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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마이너리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3년01월02일 제4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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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리며 사는 ‘용역인생’

2년 만기 계약에 울먹이는 파견노동자들… 업체에 임금 30% 뜯겨도 고용보장 못 받아


△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청소용역 노동자들.(사진/ 한겨레 이정용 기자)

건설회사에서 실직한 뒤 2000년 5월부터 문화방송에서 차량 운전기사로 일해온 이아무개(53)씨. 그는 지난 4월 말 다시 직장을 잃고 말았다. 일한 지 2년을 채우기 직전 딱 하루를 앞두고 계약이 해지됐다. 그런데 애초에 이씨와 근로계약을 맺은 상대방은 문화방송이 아니다. 이씨는 인력파견업체인 ㅇ사 소속 파견노동자다. “일하면서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근무하는 데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2년이 다 됐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내쫓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버리더군요.” 이씨는 지금 한국방송으로 옮겨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회사만 바뀌었을 뿐 파견노동자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바뀐 게 또 있다면 파견업체가 ㅂ사란 곳으로 달라졌다는 점이다.

보호 조항이 무더기 해고 사유로

각 방송사는 지난 87년부터 방송차량 운전직에 파견(용역)직을 도입했다. 그런데 2년 전, 길게는 10년 넘게 일해온 그들에게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가 날아들었다. 2000년 6월30일을 즈음해 방송사별로 운전직 파견노동자 수백명을 대량해고한 것이다. 98년 7월부터 시행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사용사업자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말 그대로 파견근로자 보호를 위한 조항인데, 이 규정을 피하려는 회사 쪽의 의도 아래 2년을 하루 앞두고 무더기 해고 태풍이 분 것이다.

근로자파견은 파견업체-파견노동자-사용업체라는 3각 관계로 형성되는데, 파견업체는 파견노동자를 모집해 데리고 있다가 사용업체에 인력을 공급하고 파견노동자로부터 수수료를 챙긴다. 파견노동자의 근로계약 파트너는 실제 일하는 사용업체가 아니라 파견업체다. 사실 근로자 파견은 80년대부터 불법적으로 광범위하게 횡행했다. 이러한 불법 파견을 합법화하자는 게 지난 98년 파견법 도입의 명분이었다. 노동부에 따르면, 파견노동자는 전국 8천여 사업장에 걸쳐 6만여명이 존재한다. 이들 파견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마이너리티로 꼽힌다. 왜 그럴까

현재 이씨가 받는 임금은 한달 90만원 안팎. 상여금은 한푼도 없다. 이씨는 “파견업체는 월급명세서만 내게 발행할 뿐 하는 일이 뭐가 있나 그런데도 내 임금 중 30% 이상을 달마다 커미션으로 뜯어가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물론 파견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을 당시 이런 사실을 모른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할수록 늘 부아가 치민다. 직업소개소의 경우 수수료가 ‘최대 3개월까지 월급의 10% 이내’로 묶여 있지만, 파견업체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파견업체가 파견노동자의 임금 중 일부를 제멋대로 수수료 명목으로 챙기고 있는 것이다.

문화방송에서 이씨가 근무했던 자리에는 새로운 파견노동자가 투입됐다. 이씨의 현재 일자리 역시 누군가 2년을 채우기 직전 계약해지된 바람에 생긴 것이다. 이처럼 사용업체들은 2년간 써먹은 파견노동자들을 해고한 뒤 다른 파견노동자를 똑같은 업무에 교체 투입하거나, 2년을 다 채운 파견노동자를 한두달간 계약직으로 전환했다가 다시 파견으로 돌리기도 한다. 계열사 간에 파견노동자를 맞바꾸거나 사용업체끼리 맞교환하는 사례도 있다. 방송사 비정규직노조 주봉희 위원장은 “파견노동자는 탁구공처럼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다시 이 회사로 왔다갔다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사용업체와 파견업체가 중간에서 파견노동자를 상품처럼 거래하면서 온갖 교묘한 형태로 써먹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고용불안은 임금 중간착취와 더불어 파견(용역)이란 이름의 노동이 안고 있는 숙명적인 굴레다.

노동자 맞교환 등 편법 수두룩


△ 법원 시설관리 용역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인정을 요궈하고 있다.(사진/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제공)

