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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로 ] 2003년08월27일 제474호 

북핵, 이젠 시민사회가 나설 때

북핵문제 대응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혜를 모은 ‘2003 제주평화회의’

“한국전쟁 정전 50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의 마음은 실로 무거움을 넘어 두렵기까지 하다. 평화와 생명의 문화가 살아 차고넘치며, 그리하여 정녕 평화로운 삶들이 함께 어우러져 넘실대는, 영원히 전쟁 없는 한반도는 우리의 꿈이기만 해야 하는가?” 박명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지금 우리는 폭력 없는 평화문화의 창조와 전쟁 없는 한반도를 위해 다시금 옷깃을 여미고 지혜를 모을 때라고 답한다.

“한국은 앞으로 100배는 더 퍼주어야”


사진/ 평화운동가들이 나흘간 북핵 문제 등 현안과 항구적인 평화문화정착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벌였다. 문학평론가 백낙청 교수가 시민사회 역할에 대해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한국인권재단 제공)


한반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개최를 며칠 앞둔 8월22일부터 나흘간 제주도에서는 100여명의 학자·연구자·활동가들이 모여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대안담론과 대안정책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국인권재단(이사장 신용석)이 주최한 이번 ‘2003 제주평화회의’에서는 북핵 문제 등 한반도가 직면한 현안의 구체적인 정책 대안과 평화의 문제를 담론의 수준을 넘어 실천의 수준으로, 즉 평화의 문제를 시민사회와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에 대한 깊은 논의들이 오갔다. 현안인 북핵 문제를 시민사회 수준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한국사회에 평화 문화와 철학, 담론 등을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가에 지혜를 모은 자리였던 셈이다.

문학평론가 백낙청씨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한국 시민사회의 역할이 크다”면서 “이는 민족공조와 한-미 동맹 사이에 민간 부분의 역할이 커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남북한간 민간교류를 확대하고 남한사회를 민주적·환경친화적 사회로 만들려는 노력이 한반도 평화에 직접적으로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이미 반세기를 보냈는데 이 협정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고, 또다시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온 데 대해 평화운동가로서 한심스럽고 자괴감에 빠진다”는 김이현숙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상임대표는 “모든 단체들이 평화와 통일의 이슈를 자기 과제로 인식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대응하고 있기는 하나 이렇다 할 평화운동의 성과가 없었다”고 반성했다. 따라서 그는 목록들을 나열하고 단순화·시나리오화해 각 영역별로 전문화하고 나눠 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민사회가 취할 주도적 전략으로 △대통령과 행정부, 국회, 여론에 대한 영향력 확대 △토론문화의 활성화와 교육 △연구 및 문화 캠페인 △신외교전략의 수립 △초국적 행위자들과의 연대망 형성 등을 꼽았다.

앞으로 한반도 평화는 어떤 경로를 밟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박명림 교수는 평화문화 형성, 민주주의와 시장을 통한 평화, 제도(협정과 기구)를 통한 평화를 제시했다. 또 그는 “내부적 민주화만으로 평화가 보장되는가”라고 물었다. “그렇지 않다”는 단호한 입장을 갖고 있는 박 교수는 ‘국가간 관계의 민주화’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통합 문제는 남한사회의 도덕적·이념적 수준과 맞물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 5년 동안 북한에 지원한 액수는 1조2천억원으로 독일이 통합되기 이전에 서독이 동독에 67조원을 지원한 데 견주면 턱없이 적은 액수다. 한국은 앞으로 적어도 100배를 더 ‘퍼주어야’ 평화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문화의 확산을 위해


사진/ 평화운동가들이 자신들의 활동경험을 나누면서 공통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한국인권재단 제공)


그는 이번 제주평화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초안을 선보이면서 공개토론을 제안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평화협정의 내용은 전쟁의 완전한 종식, 전쟁의 책임, 전후 청산 문제, 전쟁 종식 선언(인적청산, 체제인정 범위, 관할권 결정 등)이 되어야 하며, 평화관리 방식은 투트랙(two-track)으로 남북이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평화협정에서 국제적 보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증인 자격으로 하기서명(postscript)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설명이 따랐다.

참가자들은 한국사회 내 평화문화 형성과 확산의 대안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거듭했다. 평화학에서 ‘평화’란 ‘모든 종류의 폭력이 없는 상태’로서 전쟁이나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구조적·문화적 폭력까지 포함한다. 여성과 소수자의 인권을 억압하는 행위 등 생존 문제부터 정체성 욕구를 억압하는 정신적 분야까지 평화의 범주에 들어간다. 결국 평화문화는 구조적 차원에서부터 개개인의 의식에 이르기까지 폭력을 줄여나가는 문화를 만들고 확산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화문화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김숙임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공동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안의 권위주의, 일방주의, 자폐증, 식민지를 벗어나 진정한 평화문화를 형성하려면 우선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내 안의 심성이 평화로운지, 내 행동이 평화로운지를 관찰해야 한다. 나에게 평화적 능력이 있는지, 나와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 자신에게 평화에 관한 꿈과 비전이 있는지를 먼저 깊이 생각해야 한다.”

권혁범 대전대 정외과 교수는 ‘안보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내놓았다. 그는 “힘의 논리에 따라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군비증강이 도리어 안보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런 지배적인 안보담론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화지향적 흐름 속에서 어떻게 해체, 변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보의식을 개인과 구체적인 생활공동체의 실제적 안전과 행복에 관련지어 해체해나가야 한다는 점, 경계가 없는 보편적 윤리에 의한 세계공동체와 같은 단계를 제시하면서 이런 작업에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대안적 접근을 축으로 하는 운동·교육·문화뿐 아니라 한국사, 국민교육 등 개개인을 특정 집단의 과거와 관계 맺게 하는 담론 해체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민족, 민족주의 및 평화’에 대한 진지한 토론도 이어졌다. 정현백 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우리의 입장은 탈민족주의를 주장할 만큼 선택의 폭이 넓지 않으며, 민족주의는 참여를 유도하지만 이중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평화운동은 민족 범주와 민족주의 담론을 통해 현실적 역동성을 이끌어내되, 민족주의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보편적인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분단체제 극복과 평화운동’을 주제로 구체적 운동사를 정리한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은 현 단계 평화·통일 운동의 과제로 △‘공유된 전망의 빈곤’과 ‘집합적 실천의 절박성’ 문제의 해결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한 인식 공유의 최대화 △안보 딜레마를 극복할 시민평화 방안의 합의 유도 △핵문제 해결과 전쟁반대를 위한 국민적·국제적 연대 실현과 함께 입장의 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실장은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간디의 비폭력운동과 같은 크게 묶어주는 요소를 발굴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남북한 인권문제 통합적으로 다뤄야

시민단체들에게 ‘뜨거운 감자’인 북한 인권문제도 토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제네바에서 수년간의 국제기구 활동 경험을 갖고 있는 이성훈 팍스로마나 사무총장은 “북한인권 문제는 뜨거운 감자이지만 대응에 따라서 쓴 보약 또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면서 “북한인권은 인권, 통일, 평화를 고려한 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사회의 대응 전략으로 “남북한 인권문제를 동시에 통합적으로 다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북한 인권개선은 탈북자 인권보호와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부와 국가인권위원회 그리고 시민사회의 전략적 역할 분담이 필요하며, 유엔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라크 반전평화팀으로 활동한 바 있는 임영신씨는 “평화와 병행하는 인권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라크도 인권상황에 대해 합의된 담론이 없어 국제 평화활동가 절반이 철수했다”는 사례를 전해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제주=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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