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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12월26일 제34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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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한 응징인가, 마녀사냥인가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 활동을 보는 극단의 눈


△ '100인위'에 대한 비난성 글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참세상 게사판. 특정사례에 대해 가해 사실 여부를 다시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피해여성 중심원칙인가, 가해자 인권침해인가? 12월11일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이하 100인위)가 16건의 성폭력 사례와 가해자 실명을 참세상 게시판(go woman100)과 진보네트워크(www.jinbo.net) 자유게시판에 공개한 이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 실명공개를 놓고 “성폭력 사건 해결과정의 일반적 원칙”이라는 100인위 입장과 “인권침해”라는 반대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 명단에는 노조간부, 전 총학생회장, 소설가, 기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올라 있다.

공정성과 합리성의 문제

지난 7월 첫 모임을 가진 100인위에는 노조와 사회운동단체, 여성주의모임 활동가 등 90여명이 개인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성폭력사건 대책위’ 활동을 계기로 모인 이들은 6월24일 ‘이제는 말하자, 운동사회 성폭력’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공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를 거치며 운동사회 내에 존재하는 성폭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는 100인위 결성으로 이어졌다.

논쟁은 사례가 공개된 두 인터넷 게시판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참세상 게시판은 “100인위 지지”라는 말머리를 단 글들이 주류를 이루는 반면, 진보네트워크 게시판에는 “100인위는 프락치”, “꽃뱀(피해자)들도 실명공개하라”는 비난성 글이 주로 올라온다. 심지어 ‘안티 100인 위원회’(anti100.hompy.com) 사이트도 생겼다. 군가산점 논쟁 이후, 제2차 사이버 성별전쟁을 치르고 있는 형국이다. 본인도 모르게 인터넷에 이름과 전화번호가 공개된 100인위 활동가 몇명은 스토킹에 시달리고 있다.

양극단 사이에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라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활동방식에는 반대한다는 비판적 입장이 놓여 있다. 100인위에 대한 이들의 비판은 가해자 인권침해, 모호한 성폭력 범주 설정, 중복 공개의 문제로 요약된다. 피해자의 진술과 정황증거만으로 성폭력 사실은 성립하는가? 왜 가해자의 해명은 들어보지 않았는가? 성폭력과 남녀상열지사를 가르는 지점은 어디인가? 이미 공개된 사건을 다시 실명공개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 아닌가? 지금 100인위가 받고 있는 질문들이다. 소설가 송경아씨는 비판적 입장에서 쓴 글을 보내왔고, 여성활동가모임의 이지은씨는 100인위의 관점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글을 썼다(이어진 기사 참조).

그 경솔함! 그 멍청함! (송경아/소설가)
끔찍한 상상력 경악스럽다 (이지은/여성활동가)

100인위는 성폭력 문제에 공정성이나 합리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강하게 비판한다. 100인위 엄혜진 회원은 “운동사회 내 여성의 억압적 현실을 전제하지 않으면 이번 사태의 본질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조직보위의 이름으로, 운동대의의 명분으로 성폭력이 은폐돼온 맥락 속에서 100인위 활동을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100인위 활동을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 격”이라고 비유했다.

논쟁이 첨예해지자 각 단체도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12월21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이번에 공개된 성폭력 사례에 민주노총 간부가 포함된 사실에 유감을 표하고, 앞으로 조사단을 꾸려 조직 내 성폭력을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다음날 ‘평화인권연대’는 사회운동 단체로는 최초로 지지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직 여성단체들은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여성단체들 입장 표명 유보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움직임도 구체화하고 있다. 민주노총 간부를 비롯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3명은 이미 사과문을 참세상 게시판에 공개했으나, 가해자로 거론된 몇명은 강하게 반발하며 명예훼손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피해자 모임을 구성한 사례도 있고, 특정사례에 대해 가해 사실여부를 다시 검증해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임’이 결성되기도 했다.

100인위 최정민 회원은 “실명 공개가 운동사회 내 성폭력을 반성하고, 여성주의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면서 “논의의 초점이 ‘성폭력 뿌리뽑기’ 대신 ‘가해자의 인권’으로 맞춰지는 현실에 또 한번 절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100인위의 활동이 어떤 이에게는 100인의 마녀들이 16인의 남성을 희생양으로 벌이는 제의로 보이고, 다른 이에게는 100인의 여전사들이 벌이는 처절한 전투로 비쳐지기도 한다. 더구나 운동사회 안팎으로 백인백색의 견해가 난무하고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여성운동의 오래된 명제가 새삼 되새겨지는 논쟁이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