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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환경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5월23일 제6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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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 자연도 조용히 수행하는 곳

국가 산림유전자원보전림 지정으로 사람 발길 닿지 않는 백두대간 마지막 터전

▣ 봉암사(문경)=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국장

중부 내륙에 사람의 발길이 끊긴 숲이 있다. 경북 문경 봉암사의 사찰림이다. 한국 불교의 최대 종파인 조계종은 많은 사찰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 중에서 조계종의 정신적 자존심으로 불리는 사찰이 바로 희양산의 봉암사다. 희양산은 백두대간에 속해 있는 산으로 문경과 충북 괴산에 걸쳐 있고, 봉암사는 희양산의 문경 쪽,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골짜기 안에 자리잡고 있다.


△ 봉암사를 지배하는 이미지는 정적이다. 스님들이 선방에 들고 나면 경내에는 인적이 끊긴다. 절집을 찾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

봉암사는 신라 선문 9산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정점인 사찰로, 신라 헌강왕 5년인 879년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지선 스님이 창건했다. 그때부터 봉암사는 희양산에 터를 닦고 1100년의 풍상을 이어왔다. 조계종 특별 선원인 봉암사는 참선과 정진의 대명사다. 우리 불교의 도도한 전통을 이어온 이 터에는 절 입구의 일주문부터 절 너머의 사찰림까지 행락객이 들어올 수 없다. 봉암사는 성철 스님을 비롯한 선승들의 요람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한국 불교의 중흥을 모색한 근거지이기도 했다. 지금도 선방 스님들에게는 때가 되면 거쳐 가는 정진의 언덕인 곳이다.

주지 스님의 허락 없인 못 들어가

봉암사는 그 면면에 비해 일반에게 잘 알려진 사찰은 아니다. 하지만 불교계 내에서는 국내의 어떤 유명 사찰보다 확고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 역사로 보나 수행의 분위기로 보나 불교계의 자존심이라 할 만하다. 실제, 이 절집은 조계종이 직접 관리하는 특별수행도량으로 예산 일부를 총무원에서 직접 지원하고 있고, 사찰의 운영과 관리에 중대한 부분은 조계종에서 음양으로 직접 챙기고 있다. 그 봉암사에는 100여 명의 스님이 지금 이 시간에도 용맹정진하고 계시다.

봉암사는 분위기에서부터 여느 사찰과 다르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다른 사찰의 스님들도 예외가 아니다. 주지 스님의 허락이 없으면 그 누구도 봉암사에 들어올 수 없다. 절집이 공개되는 것은 1년에 단 한 번 석가탄신일 때뿐이다. 다른 절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기풍이다. 조계종이 뜨거운 갈등의 도가니에 빠져 세인의 이목을 받을 때도 봉암사만은 정진의 한길을 갔다. 다만 조계종이 정말 위기에 있다고 판단될 때는 봉암사가 나선다. 그래서 봉암사가 나설 때는 그 현안이 조계종의 근본을 흔드는 중요한 사안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불교계에서 공력이 크고 수행을 오래 한 스님들은 봉암사 주지 자리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스님들은 “봉암사 주지는 정말 어려운 자리이기 때문에 수행발이 센 큰스님들은 안 하려고 하신다”고 말했다. 봉암사의 무게감과 명예 때문이다. 봉암사에서는 주지 스님 맘대로 되는 것이 거의 없다. 수행하는 스님들이 원체 공력이 세고 기가 센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암사 주지는 종단을 넘어 불교계 전체에서 큰스님으로 인정받는다.

2002년 봄부터 전개된 희양산 지키기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잘 모르고 있는 일이지만, 봉암사가 국가 산림유전자원보전림으로 지정된 것은 2002년의 일이다. 봉암사가 직접 나서고 조계종 총무원과 녹색연합 등이 협력한 결과다. 일이 시작된 것은 2000년부터다. 그 무렵 봉암사 주변 희양산 일대에는 산 주변에 광산과 대규모 레저단지를 만들겠다는 개발 계획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흐름 속에서 참선도량의 보전에 위기감을 느낀 봉암사 대중 스님들은 ‘봉암사를 봉암사답게 가꾸고 지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 고민 끝에 나온 의견이 봉암사를 보호지구로 지정해 영구히 지켜가자는 것이었다. 봉암사가 주도하고 조계종 총무원이 합심해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절차를 검토했고, 이 과정에서 환경부의 생태경관보전지역과 산림청의 산림유전자원보전림의 두 가지 안을 두고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산림유전자원보전림 지정을 추진하게 됐다. 2002년 봄부터 봉암사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백두대간의 마지막 터전인 희양산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인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희양산 일대의 자연생태계를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 이 지역을 산림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보호지구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했다. 이에 산림청과 경상북도가 200만 평 이상의 땅을 산림법상의 산림유전자원보전림으로 지정했다. 이후 봉암사는 국내의 대표적인 사찰 보전림으로 역사를 이어져고 있다.


