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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리티 ] 2003년10월08일 제479호 

자유를 갈구하는 아, 줌마!

방글라데시 정부의 박해를 피해 한국의 공장 불빛 아래 모인 줌마족 투사들을 아십니까

“줌마? 아줌마?”

방글라데시 줌마족을 아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아줌마의 줄임말이냐”는 물음이 되돌아온다. 아줌마의 ‘깜찍’한 표현인 것 같지만, 사실 한국에 있는 줌마족은 경기도 김포에 ‘망명정부’를 차린 ‘독립투사’들이다.

살해, 투옥, 성폭행… 줌마의 슬픈 역사

매주 일요일 오전, 한국에 있는 11명의 줌마족은 경기 김포시 대곳면 상마리의 한 폐가에 모여든다. 바닥은 냉골이고 문도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걱대는 이곳은 ‘줌마민족네트워크’(Jumma People Network Korea)의 어엿한 공식 사무실이다. 주중에는 가구공장·컨테이너 공장의 불빛 아래 이주노동자로 살아가지만, 주말에는 고뇌하는 전사들로 다시 태어난다.


사진/ ‘한국의 줌마 전사들’. 방글라데시 줌마족은 지난 30여년간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모진 수모를 당해왔다. 탄압이 심해질수록 이들의 저항도 거세진다.

줌마족은 방글라데시 동남부 치타공힐트랙(CHT) 지역에 사는 13개 민족 65만명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불교와 힌두교, 가톨릭 등 다양한 종교를 갖고 있고, 벵골어가 아닌 자신들의 고유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슬람교를 믿고 벵골어를 쓰는 방글라데시의 주류 벵갈리족과는 구분된다. 이런 차이는 방글라데시판 ‘민족말살정책’의 구호 아래 탄압으로 이어졌다. 영국-파키스탄-방글라데시로 통치자가 바뀔 때마다 생존 기반은 흔들렸고, 많은 줌마족들이 ‘민족단일화’라는 구호 아래 신음하며 죽어갔다.

동파키스탄 시절인 1964년에는 거주지역에 댐이 건설되면서 10만명의 주민이 인근 국가인 인도로 내쫓겼고, 1971년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한 뒤에는 주류인 벵갈리족이 CHT에 정착촌을 건설했다. 저항하는 줌마인들은 살해당하거나 투옥됐고, 여성들은 성폭행당했다. 1972년부터 방글라데시 정부를 상대로 지리한 게릴라전을 펼쳐, 1997년 마침내 자치주 독립 평화조약을 맺을 수 있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줌마족은 여전히 방글라데시 정부에 의해 학살되거나 인도 등 외국으로 도피하고 있으며, 자치구에서의 방글라데시군 철수와 양심수 석방 등의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난 8월26일에도 벵갈리 이주민과 방글라데시 군부가 줌마인 1명을 살해하고 9명의 줌마 여성을 성폭행했다. 2명이 행방을 알 수 없다. 또 348채의 집, 4곳의 절에 불을 질러 수천여명의 줌마인이 길거리로 쫓겨났다.

끝없이 이어지는 박해를 피해 하나둘 한국으로 모여든 줌마인은 어느새 11명이 됐다. 이들의 끈끈한 연대감은 공통의 경험에서 나온다. 지분 차크마(35) 회장은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방글라데시 군대에 의해 마을이 불타고, 벵갈리 이주민들이 줌마 여성들을 성희롱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 이웃들이 참혹하게 살해당한 모습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줌마민족 저항운동에 자연스레 동참하게 된 이유다”라고 말했다.

1994년 한국에 들어온 로넬 차크마 나니(35) 줌마민족네트워크 사무국장은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반정부 자치권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18살이던 1986년에는 체포돼 3년을 복역했고, 석방 뒤에는 또 다른 반정부활동 혐의가 덧붙여져 3년여간 도피생활을 했다. 결국 주변국가인 인도와 타이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인도와 타이에서도 몇몇 줌마족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그곳의 종교나 분위기, 문화 등도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어느 곳으로 갈까 고민하던 중에 한국이 타이 같은 불교국가라는 소문을 듣고 한국을 선택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죠.”


