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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특집 > 이슈추적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7월31일 제7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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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의 도구로 복귀하길 거부한다”

촛불집회 특별외박 2박3일을 마치고 부대 복귀 거부한 의무경찰 이길준 이경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그는 거부한다. 시민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방패를 들고 뛰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다. 세상은 그것을 ‘전·의경 명령거부권’이라고 부른다. 이제 그는 거부한다. 자꾸만 타협해온 자신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는 저항한다. 청춘을 야만의 거리로 내모는 국가권력에 저항한다. 세상에 순응하려는 자신에게 저항한다. 그러니까 현역 의무경찰 이길준(24) 이경의 양심선언은 권력에 대한 거부이며 자신에 대한 저항이다. 서울 중랑경찰서 방범순찰대 소속인 이 이경은 7월23일부터 2박3일의 특별외박을 나왔다가 부대 복귀를 거부했다. <한겨레21>은 24일 부대 복귀 거부 결심을 굳힌 그를 만났다.


△ (사진/ ‘전쟁 없는 세상’ 임재성 활동가 제공)

하필이면 촛불집회 특별외박 중이었다. 촛불집회 진압에 투입됐던 전·의경들에게 7월 들어 특별외박이 주어졌다고 한다. 그는 외박 기간이 끝났지만 도저히 촛불집회 현장으로 투입되는 현실을 자신의 양심으로 견딜 수 없다며 부대 복귀를 거부했다. 자신의 양심이 하얗게 타는 듯이 느꼈던 그날을 생각하면 도저히 돌아갈 자신이 없다. 5월31일에서 6월1일까지, 촛불집회 현장에 물대포도 연행자도 처음 나왔던 그 밤에 그는 그곳에 있었다. 그 뒤로도 청와대로 향하는 시위대를 막기 위해 길목을 지키는 거점 근무를 했다. 마음은 시위대와 같았지만 몸은 시위대 너머에 있었다. 그는 현역 의경으로 방패를 들고 시위대를 막아야 했다. 어느 순간에 보니, 자신이 전경들 맨 앞에 있었다.

촛불집회 진압에 투입됐던 5월31일 당시의 상황부터 들려달라.

2월에 입대해 5월 중순에 외박을 나왔다. 전에도 친구와 편지를 통해 촛불집회 얘기를 들었다. 궁금해서 집회에 참가했다. 전통적인 집회와 달리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촛불집회가 가슴에 와닿았다. 더욱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씁쓸한 기분으로 복귀했다. 나는 돌아가면 반대편에 있어야 하니까. 그래도 진압이 아니라 경비를 서는 것이라고 자위했다. 외박에서 돌아간 다음날인 31일 진압에 투입됐다. 기동대 버스에 있었는데 전원 하차해서 간이 진압복을 입고 방패를 들고 어딘가로 뛰어가라고 다그쳐서 정신없이 달렸다. 어느 순간, 내가 시위대 앞에 있더라. 청와대 가는 길목인 효자동 부근에서 시위대와 대치했다. 전·의경들 모두가 긴장하고 소리지르고, 도저히 현실감도 느껴지지 않고 감정이입도 되지 않았다. 물대포가 온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쏘지 않겠지 했는데…. 마침내 진압이 시작됐다. 물대포를 쏘면서 앞으로 나가라고 하더라. 뒤에서 밀어대니까 앞으로 밀려나갔다. 광화문까지 시위대를 밀면서 해가 뜨는 아침까지 진압을 했다. 끝나고 길바닥에 앉아 있는데 뭔가 하얗게 탄 것 같았다. 인간성 같은 것이.

당시에 그는 (아마도 시위대가 던진) 소주병에 맞았다고 했다. 그래도 아프지 않았다. 그는 “시위대는 비무장이고 나는 방패를 들고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가는 공포스러운 존재니까”라고 말했다. 촛불집회 전까진 방범순찰대로 중랑경찰서 관내 거점에서 경비를 서며 그나마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평온한 일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6월 한 달 내내, ‘철야, 철야, 철야’로 이어지는 진압의 연속이었다. 6월10일을 앞두고 72시간 철야 집회 동안엔 기동대 버스에서 잤다. 그나마 나머지 날들도 새벽에 들어가 잠만 자고 나오는 강행군이었다. 그렇게 지쳐 부대에 들어가도 군기가 빠졌다며 단체기합을 당하는 날도 있었다. 그는 “몸이 피곤한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시민을 향해서 폭력을 행사한다는 양심의 가책은 너무 힘들었다”고 돌이켰다. 그래서 일부러 다치려고 시도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도피하긴 싫었다.

