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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특집 > 이슈추적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4월17일 제7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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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특검] 중앙일보 ‘특검 뻗치기’는 취재 방해용?

‘홍석현 회장님’ 호위 나선 기자들, ‘이건희 회장님’ 깍듯한 수사관… 삼성특검 ‘뻗치기’ 90일의 기록

▣ 김성환 기자 한겨레24시팀 hwany@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맵다. 그리고 쓰다. 삼성특검을 맛본 새내기 기자의 혀끝은 얼얼하다. 거대기업에 들이댄 특검의 ‘메스’에조차, 취재진의 풍경에조차 삼성의 권력이 묻어 있었다.

김인주 끄덕임에 “혐의 시인” 오보 날 뻔


△ 3월4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삼성 특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특검 취재 기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 ‘그냥 기자’와 ‘뻗치기 기자’. ‘뻗치기’는 기자들이 취재원을 한없이 기다린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뻗치기 기자는 특검팀 사무실에서 문지기 노릇을 한다. 서울 한남동 특검팀 사무실에 모여 있는 뻗치기 기자는 10여 명. 이들은 출입문 주변에 진을 친 뒤 드나드는 사람들, 서류들, 심지어 쓰레기통까지 기웃거린다. 이 대책 없는 노동은 물론 막내 기자들 몫이다. 겨울부터 시작된 105일을 버티려고 이들은 푼돈을 모아 전열기와 낚시용 간이의자까지 샀다. 뻗치기 기자가 목격한 특검 90여 일을 공개한다.

“왔습니다!” 우당탕. 특검팀 건물 출입문이 황급히 열리더니 기자가 소리를 지르며 들어온다. 소환자가 왔다. 느긋하게 쉬던 사진기자들은 카메라를 고쳐잡고, 취재기자들 시선이 출입구에 고정된다. 낯선 양복 차림의 신사들이 검정색 승용차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들의 입도 다투어 터진다. “어디서 오셨나요?” “어떤 조사를 받으러 왔죠?” 소환자들은 묵묵부답. 엘리베이터에 탄 뒤에도 한참 동안 카메라 세례를 받은 뒤에야 올라갈 수 있다.

가끔 뻗치기 기자들은 취재의 혼란을 빚기도 한다. 그 파급력도 핵폭탄급이다. 김인주(50) 삼성 전략기획실 사장이 소환된 4월8일. 승강기 안에서 김 사장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을 인정하느냐, 이건희 회장도 알고 있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실은 죄송하다, 그만하자는 끄덕임이었다. 하지만 뻗치기 기자들은 “김인주 사장이 혐의를 모두 시인했다”라며 6층 기자실에 타전했다. 6층 기자실은 ‘잠시’ 술렁거렸고 가사를 모두 바꿔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삼성 쪽이 혐의를 시인하기를 ‘바라는’ 뻗치기 기자들의 성급한 판단이 대형 오보로 이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소환자 신원을 확인하는 것은 뻗치기 기자들의 주요 임무. 눈썰미도 필요하다. 특검팀에서 소환자 신상정보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뻗치기 기자 ‘CSI팀’이 필요하다. 소환자 ‘직찍’ 사진을 돌려보며 인터넷 인물정보를 검색한다. 혼연일체가 되어 사진을 뒤적인다. “이 사람 아냐?” 눈썹·코·귀를 비교해보니 맞다.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진다.

방송 카메라 흔든 <중앙일보> 사진기자

뻗치기 90일 동안에는 크고 작은 사건이 많았다. 그 첫 번째는 ‘삼성빨대’ 사건. 한 언론사 기자가 <중앙일보> 막내 기자에게 “너희 신문사가 특검에서 나오는 정보를 빨대처럼 빨아서 삼성에 넘기는 거 아니냐”며 농담조로 비꼬았다. 취재기자는 여러 명 나와 있어도 관련 기사는 지면에 안 나오는 <중앙일보> 기자들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하마터면 신문사 대 신문사의 시비로 비화할 뻔했다.

