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표지이야기

특집

특집2

기획

이슈추적

성역깨기

마이너리티

기자가뛰어든세상

정치

통일로

경제

2%경제학

특별기고

특별대담

인터뷰

움직이는세계

아시아네트워크

사람이야기

사람과사회

학교!

문화

여행

패션

과학

건강

스포츠

캠페인

보도그뒤




[ 마이너리티 ] 2002년10월09일 제429호 

‘빅 사이즈’의 빅 스트레스

팬티조차 안 맞아 옷에 몸을 맞추고픈 이들… 의류업체는 큰 체형 기초조사부터 하라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식품가게를 하는 신아무개(38·남)씨는 개천절날 모처럼 이태원에 나왔다. 올 가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바지와 점퍼를 사는 것이 이날의 목표다. 키 176cm, 몸무게 115kg. 그가 지나갈 때마다 거리에 진치고 있던 ‘삐끼부대’가 와르르 몰려든다. “큰 옷 보시죠? 우리 가게 많은데.” 하지만 ‘큰 옷 가게’는 ‘최후의 선택’으로 미루고 싶다. 그의 눈길은 연신 ‘보통 사람들’이 입는 스포츠웨어 상점들로 쏠린다. 마침내 한 상점 앞 쇼윈도에 걸린 연한 코발트빛 점퍼에서 멈춰섰다. 한참 쳐다보다 용기를 내본다. “가장 큰 사이즈로 줘보세요.”

일본에는 전문코너도 많다는데…


사진/ "이 바지가 허리 50인치." 이 정도 빅사이즈는 이태원 큰 옷 전문점말고는 구경하기 힘들다. (김종수 기자)


안타깝다. 불룩한 배와 어깻죽지가 꼭 낀다. 점원은 같은 모양의 한 치수 더 큰 검은색 점퍼를 권한다. 품새는 맞지만 거울 앞에 서 보고 나선 고개를 내젓는다. 혹 본사엔 더 큰 사이즈 재고가 있는가 문의해봤지만 컴퓨터를 두드려보던 가게 점원은 그가 원하는 푸른색으론 큰 치수가 아예 생산되지 않는단다. “옷 만드는 사람들은, 뚱뚱하면 무조건 날씬해보이는 어두운 색만 고집하는 줄 아나봐요. 뚱뚱한 사람들일수록 마음이 섬세해요. 밝은 색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옷에 몸을 맞출 것인가, 몸에 옷을 맞출 것인가.’ 점퍼를 만지작거리던 그는 고민 끝에 빈손으로 나선다.

‘빅사이즈’. 신씨처럼 기성복 매장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쇼핑은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5년 전 임신과 함께 급작스레 살이 쪄 70kg을 웃돌았던 김아무개(31)씨는 혹시 맞는 게 있을까 하고 가게를 기웃거리다 “언니 치수는 없어요”라며 한마디로 자르는 쌀쌀맞은 점원의 말에 발길을 돌렸던 기억이 서럽다. 올해 17kg을 감량한 김씨는 살을 빼면서 ‘도둑맞았던 취향’마저 돌려받은 느낌이다. “예전엔 정말 입을 게 없었어요. 백화점에선 아예 꿈도 못 꾸고…. 동대문쇼핑몰에서 큰 옷 다루는 매장을 주로 이용했는데 거기서도 디스코형 바지에 헐렁한 면티와 셔츠가 고작이었죠.” 김씨는 “설령 살이 비어져 나오더라도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무늬와 색깔과 디자인을 입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태원에 몰려 있는 큰 옷 가게 전문점들은 이런 다양한 기호들을 미처 반영하지 못하기 일쑤다. 일본에서 유학 중인 이아무개(35·남)씨는 한국에선 가능한 한 옷을 사지 않는다. “이태원은 큰 옷 가게가 많아도 파는 옷들은 스타일이 거의 다 비슷비슷해요. 가게마다 특화가 안 돼 있어요.” 130kg에 허리 44인치를 입는 그는 속옷 사는 일조차 힘겹다. “트라이 같은 보통 속옷 브랜드엔 입을 수 있는 팬티가 없어요. 이태원을 돌아다니다 딱 하나를 발견하긴 했는데, 그게 어찌나 헐렁했던지. 그래도 어떡해요. 작은 것보다는 나은데.” 일본에선 백화점 한 코너가 아예 몸집이 큰 사람들을 위한 옷과 잡화류로 꾸며진 곳이 있어 그곳에 가면 속옷부터 허리띠 등 각종 소품들을 쉽사리 구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선택이 가능했으면 좋겠어요. 뚱뚱한 사람일수록 화려하게, 품위 있게 입고 싶다는 욕구가 있거든요.”

