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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시vs비비 ] 2000년09월20일 제326호 

[시시비비] 그 오만하고 편협한 비판들

‘인디’란 이름만으로 음악적 역량에 대한 검증 없는 안티를 걸 자격은 누가 주었는가


(사진/서태지가 하드코어 공연을 화려한 불꽃놀이로 만들었다고? 대중이 서태지에게 기대하는 것이 바로 그것일 수도 있다)


솔직히 이런 논란 자체가 조금 당혹스럽다. 지금의 ‘안티서태지’ 운동이 마치 인디음악 전체와 서태지의 대결구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디씬(인디음악계)이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90년대 중반부터 자라난 인디씬의 크기는 그렇게 왜소하고 한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인디씬 모두가 서태지를 반대한다? 실제로 지금 ‘반서태지연대’로 포장된 그 연대의 실체는 홍대앞 클럽 ‘드럭’과 ‘문화사기단’, 그리고 그들이 참여한다고 주장하는 몇명의 평론가들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이것이 인디의 서태지에 대한 입장이자 인디의 ‘연대’라고? 이게 언론이 인디씬을 가리켜 “대중성이 없다”고 할 때의 그 실체없는 대중과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대중과의 소통을 단절했다고?

‘반서태지연대’라고 하기에 앞서 자신들이 어디서 뭘 하는 사람들인지부터 제대로 밝혀야 한다. 그리고 인디음악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개인’으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말해야 한다. 이들의 ‘인디’와 ‘연대’라는 단어는 언론이 흔히 쓰는 ‘측근’이나 ‘전문가’와 다른 의미가 아니다. 실체가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과연 그 ‘인디’라는 언어적 허상을 벗겨냈을 때 이들이 서태지에게 안티를 걸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90년대 중반 ‘드럭’이 ‘레게바’(!)에서 어느 날 갑자기 ‘펑크클럽’으로 바뀌고, 그곳의 밴드들이 이제 막 쓰리코드를 치며 ‘너바나’를 카피하기 시작했을 때 서태지는 이미 극단적인 보컬의 교차와 힙합리듬을 가미한 또다른 스타일의 펑크곡 <내맘이야>를 만들어냈다. ‘인디’라는 타이틀이 음악적 역량에 대한 검증없이 오버그라운드 뮤지션을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을 준다고 착각하는 건가?

또 그들의 ‘서태지 공방에 관한 반서태지 연대의 공식 입장’이라는 글을 보자. 그들은 서태지의 음악이 ‘대중의 정서에도, 서구음악 마니아의 정서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철저히 개인적인 음악’이라고 했고, 서태지의 음반이 잘 팔리는 것은 그가 철저한 비즈니스맨으로서 대중을 조종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티운동’이라는 거창한 말까지 갖다 붙이면서 서태지 평가에 핵심을 이루는 음악에 대해 저렇듯 한줄로 요약할 수 있는 그 용기(?)가 놀랍다. 최소한 안티를 걸려면 그 당사자나 팬들보다도 더욱 꼼꼼히 음악을 듣고 그것이 왜 그런 것인지 음악적으로 설명부터 해야 한다. 도대체 ‘인디’와 ‘연대’라는 말만 붙이면 검증없는 주장도 진리가 된다고 믿는 것인가.

그리고 ‘개인적인 음악’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기 때문에 서태지의 의미가 과대포장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인디 맞냐’는 말로 되돌려 주고싶다. 인디 혹은 언더그라운드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음악적 취향과 다양성이 우선시되는 곳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가장 개인적인 음악을 하고서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서태지는 인디의 벤치마킹 대상이지 적대시할 대상이 아니다. 어떻게 상품성 있는 스타만을 길러내는 기획사가 아닌 ‘인디’라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개인적인 음악’이라는 이유로 음반의 대중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가. 오히려 늘 비대중적인 음악을 주류로 끌어올려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조금씩 넓혀나가는 그의 행동에 힘을 실어줘야 정상 아닐까.

그리고 과연 서태지가 그렇게 철저하게 대중과 소통을 단절한 음악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이들은 서태지의 음반이 잘 팔리는 것이 그가 비즈니스에 의해 하나의 거대 브랜드화되고 문화권력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서태지가 과연 그렇게 철저한 비즈니스 능력을 발휘했는가. 그가 한 것이라고는 인터넷을 통해 복귀의사를 밝히고, 공항으로 들어와서 공연을 한 것밖에 없다. 이건 대중음악계에서 활동하는 가수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전략(?)이다. 다만 문제는 그들에게는 4년7개월 만에 돌아와도 그렇게 열광해줄 팬이 없다는 것뿐이다.

