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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뿌리통신 ] 2000년09월27일 제327호 

[풀뿌리통신] 차라리 바다를 떠나고 싶다

한일어업협정 이후 애끓는 부산의 수산업계… 중국에 뜯기고 일본에 밀리는 불안한 출어


(사진/부산 남항에 출어를 하지 못한 연근해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는 용달선들이 일거리가 없어 관광선으로 변했다. 선원들은 선박에 비치 파라솔을 펴고 부산항을 찾는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설 이후 6개월 동안 출어를 포기하다 추석이 지나 인자사 배를 띄웁니더. 얼매나 잡힐지 별로 기대는 안 하지만 일년내도록 배를 놀릴 수는 없지예.” 가업으로 물려받아 수십년간 고기잡이에 종사해온 부산의 어선주 김아무개(56)씨의 푸념이다. 김씨는 지난해 한일어업협정 발효 이후 트롤 5척과 쌍끌이 1척 등 갖고 있던 6척 중 4척을 처분하고 지금은 2척만 갖고 있다. 고용 선원도 100여명 중 70여명이 줄어들어 지금은 30여명에 불과하다. 조업일수보다 노는 날이 훨씬 많으니 선주와 선원 모두 죽을 맛이다. 한번 출어하는 데 척당 8천만∼9천만원의 경비가 드는 데 비해 수입은 5천만∼6천만원에 그치니 무조건 적자다. 그나마 이 정도 수입은 연중 서너달에 불과한 성어기를 맞아 고기가 잘 잡힐 때에만 해당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유가 파동까지 겹쳐 출어경비가 더욱 늘어났으니 사면초가에 빠진 셈이다. 차라리 배를 부산항에 묶어두는 게 상책이다.

김씨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배 1척값이 27억∼30억인 어선을 띄우느라 전 재산을 쏟아붓고도 모자라 리스자금이나 은행 등 금융자금을 당겨쓴 선주들은 출혈조업에다 이자부담까지 겹쳐 걱정이 태산이다. 출어하자니 적자가 눈에 빤히 보이고 배를 놀리자니 담보로 저당잡힌 배가 날아갈 판이고…. 가만히 앉아서 죽느니 그래도 바다로 나가 그물이라도 던져보자는 심정이다. 국내 최대의 수산업전진기지이자 21세기 동북아의 중심항만을 지향한다는 항도부산의 현실은 한국수산업계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출어하면 손해보고 놀리면 배를 잃고…

추석이 지난 요즘 부산항은 출어준비를 하는 어선들로 다소 부산하다. 하지만 출어한 어선들은 부산 앞바다 남쪽 어장을 향해 얼마 가지도 못해 동경 128도 이동(以東) 조업금지수역과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만난다. 동쪽으로는 일본에 밀리고 서쪽인 동지나해역에는 수백 수천 척의 대규모 중국 선단이 버티고 있어 우리 어선의 조업수역은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고 말았다. 결국 국내 어선끼리 과밀조업을 하느라 좁은 수역은 북새통을 이룬다. 근해어업의 대표격인 대형트롤업계 관계자들의 하소연을 들어보자. “99년 1월 한일어업협정 발효 이후 연근해어장이 좁아지자 제주도 이남해역이 대형트롤업계를 비롯한 국내업계의 주어장으로 꼽히게 됐다. 이 좁은 수역에 중국 어선들까지 떼지어 몰려와 휘젓고 다닌다.”

