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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리티 ] 2002년01월16일 제393호 

“하루 수만명이 특허로 죽는다”

비싼 약 못 사먹어 죽어야 하는 백혈병·에이즈 환자들… 살아갈 권리는 특허에 앞선다


사진/ "살고 싶다." 현재 글리벡은 백혈병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공급되고 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한부 행복'이다.(박승화 기자)


2002년 초는 만성골수성 백혈병 환자들에게 어쩌면 ‘행복한 시절’이다. 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Glivec)이 무상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행복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한부’다. 글리벡의 제조사인 노바티스사와 보건복지부 사이에 글리벡 약값협상이 타결되면 무상공급이 끝나는 탓이다.

글리벡 특허는 살인 특허?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알씩 먹지요.”

서울시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만성골수성 백혈병 환자 김성진(40·가명)씨에게 글리벡은 ‘기적의 약’이다. 김씨는 한때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지만, 글리벡을 복용한 뒤 병세가 호전돼 지난해 9월1일 복직까지 했다. 그는 “글리벡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97년 8월 만성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병세가 점점 악화돼 2001년 3월에는 피를 토하며 쓰러져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항암치료마저 받을 수 없을 만큼 몸이 허약해진 상태였다. 주치의가 가족들에게 “장례를 준비하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에게 글리벡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김씨가 입원할 당시에는 글리벡이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다. 김씨를 비롯한 환자들이 나서서 글리벡의 조속한 수입을 청원했다. 김씨는 2001년 5월16일을 잊지 못한다. 글리벡이 국내에 도입돼 복용하던 첫날이다. 김씨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약을 먹었다”고 돌이킨다. 바람처럼 병세가 급속히 회복됐다. 지금은 완치의 희망까지 품게 된 상태.

그러나 김씨의 근심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글리벡 도입 초기부터 동정적 임상실험 대상으로 선정돼 지금까지 글리벡을 무료로 공급받아왔다. 그러나 정부와 노바티스사 사이의 약값협상이 타결되면 돈을 내고 글리벡을 사먹어야 한다. 현재 노바티스사가 요구하는 글리벡 한알 값은 2만5천원선. 노바티스사의 요구대로 약값이 타결된다면, 김씨의 한달 약값 비용은 750만원에 이른다. 의료보험에서 지출되는 비용 70%를 제외하더라도, 김씨는 한달에 글리벡 약값만으로 115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노바티스는 비판적 시선을 의식한 듯 빈곤 계층의 환자에 대해선 본인 부담금을 전액 제공한다는 카드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공정거래법에 위배되고, 보험약가 산정 기준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며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의 고시가격인 1만7천원선에서 약값이 결정돼도 김씨의 부담은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부인마저 5년째 유방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형편에 비싼 글리벡 약값을 감당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김씨의 11평짜리 셋집에는 글리벡 약통이 수북이 쌓여 있다. 양씨는 “약통마저 버리기 아까워서…”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어 그는 “내가 노바티스사를 비난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솔직히 약값 타결이 두렵다”고 고백한다.

김씨뿐 아니라 150여명의 환자들이 현재 글리벡을 무상으로 공급받고 있다. 지난해 12월2일 노바티스와 ‘글리벡 환자 비대위’가 “12월2일 전까지 글리벡을 투여받은 환자와 이후 발생환 신규 환자 중 급성기, 가속기 환자에게 글리벡을 무상 공급한다”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단, 약값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다. 무상공급은 노바티스가 정부의 글리벡 보험약가 고시를 거부하면서 비롯됐다. 노바티스는 미국, 일본 등 선진 7개국의 글리벡 약가를 근거로 2만5005원을 고수해왔다.

특허를 통한 공급독점이 비싼 값 부른다


사진/ '기적의 약' 글리벡. 제조사인 노바티스사가 요구하는 한알 값은 2만5천원선. 한알의 생산원가는 845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6월부터 지리한 승강이를 벌였지만 정부와 노바티스는 끝내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했다. 결국 보건복지부는 2000년 11월19일, 글리벡의 보험약가를 1만7862원으로 고시했다. 노바티스는 고시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약가 재심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노바티스쪽은 “글리벡처럼 혁신성이 인정되는 신약은 미국.영국.일본 등 7개국의 평균 시판 가격을 기준으로 정한다는 것이 한국 건강보험 약가의 규정”이라며 “이 원칙을 적용할 경우 캡슐당 2만5천원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월초 선진 7개국 중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글리벡 약가가 정해져 곧 재심의 신청에 들어갈 계획이다. 글리벡 보험약가 고시가 나온 뒤인 11월27일을 전후해 글리벡 공급이 차질을 빚었다. 환자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노바티스사가 약가 재심의 결과가 나오기 이전까지 글리벡을 무상공급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만약 글리벡의 약값이 2만원선으로 결정되면, 만성기 환자는 한달에 70만원, 가속기와 급성기 환자는 14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글리벡 약값 이외에 드는 치료비는 계산에 넣지 않은 금액이다.

