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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뿌리통신 ] 2001년09월11일 제376호 

일 끝나면 시의회로

방청객으로 참가한 주민들이 곧 주인공… 미국 민주주의의 토양인 지방자치단체를 돌아보다


사진/ 스미스필드 시의회 모습. 의원석이 방청석을 향해 있다. 주민을 중심에 둔 미국 지방의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공간배치이다.


충남 당진의 지역언론인 주간 <당진시대>가 참여하는 바른지역언론연대는 최근 8박9일 일정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 스미스필드, 제블론, 랄리, 캐리 등의 자치단체들을 방문하는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미국의 풀뿌리 지방자치 현장을 우리나라 대표적 풀뿌리신문 <당진시대> 기자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본다. 편집자

존스톤 카운티의 스미스필드 타운을 방문한 연수단 일행은 그곳 시의회에서 조금은 특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넓은 방청석과 자리를 가득 메운 주민들, 방청석을 향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의원석, 그리고 회의장에 가득한 뜨거운 열기는 연수단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국 시의회의 특징을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은 무엇보다 독특한 공간배치였다. 놀랍게도 회의장의 대부분은 방청석이 차지하고 있었다. 의원석은 회의장 가장 안쪽에 한 줄로 방청석을 향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따라서 의원들은 방청석을 정면으로 마주보며 회의를 진행했고, 방청석의 주민들도 의원들의 뒷모습이나 옆모습이 아닌 앞모습을 바라보며 의정활동을 지켜볼 수 있었다.

반바지 차림의 시장님

또한 이날 회의의 개회시간이 저녁 7시였다는 점도 우리를 놀라게 했다. 저녁시간에 회의를 개최함으로써 직장에 다니는 일반주민들이 퇴근 뒤에 자유롭게 방청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그들의 높은 민주주의적 태도는 연수단을 주눅들게 할 정도였다. 회의는 진지하고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미국의 시의회는 자치단체장이 상정한 안건만을 형식적으로 심의하는 소극적인 역할의 우리 지방의회와 달리 시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의결기관이다.

스미스필드의 시의원들이 서로의 입장을 자유로이 토론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깊었지만, 특히 시의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빌 조던(Bill Jordan) 시장의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시장은 토론이 지나치게 격렬해지는 듯하자 책상을 탕탕 치며 분위기를 수습하고는 토론을 다시 진행시켰다.

미국의 시장은 시 행정을 대표하면서 동시에 시의회의 의장을 맡는다. 그러나 자치단체장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된 우리나라와 달리 시의 정책결정은 의회의 몫이며, 따라서 시장이 자신의 뜻대로 의사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시의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연수단이 볼 때 이날 회의의 하이라이트는 방청석의 주민발언 시간이었다. 의원들의 발언이 거의 마무리되고 회의가 종반을 치닫게 되자 시장은 방청석에 앉아 있던 주민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방청석의 주민들이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은 다음 의원석으로 다가가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단순히 경청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직접 의회에서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있는 그들의 성숙한 민주주의는 질투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웨이크 카운티의 제블론 타운은 인구 4500명의 아주 작은 도시였다. 현지 지역신문 발행인의 안내를 받아 방문한 시청에서 시의원 및 자치단체의 각 부서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도중 조금 늦게 시장이 도착했는데, 놀랍게도 반바지 차림이었다. 로버트 매스니(Robert S. Matheny) 시장은 조금은 놀란 표정의 우리에게 “일하던 도중 연락을 받고 오느라고 옷차림이 이렇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시장은 비상임으로 대부분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시장직을 수행한다. 그렇다고 시정에 소홀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매스니 시장은 시의 연혁과 함께 시 행정과 의회의 역할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했으며, 지역의 현안문제에 대한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외국손님을 맞이하면서도 반바지 차림에 이웃집 할아버지와 같은 편안한 인상으로 대하는 매스니 시장을 통해서 권위적이기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함께하는 미국 자치단체장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난개발을 온몸으로 거부하다


사진/ 반바지 차림의 로버트 매스니 제블론 타운 시장. 미국의 시장은 대부분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시장직을 수행한다.


