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 풀뿌리통신 ] 2000년09월20일 제326호 

[풀뿌리통신] “어엿한 배우로 무대에 올라요”

전남 영광의 사연 많은 학생들의 변신… 연극배우 이주실씨의 지도로 대회 나가



“걸어 봐. 하고 싶은 이야기해 봐….” “얘기요? 무슨 얘기요?” “너, 지금 이야기하고 있잖아….” “어, 이거 왕짜증이네….” “거봐 이야기하잖아….”

누구도 주의 깊게 들어주지 않았던 아이들의 이야기. 이것이 연극배우 이주실과 영광 영산 성지고 학생들이 만든 연극이다.

전남 영광 영산 성지고는 일반학교에서 자퇴하거나 퇴학당한 청소년들을 재교육하는 특수고등학교.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날자, 날자꾸나>로 오는 9월20일 순천문예회관에서 열리는 전국학생연극경연대회 지역예선에 출전한다. 연극경연대회 출전은 어쩌면 대단할 것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배우 이주실씨와 성지고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특별하다. 아이들의 닫혔던 마음을 아주 서서히 열어주고 세상과 소통하게 만든 것이 연극이기 때문이다.

암 투병을 하면서도 꿋꿋하게 연극무대를 지켜온 연극배우 이주실(57)씨. 돌연 성지고등학교 연극 특별교사가 된 것에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것은 우연이었다. 두고두고 생각하면 필연 같은 우연. 지난해 가을 영광 ‘여성의 전화’ 기금마련 공연을 했고 그것을 계기로 영광 성지고에서 특별강연을 하게 된다. 배우라니까 화려한 배우를 생각했던 아이들은 병색에 아무렇게나 옷을 걸친 이씨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강연은 ‘실패’였다. 하지만 무심한 아이들의 눈빛에서 ‘상처’를 보았다. 그 눈빛을 못 떨치고 지난해 겨울 약통만 달랑 들고 영광으로 내려왔다. 처음 올 땐 3개월을 생각했다. ‘연극’으로 아이들의 인성을 살려보자는 것이었다.

'연극'으로 인성을 살려보기 위해 시작

하지만 자신의 표현처럼 “건방진 일”이었다. 3개월은 생뚱하게 바라보는 아이들과 눈 맞추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쉼없이 말을 걸고 이야기를 시켰다. 그리고 아이들의 이야기로 연극 대본을 만들었다. ‘날자 날자꾸나’는 실제 영산 성지고에서 해마다 여는 ‘소리모아’ 축제를 준비하면서 드러나는 아이들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희망을 그린 것이다.

“말문 트기가 참 힘들었어요. 수없이 치근덕(?)거렸지요. 그러면 쪼끔 열다 또 금방 닫아버려요.”

연습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만이었다. 상처가 큰 만큼 학교에서 잘리는 것도, 맞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뭔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걸핏하면 “못하겠다”였다. 하지만 그것이 관심을 받고 싶은 표현이라는 것을 오래되지 않아 알았다.

“연습을 하기 위해 처음 모였는데 모두 다리를 떨고 볼펜을 돌리고 체머리를 흔들더라구요. 지금은 신기하게 그런 버릇이 없어졌어요.”

연극에 열중하면서 아이들은 불안과 소외 분노에서 놓여나는 듯싶었다. 그리고 뭔가 새로운 세상에 몰입하는 즐거움에 얼굴이 환해졌다.

박수를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연극을 시작한 지 2개월여 만에 지난 5월 영광한전문화회관에서 공연했고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객석의 학부모와 무대의 학생들이 함께 울었다.

이제 그 감격을 생각하면서 경연대회를 준비한다. 하지만 여전히 순조롭지 않다.

“일반학교에서 내쳐진 아이들이 일반학교 학생들과 나란히 무대에서 경연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에요. 그런데 이 바보들이 그 뭉클한 뜻을 몰라.”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주실씨는 “아이들이 많이 변하지 않았다고 실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변화란 내 눈앞에서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설사 지금 변하지 않아도 5년 혹은 10년이 지나 그들의 삶 속에서 중요한 경험으로 살아날 수 있으니까.”

광주=정금자/ 프리랜서그룹 엔터닷컴 실장


.









Back to the top  


Home| 표지이야기| 특집| 특집2| 이슈추적| 정치| 경제| 문화| 사람과사회| 움직이는세계|

copyright(c) 2003 The Hankyoreh Plus mail to 편집장, webmaster

.
인터넷한겨레
한겨레21
씨네21
DOT21
DBDIC
하니메일
버찌
채팅
하니클럽
하니몰
하니투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