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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특집 > 이슈추적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8월14일 제7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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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록문화 사망 사건

대통령 기록물 유출 의혹의 의문점들… 당사자인 국가기록원은 중립성 잃고 우왕좌왕, 청와대가 정치쟁점화

▣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지난 7월24일 국가기록원이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 등 10명을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한 뒤 검찰의 ‘대통령 기록물 유출 의혹’ 사건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8월1~2일 봉하마을에서 사용하던 e지원 서버를 압수했으며, 이후로는 관계자 소환 조사와 서버 분석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버 분석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일부 언론보도가 있기도 했지만, 프로그램 가동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기관의 고발이라는 명분을 얻은 검찰은 누구에 의해서 어떤 정보가 얼마나 열람됐는지 등을 낱낱이 밝혀보겠다는 기세다.


△ 7월19일 새벽 1시께 노무현 전 대통령 쪽이 e지원 기록물이 담긴 하드디스크와 백업디스크를 반납하자, 경기 성남에 위치한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들이 이를 수령해 옮기고 있다. (사진/ 연합 신영근)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오는 과정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존재한다. 특히나 이번 사안이 검찰 수사를 거쳐야 할 성격의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보이는 목소리가 많다. 몇 가지 의문점을 중심으로 그동안 논란이 됐던 대목을 짚어보며 시시비비를 가려봤다.

① 기록물을 왜 복사해갔을까?

문제의 출발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재직 당시 생산된 기록들을 왜 복사해 봉하마을 사저로 가져갔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쪽은 “열람권이 제대로 보장될 때까지 사본을 가지고 있고자 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지난 7월11일 봉하마을을 찾아온 새 민주당 지도부에 “기록을 보지 말라는 말이냐. 그전부터 (청와대 쪽과) 대화하면서 (열람) 조치를 바랐다.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조치가 되는 대로 사본을 돌려주겠다”고 밝힌 것도 이에 바탕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열람권과 복사본 소유권은 차원이 다르다. 평소 “노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기록문화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말해온 한 기록학 전공 교수는 “아무리 열람권이 보장됐다지만, 자료를 복사해서 가지고 나간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도 논평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쪽도 국가기록원과 협의도 하지 않은 채 기록을 봉화마을로 가져간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전직 대통령 열람권은 보장돼야 하지만 적절한 수단을 통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열람이 자유롭지 않다는 이유로 기록들을 통째로 복사해간 행위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기간 생산된 기록물들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한 결과로 보인다. 이는 노 대통령의 특이한 캐릭터가 작용했다는 얘기인데, 참모진의 책임을 묻는 지적도 있다. 정부부처 한 기록연구사는 “열람권을 이유로 복사본을 가지고 있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얘기인데, 이런 구상이 실행되도록 놔뒀다는 것은 참모들의 과잉충성 결과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쪽으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법률상 전직 대통령은 재임 때 생산된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돼 있지만, 국가기록원이나 대통령기록관은 열람 편의 제공에 소극적인 자세였다. 노 전 대통령이 7월16일 발표한 ‘이명박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에서 “기록을 보고 싶을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천리길을 달려 국가기록원으로 가야 합니까?”라고 항변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더욱 억울해할 만한 대목은, 현 정부로부터 은밀히 기록을 복사해 훔쳐간 것처럼 공격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달리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줄곧 열람권이 제대로 보장될 때까지 e지원 기록을 복사해갈 뜻을 밝혀왔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에는 행정안전부(당시 행정자치부)에 봉하마을에 설치할 서버 구축 비용을 전자정부 예산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방안 등을 검토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당시 행정자치부는 이같은 지시에 긍정적인 뜻을 밝히며 구체적인 절차 진행을 국가기록원에 넘겼고, 국가기록원도 비슷한 태도를 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국가기록원의 실무 팀장이 “이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다른 의견을 내놓으며 버텼는데, 정권 말기에 다다르면서 문제가 유야무야됐다고 한다. 당시의 내막을 잘 아는 한 학계 인사는 “이 문제로 행정자치부 차관과 국가기록원장, 국가기록원 팀장이 함께 만나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국가기록원 주무팀장이었던 ㄱ씨는 “지금 그 문제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이 기록을 복사해갈 뜻을 밝혔을 때는 행정자치부와 국가기록원이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새 정부 들어 청와대에서 문제를 공론화하자 새삼스레 노 전 대통령 쪽을 압박하더니 고발까지 하고 나선 셈이다. 국가기록원이 e지원 기록을 복사해가려는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지난해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인지, 또 사실이라면 당시에는 왜 아무런 조처를 안 하다가 이제 와서야 고발까지 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국가기록원의 조이현 학예연구관은 “검찰 수사가 시작된 만큼 국가기록원이 이 사안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특히 8월6일 통화에서는 “원장님께 보고하고 그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해주겠다”고 밝혔으나, 7일 통화에서는 “이해해달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변을 안 하기로 내부에서 정리가 됐다”고 말을 바꿨다.

