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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로 ] 2003년06월26일 제465호 

넋 놓은 ‘샌드위치 대한민국’

미국의 대북압박 상황서 침묵만… ‘불가침 협정과 핵 프로그램의 교환’ 등 대안 적극 내놔야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는 어휘가 갈수록 거칠어지면서 노무현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마주 달리고 있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끼어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그러는 사이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의 그림자는 시나브로 짙어만 간다.

“어느 나라든 모험주의에 경도돼 행동하다간 파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북한이 한국이나 일본을 공격할 경우,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 세계에 분명히 보여준 것처럼 미국은 압도적이고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를 물리칠 것이다.”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은 지난 6월18일 ‘이라크 주둔 미군의 현황 및 세계 안보태세’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하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 대해 언제든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한 것이다.

대화 통한 문제해결은 먼 것인가


사진/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오른쪽)과 북한쪽 대표 허종 순회대사(왼쪽)가 6월18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지역포럼(ARF)에 참석해 나란이 앉아 있다.(연합)


이에 발맞춰 존 네그로폰테 유엔주재 미 대사는 같은 날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이 핵 의무 불이행을 규탄하는 안보리 의장 성명 채택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입수한 성명서 초안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배치·생산·수출 위협 등을 중단해야 함을 안보리가 선언하며, 지난해 10월 북핵 프로그램 의혹 이후 북한이 취한 일련의 행위와 핵 확산 금지 체제 아래서 국제적인 의무를 위반한 것을 규탄한다”는 일방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일본쪽도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6월19일치 기사에서 “일본 정부는 북한 등에 의한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 관련 물자의 불법조달을 저지하기 위해 아시아 각국과 무역관리에 관한 협력 합의를 체결하고, 불법수출 정보의 상호 통보 체제를 정비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이 북한과 이란을 겨냥해 추진 중인 이른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비쳐진다.

조여드는 미·일 등 주변국의 압박에 북한이 극렬 반발하고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6월17일 <로동신문>을 통해 “미국의 봉쇄작전으로 자주권이 침해당했다고 판단되면 ‘물리적인 보복조처’로 대응하겠다”고 공언했던 북한은, 20일 다시 논평을 내어 “미국이 문제를 유엔에 끌고 가려는 목적은 우리에 대한 국제적 핵 압박을 합법화하고 제2의 조선전쟁 도발 명분을 세우려는 데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주도적인 외교 노력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북핵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나선 데 대해 “베이징 3자회담을 한 뒤 그 후속회담을 제의해놓고 답변을 기다리는 시점인데 굳의 논의할 필요가 있겠나”며 결의안의 ‘타이밍’에 문제를 제기했을 뿐,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내놓지 못했다. 또 시시각각 구체화하는 대북 압박 움직임에 대해서도 “대북 압력을 증대하는 한편으로 우리쪽에서도 북한이 다자회담을 받아들인다는 전제 아래 좀더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미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6월15일치 기사에서 “한국 정부는 지난 몇년 동안 쌓아온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를 유지하는 한편, 대북 강경정책을 밀어붙이는 미국과도 동맹관계를 유지하느라 곤혹스런 입장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봉쇄·관리(contain and management) 전략에 바탕한 이른바 대북 ‘악의적 무시정책’을 지속하는 한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외교는 가능하지만 협상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끊임없이 외교를 통해 북핵 문제를 풀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북한이 먼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기 전까지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이중적 태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사진/ 급할 것 없는 미국은 대북 압박의 수위를 조금씩 높여가고 있다. ARF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왼쪽,AP연합). 대북 강경책을 주도하고 있는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오른쪽,GAMMA).

미국은 ‘북한 위협의 감소’도 원치 않아

지난 94년 핵 위기 당시 대북 협상을 책임졌던 로버트 갈루치 미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장은 지난 5월7일 카네기국제평화재단에서 열린 미 군비통제협회 주최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93~94년 북-미 협상 당시 미국은 북한에게 ‘협상 기간 동안이라도 5메가와트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고 핵 사찰요원을 배치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를 통해 협상 기간에 상황이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부시 행정부처럼 대화에 나서기도 전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얻어내려 하는 것은 협상을 하려는 게 아니라 피하기 위해서다.”

물론 미국 입장에선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서두를 이유가 없어 보인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지난 6월18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지역포럼(ARF)에 참석해 “미국에게 북핵 문제보다 급박한 문제는 없다”고 말했지만, 대다수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분석은 이와는 판이하다. 미국 주도의 대북 압박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도가 높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 해결에 매달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시 행정부 입장에선 핵 문제가 마무리돼 북한 위협이 급감하는 것을 원치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북한 위협이 급격히 감소할 경우, 부시 행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미사일방어망(MD) 구축 등 전략적 차원에서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또 내년에 대선을 앞둔 부시 행정부 입장에선 위기의 급격한 상승도 문제지만, 쉽게 위기감이 사라지는 것도 원치 않을 것이다. 위기상태를 관리·유지해 나가는 게 여러모로 미국쪽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는 셈이다.

한 안보 전문가는 “미국이 점차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대북 압박에 나서는 한편 북한이 원하는 북-미 양자회담을 거부한 채 한국과 일본이 포함된 5자회담을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인식 탓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북한이 획기적 타협안을 들고나올 경우, 이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효과를 본 것이라고 주장하면 그만”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은 우리 정부라는 얘기다.

“미국을 설득하라”

“북한은 모든 핵 프로그램을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검증하고 해체할 뜻이 있음을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한 대가로 북한이 원하는 것은 체제안전 보장을 위한 불가침 협정이다. 불가침 협정은 그저 종이 한장에 불과하다. 부시 정부가 북한을 못 믿는다고 하는데, 북한이 다시 한번 국제사회를 속이고 핵 개발에 나설 경우, 미국 역시 불가침 협정을 휴짓조각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북-미 협상에 나서기 위해 부시 행정부가 커다란 양보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 ‘한반도평화국민협의회’ 대표단과 함께 미국 상·하원 의원 등을 만나고 돌아온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국제학부)는 “불가침 협정과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맞바꾸는 게 미국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점을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애매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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