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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로 ] 2003년09월18일 제476호 

“10월초 김정일 위원장 만나겠다”

[통일로 |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인터뷰]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에게 들어본 대북사업 전망… 정부가 사업확실성 담보해줘야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이 지난 8월4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한달이 훌쩍 흘렀다. 그는 홀연히 떠나갔지만 그의 유훈을 떠안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그는 요즘 그야말로 눈썹이 휘날리도록 부지런히 남북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다. 대북사업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다. 실제로 가시적인 성과들도 눈에 띈다. 육로와 해로를 번갈아 이용하며 금강산과 개성을 뻔질나게 오가는 그는 북한을 한번 다녀올 때마다 북쪽 파트너와의 새로운 합의 보따리를 풀어놓고 있다. 9월6일 금강산을 다녀온 뒤에는 금강산 사업 활성화 방안으로 △관광코스 확대 △육로관광 매일 실시 △북한의 노동력 제공, 수산물·특산물·공예품 공급 △온정리 눈썰매장, 스키 강습장 설치, 금강산 여관 보수, 김정숙 휴양소 운영 △ 육로이용 마라톤 대회, 자동차경주, 국제모터사이클투어링 등을, 개성공단 관련사업으로 △국내 4∼5개 중소업체의 1만평 시범공단 10월 중 착공 △개성 관광 실시 △개성 골프장 건설 계획 등을 발표했다. 그야말로 그간 막혔던 물꼬가 정 의장의 죽음으로 확 뚫린 듯 대북 사업구상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시베리아 대륙 진출의 꿈 키운다

물론 이들 사업들 중 상당수는 북쪽과 협의 중이거나 단지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들이라 실제 성사 여부는 지켜봐야 하는 대목들도 있다. 하지만 김 사장의 말 속에서는 강한 자신감이 배어 있다. “대북사업을 위해 돈도 쓸 만큼 썼고 사람까지 죽었는데 더 이상 추락할 데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더욱 큰 비약을 꿈꾸고 있었다. “부지런하면 절대 굶어죽지 않는다”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좌우명을 지금도 금과옥조로 여기는 그는 이제 시베리아 대륙 진출의 꿈을 구체화하기 위한 작업에 본격 나섰다. 정 명예회장이 1989년 방북시 김일성 주석과 맺은 의정서에 따라 금강산과 개성을 발판으로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시베리아에 진출해 가스와 같은 천연자원을 개발하는 사업과 물류비용 절감을 위한 육로이용 유라시아 진출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날 중동건설신화를 일구었듯이, 이제 대북사업에서도 신화를 창조하겠다는 의지가 그의 새로운 지론인 ‘강한민국’으로 화려하게 다시 태어나고 있다. “한국은 더 이상 극동아시아의 귀퉁이 국가로 남아서는 안 된다. 또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고착돼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확고한 신념이다.


사진/ 세계관광기구 관계자들과 대북사업 종합마스터플랜에 대해 토론하는 김윤규 사장.


하지만 앞날이 그리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정작 중요한 사업성공의 관건인 내외자 유치가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다. 북핵 문제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북핵이 한반도 허리를 꽉 붙들고 있는 상황에서는 국내기업이든 외국기업이든 선뜻 투자를 하겠다고 나설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를 고무시키는 것은 정 의장 사망 뒤 국민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특히 네티즌들의 쇄도하는 격려 이메일에 그는 크게 고무돼 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그는 연신 네티즌들의 편지를 보며 싱글벙글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김 사장님,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얼른 눈 고치세요.” “3년 뒤에 들어가겠습니다.”(현대아산 입사 지망자) “신혼여행은 꼭 금강산으로 가겠습니다.” “윙크는 계속되어야 한다.” 하나같이 김 사장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이메일 제목들이다. 그는 네티즌들에게 ‘미스터 윙크’ ‘통일윙크’ 등으로 불린다. 웬만한 이름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국민들의 격려와 열망 등을 생각하면 잠시도 쉴 틈이 없다”며 최근 결정을 내린 게 국민주 형식의 주식공모 계획이다. 김 사장은 이번 달 30일까지 학생을 포함해 일반 국민을 상대로 주식을 공모한다고 밝혔다. 한주당 공모가격은 5천원(액면가)이며, 적어도 10주까지 살 수 있다. 현대아산은 이를 위해 자사 지분 9.98% 가운데 4.27%에 해당하는 보통주 38만주를 내놓았다. 그는 “현대아산을 국민적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비밀송금이 국익에 도움됐다”

정 의장 사망 뒤 김 사장의 이마에는 주름살이 몇개 더 늘었다는 게 측근들의 귀띔이다. 오른쪽 눈 주위 근육이 수시로 떨리는 현상도 더 심해진 것처럼 보였다. 정 의장이 ‘너무 자주 윙크하는 버릇을 고치시라’고 유서를 남겼으나 그는 여전히 병원 갈 시간이 없단다. 그의 얼굴에 서린 그늘도 부쩍 자주 비쳐진다. 할 말은 많은 것 같으나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대부분의 질문에는 시원시원하게 답하면서도 다소 민감한 질문에는 입을 다물었다. 김 사장과의 인터뷰는 9월4일과 8일 두 차례 이뤄졌다.

-정 의장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순교’로 봐야 한다. 자신의 몸을 던져 대북사업의 참뜻을 알리려 했다.

-5억달러 비밀송금은 어떻게 평가하나.

=국익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본다. 하지만 비판도 겸허하게 받아들여 앞으로 대북사업에 참고하겠다. 하지만 정주영 명예회장이나 정몽헌 의장이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대는 국가사업에 공헌한 측면이 많다. 현대가 처음 금강산 사업을 추진했을 때 남북 당국간에 대화도 이뤄지지 않았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성공을 위해서도 남북 당국자끼리 만나야 한다고 북한을 설득해 당국간 실무접촉, 차관급회담, 장관급회담 나아가 정상회담 등이 성사될 수 있었다.


