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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정치 > 정치2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11월08일 제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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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컨설턴트’가 떠오른다

후보들의 보좌진 선임에서 출마지역과 당, 공약까지 코치해주는 그들의 세계
자문료 높은 편이지만 신생사 가격덤핑에 골치… 소속정당은 안 가리고 계약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지난해 ‘4·15 총선’이 불과 열흘 남은 상황이었다. 충청권에 출마한 ‘갑’(가명) 후보는 선두에 무려 15%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었다. 후보는 “탄핵안은 저의 의도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저의 됨됨이를 보고 찍어주십쇼”라고 한 표를 호소했다. 그러나 가망이 없어 보였다. 후보는 이재술 인뱅크코리아 사장에게 급히 도움을 청했다. 이 사장은 그때까지 해온 모든 홍보기획과 선거운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새롭게 짜인 홍보 기획과 전략은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노인층이 많은 지역구의 인구 특성에 맞춰 후보가 겪은 역경 속에서 어머니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후보 연설을 하는 시장통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후보는 2위를 10%포인트 가까운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이재술 사장은 “총선이 탄핵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구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탄핵안에 동조한 당의 후보로서는 어떤 정치적인 구호를 외쳐도 환영받지 못하겠다는 판단 아래 감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선거 전략을 바꿨다”고 말했다.

정진섭-홍사덕 재선거도 그들의 물밑싸움

이재술 사장은 아직 우리나라엔 낯선 ‘정치 컨설턴트’다. 그의 고객이 지난 총선에서 당선되는 과정은 정치 컨설턴트의 역할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그는 고객을 위해 선거 기획, 홍보 등 사실상 캠프를 총괄하다시피 했다.

정치 컨설턴트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김승용 사장이 1988년 ‘연우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정치광고 기획사를 차린 것을 정치 컨설팅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사장은 “처음에 정치 컨설팅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이전에는 주로 상업광고 기획사나 국회의원 보좌관, 비서 출신들이 선거 때가 되면 일시적으로 기획사를 차려 후보의 선거 홍보물을 만들어주는 수준이었다.


△ 경기 광주 재보선에서 정치 컨설턴트는 치열한 물밑 싸움을 벌였다. 홍사덕 전 의원의 지지자들의 침묵시위. (사진/ 연합)

1991년 박성민 사장의 ‘민’과 김능구 사장의 ‘서울기획’(현 e-윈컴)은 정치 컨설팅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박 사장은 “딴 회사가 정치광고라고 할 때 우리는 정치 컨설팅 전문이라고 했다”고, 김 사장은 “홍보물 제작은 부가 서비스로 해줬고, 정치 컨설팅 수수료를 받아왔다”고 강조했다. 박 사장의 명함엔 ‘정치 컨설팅 그룹’이란 타이틀이 이름 위에 박혀 있다.

두 사람이 정치광고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은, 정치 컨설팅이 후보의 홍보, 이미지 만들기, 정책 조언 등을 포괄하는 선거 기획과 전략을 뜻하는 반면 정치 광고는 주로 후보의 홍보물 제작이라는 협소한 의미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20여 년이 다 돼가는 시장인 만큼 선거에서 정치 컨설턴트끼리 부딪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난 ‘10·26 재선’에서 경기 광주는 홍사덕 전 한나라당 의원과 정진섭 한나라당 후보의 접전으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물밑에선 정치 컨설턴트들의 격전의 장이기도 했다.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2명의 정치 컨설턴트가 서로 다른 후보 뒤에서 선거 전략과 기획을 맡았다. 결과는 정진섭 한나라당 후보의 승리였다. 또한 정 후보의 선거 홍보기획을 맡은 연우커뮤니케이션의 승리이기도 했다. 김승용 사장의 전략은 두 가지였다. 박 대표가 ‘복당’하겠다는 홍사덕 후보를 겨냥해 이기더라도 받아주지 않겠다는 선긋기를 하도록 제안한 것이다. 또 홍 후보 쪽에 줄을 선 시의원의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김무성 사무총장을 통해 홍 후보를 돕는 시의원은 출당 조처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보내도록 했다. 그러면서 정 후보 쪽은 초반 열세를 만회하고 승기를 잡아나갈 수 있었다.

정치 컨설턴트가 하는 일은 한마디로 고객인 후보자의 ‘당선’으로 모아진다. 고객은 공직선거, 대학총장, 노조위원장 후보 등 다양하다. 선거캠프를 사실상 총괄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선거전략을 짜고 그에 맞춰 홍보를 ‘코디네이팅’하는 수준이다. 여기에 자질구레하게 후보가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대중들 앞에서 어떻게 연설하는 등 이미지 가꾸기 작업도 포함된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돈과 조직 관리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다.