△ 봉암사는 수행하는 스님만 있다. 수행 중 잠시 휴식을 위해 봉암사 주변의 숲길을 걷고 있는 스님의 모습.(왼쪽) 하늘에서 본 봉암사 전경. 봉암사는 희양산 자락의 드넓은 숲 속에 숨은 듯 안겨 있다.

희양산은 자연경관도 국내 으뜸에 꼽힌다. 솟은 바위의 모습은 북한산 국립공원의 인수봉, 선인봉이나 설악산 국립공원의 울산바위 등에 견줄 만하다. 거대한 바위 봉우리를 정점으로 백두대간을 따라 남쪽으로는 대야산, 북쪽으로는 백화산이 이어진다. 봉암사는 희양산의 가장 넓고 깊은 터에 자리잡고 있다. 자연의 이치를 절묘하게 수렴하는 터로, 양택풍수의 원리를 충실하게 반영한 것이다. 봉암사 일대의 숲은 충북과 경북의 접경인 백두대간 중부 생태계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 경내를 휘감아 도는 소나무 군락을 비롯해 참나뭇과의 갈참나무와 졸참나무가 그윽한 깊이의 숲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느티나무가 고요한 정적을 더한다. 또한 수달, 하늘다람쥐, 담비, 삵을 비롯한 주요 멸종위기종이 광범위하게 서식한다. 여름 장마나 수해 때면 계곡을 헤매는 어린 새끼 수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난해에도 탈진한 어린 수달을 정성스레 살펴주었다는 얘기를 여러 스님들이 전할 정도다. 사람의 발길을 금하고 오직 자연의 공간만으로 이어온 시간의 결과가 동식물에게는 가장 편안한 삶의 터전이 된 것이다.

뜻깊은 ‘사유지의 공익적 헌납’ 사례

봉암사가 희양산 일대의 사찰림을 국가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한 것은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2007년 현재, 자신의 사유지를 국가보호지구로 지정해달라고 건의한 사람과 단체는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다. 종교계도 마찬가지다. 수백만 이상의 신도를 가진 여러 종교 중에서 종교재단의 토지나 사유지를 공익적인 차원에서 헌납한 경우는 거의 없다. 현행법상 국가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되면 일체의 개발행위는 물론 실질적인 사유권 행사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봉암사는 시대의 새로운 화두에 스스로 답한 것이다. 2005년 가을, 백두대간 보전법이 만들어지면서 백두대간은 실질적인 보전지구로 되었다. 자신을 희생해가며 그 법의 취지를 가장 먼저 실천한 곳이 봉암사다. 그러하기에 봉암사와 희양산은 세속의 간섭 없이 영구히 참선 도량으로 가꿔가야 한다.

그러나 이후 진행된 정부의 보호지구 관리에는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지정 이후 체계적인 관리 노력이 거의 부족했던 것이다. 특히 해당 주무관청인 경북도청과 문경시는 관리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모니터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최근 들어 희양산에는 등산객들이 일부 유입되고 있다. 재작년에도 정상으로 가다가 사망사고를 당한 등산객이 있었다.

희양산의 정상 쪽은 백두대간 주능선에서 벗어나 있다. 정상은 말할 것도 없고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길도 상당히 위험하다. 더구나 희양산에서 문경 지역에 해당하는 봉암사 쪽은 등산로도 없어서 더욱 위험하다. 스님들 이외에 다닐 수가 없다. 경상북도나 문경시는 희양산이 산림유전자원보호림이라는 안내판을 설치하지 않아서 백두대간 종주자들 중에서 길을 잃고 위험한 봉암사 쪽으로 내려오고 있다. 봉암사 사찰림은 조계종에서도 개방하지 않고 다른 신도들도 방문하지 않는다. 오직 자연의 공간으로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기로 한 것이다. 봉암사 주지인 함현 스님은 “우리는 노력을 했는데 정부는 실질적인 보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국가 산림유전자원보호림 안내판 하나도 없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고 말했다. “희양산 일대의 보호림에는 안내판이 필요한 곳이 10여 곳이며, 훼손된 곳에 대한 생태 복원지도 5곳이 넘습니다. 매우 위험한 임시 등산로도 관리를 하지 않아서 사망과 중상 사고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정부가 안 하니까 수행하는 스님들이 시간을 쪼개 그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전면적인 관리 대책 마련해야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숨쉬어온 불교는 우리의 정신과 철학, 문화와 예술의 터전이었다. 그 정수가 바로 사찰이고 사찰을 품에 안아 지키는 바탕이 사찰림이다. 봉암사는 사찰림을 내 것이 아닌 공공의 것으로 인식하고 가꿔왔지만, 정부는 그런 노력에 외면에 가까운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희양산과 봉암사의 보호림에 대한 전면적인 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백두대간과 국가 산림자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봉암사에 대한 정부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