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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마이너리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3년02월20일 제4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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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비주류 노동자에게도 올까?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 비판하며 비정규직·영세 사업장 노동자 처우 개선에 앞장서는 인수위

“나는 노동계에 빚진 게 없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가끔씩 하는 말이다. 재계로부터 “노 당선자는 노(勞) 대통령이다”는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한 뒤부터 간간이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노 당선자쪽이 내놓은 노동개혁 정책들을 뜯어보면 노동자 편향이라기보다는 ‘비주류 노동자 편향’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 바탕에는 대기업·정규직·남성 중심의 기존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회의 또는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수적으론 다수, 현실에선 소수자


△ 비정규직 ·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를 비롯한 이른바 ‘주변부 노동자’들은 수로는 대다수를 차지하는데도 현실에서는 늘 소수자였다.(사진/ 박승화 기자)

“한국의 노동시장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매우 유연한다. 대기업 노동자의 해고는 더 쉬워져야 한다.” “강경한 노동투쟁은 대기업에서 주로 일어나며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노동법에 무지하고 오히려 약자의 입장이다.” “어려운 해고제도는 강력한 노동조합에만 유리할 뿐이다. (그래서) 기업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들을 보는 노 당선자의 눈길은 ‘곱지 않다’는 정도를 넘어 기존 대공장 노동조합을 개혁주체라기보다는 개혁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뚜렷하다. 비정규직에 대한 애정의 뒤쪽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에 대한 공세를 암암리에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비정규직에 대한 애정은 몇 가지 획기적인 정책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위해 차별시정기구를 마련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하고 이를 어기면 벌금형 등 약한 수준이나마 처벌조항을 두는 방안 △현행 기업별 교섭을 산별교섭체제로 전환하는 여건 조성을 위해 산업별·업종별 노사정위원회 설치 등이 대표적이다. 산별교섭을 정착해 기업규모에 따른 임금과 노동조건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인수위 노민기 인수위원은 “대기업 노조가 비정규직에 대해 열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폐쇄적이기도 하다. 대기업의 폐쇄적 노동시장 관행 때문에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가지 못한 채 비정규직의 굴레라는 함정에 빠지고 있다. 정규직 중심의 복지제도와 연공급구조도 적절치 못하다”고 말했다. 고임금·고용안정의 정규직과 저임금·고용불안의 비정규직으로 철저하게 단절된 노동시장구조를 고쳐 비정규직 권익을 보호하는 데 노동정책의 기조를 두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비롯한 이른바 ‘주변부 노동자’들은 수로는 대다수를 차지하는데도 현실에서는 늘 소수자였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001년 말 현재 12.0%다. 조직대상 노동자(1310만명) 가운데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은 156만8천명에 지나지 않는다. 주변부 노동자들의 일터에는 가입하고 싶어도 노조조차 제대로 조직돼 있지 못하다. ‘조직률 12%’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노총이 전체 노동자들을 대표할 수 있느냐는 물음까지 이어진다. 이는 자본쪽이 걸핏하면 내세우는 ‘말 없고 힘없는 다수 노동자’ 논리에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소수의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해만 대변하고 비정규·중소영세 노동자들의 권익을 철저히 외면해온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 주변부 노동자들이 빠진 채 전체 노동자의 12%에 불과한 양대노총이 참여하는 노사정 대화는 ‘사회적 대화’로 불리고 있다.

기업규모별로 노동자 수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 수를 살펴보자. 통계청에 따르면 2001년 말 기준으로 30인 이하 사업장 종사자는 전체 종사자의 61%(872만명), 100인 이하 사업장 종사자는 76.9%(1086만명)에 이른다. 반면 100인 이상 사업장 종사자는 23.1%(326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조직 노동자 비중은 정반대다. 100인 미만 사업장 조합원을 보면, 민주노총은 1만8400여명으로 전체 조합원(60여만명)의 3.1%, 한국노총은 8만7천명으로 총 조합원(90만4천명)의 10%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1천명 이상 사업장 소속 조합원은 민주노총은 무려 81.1%(48만명), 한국노총은 53%(48만명)에 이른다.

