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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마이너리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1년02월07일 제3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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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총을 들 수가 없어요”

묻혀져왔던 ‘여호와의 증인’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그들이 갈 곳은 감옥뿐인가

자줏빛 미결수복을 걸친 청년은 고개를 돌려 잠시 방청석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응시한 뒤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판사님과 검사님. 저는 여호와를 숭배하는 백성으로서 성서적 양심을 지키고자 입영을 하지 않고 자수하여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저는 국가적 관점에서 보면 처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의를 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워치타워협회 “1천명 이상 수감”


△ 개인의 양심에 따라 총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인가. 신병교육대 훈련 모습.
(사진/ 이정용 기자)

1월11일 정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352호 법정. 병역법 위반으로 구속된 스물두살의 청년 이낙근씨가 최후진술을 하고 있었다. 짧은 최후진술을 끝으로 재판은 5분 만에 끝났고 검사는 2년형을 구형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1월18일 2년형이 선고되었다.

이씨처럼 종교적 양심이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한다. 80년대 한때 정치적 이유로 군입대를 거부하는 청년들이 있었지만 90년대 이후 거의 사라지고, 현재 우리 사회에 남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집단은 이낙근씨 같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유일하다.

기독교계에서 여호와의 증인은 이단시되는 현실이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만큼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의 옳고 그름은 관심 밖이다. 다만 총력안보가 절대선이 되고 국가권력이 개인의 인권을 압도했던 역사 속에서 의식적인 은폐이든, 무의식적인 외면이든 이들의 양심적 병역거부는 묻혀져 왔다. 종교인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라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시민으로서 이들에 대해 말문을 트자는 얘기다.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김두식 변호사는 “그들의 교리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된 그들의 인권은 보호돼야 한다”고 말한다.

여호와의 증인의 한국 지부인 ‘워치타워 성서책자 협회’(이하 워치타워협회)에 따르면, 90년대 매년 500명 이상의 청년들이 집총을 거부해 교도소로 향하고 있으며 현재 전국 각 교도소에 수감된 인원은 1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워치타워협회는 “자체적으로 전국 30여개 교도소에 수감된 여호와의 증인들을 집계한 결과”라며 신빙성을 주장한다. 반면 병무청, 국방부, 법무부는 서로 책임 소재를 미루며 “공식통계가 없다”는 궁색한 답변만 되풀이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99년 통계로 현역군인 중 집총 거부자가 10여명”이라는 비현실적인 답변을 늘어놓았다.


△ 장호원에 위치한 육군교도소. 수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사진/ 이용호 기자)

1965년 이래 대법원의 판례는 일관되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항상 “종교의 교리를 내세워 법률이 규정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이른바 양심상의 결정은 헌법에서 보장한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동국대 법학과 한상범 교수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초실정법적인 양심의 자유와 실정법상의 국방의 의무가 충돌하는 문제”라고 전제한 뒤 “치밀한 논리적 검증없이 실정법만을 앞세워 처벌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지적한다.

늦겨울 눈발이 안양교도소 담벼락에 흩날리던 2월2일 오후 3시. 담 너머 접견실로 푸른 수의의 청년이 들어왔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낀 홍태규(23)씨는 “사동 청소일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며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유순한 인상과는 달리 홍씨의 죄명은 군법상 ‘항명죄’. 지난해 6월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홍씨는 집총을 거부해 항명죄로 군사재판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다. 장호원 육군교도소를 거쳐 이곳에서 9개월째 복역하고 있다. 앞선 이낙근씨가 입영 자체를 거부한 예외적 경우인데 반해, 일단 입소 뒤 집총을 거부한 홍씨는 여호와의 증인 청년들이 걷는 전형적인 길을 보여주는 예다. 대부분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95년 이후 항명죄의 법정최고형인 3년형을 선고받고 있다. 힘들겠다는 위로에 홍씨는 “후회는 없다”면서도 “군복무를 대신할 대체 봉사제도가 마련돼 후배들은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친다.