△ 당선된 직후 기뻐하는 정진섭 후보(맨 오른쪽). (사진/ 연합)

천정배는 e-원콤, 김덕룡은 연우커뮤니케이션

고객과 계약을 맺는 시기나 정치 컨설턴트의 성격에 따라 일이 달라지기도 한다. 김능구 사장은 내년 지방선거에 다시 출마하기로 한 현직 광역자치단체장과 계약했다. 그는 벌써부터 정책에 초점을 맞춰 후보를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방송에 나갈 때 외모나 발음 등 세세한 것까지 코치한다. 이재술 사장은 2003년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시킨 초선 국회의원이 국정의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보좌진 선임까지 코치해줬다. 당선부터 사후 관리까지 거의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일회성으로 정치 컨설턴트에게 자문을 받고, 자문료를 지불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이면서 정치 컨설팅도 하는 이른바 ‘폴스터’(Pollster)의 역할은 고객이 선거에 나설지 여부부터 자문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어느 지역에 어느 당으로, 어느 공약을 들고 나갈지 코치한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은 “조사가 대부분 컨설팅 기능을 동반하기 마련”이라며 “여론조사를 기초로 해서 후보자의 이미지 포지셔닝, 지역구 상황 판단, 공약과 이슈 등 큰 방향을 잡아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대선은 아직 정치 컨설턴트들의 시장이 아니다. 대형 광고기획사들의 몫이다. 하지만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원의 많은 수가 고객이다. 천정배 법무장관은 e-윈컴의 고객이다. e-윈컴은 지난해 원내대표 경선에서 천 후보의 선거전략을 기획했다. 연우커뮤니케이션은 한나라당 김덕룡 전 원내대표를 여전히 고객으로 하고 있으며, 최병렬 전 대표 등도 중요한 고객이었다.


△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인쇄소에서 홍보대행사 직원들이 후보들의 선거 홍보물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윤운식 기자)

고객과 컨설턴트의 관계에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일단 계약이 성립하면 후보는 컨설턴트에게 많은 권한을 주면서 크게 의존하게 되고, 컨설턴트는 후보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2003년 부천시장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후보가 여전히 이재술 사장과 계약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서로의 신뢰가 있기에 가능했다. 가능한 한 서로의 계약관계는 영업비밀처럼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소속 정당이 다른 후보라는 점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박성민 사장은 “클라이언트가 자민련이든 민주노동당이든 일단 계약하게 되면 모든 것을 걸고 뛴다”며 “직원들한테도 항상 당파성을 버리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정확한 정치 자문료는 거의 베일에 가려 있다. 이재술 사장은 “정치 컨설턴트를 1, 2, 3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브랜드가 있는 1그룹의 경우 정치 자문료가 4천만~5천만원이고, 2그룹은 거기에서 20% 할인한 가격으로 내려오고, 다시 신생업체 중심의 3그룹은 가격이 크게 떨어진다”고 귀띔했다. 정치 컨설팅 업체로는 가장 덩치가 큰 e-윈컴은 내년 ‘5·31 지방선거’를 계기로 50억원의 매출액을 목표로 잡았다. 대략 40명의 고객을 예상하고 있다. 연우커뮤니케이션과 민도 각각 20명 안팎의 고객을 관리해주는 선에서 수십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3곳만 하더라도 100억원 안팎의 시장을 예상할 수 있다.

언뜻 덩치가 커 보인다. 하지만 선거는 그리 자주 있는 게 아니다. 현재의 선거기획 중심의 수익모델은 선거 때 한철 장사다. 김승용 사장은 “정치광고 기획사들이 선거 때 반짝 돈을 벌었다가 평상시 까먹는다”고 말했다. 그가 기업체 사보나 전단지 등을 만들어주는 상업광고 기획으로 영업을 확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선거 때만 되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게릴라식 정치광고 기획사들도 업계의 골칫덩어리다. 이들은 가격 덤핑과 컨설팅의 수준과 신뢰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재술 사장은 “수요는 그대로인데 신생 기획사들의 증가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만큼 가격은 떨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다른 정치 컨설턴트들도 대체로 중단기적인 정치 컨설팅 시장을 어둡게 전망했다. 무엇보다 현 선거법 아래에서 정치 컨설턴트들은 더 많은 정치 자문료를 받기 어려운 제도적 제약에 가로막혀 있다. 정치인들은 법 테두리 안에서 2천만~3천만원 이상의 정치 자문료를 지불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종종 이면계약을 맺기도 한다는 게 일부 정치 컨설턴트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 2004년 미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와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이 텔레비전 토론을 하는 장면. 케리 진영에선 밥 슈럼이, 부시 뒤에선 칼 로브가 선거 캠프를 총지휘했다. (사진/ 로이터)

3천만원 넘을 땐 종종 이면계약도

박상민 사장의 생각은 약간 장밋빛이다. 그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천달러를 넘어서면 정치 마케팅이 단순한 비즈니스를 넘어 산업으로 갈 수 있다”며 “2008년 회사 매출 100억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비즈니스로서의 성공뿐 아니라, 2008년쯤엔 정치인보다 영향력 있는 정치 컨설턴트의 미래를 꿈꾼다. 정치 컨설턴트가 최근 2~3년 내 나름대로 정치 및 선거 전문가로서 대접받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은 틀림없다.

