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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특집 > 이슈추적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7월17일 제7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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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못 튼 남북에 울려퍼진 총성

북한군 경계지역에서 총격을 받고 숨진 금강산 관광객, 관광도 관계도 허망하게 끝나나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금강산 관광에 나섰던 50대 여성이 북한군 경계지역에 들어갔다가, 초병의 정지 요구에 불응하고 도주하다 총격을 받고 숨졌다. 잘잘못을 가리는 건 나중 일이다. 달아났더라도 숨을 곳은 없었다. 해뜰 무렵이었다. 관광객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을 게다. 설령 현장에서 붙잡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을 터다. 그럼에도 무장한 군인이, 비무장 민간인을 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김중태 통일부 남북교류협력국장이 7월11일 오후 서울 도렴동 통일부 기자회견장에서 남쪽 관광객이 금강산에서 북쪽 초병의 총격을 받고 숨진 사건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새벽 울타리 넘은 이유, 총 쏜 이유

통일부가 7월11일 오후 발표한 사건의 전모는 대략 이렇다. 이날 새벽 4시30분께 금강산 관광객 박아무개(53·여)씨가 숙소인 비치호텔을 나섰다. 해수욕장 주변을 산책하던 박씨는 석연찮은 이유로 관광객 통제구역 울타리를 넘어 북한군 경계지역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북한군 초병에게 발견된 박씨는 정지 요구를 무시하고 그대로 달아났다. 그가 장전항 북쪽 구역의 기생바위와 해수욕장 중간지점에 닿았을 즈음인 이날 새벽 5시께, 북쪽 초병은 경고 사격에 이어 두 발의 총격을 가했다. 이날 오후 남쪽으로 옮겨진 박씨의 주검을 검안한 의료진은 “흉부 총상에 따른 호흡부전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남쪽 관광객이 북쪽의 무력행사로 목숨을 잃기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당연히 의문이 꼬리를 문다. 박씨는 왜 이른 새벽 울타리를 넘어 북쪽 군사지역으로 들어갔을까? 정지 요구에 왜 따르지 않았을까? 북쪽 초병은 박씨가 관광객임을 알아볼 수 없었을까? 왜 박씨를 사로잡는 대신 총격을 가했을까?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우발적인 것인가, 의도된 도발인가? 조만간 남과 북이 공동으로 진상을 가려야 할 대목이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긴급 브리핑에 나서 “북쪽에 철저한 합동 진상조사를 요구할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서 상응하는 조처를 해나갈 것”이라며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금강산 관광을 잠정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과 북의 허망한 대결로, 또 한 명의 애꿎은 목숨이 스러졌다.

“남북 당국의 전면적인 대화가 재개돼야 한다.” 박씨가 비명에 간 이날 오후 이명박 대통령은 18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공교롭게도 ‘대화’를 말했다. 이 대통령은 “과거 남북 간에 합의한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북쪽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앞선 정권의 정상회담 성과를 거론했다는 점에서, ‘전향적’이라 부를 만했다. 그래서 더욱 시점이 묘하다. 이 대통령은 ‘금강산 총격 피살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에도 ‘대화’를 얘기한 걸까? 혹 청와대의 위기관리 체계에 허점이 있었던 건 아닐까?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사건의 진상을 남북이 공동으로 밝혀, 적절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는 게 절차다. 그러면서도 경협 등 남북관계를 단절시켜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솔직히 계산이 잘 서지 않는다.” 한 북한 전문가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와 관련해 보수 지지층의 압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한동안 남북관계가 대결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도 “1996년 동해 잠수함 침투 사건 당시 김영삼 정부는 이를 대북 강경책의 근거로 삼았고, 결국 남북관계가 장기간 단절됐다”며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보여온 대북정책의 기조로 볼 때, 앞으로 상당 기간 남북관계의 단절은 피할 수 없을 듯싶다”고 우려했다.

“진상 밝히되 관계 단절시켜선 안 돼”

물론 “비극적인 사건의 진상 규명에 남북이 공동으로 나서면서 되레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주변국의 개입 가능성을 언급하는 이들도 있다. 1996년 잠수함 침투사건을 전후로 북-미 대화가 활발해지면서, 미국의 압력에 밀린 북쪽이 남쪽에 유감과 사과의 뜻을 전한 전례가 있다는 게다.

문제는 남과 북, 그리고 남과 남이다. 북으로선 ‘군사지역 무단침입’과 ‘도주’를 내세워 선선히 고개를 숙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촛불’마저 ‘빨갱이 짓’으로 몰아가던 보수 진영은 거리로 쏟아져나와 ‘반북·반공’을 소리 높이 외칠 게 뻔하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는 취임 이후 이렇다 할 남북 접촉조차 하지 못했다. 이 비극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허, 이거 참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