이처럼 ‘생명연장의 꿈’은 높은 약값 앞에서 무너져내린다. 민중의료연합 공공의약팀의 정혜주씨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약값이 먹을 수 있는 가격이 아니라, 이윤을 최대화하는 가격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민중의료연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등으로 구성된 ‘글리벡문제 해결과 의약품의 공공성 확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글리벡 공대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글리벡 한알의 생산원가는 845원로 추정됐다. 노바티스가 요구한 가격의 30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처럼 원가에 비해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배경에는 ‘의약품 특허’가 자리잡고 있다. 특허를 통해 공급이 독점되면서 가격이 높아지는 것이다. 특허는 20년 동안 유효하다. 한편 노바티스쪽은 “약품의 가치는 단순 생산원가로 따질 수 없다”며 “1천5백개의 신물질 중 1개만이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받아 신약으로 탄생하기 때문에 개발투자비용 전체를 고려해야한다”고 반박한다. 연구개발 인력을 유지하는 비용, 실험 기자재 설치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포함하는 개발원가 개념으로 글리벡의 원가를 산정해야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 노바티스쪽은 개발원가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노바티스 관계자는 “수입원가는 1만7천원선”이라면서도 “개발원가는 미국의 평균 신약 개발비용 8억달러에 준한다”고만 밝혔다.

의약품에 관련한 특허권은 생명권과 충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특허권은 점점 강화되는 추세다. 1994년 체결된 세계무역기구(WTO) 산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은 지적재산권 제도를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 강화하게 했다. 기존 협약과는 달리 TRIPs 협정은 의약품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다른 공산품의 수준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협정을 통해 의약 특허는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과 최빈국들에 ‘강요’되고 있다. 특허권이 강화되는 추세 속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 곳은 에이즈로 시달리는 아프리카다.

에이즈로 목숨을 잃는 환자는 하루에 8천명에 이른다. 이 중 95%가 저개발국가의 환자들이다. 에이즈는 치료약을 복용하면 20년까지 목숨을 연장할 수 있는 만성질환이 되었다. 그러나 ‘관리가능한 병, 에이즈’라는 개념은 선진국에 국한된 얘기다. 미국과 유럽의 에이즈 환자 중 85%가 에이즈 치료제인 AZT를 복용하는 반면, 타이의 HIV 감염인은 겨우 1%만이 이 약을 복용하고 있다. 케냐에서 에이즈 치료에 필요한 필수 의약품을 투여받고 있는 환자들의 비율은 0.043∼0.086%에 불과하다. 에이즈 치료제의 1년 복용 비용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평균 1인당 국민총생산(GNP)의 10배에 이르는 탓이다. ‘글리벡 공대위’ 관계자들은 “하루에 3만7천명이, 연간 1400만명이 특허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세계 의약시장의 뒤틀린 구조

특허로 인한 죽음이 지속되는 이유는 전세계 의약품 시장 구조와 관련돼 있다. 세계 의약시장은 80 대 20으로 분할된다. 북미와 유럽, 일본시장을 합친 시장규모가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나머지 개발도상국과 최빈국을 합한 시장규모가 20%. 그 중에서 전체 아프리카가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수는 개도국과 최빈국이 80%를 차지한다. 그러나 구매력에 따라 약값은 ‘중심부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최고 가격’으로 매겨진다. 노바티스사가 글리벡의 약가를 ‘전세계 동일가격 수준’으로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흔히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는 투자비용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진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데, 제약회사가 이윤을 회수하지 못한다면 지속적인 신약개발이 어려울 것이라는 질문이다. 그러나 ‘개발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상식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공유지적재산권 모임(IPLEFT)의 남희섭 변리사는 먼저 대부분의 신약개발은 제약회사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일반적인 추측과는 달리 특허약물 중 많은 것들이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나 학교에서 초기 개발을 시작했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소(NIH)가 2000년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잔탁, 프로작 등 가장 많이 팔리는 5가지 약물의 개발에서 공적 자금 투여에 의한 연구가 77∼95%를 차지한다.

글리벡의 개발 공로도 노바티스사만의 몫으로 보기 힘들다. 노바티스사는 1993년 미국 오레곤 암센터 과학자들과 공동으로 암발현 단백질의 활동을 억제하는 화학물질인 STI571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8년 뒤인 2001년 5월, 글리벡은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얻어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글리벡의 개발은 백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30년의 연구토양 위에 피어난 꽃이다.