②청와대는 정말 개입 안 했나?

지난 7월24일 국가기록원의 고발에 대해 청와대는 “국가기록원이 알아서 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조이현 국가기록원 학예연구관은 “이런 일은 기록원 자체 판단이 어렵다. (청와대와) 긴밀하게 협의해서 한 것이다”라고 밝혀 청와대가 이중플레이를 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한겨레> 7월25일치 1면). 실제 국가기록원 주변이나 기록학계에서는 청와대가 이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기 위해 강경 대응을 주도하고 있다는 말들이 무성하다.


(크게보기)

청와대와 국가기록원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고발 전날인 23일 저녁에 청와대가 국가기록원에 ‘일단 고발장 접수를 유보하라’고 지시했다가, 이튿날 아침에 다시 전화로 ‘방침이 바뀌었다. 고발장을 접수하라’며 새롭게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기록원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세부적인 사항에서조차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다. 오직 청와대에서 시키는대로만 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실제 고발 전날까지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고발을 안 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정리돼가고 있다는 청와대발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 관계자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농후한 셈이다.

또 이 말이 사실이라면, 노 전 대통령을 코너로 몬 강경대응은 청와대의 작품이고 이를 주도한 이는 이명박 대통령 본인일 가능성이 크다. 고발 전날 저녁에 고발 유보를 지시했다는 것은 실무진 또는 참모회의에서 그런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뜻인데, 이튿날 아침까지 사이에 이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대통령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겉으로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언급하면서 뒤로는 노 전 대통령 쪽 인사 고발까지 직접 결정했다는 얘기여서, 나중에라도 사실로 확인될 경우엔 정치도의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사실 청와대가 강경 대응을 주도했다는 정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청와대 설명대로 국가기록원이 이번 고발 조처 등을 알아서 진행했다면 청와대는 담당비서관실(연설기록비서관실)을 통해 사건 진행 내역을 보고받고 일상적으로 챙겼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이 업무를 담당한 부서는 대통령실장 직속의 기획관리비서관실이었다. 기획관리비서관실은 정권 초기 ‘왕 비서관’으로 불리던 박영준 비서관이 이끌던 기획조정비서관실이 이름만 바꿔 단 곳으로, 박 전 비서관과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진 정인철 전 인수위 전문위원이 비서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특히 지난 수개월 동안 서울시 출신 ㅈ행정관과 감사원 출신 ㅇ행정관이 이번 사건을 맡아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관계자 등 여러 명을 불러 직접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을 주무 비서관실 대신 정무 전체를 관할할 수 있는 실세 부서인 기획관리비서관실에 맡기고 자체 조사를 진행한 사실은, 청와대에서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7월18일 노무현 전 대통령 쪽과 국가기록원은 기록물 반환협의를 벌였으나 의견차로 결렬됐다. 결렬 뒤 정진철 국가기록원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연합 최병길)

또 국가기록원은 7월21일 낸 ‘봉하마을 협의 관련 쟁점 및 입장 발표’라는 자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 있는) e지원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는 서버 7대 모두를 현재 상태 그대로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봉하마을 쪽에서는 관련 서버는 2대라며 사실과 다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은 7월29일 국회 민생안전대책특별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 사저에 e지원 시스템 서버 7대가 있다는 것을 청와대가 국가기록원에 통보함으로써 알게 됐다”고 답변했다. 청와대와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의 긴밀한 협조(?) 속에서 이번 사안이 진행돼 왔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③국가기록원은 제구실했나?

청와대의 개입과 관련한 의혹은 이번 사안에서 국가기록원이 과연 제구실을 했냐는 물음과도 일맥상통한다.

