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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환경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04월20일 제5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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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천도 돌아왔다

청계천보다 먼저 복개구간 뜯어내는 작업 시작 … 사라진 물길을 어떻게 살리느냐가 문제

▣ 길윤형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arisma@hani.co.kr
▣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서울 백악의 동쪽 골짜기에서 시작돼 삼선교, 돈암동을 거쳐 청계천으로 접어드는 길이 5.08km 물길의 이름은 성북천이다. 삼청각 뒤편에 자리한 홍련사라는 절집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백악의 남동쪽 골짜기를 따라 내리 달리다 정신지체 아동을 위한 특수교육기관인 명수학교 근처에서 물길 흐름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아스팔트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돈암동 10년지기도 ‘골목 아래’ 몰랐네

사라진 것을 쉽게 잊는 도시의 속성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콘크리크와 아스팔트 아래 묻힌 옛 물길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돈암동에서 10년 넘게 살았다는 김시호(37)씨는 “이곳에 개천이 있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골목이 복개천이었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개천의 흔적은 이제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앞을 일컫는 ‘삼선교’(三仙橋)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서울 도심에서 혜화문을 지나 양주 이북으로 떠나는 사람들은 이 다리에서 도성과 백악을 바라보며 고단한 여행길을 준비했다. 명수학교부터 아스팔트 밑에서 위 아래로 2.5km를 굽이치던 개천은 서울 성북구청 후문 뒤에서 다시 거친 속살을 드러낸다. 이미 위태롭게 졸아든 물의 흐름은 서울 대광고 근처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가 2000년 펴낸 <서울의 하천>은 이 광경을 “성북천 주변은 상가·주택가·시장 등이 어지럽게 얽혀져 있어 물의 양이 부족하고 미관상으로도 나쁜 분위기”라고 적고 있다.


△ 성북천이 다시 흐른다. 복개구간을 걷어낸 서울 성북구 성북천(안암천)과 복원공사가 한창인 청계천(아래)이 만나는 용두동 지점.

그렇지만 올해 9월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청계천과 함께 성북천도 오랜 잠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박근우 성북구청 치수방재과 주임은 “성북천에 새 생명을 주자는 계획이 짜인 것은 청계천보다 3년 전인 1999년부터”라고 말했다. 복개된 빈 터 위에 세워진 성북상가 아파트 C·D·E·OB동(1969∼73), 삼익맨션 아파트(1971), 삼성맨션 아파트(1971), 삼선상가 아파트 A·B·C동(1969~71) 등에 대해 “안전을 위해 빨리 허물어야 한다”는 안전진단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성북구는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개천을 살려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청계천 복원이 결정되기 3년 전의 일이다.

“꿈같은 소리”라는 반대도 많았지만,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년 남짓의 공사 끝에 2003년 7월, 서울시와 성북구는 개천 위 복개터에 자리잡고 있던 성북상가 OB동을 허물고, 시범공사 구간 134m의 콘크리트를 뜯었다. 지난 4월13일 찾은 개천가에는 노란 개나리꽃이 활짝 피어 봄내음을 물씬 풍겼고, 둔치에는 물억새와 달푸리풀이·개구리자리·황새냉이 등이 운치를 더했다. 미나리·큰개불알풀·쇠별꽃·털빕새귀리 등은 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개천가에 와 뿌리를 내렸다. 돈암초등학교 4학년 순정(11)이는 “개천이 생기고 나서 이곳에 자주 놀러온다”며 깔깔댔고, 미희(11)도 “돌 밑에 징그러운 지렁이가 꿈틀대서 싫다”며 웃었다.


△ 복원공사로 복개구간을 걷어낸 서울 성북구 성북천에서 어린이들이 다슬기를 잡고 있다.

