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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리티 ] 2002년05월15일 제409호 

‘다른 월드컵’을 찾아서

화합의 축제라는 신화에 의문을 던져라…아동노동과 피파의 독선을 거부하는 사람들


사진/ 안티피파닷컴 도메인을 등록한 '왕언니'. FIFA의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월드컵이 싫다고 한다.


월드컵의 창시자 쥘 리메는 “축구야말로 계급이나 인종의 구분 없이 모두를 한마음으로 만들어 세계를 행복한 한가족처럼 단합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의 바람처럼 우리 사회는 월드컵을 앞두고 많이 ‘단합’하고 있다. 꿈의 16강, 교통월드컵, 친절월드컵, 정정당당 코리아, 노사평화선언…. 거리 곳곳에 넘쳐나는 무수한 구호들은 월드컵 공동개최국의 국민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단합된 모습을 보이자고 다섯 박자 박수응원을 하는 듯하다.

축구공 기우는 아이들


사진/ '다른 월드컵 캠페인'을 준비하는 김애화씨. 한국의 노동자들이 초국적 브랜드 기업과 한국 생산공장의 아시아 노동자 착취를 감시하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리는 월드컵을 앞두고 친절하고 정당하고 평화롭게 단합하고 있을까? 만약 월드컵이 싫은 사람들이 있다면?

회사원 신아무개씨는 그런 사람 중 한명이다. 눈뜨자마자 운동장에 달려가 해질 때까지 공을 차며 자란 신씨는 30대 중반인 지금도 축구를 좋아한다. 하지만 월드컵은 아주 싫어한다. “모든 사람이 국가의 운명이 걸린 것처럼 광분하며 금과옥조처럼 외국인에게 잘 보이자고 떠드는 게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는 차는 몰지 않지만 홀짝제도 짜증나고 노점을 자주 찾지 않지만 노점상을 몰아내는 것도 부당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신씨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한다. 경기가 열리는 한달 내내 텔레비전 채널 선택권이 없는 것처럼.

신씨의 생각처럼 월드컵은 이미 개개인의 호불호를 넘어선 일상이 됐다. 그런 가운데 개개인의 호불호 차원이 아닌 월드컵의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사람도 있다. 김애화씨는 홍콩에 있는 아시아모니터자원센터(AMRC)의 상근활동가다. 그가 월드컵이 싫은 까닭은 월드컵의 이면에 너무나 많은 비인간적 노동착취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를 향해 “진정한 페어플레이를 펼치자”는 취지로 ‘다른 월드컵 캠페인’을 제안했다.

“월드컵은 스포츠용품 생산업체와 국제축구연맹(FIFA)이 결탁한 합법적 노동착취 구조입니다. 나이키는 자체 공장이 하나도 없고, 아디다스는 독일에 샘플 공장이 하나 있을 뿐이죠. 브랜드를 소유한 초국적기업 아래 판매기업이 있고, 그 아래 생산기업과 하청기업들이 있고 맨 밑바닥에 직접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있죠. 한국의 기업은 대부분 생산기업으로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중간착취를 합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그 사실을 알고 노동자의 입장에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해요. 하나의 방법은 초국적 브랜드 기업들과 생산공장을 맡고 있는 한국 기업이 아시아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연대하고 압력을 가하는 겁니다.”

이런 압력들에 따라서 월드컵 스폰서 기업들은 <기업책임보고서>를 해마다 내놓는다. 자신들이 노동착취 없이 건강하게 기업을 꾸려가고 있다는 일종의 ‘알리바이’를 대는 보고서들이다. 아디다스·나이키·맥도날드·코카콜라 등 세계적 브랜드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축구공 생산과정은 국제노동기구(ILO)와 사회단체가 주목하는 대표적인 아동노동착취 현장이다. 수제품을 으뜸으로 치는 축구공은 대부분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생산된다. 노동기구들과 시민단체들의 요구에 밀려 1996년 FIFA는 FIFA 라이선싱으로 생산되는 공과 용품 생산과정에서 정당한 노동환경과 급여를 보장하도록 한 기준서에 서약했다. 이 기준에는 최악의 아동노동 금지조항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98년 프랑스 월드컵의 공인축구공 ‘트리콜로’는 여전히 아디다스 파키스탄 공장에서 어린이들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10살 미만의 아이들이 하루 12∼16시간씩 지문이 지워질 정도로 가죽조각을 기워왔던 것이다. 이를 진상조사한 유엔아동보호기금(UNICEF)과 ILO는 이를 심각한 아동학대 사례로 결론지었고, 아디다스는 거액의 아동보호기금을 내고 공개해명을 해야 했다. 그렇다면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공인축구공 ‘피버노바’ 생산에서 아동노동착취는 근절됐을까?