헐렁한 박스티에 남녀 공용 면바지를 ‘유니폼’처럼 입으며 사는 여성들의 경우 ‘예쁜 옷’을 동경하는 마음은 ‘한’이라 부를 만하다. 인터넷상의 큰옷전문쇼핑몰(www.size7799.com)에서 일하는 김지원(28·상품기획팀장)씨는 한 고객으로부터 받은 전화를 잊지 못한다. “정장을 주문한 28살 아가씨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 고맙다고 말하면서 엉엉 우는 거예요. 덕분에 친구 결혼식에 다녀올 수 있었다고. 허리 45인치 입는 분이었죠. 난생처음으로 정장 입어봤다며 흐느꼈어요. 저도 같이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택시 안에서의 비극

우리나라 기성복 업계에선 ‘빅사이즈 마켓’은 열외로 취급되는 상황이다. 한 여성복업체 관계자는 “빅사이즈 시장은 존재해야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패션이라는 브랜드를 파는 기업들 입장에선 성공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자기 자신의 관리에 투철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팔기 원하는데 빅사이즈는 그와 정반대죠.”

의류업체에서 관심을 안 가지다 보니 몸집이 큰 체형에 대한 기초조사도 제대로 돼 있지 않은 형편이다. 비만일수록 살찐 부위가 다 달라 옷맵시를 살리려면 유형별로 기초 데이터가 나와 있어야 하는데 대학 의상학과나 기업 어디서도 그런 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빅사이즈가 사회적으로, 산업적으로 냉대받는 가운데 자신의 사이즈를 수호하기 위한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 몇달 전부터 여성복 호수 99로 ‘전향’한 정아무개(32)씨도 그랬다. “더 이상은 찌지 말자”고 다짐하며 심리적 마지노선을 88로 정하고 살아온 그는 어느 날부터 바지가 죄어옴을 깨달았다. 그래도 “99는 도저히 용서 못한다”고 맘먹은 정씨는 꽉 끼는 바지를 꿋꿋이 입고 버텼다. 하지만 아뿔싸! 급하게 달려가 잡은 택시에 앉자마자 방심한 것이 실수였다. 숨을 깊이 내쉬며 가죽의자에 엉덩이를 비비는 순간, 아래쪽 어딘가에서 부욱∼ 찢기는 소리가 들렸다. 악착같이 지켜왔던 88바지와의 이별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살찌면 눈총 주는 각박한 세상에서도 굴하지 않고 제 입고 싶은 것은 입고야 마는 씩씩한 패션리더는 존재하게 마련. 빅사이즈 커뮤니티인 다음까페 ‘리얼 프리사이즈’에 ‘수호신’이라는 아이디로 글을 올린 한 여성의 글을 보자. “전 키가 173… 몸무게는 여러분들이 상상하실 수 있는 만큼 나갑니다. ㅋㅋㅋ 한마디로 거구져. 늘 남들보다 크구 늘 남들보다 뚱뚱했는데 문제는 제가 남들보다 튀는 옷을 좋아한다는 거져 ㅋㅋㅋ (…)정말 나팔바지가 넘넘 입구 싶은데 나팔바지란 게 보통 30까지 나오구여… 크다 해봐야 32 나오더라구여.(지금은 38∼40 입어여… ㅠ.ㅠ) 나팔바지가 넘 입구 싶은데 그게 사이즈가 없는 거져. 그래서 전 어떻게 했냐믄여. 남녀공용 일자바지, 그걸 사여. 그리고 그걸 수선집에 갖다 주믄 짙은 청바지 양 옆으루 밝은 노랑색 천을 대서 나팔을 만들어줘여. 그런 게 색깔별루 여러 벌 되져….”

없으면 만들어내는 이 창발성, 이 부지런함. 누가 당하랴. 이런 작은 욕구들이 모여 하나같은 빅사이즈 시장을 바꾸는 힘이 되지 않을까.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Back to the top  


Home| 표지이야기| 특집| 특집2| 이슈추적| 정치| 경제| 문화| 사람과사회| 움직이는세계|

copyright(c) 2003 The Hankyoreh Plus mail to 편집장,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