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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 ] 2002년05월15일 제409호 

두메산골 황당한 아스팔트

행자부의 선심성 예산과 경북도의 마구잡이 도로건설, 애미랑재가 절단난다


사진/ 애미랑재를 파헤친 도로공사 현장.


왕피천은 동강에 버금가는 경북 제일의 청정하천이다. 지난 99년부터 온천 건설을 둘러싼 환경분쟁으로 외지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곳이다. 다행히 온천 건설은 막아냈다. 울진군의 지역주민과 지자체가 합심하여 저지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댐 건설 계획이 알려지면서 또다시 개발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최소한의 환경검토도 하지 않아


사진/ 작은 점으로 보이는 사람의 크기를 비교하면 훼손 규모를 알 수 있다. 완공도 되기 전 도로 옆면의 나무와 흙이 무너져내렸다.


이런 가운데 왕피천 최상류 지역에 대규모 도로가 건설되고 있다. 문제의 도로는 경북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와 봉화군 소천면 남회룡리의 경계인 애미랑재를 관통하는 도로다. 2차선 포장도로로 일반 국도나 지방도와 같이 아스콘을 깔아 약 10km 이상 길을 내었다. 현재 공사가 70% 이상 진행되었다. 사업 발주자는 경북도다.

포장도로가 들어선 지역 가운데 영양군 수하리 쪽은 왕피천의 최상류지역이며, 수하리에서 봉화군 남회룡리까지 연결된 인근 지역 전체가 국내 제일의 금강소나무 군락지다. 특히 남회룡리는 일제시대 때부터 금강소나무 산판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춘양목의 본래 원산지도 울진 소광리가 아니라 이곳 남회룡리 일대였다. 지금은 울진 소광리가 우리나라 제일의 금강소나무 군락지로 알려져 있지만, 지난 60년대 말까지는 남회룡리였다.

애미랑재 일대는 왕피천의 생태적 중심축인 통고산과 경북 북부의 생태적 거점인 일월산을 오가는 생태통로이자 야생 동·식물의 허리에 해당하는 서식처다. 왕피천은 강원도 고성에서 부산의 해운대까지 남한의 영동지방에서 발원하여 동해안으로 흐르는 물줄기 중 가장 맑고 깨끗한 하천이다. 연어와 은어가 회귀하며 하천 곳곳에 수달이 많이 산다. 산양·사향노루·담비·하늘다람쥐 등 주요 멸종위기종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서식하는 지역 중 한곳이기도 하다. 특히 일월산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산림자원과 생태계에서 조선 10대 명산 중 하나였다. 산 정상부의 대규모 군사시설 탓에 사람의 발길을 제한하여 지금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왕피천 최상류 지역을 파헤친 문제의 도로는 환경적인 절차도 다 무시하면서 들어서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물론이고 최소한의 환경검토인 사전환경성 검토조차 전혀 협의하지 않은 채 건설되고 있다. 공사발주처인 경북도의 관계자는 “연차적으로 부분부분 쪼개서 공사를 하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나 사전환경성 검토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환경평가를 편법으로 비켜간 셈이다.

경북도청이 환경평가를 전혀 거치지 않은 것에는 협의권자인 환경부의 직무유기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환경부는 지금도 왕피천 최상류지역의 생태보고에 대형도로가 건설되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이미 99년 봄 “왕피천-통고산 일대의 자연생태계가 상당한 보전가치가 있으니 보전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지역단체와 환경단체의 요청을 받고도 조사는커녕 현지에 한번 내려와 보지도 않았다.

마지막 남은 야생동물의 보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환경부로서는 이곳에서 도로가 건설되든 대규모 환경파괴가 이루어지든 “내가 알 바 아닌 것”이다. 환경부가 제때 제대로 조사하여 대책을 마련하였으면 도로건설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거나, 적어도 다른 대안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환경부의 직무유기로 우리나라에 마지막 남은 야생동물의 보고가 절단나고 말았다.

