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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02월19일 제49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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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공화국 수비대 출범!

대형 개발계획의 춘추전국시대 맞은 낙동강 철새 도래지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나섰다

글 · 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 철새공화국’은 2001년 12월16일에 건국됐다. 온갖 새들이 머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남아달라는 바람을 담은 ‘헌법’도 만들어졌다. “…어떠한 인위적 개발 유혹과 이기적인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생명이 제자리에서 함께 살아가는 평화를 지키며, 낙동강 하구의 갯벌과 모래톱의 갈대와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사람의 아들딸들이 더 오랫동안 간직하고 배워야 할 생명의 소중한 배움터임을 깨닫고, 생명밭의 어머니인 자연이 주는 새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기를 꿈꾸면서….”


△ 개발로 얼룩진 낙동강 하구에서 녹색 희망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 최종석, 박중록, 김해창, 김은정, 김옥이, 주미란, 홍정욱씨(왼쪽부터)가 을숙도 남단에서 함께 자리했다.

‘낙동강 하구 살리기 시민연대’로 모이다

필자는 최근 철새공화국에서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공화국을 압박하는 외부 세력의 위협을 느껴 불가피하게 ‘공화국 수비대’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밤기차를 타고 새벽녘에 도착한 공화국 근처는 새삼스레 ‘상전벽해’라는 한자성어를 떠올리게 했다. 러브호텔의 현란한 불빛을 지나서 도착한 을숙도 공화국의 들머리에는 27만여평의 휴게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200여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다는 주차장과 각종 체육시설도 보였다. ‘점령군’이 들어선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

이뿐이 아니었다. 광장 맞은편엔 최근 개관했다는 문화회관과 요란한 음악이 끊이질 않는 롤러스케이트장과 자전거 대여점, 자동차극장, 신설주차장, 증축 중인 수자원공사 전시관, 휴게실, 대형 식당 등등…. ‘X-game 스포츠파크’까지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렸다. 공화국의 다른 이름인 ‘천연기념물보호지역’이란 말은 허울뿐이었단 말인가.

점령군이 들어서고 있지만, 애초 이 땅의 주인인 철새들은 불안한 여건에서도 여전히 본연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제방 위에 앉아 주위의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깃털을 말리는 녀석에서부터, 물속으로 잠수해 물고기를 낚아채 먹는 놈들까지. 안내선을 따라 도착한 곳은 을숙도 남단. 갈대밭과 철새들의 핵심 서식처가 바로 이곳이다.

갈대밭을 배경으로 400여마리는 됨 직한 고니떼들이 모여 있다. 갯벌에 스티로폼이 널려 있는 것 같다. “고옹고옹” “꽥꽥” 하는 소리는 마치 나팔소리 같다. 한쪽 무리는 비행 연습에 열심이다. 날개를 퍼덕거리는가 하면, 발로 차듯이 타타타 지면을 박차고 달린다. 달음박질치며 길게 활주를 하다 허공으로 솟구친다. 비행기의 이륙 장면이 이것만큼 극적일까. ‘물속의 매’라는 가마우지떼가 저공비행해 수면 위에 내려앉는다. 모두가 철새공화국 수비대의 출범을 비장한 마음에서 벌이는 축하비행이다.

“이곳은 철새들이 서식하는 민감한 지역으로 차량과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새들의 서식에 방해되지 않도록 이를 지켜주시고, 새들을 보실 분들은 오른쪽 안내선 안에서 조용하게 만나주시기 바랍니다.” 갯벌 초입에 삼삼오오 나무를 모으고 바리케이드를 쳐놓은 공화국 수비대 곁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앗! 이들이 말로만 듣던 ‘공화국 수비대’였던 것이다.


△ 낙동강 하구는 하구둑 건설과 서부산권 개발사업으로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라는 명성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한해 200여종 10만∼20만 마리의 새가 찾아오는 한국의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이다. 낙동강을 찾은 ‘고니떼’의 모습.