명령을 거부해야겠다는 결심을 언제 굳히게 되었나.

6월엔 타협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7월로 넘어가면서 도피가 아니라 저항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20년 넘게 살았는데 그동안 나를 억압한 것에 대해 제대로 저항해본 적이 없다는 반성이 들었다. 또다시 순응하면 이율배반의 인생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외박을 나가면 들어오지 말자고 결심했다. 공명심이나 영웅심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해 좋은 의미에서 이기적인 마음으로 하는 일이다. 혹시나 이것이 자극이 돼서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또 다른 전·의경이 나오면 좋겠지만.

시위 현장에 나가서 명령 거부권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보았나.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운 상황이니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지나가는 것만 봐도 힘들었다. 헬멧을 쓰고서 혼자 울기도 했다. 당장 시위대로 달려가 명령거부 선언을 해버리고 싶은 적도 있었다.


△ 7월25일 기자회견은 무산됐지만 그는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이덕우 변호사, 한홍구 교수(왼쪽부터/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촛불집회가 뜨거워질수록 부대 분위기도 험악해졌다. 그는 “7월에는 매일 맞았다”고 말했다. 시위 현장에 나가면 살기등등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고 기동대 버스 안에서 얼차려를 당했다. 원래 전·의경 부대는 구타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 7월16일에도 제주 동부경찰서 소속 선임 전경이 후임의 목을 발로 차서 윤아무개 일경의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건이 있었다. 최근 구타 사건은 군부대보다 전·의경 부대에서 흔하다. 그는 “지휘관들이 항상 가혹행위 금지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말을 아꼈다. 구타 문제 등을 부각해 특정인을 고발하는 목적이 아닌 것이다.

현장에 나간 전·의경 분위기는 어떤가.

현장에 있으면 소문이 돈다. 저쪽에서 쇠파이프를 들고 다니더라, 버스를 부순다더라. 그러면 공포감이 조성된다. 더구나 고참들이 시위대를 항상 욕하니까 비판의식이 없으면 자연스레 물든다. 더구나 시위대 때문에 자신들이 고생한다고 생각하니까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 지휘관도 교양을 하면서 ‘시위대 안전을 염두에 두고 진압을 해라’가 아니라 ‘문제가 생기니까 때리지 말라’는 식으로 말한다. 요즘은 ‘카메라가 있으니까 조심해라’, 심지어 ‘때려라. 그런데 보이지 않게 때려라’라고 말한다.

경찰은 촛불집회 과정에서 400명의 전·의경이 다쳤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물대포 때문에 많이 다친다. 나도 물대포에 맞아보았다. 사실 (시위대에) 맞아서 다치기보다는 (뒤에서) 밀어서 다쳤을 것이다.

의경 중에 채증 요원은 따로 있나.

현장에 나가면 부대원 중에 한 명을 채증 요원으로 정한다. 그가 사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사인’이라고 부르는 사복경찰이 있다. 도처에 깔려 있는데, 그들이 지나가면 선임들이 ‘저 사람 사복이다’ 그런다.

이제 세상은 그에게 물을 것이다. 의무경찰은 자원입대 아니냐고. 당신이 선택한 의경이 아니냐고. 전경은 육군 지원병 중에서 강제로 차출당하지만 의경은 자원 입대한다. 그는 “오래전부터 징병제를 비판해왔지만 스스로 병역거부를 선택할 자신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자신에 대해서 “도피할 뿐 저항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군대에 대한 고민으로 2년 대학을 다니고 3년 휴학했다. 군입대를 미루며 고민했지만 마땅한 대안은 없었다. 마침내 영장은 나왔고 그래도 군대보다는 ‘대체복무’에 가까운 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의경에 지원했다. 그는 “시위 진압이 아닌 업무로 배치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돌아보면 안이한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1학년 때는 멋모르고 놀았다. 학회 활동을 하다가 2학년 때는 과학생회장을 했다. 너무 할 사람이 없었다. (웃음) 사회적 약자나 군대에 관심이 많았지만 특별한 조직에 속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실 깃발 들고 다니면서 팔뚝질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촛불집회는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축제 같은 분위기라 좋았다. 사실 촛불집회의 이러한 성격이 아니라면 지금도 부대생활에 적응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기껏 후임을 ‘갈구지’ 않는 착한 선임이 됐겠지.

