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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리티 ] 2003년06월12일 제463호 

도둑맞은 교사자격증

교사자격 따고도 교단에 서지 못하는 미발령 교사들의 아픔

지난 6월6일 밤 9시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 가로등 불빛이 미치지 않는 어두컴컴한 구석에 노란색 도화지를 앞뒤로 두른 30대 여인이 서 있었다. 도화지에 쓰여 있는 ‘미발령 교사 1인시위 720일째’라는 문구가 희미한 손전등 아래 빛났다. 그의 앞으로 버스 한 대가 지나갔다.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가 또 무슨 일(!)을 저질렀나요?’ 버스 창문을 통해 그를 바라보는 한 승객의 표정은 마치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정부 소급적용으로 갈 곳 잃어


사진/ 지난 6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미발령 교사.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별법은 국립사범대와 사립사범대 재학생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김진수 기자)


그는 ‘전국교원임용후보명부등재 미발령교사 완전발령 추진위원회(미발추)’ 회원 이금호(36)씨다. 이씨는 13년 전 교사자격을 땄으나 아직까지 교단에 서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완벽한’ 실정 탓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안이 없다고 발뺌만 하고 있다. 하지만 미발추 회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안이 없는 게 아니라 정부의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

이씨는 1989년 국립 공주사범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공무원 임용절차’를 거쳐 교원임용후보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졸업 뒤 바로 학교 배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곧 교단에 설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교육공무원법(제11조 1항)은 국·공립 사범대 졸업자를 우선 임용하도록 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90년 10월8일 헌법재판소가 이 법률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뒤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미발령 교사들을 구제하기 위한 유예기간을 두지 않고 곧바로 새 임용제도(임용고사)를 시행해버렸다. 이씨처럼 학교 발령을 기다리고 있던 ‘예비교사’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것 같았다. “헌재 결정 소식을 듣고 나서도 처음에는 ‘설마…’ 했어요. 정부 정책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니까 미발령자들을 구제해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구제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미 교원임용후보명부에 오른 예비교사들을 구제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소급적용’이었다. 정부는 미발령자들에게도 임용고사를 볼 것을 종용했다. “임용고사는 정부가 자신의 잘못에 책임지지 않고 미발령 교사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제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그걸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명부에 오른 예비교사들은 일반 기업에 취직할 수도 없었다. 발령이 나면 즉시 학교로 돌아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아예 이들의 원서를 받지 않았다. 이씨처럼 졸지에 갈 곳을 잃어버린 예비교사들은 7800여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임용고사를 단호히 거부하고 정부의 정식 발령을 기다렸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상당수가 ‘대열’을 이탈했다. 교사자격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았다. 남은 사람들의 ‘싸움’도 세상의 무관심 속에 흐지부지되는 듯했다.

특별법 발의 의원들도 말 바꿔


사진/ 지난해 1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미발령 교사와 자녀들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특별법은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크다.(한겨레 이종근 기자)


하지만 2001년 6월 이들 중 일부가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교단에 설 꿈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모인 회원은 800여명에 불과했지만 ‘미발추’라는 새 조직을 결성해 심기일전했다. 10년 전에 자주 하던 집단시위 대신 1인시위에 주력했다. 정부 정책의 잘못을 법률적으로 따지는 소송도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해 2월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이 ‘국립사범대학졸업자중 교원미용자채용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한나라당 김정숙(비례대표), 현승일(대구 남구) 의원 등 23명의 여야 의원들이 법안 발의에 찬성해 특별법 제정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같은 해 8월 당시 이상주 교육부 장관도 “미발령교사는 정부의 잘못으로 발생한 문제이므로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암초’가 나타났다. 국립사범대와 사립사범대 재학생들이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재학생들의 임용 기회가 박탈된다’는 게 반대 이유였다. 특히 미발추의 ‘직속후배’들인 전국국립사범대학생연합회는 지난 4월18일 공청회를 앞두고 “교원 적체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별법은 교원수급체계를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후배들의 반발은 미발추에게 큰 충격이었다. 미발추 정혜숙 대표는 “사범대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함께 찾아보자고 했지만 후배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며 “선배들의 참 뜻을 알아주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미발추가 제시한 방안은 특별증원의 방식으로 미발령 교사들을 임용시키자는 것이다. 실제 교원채용 현황이 법정 교원 정원의 85%에 불과하기 때문에 미발령 교사들을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주장이다. 미발령 교사 중 실제로 임용을 원하는 사람은 1600여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교육부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여기에다 장기적인 교원수급 대책을 제시하면 사립대 학생들이 졸업 후 자신의 진로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에 불안감이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예산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원 채용은 임금 등 비용이 들기 때문에 교육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며 “국회 특별법 말고는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사립사범대 학생들과 교수들의 반대가 거세자 발의에 찬성했던 현승일 의원과 김정숙 의원이 특별법 제정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법안심사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현 의원의 소극적인 태도는 미발추 회원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현 의원은 지난 5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발의할 때는 법안 내용에 대해 잘 몰랐는데 신중히 검토해보니 문제가 있더라. 그래서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발의에 찬성한 것은 이 법안을 한번 논의해보자는 것에 찬성한 것이지, 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 안 되면…


사진/ ‘군복무 피해 미발령교사 원상회복추진위원회’의 집회. 이들은 군복무 중 위헌결정이 내려져 발령에서 제외됐다.(류우종 기자)


미발추는 지난 6월2일부터 밤샘 시위에 들어갔다. 오는 22일로 예정된 법안심사소위를 겨냥한 ‘강공’이다. 4명이 한 조가 돼 24시간 동안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인다. 정 대표는 “법안심사소위에 통과되면 상임위원회나 본회의에서는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밤샘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이 특별법은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권철현 의원의 정현진 보좌관은 “9월 정기국회는 추경예산 심의 등으로 바쁘고 내년 1, 2월 임시국회는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이 법안 심사가 어렵다”며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교육부가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국회 특별법만 바라보며 뒷짐만 지고 있다”며 “동네 학교 앞을 지날 때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게 미발령 교사들인데, 교육부가 이런 심정을 헤아려본 적이나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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