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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시vs비비 ] 2000년09월27일 제327호 

[시시비비] 그의 침묵은 헛되지 않았다

서태지 혁명을 사회적 맥락에서 바로 보아야… 솔로 2집은 최대 걸작 앨범



대중음악에 대한 지적 담화의 풍토가 조성되지 않았던 70년대 초반, 통기타를 앞세운 모던 포크와 일렉트릭 사운드를 드높인 록음악으로 무장한 청년문화의 도도한 행진이 시작되었을 때 트로트로 상징되던 보수 세력과 기성 세대의 반감은 노골적으로 적대적이었다는 것은 당시의 언론 자료에서 드러난다. 물론 그 팽팽한 대립은 세대 논쟁과 문화적 헤게모니 다툼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4공화국의 군화발로 판가름났다.

찬 서태지/반 서태지 구도의 무력함

그리고 오늘 우리는 서태지라는 90년대 이후 한국 최대의 문화적 화두를 둘러싼 이전투구를 관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의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무력해 보인다. 다만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겨레21> 같은 중량감 있는 매체마저 서태지라는 이슈 상품을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이제 서른을 목전에 둔 한명의 음악 청년의 구심력이 유효하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실한 것은 찬(贊)서태지/반(反)서태지라는 논쟁 구도는 성립될 여지가 박약하다는 사실이다.

서태지가 일군 음악혁명은 의의와 한계를 동시에 포섭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의의와 한계는 서태지의 텍스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그의 생산물을 둘러싼 90년대 한국사회의 컨텍스트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서태지 담론의 핵심은 ‘세대’와 ‘낙오자’, 그리고 ‘매체와 자본이라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저 70년대의 정오에 파시즘의 분서갱유에 의해 좌절되었던 대중문화의 쟁점이 그의 시대에 이르러 드디어 성립된 것이다(그리고 명백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것이 어찌 서태지 개인의 역량과 카리스마에 한정될 수 있는 성질의 일이겠는가? 만약 이 모든 문화적 전복의 모멘트가 서태지 개인의 영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는 이가 있다면 그는 낭만적인 전체주의자이거나 아니면 역사의 피해망상증 환자일 것이다.

서태지가 정점에 선 이 새로운 전복의 지평이 갖는 한계 역시 자명하다. 무엇보다도 이 새로운 세대 혁명은 궁극적이고 대안적인 철학의 슬로건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으며 상징적인 참호전을 넘어 그것을 전면적인 전선으로 확대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 세상의 주도권은 여전히 공중파 매체와 독과점적인 대자본의 논리에 의해 결정되었다.

다투려면 그 음반의 성과에 대해

이 한계를 따져보는 지점에서 서태지 개인의 음악적 재능, 곧 예술적 독창성의 심급을 운위하려는 시도는 대단히 주관적이다. 예술사의 독창성이 혁명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 역은 항상 성립하는 명제가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선율을 창조해낸 작곡가는 유사 이래 없었다. 모차르트? 비틀스? 앤드루 로이드 웨버? 아마 그들도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50년대 중후반 세계 대중음악사의 최대 분기점인 로큰롤 혁명의 정점이었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대단히 보수적이고 퇴행적이기까지 한 속성- 그는 독실한 침례교도에다 마마보이, 그리고 백인 어른에 구미를 맞칠 줄 아는 기회주의자였지만 그렇다고 이 젊은 혁명의 역사적 수행자로서의 그의 위치가 번복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관점으로는 이번의 솔로 2집은 그의 디스코그래피 사상 가장 핍진성 있는, 오랜 침묵이 결코 헛되지 않는 그의 최대 걸작 앨범이다. 만약 우리가 다툴 여지가 있다면 이 관점에서 논의를 진전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강헌/ 대중음악평론가authodox@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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