돌아온 개천은 자연과 사람에게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성북천 복원사업의 효과평가 연구’를 보면, 복원이 끝난 시범구간에서 상처받은 성북천에 새 살이 움트고 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시범구간의 용존산소는 11.4mg/ℓ로 복개구간 6.4mg/ℓ보다 2배 가까이 높았고, 대장균 수는 복개구간의 10%에도 못 미쳤다. 계획대로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구청까지 2.5km 구간의 복원을 끝냈을 때 사회 편익을 돈으로 계산해보니 적게는 282억원, 많게는 594억원의 가치를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범공사 구간과 찻길 하나를 건넌 지점에서 성북구는 성북상가 아파트 C·D·E동을 마저 허물고 하천복원사업을 맹렬히 진행 중이다. 성북구는 복원 공사가 끝나는 2007년에는 성북천도 서울 강남의 양재천처럼 벚꽃길, 자전거 도로, 분수공원, 징검다리 등이 들어선 하천공원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7년 하천공원 탄생을 기대하다


문제는 물의 흐름이다. 효율과 개발이 최고의 가치이던 개발독재 시기, 비만 오면 자꾸 범람하는 개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콘크리트로 물길을 덮었다. 4월 현재 서울시에 등록된 법정 하천은 한강·중랑천·안양천 등 36개(총연장 78만7524m)지만, 복개 압력을 피한 곳은 9개밖에 없고, 봉원천·만초천·오류천·묵동천 등의 이름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인 도시에 내리는 빗물이 지하수와 섞이지 못하는 사이,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던 서울 곳곳의 개천들이 이미 마른 하천으로 망가졌다.

성북천은 예로부터 유량이 많고 풍광이 아름답기로 이름이 높았다. 조선시대 역사서 <한경지략>은 성북천 주변을 “맑은 계곡과 언덕을 끼고 있어 봄마다 놀이를 나온 사람들이 산과 계곡을 가득 메운다”고 묘사했고, <그 남자네 집>의 박완서도 “개천에는 수양버들이 늘어져, 다른 동네 사람들까지 일부러 산책을 나올 정도로 낭만적이었다”고 적었다.

안암동에서 신설동으로 이어진 성북천의 마른 물길은 왕십리 뉴타운 앞에서 청계천과 몸을 섞었다. 역시 마른 하천으로 전락하고 만 청계천은 하류에서 상류로 물을 뿜어주는 모터의 힘에 기대 30cm로 정해진 물높이를 맞출 예정이다. 콘크리트는 뜯어낼 수는 있지만, 한번 끊긴 물길의 흐름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조용모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성북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상류 계곡물을 저장하는 물탱크를 만들거나, 지하철 역사에서 흘러나오는 지하수를 흘려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도밭과 서커스 기억나세요?


“성북천 옛날 모습 어땠나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곽테오도로(47·사진)씨는 성북천에 얽힌 옛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서울 성북동에 살다 23년 동안의 프랑스 유학을 끝낸 뒤 5년 전 한국에 돌아온 성북동 원주민이다. “나는 내가 떠날 때의 성북천 모습이 머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가 봐. 사람들이 어떻게 옛날 모습을 그렇게 꼬치꼬치 기억하느냐고 신기해하더라고.”

곽씨가 기억하는 성북천은 깨끗한 물이 많이 흐르던 규모가 꽤 큰 개천이었다. “성북천 위에 놓인 개천 위에 쌍다리가 있었거든요. 여름이면 물이 자주 넘쳐서 개천 건너편에 있는 학교(성북초등학교)를 못간 날이 많아요.” 백악산의 바위를 따라 개천 물이 쏟아져 유속이 빠른 편이었고, 개천이 굽이칠 때마다 곳곳에 물의 흐름을 조절해주는 너른 웅덩이도 많았다.

지금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흔적을 찾기 힘들지만, 35년 전에는 지금의 간송미술관 앞에 포도밭이 우거져 있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 입구 앞까지 가면 개천 너비가 넓어져, 둔치에 곡예단이 자리를 잡고 서커스를 하기도 했다. 옛 사람들은 이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서 쉴 수 있는 바위가 있다고 해 ‘안암천’ 또는 ‘안감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60년대까지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과, 곽씨처럼 물 웅덩이를 찾아다니며 수영을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폴레옹과자점 뒤쪽에 형성된 삼선시장은 성북동 부자들의 기호에 맞는 미제 물건들을 파는 전문시장이었다고 한다. 복개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1957년 식목일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심었다는 느티나무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