“대공장 노동자는 다 나쁜 놈인가”


△ 지난 2월13일 한국노총을 방문한 노무현 당선자.(사진/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임금은 어떤가 노동조합 때문에 임금인상률이 높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생계임금은 확보돼야 한다. 그러나 2002년 11월 현재 500인 이상 사업장의 임금상승률은 15.4%로 나타난 반면, 10∼30인 규모는 5.8%에 지나지 않았다. 자연히 임금격차도 커 5∼10인 규모의 월평균임금(144만4천원)을 기준(100)으로 삼았을 때 500인 이상 사업장의 평균임금(월 257만7천원)은 178.4에 달했다. 1년 전의 168.4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노동자들이 개별기업에서 임금협상을 통해 임금 극대화를 추구하는 행위는 합리적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조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은 물가상승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마련인데, 임금 상승혜택에서 소외되는 비주류 노동자는 물가상승으로 인해 경제적 손실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20 대 80’의 사회라고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부유층 10%와 상층 고임금 노동자 30%, 비정규·영세사업장 노동자 60% 정도로 구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사자율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당선자쪽은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표방하고 있다. 노사자율에만 맡겨놓으면 소수의 힘있는 조직 노동자들의 경제적 기득권만 더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인수위쪽 구상은 “노조가 ‘조금 더 가진 자’인 대기업에 종사하는 정규직 노동자만을 대변하면 그 결과는 분파적 경제주의일 뿐”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 물론 비정규직 급증과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를 대기업 노동자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조진원 부소장은 “비정규직 차별은 한국사회의 병리적 현상이 기업별 노조라는 조건 아래 노동자 내부로 침투해 들어온 것뿐이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분석결과, 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1992년 19.9%에서 2001년 9.7%로 큰 폭으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벌어들인 소득에서 노동자쪽이 차지하는 몫을 뜻하는 노동소득분배율도 92년 54.1%에서 2001년 47.7%로 떨어졌다. 해고를 더 쉽게 하고 임금비용을 낮추려는 자본의 의도가 비정규직 차별 및 이에 따른 자본분배율 확대로 나타난 것이다.

금속노조 심상정 사무처장은 “노 당선자가 조직화된 노조의 기득권과 민주노총을 견제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는데, 비정규직은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의 산물일 뿐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서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고 말했다. 당선자가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협소한 시각에서 대기업 노동자들을 비판함으로써 재벌들한테 박수받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대기업 노조가 과보호받아서 비정규직이 차별받고 있다는 건 자본의 논리기도 하다. 민주노총 손낙구 실장은 “대공장 노동자는 다 나쁜 놈들이고, 순수하고 불쌍한 비정규직만 절대 선이란 발상은 위험하다. 정규직한테 화살을 겨눠 기득권 몫을 게워내 비주류 노동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말했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고임금은 실상 밤 새워 고생하며 일한 잔업 수당 몫이 크며, 대기업 자본이 중소업체의 하청단가를 해마다 후려치는 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는 비주류 노동자 껴안아야


△ 노무현 당선자가 민주노총을 방문해 지도부와 토론하고 있다.(사진/ 주간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주류 노동운동 이면에 대다수 비주류 노동자들의 불평등이 온존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기존 노동조합이 소수 노동자들의 ‘이익단체’로 변질되는 경향도 부인할 수 없다. 인수위 박태주 전문위원은 “대기업 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가 어려워 비정규직에 더 낮은 대우가 강요되는 측면이 있다. 비정규직 희생 위에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면 잘못이다. 대기업 노동자의 상대적 보호와 비정규직의 상대적인 방치는 결국 동전의 양면이다”고 했다. 기존의 조직 노동자들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단이 있지만, 비정규·영세하청 노동자는 사회적으로, 또 기존 노동조합으로부터도 소외되고 있다.

노동조합은 연대의 상징이자 동시에 분열의 상징이기도 하다. 현행 기업별 체제에서 노동조합은 모든 노동자의 이해보다는 기업별 분배 위주의 전투적 경제주의에 매몰되면서 분열되고 있다. 노사관계학 분야의 권위자인 리처드 하이만은 “노동조합 고유의 역할은 기득권 수호자가 아니라 정의의 칼”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경제적 기득권이 어느 정도 희생되더라도 대다수 비주류 노동자들을 끌어안는 사회운동의 관점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새 정부가 표방하는 사회적 파트너십은 노사관계뿐 아니라, 노동자 내부에서 조직 노동자와 비주류 노동자들 사이의 파트너십을 뜻하기도 한다. 노동자 연대라는 관점에서 볼 때, 조직 노동자든 비주류 노동자든 모두에게 새 정부는 ‘타고 넘어야 할 대상’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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