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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뿌리통신 ] 2000년10월24일 제331호 

[풀뿌리통신] ‘부용산’을 아십니까

가슴속으로만 흘렀던 아름다운 가사와 애절한 곡조, 50여년만에 노래비로 부활하다


(사진/노래비 앞에 선 박기동 시인. 금지곡이 되다시피한 노래의 작사가라는 이유만으로 70년 이후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아야 했다)


감히 소리 내어 부르지 못하고 가슴속으로만 불렀던 노래 <부용산>이 50여년 만에 노래비로 부활했다. 아름다운 노래말과 애절한 곡조로 사랑받았던 노래 <부용산>의 시비가 지난 10월1일 전남 보성군 벌교읍 부용산 오리길에 세워진 것. 제막식에는 노랫말을 쓴 시인 박기동(82·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거주)씨와 작곡가 고 안성현의 미망인 송동을씨 등 많은 출향민들이 모여들었다.

‘월북’ 안성현 작곡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용산>은 박기동씨가 1947년 스물네살 꽃다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누이의 주검을 묻고 돌아와 쓴 시에 목포 항도여중에서 함께 재직하던 안성현(월북· <엄마야 누나야> 작곡가)이 1948년 곡을 붙인 노래다. 수년 전,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남재희씨가 어떤 인터뷰에서 “남도에서 <부용산> 모르면 간첩”이라며 열창할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곡이다.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부용산 산허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노래 <부용산>은 해방과 전쟁 뒤 폐허라는 당시 상황과 어우러져 당대의 최대 히트곡이 됐지만 작곡가 안성현이 월북하면서 지하에 묻히고 말았다. 한국전쟁 때 작곡가 안성현이 무용가 최승희와 함께 월북하자 이 노래도 공식무대에서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당시 빨치산이 즐겨 불렀다는 이유로 가슴과 가슴속에서만 불려지게 되었다.

“노래가 자신들의 신세와 비슷해서 그들이 즐겨 불렀던 것 같아요. 작곡가 안성현은 목포항도여중 교사 시절 저와 단짝이었는데, 예술을 좋아하는 <엄마야 누나야> 같은 낭만주의자였어요.” 박 시인은 “안성현의 아름다운 곡조 때문에 <부용산> 시가 살았다”며 작곡가에게 그 공을 돌렸다.

이런 <부용산>의 사연이 지식인들에게 알려지면서 노래는 빛을 보기 시작했다. 1997년 가수 이동원과 안치환에 의해 처음 무대에서 불려졌고 지난 5월13일과 14일에는 ‘삶과 꿈 싱어즈’에 의해 포항공대와 포스코 공연에서 합창으로 소개됐다. 또 5월29일에는 전남 목포에서 열린 소프라노 송광선(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초청음악회에서 불려졌다. 송광선씨의 초청음악회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살던 박기동 시인이 가사 1절이 나온 지 52년 만에 2절을 보내와 처음으로 공개된 자리이기도 했다. 가사 2절에는 1절의 애상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모국을 떠나야 했던 시인 박기동의 꿈


(사진/노래비 제막식에 모여든 인사들. 왼쪽에서 네번째가 작곡가 고 안성현의 미망인 송동을씨다)


“부용산은 어머니 같은 산이에요. 지인이 2절을 붙여 달라기에 썼는데, 다 쓰고 나니 가슴이 먹먹했어요.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 있으니’ 이 대목을 쓰고 나서는 많이 울었어요.”

팔순의 노 시인은 먼 타국 땅에서 52년 만에 <부용산> 가사 2절을 써놓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금지곡이 되다시피한 노래의 작시가라는 이유로 70년 이후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았던 아픈 세월이 밀려왔던 탓이다. 일본 관서대학 영문과를 나온 박 시인은 지식인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시대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문학청년의 길을 걸어왔다. 여러 차례에 걸친 가택수색으로 시작 노트를 압수당하고 이 땅에서 시를 쓰는 것을 포기, 93년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떠나 그곳에서 지금도 모국어로 시를 쓰고 있다.

고국에서 시집 한권 내는 것이 소망인 박기동 시인. 그는 시집을 내려면 건강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31년째 매일 아침에 2시간씩 요가를 하고 있다. 부용산 산허리의 푸른 잔디처럼.

광주=정금자/ 프리랜서·‘엔터닷컴’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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