대체 봉사제도 도입 논의할 때

홍씨의 바람처럼 독일, 대만 등 많은 나라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 봉사제도가 마련돼 있다. 대체 봉사제도는 현역 복무를 대신해 말기환자 돌보기, 쓰레기 수거, 소방, 경찰 업무 등 공익적인 일을 맡아 하는 것이다. 대부분 나라에서 근무기간이 현역군인보다 더 길다. 서울대 법학과 한인섭 교수의 논문 ‘왜 소수자·약자의 인권인가’에 따르면 독일은 헌법에 양심상의 이유로 인한 집총거부권을 명시하고 있고, 미국도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등을 거치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정책대안을 마련해 왔다. 심지어 아랍권과 대치상황에 있는 이스라엘도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선진국뿐 아니라 브라질, 수리남 등 제3세계 국가로 확산되고 있으며, 그 이유도 종교적 양심뿐 아니라 정치적 신념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분단국가인 대만도 군병력을 감축하면서 지난해 9월 대체 봉사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대만의 병역거부자들은 22개월의 현역 복무를 대신해 33개월 공익근무를 하게 됐다. 지난 한해 동안 여호와의 증인 27명과 승려 3명이 대체 봉사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세계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대체 봉사제도의 도입이 공식적으로 논의조차 된 적 없다. 국방부 관계자는 안보 환경을 이유로 들며 “아직 대체 봉사제도의 도입이 검토된 적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한편으로 “대체 봉사제도가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군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에 대해 워치타워협회 정운영 홍보팀장은 “대체 봉사자의 자격심사를 엄격히 하고 대체 봉사를 현역 복무 보다 더 힘들게 만들면 부작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군복무 기간보다 더 길고, 더 힘든 대체 봉사를 기꺼이 감수할 의사가 있다”고 덧붙인다.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사회생활을 시작할 나이인 20대에 전과자가 되고, 그 낙인은 평생 걸림돌이 된다. 전과기록 탓에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하기 어려운 것이다. 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은 취업 기준이 엄격하지 않은 중소기업에 알음알음으로 들어가거나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는 형편이다. 공대를 졸업하고 학습지 영어교사를 하는 김형민(31)씨는 “병역거부를 결심하면서 학자의 꿈을 접어야 했다”며 “대체 봉사제가 도입돼 나같은 좌절을 겪는 사람들이 없어졌으면…”이라고 말꼬리를 흐린다.


△ 양심적 병역거부자 최준씨. 현역 중장이었던 아버지도 그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다.
(사진/ 박승화 기자)

병역을 거부하는 당사자 못지 않게 가족들도 큰 괴로움을 겪는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최준(29)씨는 자신의 병역거부 때문에 현역 중장이었던 아버지가 군복을 벗은 경우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여호와의 증인이었던 최씨는 94년 1월 방위병으로 입소했지만 집총을 거부했다. 최씨의 병역거부 사실은 곧 군수사령관으로 근무하던 아버지에게 전해졌다. 아버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만류했지만 최씨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예편해야 했고, 최씨는 병역거부로 실형을 살았다. 최씨는 그때를 돌이키며 “내 양심 때문에 아버지가 피해를 입는다는 게 너무 괴로웠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한 가족 내에서 형제들이 연이어 감옥생활을 치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사는 여호와의 증인 이금철(47)씨는 지난 설날 특사로 맏아들 강태희(22)씨가 석방돼 뛸 듯이 기뻤지만 아직 완전히 시름을 벗지 못했다. 지난 7월 병역거부로 수감된 둘째아들 태승(21)씨가 아직 교도소에 있는 탓이다. 이미 이씨는 90년대 초 병역거부자인 두 동생들 뒷바라지로 지쳐 있는 터였다. 이씨는 “동생과 아들이 감옥에 들어간 뒤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당사자의 고통과 가족의 시름이 이렇게 깊음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아직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다. 동국대 법학과 한상범 교수는 이를 “내면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권력의 간섭에 맞서 투쟁한 역사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제시대 땐 독립투사 대우?

여호와의 증인의 입장에서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징병거부일 뿐이었지만 시대상황에 따라 징병거부에 대한 평가는 달라져 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참전을 거부해 수용소에 감금당하고, 대량학살되었다. 일제시대에도 여호와 증인들은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한 몇 안 되는 종교집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군사정권 시절, 이들의 병역거부는 ‘이적 행위’ 의혹까지 받았다. 워치타워협회 정운영 홍보팀장은 “우리는 똑같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징병을 거부했을 뿐인데도 시대상황에 따라 어떤 경우는 독립투사가 되고, 어떤 경우는 형사처벌을 받는다”며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가 어디 있느냐”고 쓴웃음을 짓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는 길은 물리적으로는 군비축소로, 정신적으로는 관용으로 나 있는 듯하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