파견한 지 2년이 넘으면 직접 고용해야 하는데도 사용업체들의 편법 때문에 같은 회사에서 10년 넘게 파견노동자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해고됐다 몇 개월 뒤 복귀하는 일이 2년마다 반복되지만, 근속연수는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 이씨는 “계약직은 비정규직이라도 어쨌든 방송사가 직접 고용했기 때문에 아이들 학자금 혜택도 주는데, 똑같은 일을 하는 파견노동자한테는 아무것도 없다”고 설움을 삼켰다. 계약직 등 비정규직의 팍팍한 현실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파견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떨면서 ‘합법적인’ 중간착취까지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여러 파견업체로부터 업무차량 운전직 180여명을 받아 쓰고 있는 농협중앙회는 지난 6월 말 각 점포에 문서 한장을 일제히 내려보냈다. 2년이 다 된 파견노동자들의 계약을 해지하라는 지침이었다. 농협중앙회쪽은 “2년 넘게 파견근로자를 쓰면 처벌받기 때문에 그런 지침을 내렸다”고 말했다. 2년을 초과하면 직접 고용하라는 파견노동자 보호 규정을 엉뚱하게() ‘2년 넘게 쓰면 처벌받는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 지침에 따라, 서울의 한 농협점포에서 운전직으로 근무하는 김아무개(43)씨는 지난 6월30일 갑자기 계약이 해지됐다. 2000년 7월부터 파견업체 ㄷ사와 맺은 계약이 종료된 것이다. 당시 그가 받은 임금은 한달 95만원 수준. 농협에서는 ㄷ사에 김씨의 한달 용역비로 150만원을 준 것으로 알려진다. 파견업체가 임금 중 55만원을 달마다 뗀 것이다. 김씨는 “돈을 떼간다는 것을 알고 계약했지만 너무 심하다. 한달 10만원씩 퇴직금으로 적립했다지만 봉급 중에서 너무 많이 떼먹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용업체는 파견업체에 계약된 용역비를 주면 그만일 뿐, 파견업체가 그 중 얼마를 파견노동자한테 주는지는 관여하지 않는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2001년 8월)에 따르면, 정규직 임금(평균 166만9천원)에 비해 파견노동은 102만8천원, 용역노동은 79만3천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금, 상여금, 시간외수당을 전부 받고 있는 파견노동자는 23.4%에 그쳤다. 용역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주당 52.9시간으로 상용직(49.8시간)보다 훨씬 긴데도, 임금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2000년 당시 파견노동자의 평균임금은 한달 70만∼100만원이 50%, 50만∼70만원이 40%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4인 가족 최저생계비(93만원)에도 미달했을 정도다. 이런 낮은 임금은 다시 생계유지를 위한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진다.

사용업체는 부려먹고 파견업체는 뜯어먹고


△ 파견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등에서도 마이너리티다. 98년 2월 노사정위의 파견법 도입 합의장면.(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저임금의 원인은 물론 중간착취 때문이다. 이는 실제 일하는 곳(사용업체)과 임금을 주는 곳(파견업체)이 다르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파견업체는 인력모집과 공급, 월말 임금정산 외에 실질적인 노무관리는 전혀 하지 않는데도 30% 안팎의 임금을 달마다 수수료로 빼간다. 사용업체는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상의 책임을 회피할 수단으로, 파견업체는 그 중간에 개입해 중간이득을 착취할 수단으로 파견노동자를 이용하는 구조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파견업체들의 사정도 감안해야 한다”고 현실론을 폈다. 퇴직금, 사업소득에 대한 부가가치세, 사회보험료에다 일반 관리비를 빼고 적정 마진까지 떼야 하므로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운전직 파견노동자들은 연·월차 휴가도 못 가고, 휴일 근무와 밤출(밤을 새워 출장운전하는 일)은 물론 장거리 당일출장도 도맡아야 한다. 이런 노동조건을 개선하려고 집단행동에 나서면 즉각 계약해지 통보가 돌아온다. 방송사비정규직노조 주봉희 위원장은 “방송사는 실질적으로 근로를 지휘감독하면서도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핑계로 교섭을 거부하고, 파견업체는 우리가 무슨 힘이 있느냐며 방송사와 교섭하라고 서로 떠밀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민주노조(비정규직) 배삼영 부위원장은 “계약이 해지돼 나가고 들어오는 일이 수시로 반복되는 탓에 조직화도 어렵고, 따라서 파견노동자들의 ‘직접 고용’(상자기사 참조) 요구가 제대로 이슈화된 적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계약직인 나는 계약이 반복될 수 있는데다 임금을 중간에 착취당하지도 않으므로 파견노동자에 비하면 그나마 행복한 편이죠.” 배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왜 굳이 임금을 떼먹는 파견업체를 통하냐고 의아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정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운전직 등은 어느 사업장 할 것 없이 죄다 파견노동자만 쓰는 게 노동 현실이다. 별 문제 없이 임금 삭감이 가능하고, 저항 없이 계약도 해지할 수 있는데다 노조 조직화도 손쉽게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에 ‘파견’이란 이름 아래 정규직 일자리를 모두 파견노동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 위협 수단… 외국자본도 상륙

노동부에 따르면 현재 등록된 파견업체는 1240여곳으로, 외국 인력파견 자본도 섞여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무슨 무슨 코리아 하는 식으로 이름이 붙은 파견업체도 많은 것을 보면 외국자본도 상당수 들어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자 파견사업이 좋은 돈벌이 수단으로 떠오르자 외국자본까지 속속 상륙하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파견인력 100명 이상인 대형업체가 150곳에 이르는 반면 파견근로 실적이 전혀 없는 업체도 전체의 30%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영업이 안 돼 망하는 곳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은 법을 어겨가며 파견노동자를 쓴 업체들이 일부러 파견실적을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이런 와중에 웬만한 직업소개소 규모에 불과한 영세 파견업체 등록허가 신청은 날마다 새로 접수되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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