산부족 문제 등으로 난색을 표시하자 결국 몇 발짝 물러서 6천평에 합의했다. 또 북한은 면회소를 공동운영하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불필요한 마찰을 빚을 우려도 있어 우리는 남쪽 단독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맞서왔고, 이번에 북한이 양보해 남쪽이 원하는 대로 되었다. 다만, 북한이 면회소 사용을 요구할 경우 빌려주기로 했다.

-북한이 면회소 규모에 합의한 배경과 의의를 설명해달라.


사진/ 류우종 기자


=북한이 지난해 7·1 경제관리 개선조처 이후 많이 변한 것 같다. 저들은 못사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남쪽이 잘사니까 인색하게 굴지 말고 도와달라고 했다. 동서독도 통합 이전에 이산가족이 상봉할 때 면회소와 같은 중간 창구를 이용했다. 서영훈 총재가 지난 10월 평양을 방문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장재언 북한적십자회 위원장 등을 만나 사전에 설득한 것도 이번 합의에 도움이 된 것 같다. 북한도 지금과 같은 단체상봉 방식이 비용도 많이 들고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하더라. 이산가족 문제가 앞으로 길어봐야 20년 이상 가겠느냐.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더는 이벤트성으로 흘러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면회소가 세워지면 달라질 것이다. 면회소에서 이산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서신을 교환하며, 수시로 자연스레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면회소가 다른 기능도 수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면회가 이뤄지지 않은 날에는 금강산 관광객들의 숙소, 국제회의장, 청소년 수련장 등으로 쓸 생각이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은 면회소 운영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면회소가 지금처럼 주요 명절 때만 상봉을 하고 나머지 기간에 관광객 숙소로 사용할 경우 현대아산의 금강산 사업만 돕는 게 아니냐는 주장을 한다.

=면회소가 완공되면 이산가족 상봉 형태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제 서로 통보해서 일정만 잡으면 만날 수 있는 식으로 점차 바뀔 것이다. 면회소 안에 남북이 각각 300평 규모의 사무실을 두기로 한 것은 긴밀한 협의를 위해서다. 여기서 수시로 생사 확인과 서신 교환 등을 주선하는 우체국 기능을 할 수도 있다. 현대아산이 면회소를 숙소로 이용할 경우 사용료를 받으면 오히려 면회소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경제적 효율성을 감안하면 꼭 부정적 시각으로 볼 일은 아니다.

다용도로 활용해도 초기엔 적자 불가피

-면회소 운영 비용은 얼마나 되나.

=대충 연 40억∼50억원 정도가 관리비로 쓰일 것으로 보인다. 초기 몇년은 적자가 불가피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면회소를 그냥 놀리지는 않을 작정이다. 정부에서 전적으로 운영비를 계속 조달할 수는 없다.

-면회소가 세워지면 이산가족들이 하룻밤이라도 함께 보낼 수 있으리라 보나.

=북한은 원칙적으로 동숙을 반대하지는 않고 있다. 1972년 이후 이산가족 관련 회담에서도 북한이 먼저 면회소에서 이산가족들이 함께 잘 수 있는 숙소 설치를 제안했다. 북한이 지금은 여건상 시기상조라고 말하지만 면회소가 들어서면 동숙도 가능하리라 본다.

-대부분의 이산가족들이 늙고 병들어 금강산 면회소까지 가기에도 버거워 보인다. 따라서 서울에서 가까운 도라산 전망대나 개성 근처에 면회소를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 4차 남북적십자회담 때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지점에 면회소를 짓기로 합의한 바 있다. 얼마전 개성을 방문해 돌아봤더니 면회소 건설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의선 철도·도로가 완전히 연결되기 전까지는 좀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개성 면회소는 남북의 경의선 도로·철도가 연결되는 시점에 합의가 될 듯하다.

-올 겨울 한 차례 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길 바랐으나 그렇지 못했다.

=북쪽 대표는 북한에서 한번 눈이 오면 잘 녹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은 솔직히 교통사정이 좋지 않다고 안타까워하더라. 11월부터는 갑자기 영하 10∼15도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이럴 경우 산간 벽지에 사는 이산가족을 금강산까지 데려오기는 힘든 모양이더라. 괜히 남쪽과 약속했다가 못 데리고 오면 신용만 떨어진다고 우려하는 것 같았다. 일단 내년에는 설과 6·15 남북정상회담 기념일, 추석 등 최소한 세 차례는 상봉하자고 합의했다. 내년 3월이 되면 아무리 추워도 이산가족들을 데려오겠다고 하더라.

납북자 · 장기수 문제는 해법 찾기 어려워

-전쟁 이후 납북자 생사확인 문제는 논의했나.

=전쟁 때 실종된 사람들의 생사확인은 합의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실종자 문제는 진전이 없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전쟁 이후 누구도 납북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0월 평양에서 열린 12차 장관급회담에서 제안했던 비전향 장기수 송환도 다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전향 장기수’가 아니라 ‘전향 장기수들’이다. 이들이 다시 마음이 바뀌어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 아니냐.

-앞으로 과제와 전망은.

=설계와 기초는 남쪽이 끝낸 뒤 북한에 그 결과를 알려주게 돼 있다. 북한이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면 참고하기로 했다. 지질조사는 연내에 끝낼 수 있을 거다. 설계는 석달 정도 걸린다. 내년 봄에는 착공에 들어갈 수 있다.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2005년 봄에는 면회소가 완공될 것이다. 차기 6차 남북적십자회담은 내년 날씨가 풀리면 하기로 했다. 9차 이산가족 상봉은 내년 3월쯤 실시될 것이다. 일단 면회소 건설이 1차 목표다. 생사확인과 서신교환 등도 추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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