웨이크 카운티 캐리 타운의 글렌 랭(Glen Lang) 시장은 정치적 소신이 무척 뚜렷한 정치인이었다. 랭 시장은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특정 단체의 지역유지들이 정계와 언론 등에 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지역의 주요 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던 관행을 취임 이후의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개혁한 인물이다.

캐리 타운은 전통 농업사회에서 최근 IBM, MCI 등 첨단 정보통신업체가 입주하면서 급격한 성장과정에 있는 도시로, 노스캐롤라이나에서도 비교적 고소득을 올리는 중산층 이상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런 영향 때문에 주민의 70% 이상이 보수적인 공화당 성향을 띠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랭 시장은 민주당 성향으로 개혁적인 시 행정을 주도하고 있었다.

랭 시장은 급격한 발전과정에서도 난개발을 막기 위해 도시계획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규모 토지개발업자들의 로비가 있었지만 도시계획을 준수하도록 하고 상급 자치단체의 무리한 개발요구가 있을 경우 해당지역을 공원지역으로 지정해 개발을 ‘원천봉쇄’한다고 한다. 또한 토지를 공공적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데 있어 보상협의를 거부하는 토지 소유자에 대해서는 공시지가에 의해 토지를 강제수용한다고 한다.

랭 시장은 “자신의 땅에 무엇을 짓느냐에 따라 주위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며 사유 재산권과 공익과의 균형을 강조했다. 심지어 캐리 타운에서는 사회의 공익을 위해 개를 두 마리 이상 키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시 행정의 특징은 소도시 시가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연수기간 동안 방문한 소도시들은 한결같이 건물이 낮고 녹지공간이 충분히 확보돼 있었다. 이에 대해 동행한 한국언론재단 김택환 박사는 “미국의 소도시들은 주변 경관을 살리기 위해 모든 건물에 대해 높이를 제한하고 충분한 녹지공간을 확보하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농촌에도 고층 아파트를 마구 지어 스카이라인을 망가뜨리는 ‘무례함’도, 콘크리트 건물을 다닥다닥 붙여 숨을 막히게 하는 ‘답답함’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사유재산권을 존중하면서도 공익을 위해서는 그것을 과감하게 제한할 줄도 알았다.

연수단이 이번에 방문했던 자치단체들은 미국의 행정단위상 타운(Town)으로 인구가 불과 몇천명에서 10만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의 읍·면·동 정도에 해당하는 행정단위인 미국의 타운은 비록 적은 인구이지만 주민자치를 위한 모든 구성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이들 타운의 지방자치는 시장을 포함한 10명 안팎의 시의원에 의해 실시되고 있었다.

경찰·소방업무도 자치적으로 운영

미국은 또한 경찰과 소방업무도 자치적으로 운영한다. 경찰서장은 시 정부에 의해 임명되며 경찰관들에 대한 인사권을 갖는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자치단체장과 경찰서장이라는 공권력의 이원화가 발생하지 않는다. 경찰권이 없는 지방자치는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일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방자치는 독립전쟁 이후의 본격적인 국가형성 시기와 역사적 맥락을 같이한다.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정치·경제·사회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영국 군대와 총칼로 맞섰던 역사적 전통은 미국 지방자치의 오늘을 있게 한 동력이라 할 수 있다. 그들에게 피를 흘리며 지킨 자유와 자치, 시민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일 수밖에 없다.

합리주의적 문화 속에 형성된 그들의 민주적 가치는 오랜 세월을 통해 형성된 지방자치제에 의해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비한다면 우리의 지방자치제는 기득권 세력의 가치에 의해 취사선택된 이식 제도와 전근대적 문화가 융합해 만들어낸 왜곡된 제도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지방자치제도는 지방자치제의 관건이 지역주민, 즉 풀뿌리의 가치가 얼마나 제대로 관철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글·사진 유종준/ 당진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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