호나우두의 무리한 출전

아동노동착취 반대를 위한 범세계적인 사회운동기구인 글로벌 마치(www.globalmarch.org)는 월드컵 개막을 1년 앞둔 지난해 5월30일부터 아동노동반대 캠페인을 펼쳐오고 있다. 인도에 거주하는 글로벌마치 활동가 김선형씨는 “FIFA는 2002년 월드컵에서 쓰일 모든 축구공들이 파키스탄의 시알코트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밝혔지만, 비합법적인 생산처에서 만들어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며 “각종 현장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아이들의 노동이 착취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1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월드컵의 그늘에 있는 아동노동’을 주제로 한 행사에서는 눈뜨고 보기 민망한 사례들이 발표되기도 했다.


사진/ 인도 소녀 기타는 '아동노동추방' 로고가 새겨진 축구공 가죽조각을 깁고 있다. 기타의 손은 상처 투성이고 피부는 온통 벗겨져 있다. (사진제공-글로벌마치)


10∼12살 정도로 보이는 인도 소녀 기타는 늘 축구공을 기워왔다는 기억 외에는 자신의 나이도 제대로 모른다. 기타가 깁는 것은 아동노동추방(child labor free)이라는 로고가 새겨진 축구공 가죽조각. 기타는 그래도 공을 기울 수 있는 나무받침대가 있지만, 주변에는 받침대가 없어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 축구공을 깁는 어린이들이 많다. 글로벌마치는 인도·파키스탄의 어린이 노동자들과 함께 김애화씨 등이 준비하는 ‘다른 월드컵 캠페인’(5월27∼31일)에 참석할 예정이다.

축구에 대한 열광은 축구팬의 권리다. 그러나 영국의 사건취재 작가 데이비드 옐롭은 <누가 월드컵을 훔쳤나?>(창조집단 시빌구 펴냄)라는 책에서 “축구라는 드라마는 그것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관중의 힘과 열정을 단계적으로 도둑맞고 있다”고 고발한다. 브라질의 축구영웅 호나우두에 관한 얘기를 해보자. 축구신동으로 자란 호나우두는 나이키의 광고모델이 되면서 의미 없는 나이키 주최 대회에 출전하고 나이키 홍보를 위해 언론을 만나느라 계속 지쳐갔다.


사진/ 러블리(11)는 학교에 가본 적이 없다. 온 가족이 하루 5개의 공을 만든다. (사진제공-글로벌마치)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도 결승전을 앞두고 발작까지 일으킬 정도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나이키와 브라질축구협회 사이의 이면계약에 따라 반드시 결승전 90분을 뛰도록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승전을 겨우 1시간 15분 앞두고 병원을 떠난 호나우두는 브라질축구협회 회장 텍세이라(아벨란제 전 FIFA 회장의 사위)의 강요로 출전해야 했고, 이 사실을 안 팀원들은 크게 분열된 채 경기에 나섰다. 관중과 시청자들은 어이없는 호나우두의 몸놀림을 봐야 했고, 결국 브라질팀은 프랑스팀에 3 대 0으로 크게 패했다.


사진/ 이 소녀는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 공을 깁느라 등이 굽었다. (사진제공-글로벌마치)


한국에서도 ‘비즈니스화한 FIFA’에 반대하는 이들이 인터넷으로 행동을 개시할 전망이다. 인터넷에서 이름이 알려진 티셔츠 행동당의 ‘왕언니’는 지난 겨울 안티피파닷컴(antififa.com) 도메인 이름을 등록했다. “월드컵은 인류의 5분의 1이 넘는 신도가 열성적으로 따르는 종교가 됐고, FIFA는 그 종교의 지도자입니다. 가입회원국 수에서 UN을 능가하죠. 하지만 과연 그에 걸맞은 행동을 보이고 있을까요?” 그는 “월드컵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FIFA의 몇몇 우두머리의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월드컵이 싫다”고 한다.

FIFA, 유사 종교의 사제

“월드컵이라는 단어를 독점해 어디서든 허가 없이는 쓰지 못하게 하고, 맥주를 못 마시게 하면서 버드와이저는 자기들이 팝니다. 티켓은 또 왜 그렇게 비싼 겁니까? 공식적으로 국가 주도 행사가 아니라 축구협회 차원의 행사일 뿐인데 왜 온 행정기관이 나서서 난리를 쳐야 하죠? 문화적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지 않고 FIFA의 이해에 얽힌 획일적인 룰에 따르는 게 싫습니다.” 그는 본업인 티셔츠를 만드는 일이 바빠 아직 사이트를 정식으로 열지는 않았지만 함께 할 사람들이 있다면 도메인을 공유하고 각종 지원을 할 생각이다(문의sister@thet.co.kr). 그는 안티피파닷컴을 “관제식·하향식 논의를 넘어서 인간적이고 수평적인 공론의 장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한다.

월드컵 열기로 넘치는 계절에 월드컵을 대하는 ‘다른 시선’을 접하는 것은 축구의 진가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축구가 ‘세계 공통의 언어’로 불리는 까닭은 그 안에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공통의 꿈과 이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글·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사진·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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