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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성역깨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3년12월26일 제4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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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경찰, 아직도 그렇게 사는가

80~90년대 첩보활동의 노하우가 정리된 20여건의 ‘치안실무사례보고서’ 단독 입수

80~90년대 정보경찰들은 어떻게 첩보수집활동을 벌였는가. <한겨레21>은 당시 그들의 노하우를 보여주는 20여건의 ‘치안실무사례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그들은 지금도 그렇게 일하고 있을까?

정보경찰의 업무는 어디까지일까. 지난 1980~90년대 노동계와 재야단체, 학생,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찰활동으로 악명을 떨쳤던 정보경찰들은 어떻게 ‘동향’을 파악했을까.

<한겨레21>이 단독으로 입수한 20여건의 ‘치안실무사례보고서’에는 첩보수집의 방법부터 공작대상, ‘성과’ 등 ‘노하우’가 잘 정리되어 있다. ‘치안실무사례보고서’는 경찰대학에서 경감·경정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고급간부 과정’과 총경 대상의 ‘관리자 과정’에서 발표되는 일종의 사례 자료집이다. 이 과정은 직급 승진을 위한 필수과정으로, 자신이 처리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분석한 보고서는 발표·토론한 뒤 경찰대학 도서관에 ‘대외비’로 분류·보관된다.


△ <한겨레21>이 입수한 ‘치안실무사례보고서’는 경찰간부들이 자신이 처리한 사건을 분석해놓은 일종의 사례집이다. ‘망원활용’과 ‘사찰’을 포함한 정보활용의 ‘노하우’는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일선 경찰서에 전파되고 학습된다.(류우종 기자)

“형 · 동생” 하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라

지난 1995년 울산 현대자동차에서 일어난 해고자 양봉수(당시 28살)씨 분신사건 당시, 울산동부경찰서 정보과장이던 ㄱ씨가 이듬해 정리한 ‘노사문제와 정보경찰의 역할’에는, 노사분규를 보는 경찰의 시각과 개입 현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양봉수 열사 분신사건’은 현대차 해고자인 양씨가 95년 5월12일 복직을 요구하며 휘발유를 몸에 뿌리고 불을 붙여 3도화상을 입은 뒤 33일 만에 숨진 사건이다. 당시 임금협상이 진행 중이던 현대 계열사들은 전면 파업에 들어갔고, 결국 경찰은 공권력을 투입해 전면 파업 3일 만에 ‘상황 종료’시켰다.

얼핏 흔한 분규와 진압작전으로 보이지만, 이 안에서 이뤄진 정보경찰의 ‘치열한’ 사찰활동은 ㄱ씨의 보고서에 잘 드러나 있다. ㄱ씨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 “지속적인 순화설득으로 노조간부와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도록 하여 정보요원과 형·동생 하는 인간관계를 유지해 정보요원과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통해 “성공적인 초동작전으로 현대자동차의 분규 확산을 막아 무분규 원년을 창조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

△ 강재훈 기자

우선 ㄱ씨의 보고서에는 당시 노동운동의 핵심이었던 현대그룹노조총연맹(현총련) 의장 ㅇ씨의 가족관계와 학력·병역사항·노조경력·전과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ㅇ씨의 봉급 수준은 물론 “부인이 학원을 경영하여 월 300여만원 소득으로 중류 이상 생활” “부모가 군 리 번지에 전세를 얻어 살고 있다”는 등 가족관계까지 매우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어, ㅇ씨에 대한 경찰의 사찰이 오랜 기간 이뤄졌음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정보과 형사들은 평소 노조간부들과 친분을 쌓은 뒤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일산해수욕장에서 현총련 주관 집회를 개최한다고 하는데, 집회를 최소화하라” “조직적인 인원 동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등 노조간부를 상대로 ‘순화’ 작업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양봉수씨 분신 이후 경찰의 움직임은 더욱 바빠졌다. 양씨의 상태가 악화되면서 당시 경남지방경찰청장은 직접 현대자동차 부사장과 관할 서장을 불러 “양봉수의 아버지가 현대차 근로자들에게 사주를 당해 ‘노동자장’ 등 새로운 분규 이슈가 발생할 수 있으니,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도록 조처를 취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근로자 참석 저지, 재야, 학생, 노동단체 연계 차단 등 열기 확산 방지에 주력”했다. 임금협상에 어려움을 겪던 현대정공에서는 아예 담당형사가 공장장과 노조부위원장을 불러 임금교섭을 ‘중재’해, “경찰의 중재를 계기로 임금협상이 조기 타결”되는 ‘성과’를 올리는 등 단순 노사문제에도 깊숙이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총학생회장, 비운동권 당선에도 개입