미국 암연구센터(National Cancer Institute) 등의 자료에 따르면, 1960년 한 과학자가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에게서 특이한 염색체 이상을 발견했고, 그뒤 수많은 과학자들이 염색체 이상이 어떻게 암을 일으키는가를 밝혀냈다. 이런 토대 위에 암의 발현을 차단하는 새로운 물질인 STI571이 개발된 것이다. 게다가 노바티스가 비용부담을 이유로 개발을 포기하려 하자 2천명이 넘는 백혈병 환자들이 FDA에 탄원을 냈다. 탄원에 힘입어 글리벡은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았고, 연구비 지원, 개발비용에 대한 세금 혜택이 잇따랐다.

투자에 대한 보상? 과도한 보상!


사진/ 에이즈로 죽은 어린 소녀의 관을 들고 미국대사관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하는 남아프리카 에이즈 환자들. 특허권이 강화되는 추세속에 가장 큰 희생을 치르고 있는 곳은 에이즈로 시달리는 아프리카다.(GAMMA)


‘투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주장은 또 ‘과도한 보상’이라고 반박당하기도 한다. 독점 가격으로 거둬들이는 이윤이 제약기업의 혁신비용과 투하 자본의 회수 수준을 훨씬 초과한다는 것이다. 제약산업의 순이익률은 18.6%. 지난 5년 동안 가장 이윤이 높은 산업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10대 제약회사의 2000년 총매출액은 약 2천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다. 시장점유율도 독점상태다. 전세계 상위 10대 제약회사가 세계시장의 40%, 50개 제약회사가 90%를 독점하고 있다. 그래서 제약산업은 “냉전시대의 군수산업보다, 신자유주의시대의 금융산업보다 수익률이 높은 산업”으로 불린다.

2001년 11월14일, 특허권을 무기로 한 다국적 제약회사의 독점적 전횡에 제동을 거는 국제선언이 채택됐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TRIPs 협정과 공중보건에 관한 선언이 채택된 것이다. 도하 선언문은 “TRIPs 협정이 공중보건을 보호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조처를 방해하지 않으며, 방해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민중의료연합의 김소영씨는 “의약품의 접근성 확보를 비롯한 공공의 건강보호가 제약회사의 특허권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풀이한다. 이 선언은 에이즈로 공중보건의 위기가 심각한 아프리카 회원국들을 비롯해 80여개 저개발국가들이 힘을 합쳐 끌어냈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독점적 이익을 보장하는 특허권을 제약할 수 있는 수단으로는 ‘강제실시권’이 있다. 강제실시란 특허권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부가 국내 특정회사에 특허를 부여해 약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강제실시권이란 국가가 특허권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특허권자가 아닌 제3자에게 그 상품을 생산하도록 명령할 권리를 말한다. 2001년 8월, 브라질 정부가 에이즈 치료제인 ‘넬피나비어’에 대해 강제실시를 발표했다. TRIPs 31조는 국민보건의 응급상황에서 비상업적 목적일 경우, 강제실시를 할 수 있도록 명기하고 있다. 브라질이 최초로 이 조항을 적용한 것이다.

브라질 정부의 강제실시권 발동 발표가 나온 직후, 넬피나비어의 제조회사인 로체는 브라질에서 자신들의 특허를 계속 인정받는 대신 2002년에 약값을 40%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노력으로 브라질에서 3가지 약물을 섞어 쓰는 에이즈 치료법인 칵테일 요법이 1인당 연간 4천달러로 낮아졌다. 미국 비용 1만5천달러의 4분의 1에 가까운 수준이다. 97년 이후 공공제약회사를 설립해 에이즈 치료제를 무상으로 공급해온 결과, 브라질의 에이즈 사망률과 감염률은 그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글리벡에 ‘강제실시권’ 실행될까

한국의 특허법 107조에도 ‘재정에 의한 통상실시권’이라는 명칭으로 강제실시권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아직 한번도 청구된 적이 없다. ‘글리벡 공대위’가 최초로 글리벡에 대한 강제실시권 청구를 검토하고 있는 상태. ‘글리벡 공대위’쪽은 “아직 구체화된 것은 아니지만, 강제실시권 청구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고 밝힌다. 그러나 미국과 다국적 제약자본의 통상압력과 소송 때문에 강제실시권 청구가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글리벡의 경우, 최초로 환자모임이 결성되고 적극적인 문제제기에 나서서 비로소 ‘사회문제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이성미 사무처장은 “특허권에 의해 접근을 제약받는 약품들이 적지 않다”며 “가계를 파산으로 몰고 가고, 보험재정에 큰 짐을 안기는 특허약값 문제에 계속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글리벡의 경우처럼 환자들의 생명연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의약품 특허권, 그 ‘신성한’ 권리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면 지구촌 곳곳에서 우리 이웃에서 억울하게 죽어가는 목숨들은 늘어갈 것이다. 민의련 정혜주씨는 “환자들의 몸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약장에 진열되어 있는 약이 무슨 소용이냐”고 되묻는다. 살아갈 권리는 특허권에 앞선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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