사진/ 육로와 해로를 번갈아 이용하며 금강산과 개성을 뻔질나게 오가는 김윤규 사장은 북한을 한번 다녀올 때마다 북쪽 파트너와의 새로운 합의 보따리를 풀어놓고 있다.

-남한 정부의 현대 대북사업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난번 언젠가 “도와주려면 진작 도와주시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사업지원은 과감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 이는 현대가 특혜를 받는 게 절대 아니다.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은 국가적 사업이다. 그간 현대아산 기업은 적자를 봤지만, 국가는 흑자를 본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신인도가 오르고 전쟁을 막았다. 이런 긴장완화 덕분에 후방기업들은 마음놓고 돈을 벌 수 있었다. 그 결과 국가적으로는 흑자를 본 것 아니냐. 정부는 기업들이 마음 놓고 개성공단이나 금강산특구에 투자를 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정부가 사업확실성을 담보해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사업이 잘 안 되면 정부가 인수하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외국투자자 등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정부가 불안해하는데 누가 투자하겠느냐. 이제 투자안정성도 상당히 확보됐다. 금강산이 특구로 지정됐고 토지이용증도 확보했다. 4대 경협합의서까지 발효되었다. 하부규정까지 갖춰졌다. 북한과의 합의서도 법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곧 금강산특구 경계도 확정짓게 된다.

핵문제만 풀리면…

-지금 대북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정 의장 사망 이후 국민들이 현대의 대북사업에 많은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일각에서 지적하듯이 한나라당의 금강산사업 반대 등이 걸림돌은 아니다. 오히려 북핵 문제가 외자유치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법, 제도적인 요건이 다 갖춰졌기 때문에 핵문제만 풀리면 대북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특히 최근 발효된 투자보장협정은 의미가 크다. 현대의 대북투자 자산을 남북한 당국이 모두 법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현대아산도 이제 부자가 됐다.


사진/ 9월4일 금강산 평화사업 국민운동본부추진위원회 기자회견. 현대아산은 9월30일까지 학생을 포함해 일반 국민을 상대로 주식을 공모한다.


-현대 비자금 수사가 대북사업에 미칠 악영향은 없나.

=나는 모른다. 우리와는 관계 없는 일이다.

-지난번에 북한도 고칠 점이 많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북한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무엇보다 외자유치를 위해서도 국제 관행을 준수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가령 금강산관광길을 수시로 열었다 닫았다 하면 신뢰가 추락한다. 북한도 이를 잘 알고 있으며, 신뢰할 수 있다고 본다.

-10월 초 평양 정주영체육관 개관식 때 1천여명의 참관단이 육로를 통해 방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10월2일부터 5일까지 평양에서 정주영체육관 개관식이 열린다. 남녀 통일농구대회 등도 함께 진행되며 1천명 이상이 개성 육로를 거쳐 평양에 들어간다. 지난 8월 유엔사, 국방부 등과 이미 협의를 끝낸 걸로 알고 있다. 이번 평양 방문은 내부적으로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방송장비만 트럭 70대가 들어간다. 지난 98년 때의 소떼몰이 못지않은 장관이 연출될 것이다.

-그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계획은 있는가.

=만나야 한다. 재도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면담이 가능할지는 그때 가봐야 한다.

-개성관광도 곧 시작된다는 얘길 들었다.

=10월에 5개의 중소업체가 (개성공단에) 들어가면 관광도 시작된다. 원래 북한쪽에서는 개성공단이 더 중요한데 남쪽 사람들이 와서 선죽교만 보고 돌아간다고 불만이 많다. 빨리 가시적인 조처가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당장 몇몇 중소기업들의 임가공생산은 6개월 안에 할 생각이다. 곧 정부에 사업승인을 신청해 관련 절차를 밟겠다.

-전기 등 개성공단 인프라 시설은 어떻게 갖출 작정인가.

=보통 공단 인프라라고 하면 산업공단관리법에 따라 도로와 항만, 철도, 용수, 전기, 가스, 하수처리 등을 정부에서 해주는 것인데, 이번 공단에 들어가는 중소기업은 5개 업체가 자체적으로 인프라시설까지 만들 예정이다. 1만평 규모로 시범 실시되기 때문에 이후 확대시 정부에 요청하겠다.

평양관광길도 열어놓는다

-평양관광도 추진하는가.

=우리가 평양관광길은 먼저 열어놓았다. 우선은 금강산 관광사업부터 수익을 내야 한다. 개성관광 사업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구경만 하고 삽질을 안 하다가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서두를 생각은 없다. 세계관광기구(WTO)에 용역을 주는 등 평양관광을 포함한 사업 전반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있다. (평양관광 등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합의한 사항이다. 우리 사업권을 반드시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외국업체와 컨소시엄을 형성하는 등 수익성에 중점을 두겠다. 우선은 원산 비행장을 이용해 평양, 묘향산, 백두산 등을 둘러볼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 장기적으로 투자가 들어오면 통천 금란지역에 비행장을 새로 만들려고 한다.

-앞으로 북한의 태도가 관건으로 보인다.

=현대아산은 그동안 대북사업을 추진하면서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 5억달러를 송금했고, 사람까지 죽었다. 상업적으로도 그렇고 도의적으로도… 북한이 잘 알아서 도와줄 것으로 믿는다. 계약은 계약이고, 합의는 합의다. 미래 비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남쪽 기업도 대북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남북화해협력을 위해서라면 서로 도울 필요가 있다.

글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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