ㄱ씨는 “손자병법의 ‘지피지기 백전불패’ 교훈을 명심하여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핵심간부의 성장과정, 가족관계, 성향, 친구, 좋아하는 음식, 잘 다니는 집, 수배시 도피 예상 장소 등 신상문제를 사전에 정확히 파악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폭넓은 사찰활동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대목이다.

1987년 작성된 ‘노동분야 집단사태 예방을 위한 정보활동 강화 방안’에는 이러한 ‘정보활동’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돼 있다. 우선 ‘노조 핵심요원’이나 ‘노조 집행부에 불만이 있는 자’ ‘회사의 수위나 식당, 매점, 세탁소, 청소원’ 등을 망원 대상으로 삼아, ‘길흉조사에 부조’를 하고 ‘애로사항을 파악해 적극 지원’하거나 ‘중요한 시기에는 비용도 지급’하면서 포섭한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 인물이나 단체의 동향 파악을 위해서는 주변 식당이나 매점에 고정 첩보원을 배치하도록 했다. 또 분규 주동자에 대해 다른 직장을 알선하거나 결혼을 주선하는 회유책 또는 사규에 의한 해고조치 등 강경책을 구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중심에 섰던 대학가에 대한 사찰 내용은 더욱 흥미롭다. 1988년 7월, 고급간부 과정에서 발표된 ‘학원요원 제도 개선방안 및 학원 안정책에 대하여’라는 보고서를 보면, 당시 서울시 경찰국은 서울시내 56개 대학에 460명의 정보요원(A·B요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A요원은 일선 경찰서 정보과 형사로 ‘각종 학원 관련 예고 첩보수집’ ‘학원 망원 관리’ ‘불법행위 우려자 동향 감시’ 등을 맡았으며, B요원은 학기가 시작되면 각 파출소에서 파견돼 ‘학교 출입문에 배치해 등·하교생 동향 파악’ ‘대학 주변 인쇄소 및 복사업소, 하숙, 자취집 점검’ ‘재야 등에서 주관하는 각종 문제 집회에 동원해 동태 파악’ ‘상황 종료시 귀가자 추적조 운용’ 등을 맡았다가, 방학이 되면 다시 파출소로 복귀하는 형태로 운용됐다.

△ 지난 1995년 분신한 현대자동차 양봉수씨를 동료들이 추모하고 있다. 당시 관할 정보과 형사들은 노조간부를 지속적으로 사찰하고, 단순 노사문제에도 깊숙이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다.(한겨레 이종찬 기자)

아예 ‘건전세력’의 총학생회장 당선을 위해 선거에 깊숙이 개입하기도 했다. 1986년 당시 서울 노량진경찰서는 2명의 운동권 후보가 출마한 중앙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학교 당국과 긴밀한 협조 아래 노량진서에서 직·간접으로 지원한” ㅇ씨를 출마시켜 당선에 이르게 했다. 경찰은 ㅇ씨의 당선을 위해 다른 후보자 ㅂ씨의 선거문건의 원본과 복사본을 인쇄소에서 회수하고, ㅂ씨의 선거운동본부 관계자들을 수배하는 등 다른 후보의 선거운동을 막았다. 또 운동권 진영의 후보 2명이 단일화할 기미가 보이자, 학교가 두 후보를 각각 접촉해 모두 출마하도록 권유하도록 해 표를 분산시키는 ‘치졸한’ 방법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부정선거’라고 반발하면서 총학생회 선거는 다시 이뤄졌고, 새로운 학생회장이 뽑히면서 ‘건전한’ 총학생회장 ㅇ씨는 사퇴하게 된다. 이렇게 경찰의 ‘건전학생회 수립’ 노력은 끝이 났다.