생태계 파괴와 함께 부실공사도 만만치 않다. 현재 흙을 파고 깎는 토공이 90%쯤 진행된 상황에서 절개지 곳곳이 무너지고 갈라지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당초 터널을 뚫거나 튼튼한 구조물을 덮어씌워 공사해야 하는 험한 산지였는데도 마구잡이로 사업을 추진한 결과다. 절개지 곳곳에 금이 가고 푸석푸석한 절벽 곳곳에 흙과 돌이 떨어지고 있다. 특히 소천면 쪽에서는 10t 규모의 나무와 흙더미가 통째로 떨어져내려 길가를 덮쳤다. 마치 산사태가 난 것 같은 붕괴의 현장이다.

애미랑재 도로 건설은 경북도청의 사업이지만, 사업비는 행자부의 양여금에서 나온다. 행자부가 도로 건설에 예산을 지원하는 명목은 ‘농어촌 지원사업’이다. 농어민들의 생업에 보탬이 되는 이동도로를 확보해주자는 취지다. 하지만 현실은 농업도로와는 거리가 멀다. 왕피천 최상류인 영양 수하리나 봉화 소천면 모두 각각 생업에는 거의 불편이 없는 비포장길이 이미 있다. 그런데 두 지역 간에 왕래가 거의 없는 애미랑재에 대규모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것도 산을 높이 100m 이상 수직으로 깎아내면서 길을 내고 있다.

행자부는 경북도가 어디에 어떤 용도로 농어촌 지원사업을 하는지 관심도 없다. 그저 지원만 해주고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실제로 행자부가 농어촌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광역 또는 기초지자체에 도로 건설을 지원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그런데 이들 예산이 제대로 쓰이는지 또는 적합한지 검토하지 않고 밑빠진 독에 물 붓듯 선심성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농어촌 지역의 도로 건설을 위해 지원하는 경우 경제성과 효용성을 비롯하여 환경성·재해안전성 등 여러 면을 따져보고 지원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제대로 검토했다면 국내 최고의 오지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 지역이자 통행의 필요성도 적은 산골에 길을 내는 데 수십억원을 쏟아부었는지 의문이다. 실제로 남회룡리의 한 주민은 “일년 내내 거의 인적이 없는 애미랑재에 저렇게 큰길을 왜 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모르긴 해도 어디서 남아도는 나랏돈이 있어서 쓸 데를 찾다찾다 이런 골짜기에 길을 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산사태와 붕괴의 조짐들


사진/ 절리층과 연약지반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해 돌과 흙이 계속 쓸려내려오고 있다.


애미랑재 관통도로와 비슷한 사례가 더 있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와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의 경계인 석개재 관통도로다. 이 도로도 애미랑재 관통도로처럼 국내 으뜸가는 생태보고 중의 하나인 지역에서 마구잡이 공사로 개설되었다. 별 효용성도 없이 대규모 환경파괴와 재해 위험만 높다.

2001년 12월에 개통되었는데 올봄에 이미 산사태와 붕괴의 조짐이 나타났다. 단층과 절리 등 지질적인 불안정성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하고 부실하게 시공한 탓이다. 대규모 재해의 위험성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도로인 셈이다. 또한 석개재는 국내에서 산양이 가장 많이 서식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천연기념물 산양이 최근 2년 사이에만 3차례나 발견된 지역이다. 그런데 이제 산양의 터전도 관통도로로 인해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애미랑재와 석개재는 백두대간과 함께 남한 생태계의 중심축인 낙동정맥의 핵심권역이다. 낙동정맥은 태백산부터 부산 금정산 너머 다대포까지 이어지는 400km가량의 산줄기다. 낙동강과 함께 경상남북도를 아우르는 산림생태계의 보고다. 그리고 이 낙동정맥에서 가장 보전가치가 높은 곳이 바로 애매랑재와 석개재 일대다. 행자부의 퍼주기 선심성 양여금과 지자체의 마구잡이 도로건설로 남한의 마지막 생태보고라고 할 만한 이곳이 무참히 파헤쳐졌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산의 해’다. 그러나 가꾸고 지켜야 할 산이 여전히 망가지고 있다. 그것도 개인이나 기업이 아닌 정부에 의해 허리째 잘려나가는 현실은 ‘산의 해’라는 이름을 더없이 무색하게 한다.

글·사진 서재철 ㅣ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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