우선 한 기록학 전공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번 사건을 총평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아키비스트(기록관리전문가) 윤리강령’이란 게 있다. 아키비스트들이 기본윤리를 지키자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전문성과 중립성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의 내셔널 아카이브(정부 기록보존소)가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권력의 명령에 복종해버린 사건이다. 어차피 이 사건도 지나가게 마련일 테지만, 이제 우리나라가 아키비스트 윤리 강령을 지켜내지 못한 사실이 전세계 아키비스트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우리(기록학계)는 그런 수치를 안게 됐다.”

사실 이 교수가 지적한 독립성 문제는, 국가기록원이 이번 사안을 진즉에 파악하고 있었으면서도 청와대가 움직인 뒤에야 호들갑을 떤 사실에서 쉽게 확인된다. 이는 봉하마을과 국가기록원 사이의 반환 협의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노 전 대통령 쪽 김경수 비서관은 “하드디스크와 하드디스크의 백업(카피)본 둘 다 내줬는데도 국가기록원에서는 전체의 백업본을 만들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시간도 이틀씩 걸리고 문서 이관 때도 백업을 받는 것은 이례적이어서 ‘이대로 가져가든지 아니면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얘기했다”며 “그랬더니 정진철 국가기록원장이 ‘혼자 결정 내릴 사안이 아니다’라며 나가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한 시간이 넘도록 ‘답을 기다려야 한다’면서 확답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12조는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은 대통령기록물이 공공기관 밖으로 유출되거나 이관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이를 회수하거나 이관받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률에 기록 회수 책임자를 규정된 국가기록원장이 실제로는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 셈이다.


△ 7월13일 김영호 행정안전부 1차관(맨 왼쪽) 등이 기록물 회수 방안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 쪽의 얘기를 듣기 위해 봉하마을 사저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이처럼 국가기록원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는 일차적인 이유는 국가기록원이 행정안전부 산하 기관으로, 1급 공무원인 국가기록원장은 평범한 행정관료 가운데 임명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어차피 한때 거쳐가는 자리이고 다음 인사를 바라봐야 하는 입장에서는, 윗선의 지시에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이 자리를 거쳐간 인사들의 전후 보직을 보면, 이런 점은 쉽게 확인된다(표 참조). 또 국가기록원에서 실질적인 업무 책임을 지는 각 부서장 또한 대부분이 일반행정직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이뤄진 인사에서 기록학 전문가들이 팀장을 맡아오던 자리는 8개에서 2개로 대폭 축소됐다. 6개 자리는 일반직 공무원들로 채워졌다.

기관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전문성 있는 일처리를 바라기도 쉽지 않다. 일반인들이 오해하고 있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것이 전문성일 텐데, 이번 국면에서 국가기록원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건 초기에 청와대에서 ‘원본 유출’(사실은 사본 유출)이니 ‘완전한 원상복구’(사본 유출인 만큼 ‘회수’가 정확한 표현) 등 사실을 왜곡하거나 기록학적으로 틀린 표현을 써가며 노 전 대통령을 공격할 때, 국가기록원은 제대로 시시비비를 가지지도 못했고 의미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한 기록학 전공 교수는 “일단 반환하겠다고 하면 받고 난 뒤 조용히 봉하마을에 가서 로그인 기록을 분석하고 반환된 자료의 파일과 메타데이터 수를 카운팅하면 유출된 자료와 회수된 자료가 일치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봉하마을에서 반환하겠다고 하는데도 국가기록원이 거부해가며 정치싸움의 당사자가 됐다”고 비판했다.

여기까지 사건 진행을 종합해보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기관·사람들은 침묵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이, 엉뚱한 곳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사건을 정치적으로 몰고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일처리로 인해 현 정권에서 ‘원본 대조’를 핑계삼아 참여정부 시절의 ‘지정기록물’(정치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어 정권 교체 뒤 일정 기간 열람을 제한하는 문서)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만약 이런 우려가 현실화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이에 바탕한 무수히 많은 정치공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아쉬운 것은, 10여년 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한국 고속철도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병인양요 시절 강화도에서 약탈해간 의궤 등 문화재를 반환하겠다고 약속하자, 사표까지 써가며 반대하고 나섰던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아키비스트 같은 공무원이 우리에겐 왜 한명도 없냐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