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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리티 ] 2003년05월14일 제459호 

‘공익’이 공공의 ‘봉’이냐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며 공무원 심부름까지 떠맡기도 하는 공익요원들의 애환

‘3-5-2-7-3-4-4.’

위 숫자가 낯익은 사람은 두 부류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어느 제약회사 광고부서에서 일하는 사람이거나, 그 회사의 텔레비전 광고를 보고 단단히 화가 난 젊은이거나.

“꼭 가고 싶습니다.” 얼마 전부터 방송을 타기 시작한 유명 드링크제 광고가 적잖은 논란을 뿌리고 있다. 병역 신체검사장에서 말쑥하게 생긴 젊은이가 시력 검사판을 외워서라도 군대에 가겠다고 떼를 쓴다. 왜 광고 끄트머리를 장식하는 한마디가 그 이유를 쉽게 말해준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집에 가서 낚싯대 가져와라”


사진/ 공익요원들은 이름에 걸맞게 ‘공공의 이익’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서울시 산하 복지시설에서 한 공익요원이 노인을 돌보고 있다.(류우종 기자)


대한민국은 예비역 공화국이다. 군에 가면 ‘사람’이 되고, 제대를 해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 이런 현실에서 현역병 근무를 하지 않은 사람은 술자리 잡담에도 끼기 어렵다. 광고가 전파를 타기 시작하면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공익근무요원(이하 공익요원)들의 격한 반응이 쏟아진 것은 이 때문이다. 회원 수 8천여명의 인터넷 카페 참공익(cafe.daum.net/chamgongik)에는 며칠 새 “어이없다”거나 “재수없다”는 등 공익요원들의 심정을 담은 글이 줄을 이었다. 한 공익요원은 “현역병으로 근무하지 않은 모든 사람을 우회적으로 비하한 셈”이라며 분개했다.

“그래도 군대 안 간 걸 천만다행으로 생각해야지….” 공익요원 1년차 ㄱ(23)씨는 서울시 공원녹지관리사업소 산하기관에서 행락질서 확립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공원 주변을 정해진 시간에 순찰하는 업무를 맡고 있지만, 힘쓰는 단순작업이 있을 때면 동료 6명과 함께 언제든 동원된다. “함께 땀을 흘리는 공무원도 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까지 전적으로 공익요원에게 맡기고 사무실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는 공무원도 있다. 그럼에도 자기 아들은 전방에서 근무한다며 ‘니들은 진짜 고생이 뭔지 모른다’고 타박이다.” 그는 “요즘은 공익요원의 ‘공익’이 ‘공공의 이익’이라기보다 ‘공무원의 이익’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쓰게 웃었다.

병무청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공익요원은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사회복지시설 등에서 공익 목적에 필요한 경비·감시·보호·봉사·행정 업무를 지원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1995년 1월 제도 시행에 앞서 정부는 “국민개병주의 원칙에 입각한 예외 없는 병역의무 부과와 잉여 병역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해 6만여명의 젊은이들이 ‘잉여병역자원’으로 분류됨에도, 그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방 대도시 구청에서 광고물 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공익요원 ㅂ(24)씨. 불법 간판이나 벽보를 제거하는 게 주 업무지만, 공공근로 인력이 있어 할 일이 없는 날이 많다. 그가 속한 구청에는 약 50명의 공익요원이 근무하지만, 사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극히 일부지만 공익요원을 개인 비서쯤으로 여기는 공무원도 있다.

그는 “로또복권을 사오라거나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건 애교 수준이다. 어떤 때는 차 열쇠를 주면서 세차장에 맡기고 오라고 한다. 세차가 끝나면 다시 찾아오는 건 기본이다. 아침에 깜박 잊고 낚싯대를 놓고 왔다며, 자기 집으로 심부름을 보내기도 한다. 동창회 명부를 만들고, 모임 시간과 장소를 알리는 팩스를 보내느라 온종일을 허비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기본적 의식주도 본인 부담


사진/ “제복을 입고 거리에 나서면 편견 어린 시선이 부담스럽다.”주차단속 중인 공익요원들.(강재훈 기자)