정치 컨설팅이 시장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시장의 작동 원리가 더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논란이 있지만 정치컨설팅협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쉽지만 업계의 영역, 윤리, 규칙이 아직 뚜렷하게 서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후보를 고르는 컨설턴트

미국의 전업 정치 전문가들은 선거 테크닉을 비즈니스계로 수출하기도

▣ 김윤재/ 미국 변호사·법무법인 자하연


정치 컨설턴트라는 직업은 미국에서도 일반 국민에게는 상대적으로 낯선 직종이지만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는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잡았다. 가장 큰 이유는 미디어 정치의 도래이며, 이와 맞물려 진행된 당파성의 약화와 선거법 개정이 전업 정치 전문가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했다.

1948년 트루먼과 듀이의 라디오 캠페인, 52년 아이젠하워와 스티븐슨의 텔레비전 광고 캠페인, 60년 케네디-닉슨의 텔레비전 토론은 당시까지 행해지던 정치의 모든 방식을 바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케네디는 최초로 전담 여론조사가를 두어 시시각각 여론의 동태를 살폈다. 이후 조사가들은 선거기획의 단골 전략가로 떠올랐다. 1968년 정치권에서 과거의 인물로 평가받던 닉슨은 정교한 미디어 중심의 선거전략으로 백악관을 차지했고, 그 이후 무수한 정치인들이 마치 새로운 상품이 마케팅과 광고 전략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듯 유권자를 설득하며 한 표를 호소했다. 그 기법은 기술의 발달과 함께 더욱 다양하고 세련돼지고 있다. 이러한 선거전략 뒤에는 항상 정치 컨설턴트들이 있었다.

당의 보스와 그 참모들이 하던 일을 미디어와 정치 컨설턴트들이 떠맡기 시작한 것이다. 1933년 문을 연 ‘캠페인 주식회사’가 최초의 선거 전문 회사라고 할 수 있지만, 미디어 정치 이전의 일이고 진정한 의미의 정치 컨설턴트는 이보다 23년 뒤인 1956년 ‘정치 컨설턴트’라는 명함을 만들어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한 조지프 내폴리턴에서 시작됐다. 그는 정치 컨설턴트는 후보자와 유권자가 제대로 소통할 수 있도록 후보자 입장에서 자문을 해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정치는 영구적인 캠페인의 시대의 또 다른 말이기도 하다. 매일매일이 캠페인이고 언론에서 발표하는 여론조사는 해당 정치인이나 정부의 성적표나 다름없는 세상이다. 이러한 정치환경은 굳이 선거철이 아니라 해도 정치 컨설팅만을 전문으로 할 수 있는 비즈니스적 기회를 제공했다. 비용을 지불하며 정치적 진단을 받고 메시지 개발을 의뢰하고 홍보 방안의 자문을 받는다. 정치 컨설팅을 통해 직접 출마를 하거나 공직에 진출하려는 이들은 아주 소수다. 정치 컨설팅은 하나의 전문 직업이지 정치인이 되기 위한 통로는 아니다.

오늘날 일반에게 알려진 리처드 워스린, 리 애트워터, 제임스 카빌, 딕 모리스, 밥 슈럼, 칼 로브 등은 정치 컨설팅으로 부와 명성을 거머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런 이유로 주요 언론은 미 대선을 앞두고 ‘카빌 예선’이니 ‘슈럼 예선’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통해 그들이 대선 후보 중 누구를 선택했다고 내보낸다. 후보가 컨설턴트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컨설턴트가 후보를 선정할 수 있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무명의 후보는 최고의 유명 컨설턴트군을 대거 결합시킴으로써 언론의 주목을 받는 효과까지 누린다.

1993년 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뉴욕타임스>는 ‘컨설팅업계 타이타닉의 대결’이라는 제목으로 민주당 후보의 전략가 제임스 카빌과 공화당 후보의 전략가 에드 롤린스의 대결을 후보자 간의 대결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묘사했다.

전략을 논하는 컨설턴트들의 전문 분야는 대개 캠페인 기획, 미디어 전략, 여론조사, 디렉트 마케팅으로 나뉜다. 이들은 각각의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선거에 결합해 해당 업무를 책임지고 전략과 메시지를 조율하지만, 이들 중 가장 경험 많고 유능한 이가 수석 전략가의 자리에 앉아 선거 전체의 전략과 메시지를 총괄한다.

학계가 본격적으로 정치 컨설턴트의 역할을 주목하고 연구하기 시작한 지 이제 10년 남짓이다. 그에 발맞춰 유수 대학에 학부와 석사는 물론이고 단기 과정 등이 설립돼 정치 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비즈니스, 마케팅, 광고업계에서 테크닉을 ‘수입’한 정치 컨설턴트들은 최근 정치 영역의 테크닉을 역으로 비즈니스계에 ‘수출’한다. 각종 주주총회, 노조선거, 반전데모, 기업 이미지 전환, 최고경영자(CEO) 메시지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들의 수요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선거 캠페인은 시장점유율이 50% 미만이면 패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무혈의 전쟁 속에서 단련된 이들의 생존력이 일반 비즈니스 업계에서도 경쟁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