청소년·종교인·생물교사·노동자·환경운동가·언론인 등 7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철새공화국 수비대’ 출범식이 시작됐다. 수비대는 낙동강 하구 생태 및 환경조사를 하는 ‘고니 수비대’, 낙동강 하구 관련 언론과 행정 모니터링을 하는 ‘저어새 수비대’, 이메일 캠페인을 맡는 ‘갯벌 수비대’, 그리고 회원모집 등을 전담하는 ‘기러기 수비대’로 구성돼 있다. 이날 출범식에서 수비대는 “낙동강 하구 일원에서 추진 중인 명지대교 건설계획과 낙동강 고수부지 정비계획을 포함한 13개 대형 개발계획을 즉각 철회할 것”을 정부와 부산시에 촉구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내원사의 지율스님은 “3월1일에 무분별한 개발로부터의 독립을 바라는 마음으로 천성산에서 을숙도까지 생명의 순례를 가질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공화국 수비대는 개발이라는 광풍을 알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이 땅을 되찾자고 모인 이들로, 정식 이름은 ‘낙동강 하구 살리기 시민연대’(이하 ‘하구연대’)다. 하구연대는 2001년 신정 연휴가 끝나자마자 부산시가 명지대교 건설계획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명지대교 건설 등 자그마치 13개 사업

집단민원·집회·1인시위 등으로 바쁜 이들에게 어떤 사람들은 “새가 밥 먹여주냐”고 핀잔을 준다. 그러나 이들은 괘념치 않는 눈치다. 철새 전문 환경단체인 ‘습지와 새들의 친구’ 운영위원장이자 현직 생물교사인 박중록 선생님은 하구연대가 탄생하는 데 산파 구실을 했다. 낙동강 철새 도래지의 훼손을 막기 위해 환경단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하구연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생태학교와 사진전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부산 시민을 상대로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는 ‘환경을 생각하는 교사모임’의 홍정욱 선생님과 주미란 교사 역시 하구연대의 또 다른 주역들이다. 주 선생님은 철새공화국의 전속 화가다. 행사를 알리는 딱딱한 펼침막에서부터 각종 문화행사를 알리는 그림이 그의 애정 어린 손길을 거친다.

부산녹색연합 김은정 환경부장은 신혼의 단꿈을 공화국에 반납했다. 그는 필자에게 “해질 무렵 을숙도 남단 갈대밭에 누워 수백마리의 고니가 바로 눈 위에서 날갯짓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모습을 보는 감동을 느껴본다면 낙동강 하구에 미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새들을 만나는 것은 자연과 하나 되는 일이며, 궁극에는 철새처럼 이 세상에 왔다가 돌아가는 자기와 만나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며 낙동강 하구를 기록하고 있는 국제신문 김해창 환경 전문기자 역시 하구연대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하구연대 최종석 상임대표(부산녹색연합 운영위원장)는 “명지대교 조기 건설을 주장하는 일부 지역 주민을 비롯해 지역 경제단체들과의 갈등 속에서도 원칙을 잃지 않고 활동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전봇대 위에서 출범식을 지켜보던 황조롱이가 갈대숲으로 몸을 숨긴다. 비행기가 철새공화국을 삼키기라도 할 듯 저공비행을 하며 지나간다. 하늘을 나는 인공새가 새를 쫓아내는 현실이다. ‘철새’가 가장 많이 몰리는 축제의 시절이지만, 최근 닥친 위기상황 때문인지 팽팽한 긴장감만 감돌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생겼기에 수비대까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걸까. 위험의 징후는 2002년 낙동강 하구 보전을 전담하는 직원 한명 두지 않은 부산시가 낙동강 하구 개발사업을 전담하는 30명 규모의 낙동강환경조성사업단을 만들 때부터 싹텄다. 사업단은 명지대교 건설사업과 낙동강 고수부지 정비계획 등 낙동강 하구 철새 도래지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대형 개발계획들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 낙동강 하구 파괴의 시발점이 된 하구둑은 시민들이 낙동강을 잊게 만들었으며, 각종 개발 추진의 빌미가 되었다. 흉물처럼 남아 있는 하구둑의 존폐 여부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되었다.