그들은 공격 대상을 혼동하고 있다



이런 팬의 마음은 서태지가 의도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루 이틀도 아닌 4년7개월이라는 시간을 서태지를 기다린 그 수많은 대중을 단지 서태지에 조종당하는 ‘우매한 팬’쯤으로 치부하는 것은 대중의 역량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닐까. 발매 1주일 만에 100만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하는 미국의 인기 뮤지션들이 그러하듯 대중이 그에게 열광하는 것은 그에 대한 기대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그의 뛰어난 음악과 공연이라는 ‘콘텐츠’에 대한 기대이다.

물론 핌프록이나 하드코어는 인디에서도 하는 장르이다. 하지만 서태지가 서태지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비대중적인 장르를 가져오면서도 장르의 전형성을 벗어나 대중과 접점을 절묘하게 찾아내는 데 있다. 과연 국내의 어느 핌프록 그룹이 <울트라맨이야>처럼 핌프록 사운드에 가벼운 멜로디를 조화시키고 또 그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극단적인 보컬을 사용해 핌프록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대중성을 한꺼번에 잡아냈는가. 또 <인터넷 전쟁> 같은 펑키함이나 스크리밍 보컬을 쓰면서도 ‘따라 부를 수 있는’ 대중적인 멜로디를 만들어냈는가. 게다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라임(각운)에 신경을 쓴 랩을 함께 넣은 <오렌지>의 독특함은 또 어떤가. 만드는 스타일부터 음반의 녹음상태와 사운드의 질까지 현저한 차이가 나는데 이것을 장르가 같다고 과연 ‘같은’ 음악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 더 짚고 넘어가자. 서태지가 하드코어 공연을 화려한 불꽃놀이로 만들었다고? 그거야말로 대중이 서태지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하드코어 음악을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의 빼어난 비주얼 능력은 필수적이다. 왜 대중은 재미있는 볼거리가 마련된 공연장에서 록음악을 즐기면 안 되는가. 오히려 인디밴드들도 능력이 된다면 좀더 좋은 상태의 사운드와 다양한 이벤트로 그들의 팬들에게 ‘서비스’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게다가 하드코어를 하기엔 부자라는 얘긴 또 뭔가. 그럼 인디씬도 ‘호구조사’해서 월소득 30만원 이상 되는 집안 자식들은 쫓아내야 하는 건가? 현재 록계에서 가장 정치적이고 급진적이라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 고급 호텔에서 묵으며 순회공연을 하는 이 시대에 이건 또 무슨 억지인가.

그리고 이들은 공격대상이 누구인지도 혼동하고 있다. 이들은 서태지가 언론과 평론가들, 그리고 팬의 과대평가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고, 실제로 본인도 이번 컴백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에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우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공격대상은 서태지라는 개인적인 뮤지션이 아니라 그를 이용하고 있는 언론과 평론가가 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안티서태지’운동의 계획을 보라. ‘서태지를 죽여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하는 그들의 이벤트들이 언론과 팬과 평론가로 엮어진 스타시스템을 깨는데 어떤 각성을 줄 것이라 생각하는가? 이런 펑크적인(?) 이벤트들이 언론이나 평론가의 센세이셔널한 글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인디라는 말만 붙이면 모든 행동에 의미가 생긴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무서운 이분법, 서태지와 반서태지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가장 큰 문제인 것은 이들이 서태지팬들, 혹은 대중에 대해 가진 인식이다. 그들은 지금의 상황을 ‘서태지의 광적인 팬’과 ‘인디’, 혹은 ‘친서태지’와 ‘반서태지’라는 이분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서태지의 음반을 사는 사람이 100만이 넘는데, 그들 중에 그 양쪽의 문화를 모두 즐기는 사람이 없을거라 생각하는가? 서태지의 팬들이 모두 똑같이 서태지를 우상처럼 볼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난센스다.

대중의 음악적 역량을 무시하고 자신들만이 음악적으로 올바르고, 누군가를 평가하며 주류 문화에 대항하는 ‘연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오만하고 편협한 것은 없다. ‘서태지의 팬들은 드럭을 떠나라’라고? 대중이 음악을 들어야 할 때도 편을 갈라서 들어야 하다니, 차라리 음악을 안 듣는 게 속편할지도 모르겠다. ‘안티서태지’운동은 인디 내에서 몇몇의 새로운 인디운동가를 배출해내는 것 외에는 아무런 성과도 남길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있던 ‘인디’의 파이를 줄일 것이고, 그런 점에서 ‘안티서태지운동’은 결국 ‘안티인디운동’으로 귀결될 것이다.

강명석/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아무도 없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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