이처럼 모든 ‘공작’ 사례가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부 보고서에는 정보경찰의 ‘애환’이 묻어나기도 한다. ‘1989학년도 상반기 경북대학교 학원사태 분석 및 대책’에는 전경 출신 총학생회장이 당선되면서 느끼는 정보경찰의 ‘고뇌’가 담겨 있다. 총학생회장인 ㄱ씨가 경찰 내부 사정을 잘 알아 경찰을 적대시하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첩보 입수가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의경 출신의 ‘문제권’ 학생들이 기동대가 아닌 각 경찰서의 방범순찰대나 행정중대가 나오면 얕잡아보고 겁 없이 공격하게 해 부대 전술에 상당한 지장을 주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보활동비의 부족도 사기를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 보고서는 “전에는 문제권 학생들과의 대화시 커피 한잔, 점심 한끼에도 대화가 이뤄지고 협조가 되었으나, 최근에는 맥주나 불고기로 대접을 해야 대화가 이뤄지는 형편인데도 정보활동비는 변함이 없다”며 불만을 표시한다.

비록 이 보고서들이 1980~90년대에 작성됐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정보활동의 ‘노하우’는 여전히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경찰간부들에게 전파되고 학습되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첩보수집 기법은 비슷

‘치안실무사례보고서’의 대부분은 불법 사찰과 개입 등을 통해 노조나 총학생회를 와해시키는 것을 ‘성과’로 내세우고, 실패하면 ‘반성’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한 경찰은 “간부급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이기 때문에 이들이 ‘보고 배운 것’들은 자연스럽게 일선 경찰서에서 활용돼왔다”며 “정보업무는 대부분 예전부터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적법과 불법의 경계도 매우 모호하다”고 털어놨다. 물론 ‘관행’에는 ‘망원 활용’과 ‘사찰’이 포함된다.

△ 1980년대 대학가에 대한 사찰도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경찰은 ‘학원정보요원’을 대거 투입해 동향 파악에 나서는가 하면, 아예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의 당선을 위한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강재훈 기자)

정보과는 ‘사회적 안전과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해 사회불안 요소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을 하는 특수부서’로 정의되지만, 사실 ‘사회적 안전’이나 ‘국가이익’ ‘사회불안 요소’라는 것은 자의적으로 해석될 위험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 경찰관직무집행법은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의 직무’를 경찰에게 부여하고 있지만, 헌법은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못박고 있다. 한 경찰 간부는 “‘공공의 안녕’을 위해 경찰이 첩보수집 활동을 벌이는 것과 국민의 기본권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경찰 내부에서도 ‘동향’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거나, 정보수집 업무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지난 1998년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과 관련해 “민간인을 대상으로 평소의 동향을 감시, 파악할 목적으로 사생활에 관한 정보를 미행, 망원 활용, 탐문채집 등의 방법으로 수집했다면 이는 헌법에 의해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장주영 변호사는 “이 판결은 비록 보안사의 민간인에 대한 사찰행위가 위법이라는 것이지만, 경찰이나 국정원이 벌이고 있는 사찰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보안실무사례보고서’는 지금도 작성돼 경찰대학 도서관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바뀌었지만 첩보수집 기법은 비슷하다고 경찰은 귀띔한다. ‘사회적 안전과 국가이익’을 위해 노조를 와해시키고 학생들을 분열시키는 ‘책동’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을까. 정말이지 한번 ‘훔쳐보고’ 싶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