당신의 명령거부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면 심한 비판도 받을 것이다. 운동권이라서 혹은 어려운 부대생활을 못 견뎌서, 이런 이유들 말이다.

사실 걱정은 된다. 음… 운동을 거창하게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각자의 생활 속에서 자신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운동이 아닐까. 나는 이런 선언을 통해 무언가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는 전략적 사고를 하지는 않는다. 그저 사람들이 나에게 자극을 받아서 각자의 삶에서 저항을 시작한다면 그저 좋겠다는 마음이다.

징병제에 반대하는 이유는?

한 사람의 시간과 노동을 국가가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군대는 전쟁 억제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상 살상 기술을 배우는 곳이다. 그것을 배우도록 강요하는 일은 무자비하다.

그는 “촛불집회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타협하며 생활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촛불집회 강경 진압은 더 이상 그의 양심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25일 열릴 예정이었던 그의 기자회견 제목은 ‘진압의 도구에서 양심의 주체로’. 그는 “스물을 갓 넘은 청년들을 공권력을 위한 억압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을 촛불집회를 통해 확인했다”며 “더 이상 그런 질서를 유지하는 일에 동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촛불집회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지만 그가 부대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다.

그는 당초 25일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양심선언을 할 예정이었지만, 부모의 만류로 무산됐다. 이날 기자회견장 부근에는 상당수 경찰이 몰려왔고,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가려다 인권단체 활동가들에게 제지당했다. 비록 이날 기자회견은 무산됐지만 그는 25일 저녁 8시 복귀 시간까지 소속 부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길준 이경은 2003년 이라크전쟁에 반대해 부대 복귀를 거부했던 강철민 이병처럼, 입대 이후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경우가 됐다. 그는 앞으로 ‘전·의경제 폐지를 위한 연대’와 함께 행동할 예정이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헬멧 너머로 혼자 눈물을 흘렸던 청년은 호소한다. 전·의경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자신은 혼자가 아니길 원한다고.


이계덕 상경 긴급구제 조치 결정

전환복부 요청 뒤 징계·폭행·따돌림

그는 아직도 징계 중이다.

지난 6월12일 전투경찰 업무가 자신의 양심에 반한다며 육군으로 전환복무를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청구했던 이계덕 상경은 계속해서 징계를 당하고 있다. 이 상경은 6월17일부터 인터넷·전화·면회 금지 등의 처분을 당했고 24일부터는 근무태만 등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영창 15일의 징계에 처해졌다. 영창에서 부대로 복귀한 다음날인 7월9일부터 또다시 두 달 동안 면회·외박·외출·인터넷 사용 금지 처분을 당하고 있다. ‘전·의경제 폐지를 위한 연대’는 이계덕 상경에 대한 경찰의 처분에 항의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신청을 했고 인권위는 24일 긴급구제조치 결정을 내렸다.

‘전·의경제 폐지를 위한 연대’는 이 상경이 전환복무 신청을 한 뒤로 보복성 처분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소속 부대는 그가 전환복무 신청을 한 뒤인 6월17~22일 점호 시간 등에 부대원들에게 이 상경에 대한 생각을 담은 진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또 영창에서 돌아온 뒤에도 이 상경은 부대에서 물리적 폭력과 왕따에 시달리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에 이 상경은 7월12일부터 부당한 징계에 대한 항의와 성폭력 고소건에 대한 결백을 주장하며 단식을 하다가 17일 체력 저하 및 구토 증세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인권위는 서울경찰청장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이 상경을 조속히 다른 부대로 전출을 보내라고 권고하고, 해당 전경대장에게도 현재 진행 중인 2개월의 면회 제한, 인터넷 금지, 외박 제한 조처를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긴급구제신청에 대한 조사를 마친 인권위는 “이 상경이 선임병들로부터 두 차례 구타를 당한 바 있고, 현재까지도 고소, 보복 및 따돌림 등 갈등관계가 지속되고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제2의 인권침해 가능성을 우려했다.

국가인권위법에 따르면, 인권위는 ‘사태를 방치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 발생이 우려되는 때’ 긴급구제조치를 내릴 수 있다. 이렇게 내려진 긴급구제조치는 강제성은 없지만, 지금까지 시정권고를 받은 국가기관은 대부분 이를 수용해왔다. 과연 이계덕 상병에 대한 긴급구제도 가능할까. 경찰이 응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