철새공화국의 상황은 생각보다 암울하다. 정부는 스스로 낙동강 하구의 보호를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31일 습지보호구역 최초의 대형 개발사업인 명지대교 건설사업을 기습적으로 승인했다. 문화재청 역시 지난해 9월 낙동강 염막둔치 정비사업을 허가했다. 낙동강 하구의 마지막 남은 육지부 핵심 서식처와 오리기러기들이 주린 배를 채우는 유일한 먹이공급처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심지어 자동차극장까지 허가

낙동강 하구에 신도시를 건설하려는 부산시는 문화재청과 환경부의 허가에 힘을 얻어 기다렸다는 듯 엄궁대교와 삼락대교, 사상대교 등 3개의 초대형 다리 건설계획을 밝혔다. 이뿐인가. 올 6월에는 신공항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서낙동강 정비계획, 명지주거단지 고층화 계획, 눌차만 매립계획, 도시철도 건설계획, 경전철 건설계획, 신호배후지구 화전산단 건설계획 등 낙동강 하구는 자그마치 13개의 대형 개발계획이 세워졌다. 가히 개발계획의 춘추전국시대다.

낙동강 하구 파괴의 시발점은 1987년 낙동강 하구둑이 생기면서부터 시작됐다. 하구둑의 폐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구의 물흐름이 바뀌어 새로운 모래톱이 끊임없이 생성되며 지형을 바꾸어 밀물 때나 큰 홍수가 날 경우 상습적인 침수 피해가 나고 있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이른바 ‘기수지역’도 사라져 기수성 어류와 생물이 사라졌다. 중금속의 축적과 수질오염도 문제다. 부산 시민은 오염된 민물 강물을 얻는 대신 노이로제와 엄청난 유지관리비를 안게 됐다. 풍요로운 하구와 건강한 해산물도 잃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하구둑 건설 이후 시민들에게 낙동강은 잊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산시가 추진하는 개발계획에 대해 시민 차원의 문제 제기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서도 이 점은 확인된다. 부산 사람들은 낙동강 하구와 단절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부산 시민의 식수원이자 농산물·해산물의 원산지인 이곳 낙동강 하구는 ‘죽은 강’ 취급을 받고 있다. 게다가 경기침체 때문에 낙동강 하구가 ‘성장의 엔진’으로 작용하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심리도 이같은 흐름에 힘을 보태고 있다.

낙동강 하구는 18종의 천연기념물 조류를 포함해 한해 200여종 1만~20만 마리의 새가 찾아온다. 람사협약(Ramsar Convention·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을 충족하는 한국의 대표적 철새 도래지다. 낙동강 하구의 생태적 중요성은 정부가 1960년대 이후 5번이나 이름을 바꿔가면서 이 지역을 보호구역(1966년 문화재보호구역→ 82년 연안오염특별관리구역→ 88년 자연환경보전지역→ 89년 자연생태계 보호구역→ 99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해온 것만 봐도 드러난다. 그러나 이처럼 생태적 중요성을 인정받은 곳이 개발계획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문화재보호법과 습지보호법의 예외 항목과 모호한 심의기준을 주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낙동강 하구를 보호할 목적으로 제정된 환경법의 허점을 이용해 각종 난개발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문화재보호법 제12조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거나 기타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그 지정을 해제할 수 있다. 문제는 해제 사유에 일관성이 없어 ‘특별한 사유’가 모든 사례에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심지어 자동차극장이 허가되기도 했다. 주거지 확보, 공단부지 조성, 철새 도래지 기능 상실, 수질오염, 도로건설 등을 명분으로 낙동강 하구 일대 10곳, 전체 면적의 4분의 1 정도가 보호구역에서 해제된 것이다. 또 부산시의 계획대로 명지대교가 건설되면 보호구역 내에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을 금지하는 습지보호법을 예외적으로 적용하는 첫 사례가 된다. 예외조항 때문에 환경보전의 보루인 각종 법률들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가 없는 자연은 인간도 버틸 수 없으리라

어쨌든 낙동강 하구 문제의 해결은 하구둑의 존폐 여부를 떠나서는 생각하기 어렵다. 하구둑의 교량 기능만을 살리고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둑의 기능은 포기해야 한다. 인위적으로 강물의 흐름을 차단한 결과 하구는 썩을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김은정 부장은 “보전보다는 개발에만 힘을 쏟는 지방자치단체에 관리를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새가 없는 자연은 인간도 버틸 수 없다’는 경구는 결코 빈말이 아니다. 필자는 정부 당국자들에게 을숙도 공화국에 한번 들를 것을 권고한다. 맨발이면 또 어떤가. 철새공화국에는 새들과 우리 후세의 미래가 녹아 있다. 을숙도의 품에 안겨 평화롭게 미소 짓는 아이들을 상상해보자. 해답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