지난해의 예로 미뤄볼 때 본격 조업이 시작되는 가을철에 접어들었으니 올해도 중국 어선들은 우리 어장 일대를 누비고 다닐 것이다. 중국 어선뿐만이 아니다. 일본 어선들도 본격 성어기를 맞아 고기떼가 제주도 근해 등 우리 수역으로 집중되면서 하루 수백척씩 우리쪽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들어와 조업함으로써 우리 EEZ에서의 한-일간 조업전쟁이 불붙고 있다. 한일어협 발효 뒤 채 일년도 지나지 않은 지난해 12월 말 현재 이미 우리 수역 내 어획량은 일본 어선들이 전체 할당량(9만3천t)의 20%를 넘어선 2만7천t을 기록해 우리 어선들의 어획소진율 18%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그렇다면 우리도 일본쪽 EEZ에 들어가서 적극적으로 고기를 잡으면 될 것 아닌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본수역 내 입어절차가 워낙 까다로운데다 기준에 맞는 어구를 장착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일본수역 내 조업은 채산이 맞지 않아 배정된 어획할당량도 채우지 못한다. 이러다간 어획량 조정에서 또다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되지만 현재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근해트롤협회 배정규 회장은 “척당 37t씩 배정받아 고기를 잡으면 2천상자 정도(2천만∼3천만원) 되는데 규제대상 어구를 교체하는 등 제반 입어규정을 맞추는 데 드는 돈은 이보다 훨씬 더 든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불법조업하다 나포당하면 우리 선박은 200만엔의 벌금을 물어야하는 반면 중국 어선들은 우리 해경에 나포되더라도 별 반응이 없어 단속효과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제주 서귀포 남방 우리 해역으로 고등어, 삼치, 방어 등 각종 어종들이 집중되면 일본 선망선들은 우리 선망선들과 치열한 조업전쟁을 벌인다. 일본 선망선들은 그물폭이 넓고 어로기술도 우리보다 앞선 탓에 고등어 등 수익이 높은 어종을 우리보다 많이 잡는다. 일본 이서저인망 어선들도 우리 대형기선저인망선들에 맞서 가자미, 보구치 등 저서어종들을 잡아간다. 치욕적인 한일어협 재협상 과정에서 입어가 허용된 수십척의 일본 복어반두선들도 우리 서해상에서 복어잡기에 나서고 있다. 해양수산부 잘못으로 동지나해 복어어장을 잃은 우리 복어채낚이 어선들은 한창 조업철을 맞아도 입어하지 못한 채 구경만 해야 한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은 장어나 꽃게를 주로 잡는 통발업계도 마찬가지다. 장어통발의 주어장인 서일본어장을 상실하고 대체어장으로 찾은 동지나해에서 중국 어선들의 온갖 횡포를 당해가면서 아무리 기를 쓰고 잡아도 서일본어장 어획량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한중어업협정이 발효되면 흉기까지 휘두르는 중국 어선들의 횡포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선원들은 우려한다. 동해어장의 오징어채낚이의 경우 기존 조업수역이 좁아진 트롤선들이 어장을 잠식함으로써 우리 어민들간에 조업분쟁이 날 판이다. 트롤과 쌍끌이에다 대형 선망어선들까지 동해 오징어잡이에 몰리고 있다. 전통적인 업종간 어종간 구분이 한일어협 이후 사라지고 닥치는 대로 잡고 보자식 어획현상이 우리 연근해 어장의 현실이 되고 말았다. 붕장어를 주로 잡는 부산지역 연승업계도 좁아진 어장에 통발업계 등 타업종 어선들이 몰려들자 적자에 시달리다 올 들어 1척이 부도를 내고 경매에 넘어갔고 조업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실이 이러다보니 요즘 선장이든 선원이든 바다에만 나가면 입에 욕을 달고 다닌다. 우리 어민들간에 제살 뜯기식 어업경쟁을 벌이다 일본 어선에 밀리고 중국 어선들의 해상폭력 위협을 받는가 하면 일본순시선에 나포될까봐 전전긍긍하다 우리나라 어업지도선에 쫓겨다니는 현실이 너무도 분통이 터지고 기가 막히기 때문이다.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죽음을 무릅쓰고 거친 파도를 헤쳐가며 밤샘 고기잡이에 생계를 의지해온 일반 선원들의 생계난은 심각하다. 배가 출어하지 않으면 대부분 선원들의 수입은 전무하다. 대형트롤업의 경우 보합제로 받는 수익과 선주가 주는 성과급 35만원 정도가 전부이며 기본급은 아예 없다. 1300마력 기준으로 1회 출어시 1억원의 어획고를 올린다면 선원들의 연소득은 2천만∼2500만원 수준이었으나 어획고가 수천만원대로 떨어지거나 아예 배가 놀게 된 요즘엔 수입이라고 할 것도 없다.

선원들 생계난 심각… 지역경제도 위축


(사진/새벽 부산 공동어시장 물양장에 도착한 대형선망 운반선에서 그물주머니로 생선을 가득 퍼 올리고 있지만 양도 적고 값싼 생선이 대부분이라 일하는 근로자들의 표정이 밝지 만은 않다)


배 타는 일이 재미가 없게 되자 90년대 초 10만여명이던 국내 선원 수도 올 들어 5만여명으로 격감했다. 해양수산부가 지난해 발표한 한일어업협정과 한중어업협정 체결에 따른 어업인피해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02년까지 기존 어선 5천여척 중 2천척 이상이 감척되고 이에 따라 실업 어선원수는 2만2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대형트롤선원노조 박대희 조직국장은 “99년 말 1200명이던 조합원수가 올 들어 지난 2월 감척조처 뒤 350명이나 줄었다”면서 “실직선원들은 동해 소형고깃배로 가거나 동남아수역의 신규어장 개척작업에 임시 취업했고 100여명은 현재까지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다”고 말했다. 배운 거라곤 고기잡이뿐인 선원들이 육지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란 쉽지 않다. <돌아와요 부산항> 대신 ‘잘있거라 부산항구야’를 불러야 할 처지다.

한·중·일 어업협정의 피해는 어구, 어망, 어선기관, 가공 유통업 등 수산관련산업에도 영향을 끼쳐 부산 중구 남포동과 영도구 남항동 대평동 대교동이나 서구 충무동, 사하구 감천동과 다대동 일대 수만개의 크고작은 수산관련 업체들의 영업손실도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근해트롤협회 배 회장은 “지금이라도 정부가 수산업을 농업과 마찬가지로 식량산업으로 중시하여 완전히 원점에서 장단기 수산정책을 추진하고 부산시 등 각 지방자치단체와 수산업종사자들도 지역간 업종간 이기주의를 떨치고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부산=글·안봉모/ 프리랜서·문화예술사 대표namu815@hanmail.net

사진·김탁돈/ 프리랜서 사진작가tdkim@photopus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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