실제로 <중앙일보> 기자들은 이건희(66) 삼성 회장과 홍석현(58) <중앙일보> 회장 등이 특검팀에 출석할 때에만 유독 포토라인 곳곳에서 ‘열띤 취재’ 모습을 보였다. 또 삼성특검 조기 종결을 촉구하는 조계종·원불교 인사들이 특검에 청원서를 접수하자 난 데 없이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특검 수사와 관련된 기사 대신 종교계 인사들의 주장을 전달하는 기사에 열을 올리는 모습에서 ‘특검 출입기자’보다 ‘종교 전문기자’가 더 어울리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취재 안 하는’ 기자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모습을 드러낸 3월4일에 극명히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아예 ‘취재 방해하는 기자’였다. 특검팀에 나온 ‘회장님’을 호위하러 나선 <중앙일보> 사진기자들이 포토라인 곳곳에서 다른 기자들의 사진 취재를 방해했다. <중앙일보> 동영상 기자는 1인시위를 하는 삼성SDI 울산공장 해고노동자에게 캠코더를 들이밀며 가로막았다. 이 모습을 목격한 다른 기자들이 동영상 기자를 붙잡자 몸싸움이 일어나고 고성이 건물 로비를 울렸다. 조사를 마친 홍 회장이 귀가할 때에는 <중앙일보> 사진기자가 방송기자의 카메라를 흔드는 ‘이해하기 힘든’ 장면도 목격됐다. 다음날, 특검팀에는 영상취재단 이름으로 항의 성명서가 붙었다. 포토라인은 무너졌고, 신뢰도 무너졌다. 손에 들려 있어야 할 카메라가 어깨에만 매달려 달랑거린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부끄러운’ 기자의 모습은 한동안 잊혀지기 힘들 것이다.


△ 홍 회장이 특검에 출두하는 현장에서 삼성 해고 노동자들이 피케팅을 하자, <중앙일보>의 인터넷 매체인 조인스 영상취재팀 기자가 이를 방해한 뒤 <중앙일보> 사진기자들의 보호를 받으며 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삼성이 직접 기자들을 상대로 ‘입막음 작업’을 한 것도 뻗치기 기자들에게 목격됐다. 삼성전자의 윤부근(55) 부사장과 이기태(60)·황창규(55) 사장이 소환됐을 때다. 삼성 쪽 이완수 변호사와 이인용 삼성전자 홍보팀 전무가 특검 기자실로 전화를 해왔다. “전세계 비즈니스 시장에선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며 “국제 시장에서는 마켓을 형성하는 브랜드 파워가 있는 인물”이라는 이유를 들며 보도에 이들의 실명이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기자들은 “삼성이 얼굴로 장사를 하냐”며 흘려들었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의 이름이 실제 ‘아무개씨’로 처리됐다.

삼성의 권력에 특검팀도 저자세를 보였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40) 삼성전자 전무가 출석한 날, 특검팀이 보여준 ‘저자세’는 놀라웠다. 특검팀 관계자는 기자브리핑 내내 “회장님”이라는 존칭을 써가며 이 회장을 지칭했다. 이 회장은 특검팀 수사과장의 안내를 받고 조사실로 올라갔다. 이 전무를 안내한 특검 수사관은 허리를 굽혀 악수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이날 경찰은 특검팀 주변을 순찰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피고발자 신분도 ‘삼성’ 이름 하나로 녹아내렸다.

김용철 변호사 “기사 잘리면 나랑 일하자”

3월에 접어들자 언론사 내부 인사 이동으로 어느 언론사는 특검팀 출입기자가 대부분 교체됐다. 중요한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담당 기자를 대거 교체하는 건 언론계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특검 관련 기사가 지면에서 사라지는 언론사도 생겨났다. 특검팀을 찾은 김용철 변호사는 기자들에게 “(윗선에 의해) 기사가 잘린다고 투정할 바에는 회사를 나와서 나랑 일하자”고 일갈하기도 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소문난 특검은 별 소득 없이 끝날 것 같다. 대신 그 안에서 삼성이라는 권력의 강력함은 뼈저리게 느꼈다. 수사 기간 105일. ‘이용호 게이트’ 수사와 함께 최장 기간 특검으로 기록될 삼성특검은 그런 개운치 않은 뒷맛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도 삼성이 못 없앤 것은 뻗치기 기자다. 이건희 회장도, 이학수(62) 삼성 전략기획실 부회장도 뻗치기 기자는 피해가지 못했다. 특검 마지막날까지 뻗치기는 계속된다. 이 회장이 두 번째 소환된 오늘도 밤을 지샌 뒤 샛별을 보고 퇴근할 모양새다.