사진/ ‘줌마민족네트워크’의 회의 모습. 이들은 주말이면 경기도 김포에 있는 줌마민족네트워크 사무실에 모여 한주간 고향에서 일어난 상황을 점검한다.

“한국정착 과정 너무 힘들다”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 자신과 너무나 다르게 생긴 한국인들의 모습에 당황했다는 로넬 사무국장은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다른 많은 이주노동자들처럼 월급을 떼이기도 했고, 욕설과 주먹질을 견뎌내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고향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산티 차크마(32)씨는 7년째 가족들과 생이별 중이다. 떠나올 때 한살배기였던 딸은 이달 11일이면 어느새 8살이다. “집에 전화할 때마다 ‘아빠 왜 안 오냐’며 칭얼대요. 왜 못 가는지, 여기서 어떤 일을 하는지 말할 수 없습니다. 정부군이 도청하거든요. 제가 여기서 이런 활동하는 사실이 알려지면 가족들이 위험해집니다.” 산티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초라하지만 자신들만의 사무실도 마련했고 지난 6월에는 방글라데시 대사관 앞에서 집회도 열었지만, 활동은 여전히 힘에 부친다. 한달에 14만원씩 사무실 월세를 내야 하고 전화와 수도, 전기세 등을 합하면 관리비는 5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이들은 경비를 감당하기 위해 매달 2만2000원 정도의 회비를 낸다. 방글라데시 정부군에 의해 고향이 피해를 입었을 때는 100달러씩 특별회비를 걷는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회원들은 단체활동 때문에 회사를 하루 쉬어야겠다는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곧 ‘근무태만’으로 인한 해고로 이어진다. 대부분 2번에서 많게는 5번까지 회사에서 ‘짤린’ 과거를 갖고 있다. 1년에 4번 해고당한 회원도 있다. 일자리를 잃은 회원에게는 단체 차원에서 생활비를 지원한다.

줌마민족네트워크는 한국은 물론 국제 인권단체와 국제연합 등에 줌마족의 현실을 알리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CHT 지역이 석유나 가스 같은 천연자원이 많은 땅도 아닌데다 워낙 소수민족이어서 국제사회에서도 크게 주목을 끌지 못하는 형편이다.

한국에서의 불확실한 미래도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불법체류자로 지내다 지난해 10월 11명 모두가 법무부에 난민신청을 했지만, 심사가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난민신청이 거부당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들의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황이다. 방글라데시로의 추방은 이들에겐 곧 죽음을 뜻한다.

로넬 사무국장은 “미래가 너무 어둡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향에서 우리 활동에 기대하는 것도 많고, 우리가 여기에 돈 벌러 온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먹고살려면 돈도 벌어야 합니다. 난민신청이 거부되면 집으로도 못 가고 여기서도 활동을 못 하고…. 생각만 해도 답답해요.”

너무나 암담한 미래… 국제사회가 지원을

미래는 암담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줌마족은 방글라데시 대사관 앞에서의 시위도 준비하고, 몇몇 사회단체와 연대체를 꾸릴 계획도 갖고 있다. ‘줌마’라는 말을 마냥 재미있어하는 한국인들에게 줌마족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회원들이 자주 들를 수 있도록 김포 시내에 사무실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다만, 공장일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이 많은 상황과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현실이 한스러울 뿐이다. 한국 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이유다.

줌마민족네트워크의 회원들은 대부분 20~30대의 청년들이다. 이들에게 줌마족이 자치권을 얻고 평화가 찾아오면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다들 머뭇거렸다. “겨울에는 장미가 피지 않는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기에도 벅차다는 의미였다.

군부독재 시절, 국제사회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기울인 데는 당시 해외에서 한국의 현실을 알려주던 민주인사들의 공이 컸다. 이제는 우리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그들에게 답할 차례다(031-997-5961).

글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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