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사람과사회 기자가뛰어든세상 보도그뒤 이번호목차 지난호보기 독자마당 기사에대한의견

한겨레21 구독신청 sitemap

e-Book
표지이야기 특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과학 인터뷰 스포츠/건강 사진/만평 칼럼 독자마당
2004년01월29일 제494호 |
기사검색 
교수 싸움에 장애학생 등 터지네

학장 선출 둘러싼 파벌투쟁 한창인 국립 재활복지대… 설립 초부터 파행으로 극심한 취업난

장애인의 취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설립된 국립한국재활복지대학(2년제·경기 평택시)이 교수들의 ‘파벌싸움’으로 파행을 겪고 있다. 특수교육 전공 교수들과 일반 교수들간의 갈등으로 학교 행정이 거의 마비되는 바람에 장애인 학생들이 극심한 취업난을 겪는 등 학교 설립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 장애인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국립한국재활복지대학이 교수들의 갈등으로 파행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장애인 학생들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재활복지대는 장애인의 고등교육 수혜 기회를 늘려 사회진출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로 지난 2002년 설립됐다. 이 대학은 장애인의 사회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정원의 50%를 비장애인으로 채워 장애인·비장애인 통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오는 2월 졸업 예정인 1기 장애인 학생의 취업률은 1월 현재 2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 대학 곽봉철 산학협력과장은 “2월 졸업 예정자 중 장애인 학생의 비율은 40%인데, 이 중 20%만이 취업에 성공했다”며 “국내 기업들이 아직까지 장애인 채용을 꺼리고 있기 때문에 취업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재활복지대의 정체성에 관한 시각차

그러나 장애인 단체들과 학생들의 주장은 다르다. 이들은 다른 대학의 경우 교수들이 직접 기업체를 찾아가 ‘구직’ 활동을 하는 등 학생들의 취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지만, 이 대학은 학교쪽의 무관심으로 취업률이 저조하다고 주장한다. 한 졸업반 장애인 학생은 “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 교수들이 졸업하면 대부분 취직이 될 거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대부분 실업자가 될 처지에 있다”며 “취업을 아예 포기하고 다른 4년제 대학 편입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도 많다”고 말했다. 한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다른 대학 교수들은 제자들의 취업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는데, 재활복지대는 곧 첫 졸업생을 배출하면서도 (교수들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다”며 “교수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애꿎은 장애인 학생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재활복지대는 지금 신임 학장을 선출하는 문제를 놓고 교수들이 두 편으로 갈려 싸우고 있다. 초대 학장인 김아무개 교수가 지난해 9월 교수임용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해임되자 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인사를 학장으로 뽑기 위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힘겨루기의 밑바탕에는 이 대학의 정체성에 대한 시각차가 깔려 있다. 인터넷신문 <에이블뉴스>의 소장섭 기자는 “이 대학의 개교 준비 과정에 참여했던 특수교육 전공 교수들은 장애인 교육 중심의 학교 운영을 주장한 반면, 학교 설립 이후 들어온 정보통신기술(IT) 학과 계열 교수들은 통합 교육을 더 강조했다”고 말했다.


△ 학장실의 새 주인은 학내 갈등을 효과적으로 수습할 수 있을까. 초대 학장의 불명예 퇴진은 재활복지대의 갈등을 더욱 첨예화했다.

교수들의 이런 견해차는 설립 초기부터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왔다. 학교 행정 전반에 걸친 교수들의 갈등은 재활복지대의 정상적인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한 교수는 “재활복지대의 설립 목적은 장애인 중심 대학인데, 일부 교수들이 이를 계속 흔들었다”며 “그들은 장애인 학생 수를 줄이고 이들의 복지 예산을 줄이는 등 학교 설립 취지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IT 학과 계열 교수들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한 교수는 “장애인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그들의 사회 진출을 오히려 어렵게 만든다”며 “특수교육을 전공한 일부 교수들이 이런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으면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갈등은 김 전 학장의 해임 사태를 계기로 더욱 첨예화되었다. 김 전 학장은 지난해 3∼4월 실시된 교육부 감사에서 교수 신규 임용 때 특정 후보자를 뽑기 위해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이 적발돼,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지난해 9월 해임당했다. 김 전 학장은 이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했지만 지난해 11월 재심위원회에서 기각당해 해임이 최종 확정됐다.

김 전 학장쪽은 일부 교수들의 음모로 교육부의 표적 감사에 걸려 해임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전 학장이 IT 학과 계열 교수들의 지원을 업고 통합 교육 중심의 학교 운영을 밀고 나가자 특수교육 전공 교수들의 반발을 샀다는 것이다. 김 전 학장은 “개교준비단장을 맡았던 교육부 관료 출신의 한 교수가 교육부의 표적 감사를 유도했다”며 “행정 경험 미숙으로 교수 임용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은 있었지만 해임을 당할 만큼 비리를 저지르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교육부 감사 결과 교수임용 비리에서 자주 발생하는 음성적인 돈거래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학장은 개교준비단장을 맡았던 윤아무개 교수를 최근 형사고발하고, 해임 철회를 위한 행정소송을 냈다.

그러나 특수교육 전공 교수들의 견해는 다르다. 한 교수는 “설사 교육부가 표적 감사를 했다 하더라도 김 전 학장이 비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해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김 전 학장은 자신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교수로 데려오기 위해 애를 썼다”고 말했다. 또 한 교수는 “김 전 학장은 해임을 당하기 직전에 자신을 따르는 IT 학과 계열 교수들을 주요 보직 교수로 임명해 복귀 기반을 마련할 정도로 용의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코앞에 닥친 신입생 선발도 큰 문제

교수들의 갈등을 바라보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신입생 선발과 졸업생 취업 등 산적한 현안이 많기 때문에 학교를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재활복지대는 다음달에 첫 졸업생을 배출하면서도 최근까지 별다른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실행하지 못했다. 한 직원은 “지난 2년 동안 이런저런 갈등으로 취업 프로그램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해 졸업생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라며 “하루빨리 학교가 정상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취업도 급하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신입생 선발이 더 큰 문제”라며 “학내 갈등으로 학교 이미지가 나빠져 학생들이 얼마나 지원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학내 갈등이 계속될 경우 교육부의 간섭이 확대돼 학교가 퇴직하는 교육부 고위 관리들의 ‘구제소’로 전락하는 상황도 우려하고 있다.

장애인 단체들은 재활복지대의 파행을 더욱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장애인들의 오랜 염원에 따라 어렵게 설립된 재활복지대가 자립 기반을 마련하지도 못한 채 설립 초기부터 파행을 겪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관계자는 “학교 정체성에 대한 견해차는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확대돼 학교 운영을 어렵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일반 학생들에 비해 사회 진출 기회가 적은 장애인 학생들이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지가 멀쩡한’ 일부 교수들의 힘겨루기로 재활복지대 장애인 학생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