관공서에 행정인력이 남아도는 사이, 복지시설 등 일손이 부족한 곳에 배치된 공익요원은 과중한 노동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일찌감치 똬리를 튼 ‘공익요원은 놀고먹는다’는 사회적 낙인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일부의 탈선을 전체 공익요원의 문제로 확대해석한다.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공익요원 품위유지 기준 강화대책’은 이런 인식의 단면을 극명히 보여준다. 시는 우선 공익요원들이 머리 염색이나 퍼머를 하는 것을 금지했다. 무스를 바르는 것도 안 되고, 귀걸이와 목걸이도 민원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며 사용을 금했다. 턱수염을 길러서도 안 되고, 머리칼 길이는 옷깃을 덮지 않을 정도로 짧게 하되 빡빡 깎아서도 안 된다고 정했다. 이런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3일씩 근무기간이 늘어나는 경고를 3차례까지 내린 뒤, 4번째는 형사고발 조처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두고 서울의 한 구청에서 버스전용차선 감시요원으로 일했다는 최영만(24·가명)씨는 “살을 에는 추위와 아스팔트를 녹이는 더위를 참아가며 28개월을 버텼다. 매연 때문에 기관지염에 걸리기도 했고, 오래 서 있다 보니 만성적인 무릎통증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공익요원을 ‘문제아’ 취급하며 복장 단속까지 하려 들고, 저급한 농담거리로 삼는 것을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반군·반민’이라는 어정쩡한 신분 때문에 생기는 문제 가운데 공익요원의 낮은 후생복지 수준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공익요원은 현역병과 같은 액수의 월급(1만7400~2만3100원) 외에 근무한 날마다 급식비(3천원)와 교통비(1200원)를 각각 지급받는다. 그러나 이는 실제 드는 경비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역 복무자의 기본적인 의식주와 의료 서비스 등을 국가에서 책임지는 것과 달리, 공익요원은 이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현행법상 공익요원은 교육 소집기간(4주)에만 군인 신분을 유지하고, 나머지 복무 기간은 민간인 신분으로 일한다. 그러나 국방의무를 대체하는 공익요원을 ‘준군인’쯤으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인지 공익요원들 사이에서도 직종에 따라 이른바 군기를 잡기 위해 얼차려와 구타가 횡행하기도 한다. 공익요원 출신으로 ‘공익요원들의 자리매김을 위하여’(gongik.new21.org)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박생현(26)씨는 “구타나 기합 등으로 얼룩진 자신의 생활을 호소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익요원 수가 많은 근무처에서는 위계서열을 따지며 고참 요원이 신참 요원을 괴롭히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수도권 지역에서 과적차량단속 업무를 맡고 있는 한 공익요원은 “이병-일병-상병-병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위계서열을 앞세우는가 하면, 어긋난 병영문화를 답습하려는 모습을 보여 처음 근무를 시작했을 때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한번은 업무가 끝난 뒤 고참 요원이 소집한 회식자리에 참가하지 않았더니, 이튿날 사소한 일을 빌미로 주먹을 휘둘렀다”고 밝혔다.

“공익요원제도는 인권침해 제도”

이런 상황 때문에 공익요원제도의 적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10월4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질의에 나선 김락기 의원(한나라당)은 “공익요원제도는 국제노동기준 위반이고, 인권을 침해하는 제도”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김 의원은 “현재 지자체에 4만여명, 공공단체에 7200명, 사회복지시설에 1100여명 등 대부분 군사적 성격의 작업으로 볼 수 없는 일들에 종사하고 있다. …1998년 국제노동기구(ILO) 자문단을 초청해 강제 근로협약 비준과 관련한 국내법 개정에 대해 자문을 구한 일이 있는데, 당시 공익근무요원이 강제근로라는 지적을 받았다. 6만2천여명의 젊은이들이 2년8개월 동안 강제근로를 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지만, 한번 공익은 그것으로 족하다. 보람도 영예도 없다. 복무기간이 끝나면 그저 빨리 잊고 싶은 기억일 뿐이다. 부산에서 10개월째 공익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안아무개(23)씨는 “공익요원에 대해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며 시간만 때운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대체복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을 하고 싶다.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것만이 ‘사나이로 태어나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길은 아니다. 국방의무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진정한 대체복무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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